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2
강철의 열제 72화
쏴아아아.
“흐으음~.”
푸르른 물결을 헤치며 나아가는 선단의 가장 앞머리에 선 제라르의 마음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제라르의 황금빛 머릿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좋아.”
배를 띄우는 것까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중간에 신성제국의 경계병을 만났을 때는 긴장을 했었지만,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처리를 했다. 이들의 활 솜씨는 제라르가 보기에는 기적이었다. 물론 며칠 전에는 그 기적의 활솜씨가 사람을 잡을 뻔도 했다.
삼일 전…….
“캬아! 역시 호수와 바다는 천지 차이야!”
“그렇지!”
수부들은 바닷바람이 좋은 듯,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마치 기마대가 말을 타야 살아있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이들도 배를 타고서야 살아 있는 듯한 생기를 보이는 것이었다.
“쩝, 이제 육지도 거의 안 보이고, 앞으로 고기 구경이 힘든 게 좀 아쉽군.”
“육포 있잖아.”
“에이, 생고기랑은 맛이 다르지.”
수부들과 병사들의 오가는 말에는 벌써 고기타령이 나왔다. 그러던 중 하늘을 바라보던 궁수대중 한 명이 어깨에서 활을 내렸다.
“새 고기 어때?”
“뭐?”
그들 위에 새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오오, 자네 저거 맞출 수 있나? 꽤 먼데 말이지.”
“뭐 우루 장군님이나 유월 부장님 보다는 못하더라도 저 정돈 나도 하지.”
그는 여전히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수부들도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이 고개를 꺾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하늘을 날고 있는 예비 고기 덩어리였다.
“대충 보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먹어도 되겠는 걸?”
“그러게. 꽤 큰 걸?”
그들의 동공에는 먹음직스러운 새 한 마리가 미소 짓고 있었다.
“이봐 춘삼이, 가능 하겠나?”
“믿으라구.”
그는 전통에서 화살대신 통아를 집어 들었다. 편전을 쏠 모양이었다.
“응?”
잠시 바람을 쏘이러 갑판 위로 나온 제라르의 눈에 한쪽에서 수부들이 하늘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이 보였다.
‘하늘에 뭐가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제라르의 고개가 하늘을 향해 들려졌다.
“음.”
하늘에는 새 한 마리가 배 위를 맴돌고 있었다.
“응?”
갑자기 제라르의 동공이 커졌다. 그리고 다시 제라르의 고개가 수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수부들의 한 가운데에서 한 병사가 활의 시위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헛! 안……!”
탱~!
쐐액!
“……돼!”
제라르의 입에서 만류하는 말이 미쳐 다 튀어 나오기도 전에 시위가 놓아지며 바람소리만 허공을 갈라갔다.
급박한 목소리가 제라르의 목젖을 뚫고 튀어 나왔다.
“모두 피해!”
“엇!”
“아이쿠, 여긴 왜 나오셨습니까요? 조금 있으면 새고기 구이를 대령 합지요, 헤헤헤.”
제라르의 경고성에도 불구하고 수부들은 연신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답답한 제라르의 음성이 그들을 향해 튀어나왔다.
“이런, 지금 쏜 게 뭔지나 아나! 화살 하나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
“잡았다!”
“역시 춘삼이 자네는 명궁일세!”
“…….”
또다시 제라르의 말을 잘라먹고 들려온 수부들의 목소리였다. 할 말을 잊은 제라르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서 맴돌던 새가 힘없이 추락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수부들의 입에서 이상하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라?”
“어?”
“으잉!”
그들의 목소리는 새가 떨어져 내릴 때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놀란 마음을 대변하듯이 어떤 이의 목소리가 비집고 흘러 나왔다.
“새가 점점 커진다?”
휘이이이잉!
처어엄~ 버어엉~!
쏴아아아아!
“…….”
순식간에 바다로 틀어박힌 새의 주검은 바닷물에 강하게 부딪혔다. 배의 옆으로 떨어진 충격에 배가 진동을 했고, 거대한 물기둥은 갑판에 있는 모두를 적시고 지나갔다.
“무슨 일이야!”
배가 기우뚱할 정도의 충격에 선실에서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그리고는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침묵을 깨고 나온 목소리.
“뭔 새가 배만 하다냐?”
제라르와 수부들은 바다 위에 늘어져 둥둥 떠 있는 와이번을 바라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것이…….
삼일 전에 벌어진 와이번 사냥 사건의 전말이었다.
“훗, 눈알을 맞출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우연인지 다행인지 춘삼이라 불린 궁수는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와이번의 눈알을 노렸고, 편전은 와이번의 눈알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 안의 뇌까지 헤집어버린 것이었다. 천운이자 다행이었다.
“대모달(大模達)님! 모달(模達)께서 회의 준비가 되었다고 뫼시라 하였습니다.”
그의 상념을 깨고 수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제라르는 한 번 더 공기를 머금고 선실로 향했다.
“…….”
잠시 제라르가 서 있던 뱃전으로 다가온 수부가 인상을 찌푸리며 멈춰 섰다.
“젠장 헐.”
갑자기 욕설을 내뱉은 수부가 뒤를 바라보며 외쳤다.
“야, 여기 걸레질해라. 또 토해 놓으셨다.”
“아씨, 또요?”
“그래.”
수부의 말에 어린 수부가 걸레와 물동이를 들고 다가오면서 투덜거렸다.
“그냥 선실에 계시지 무슨 물고기 밥 주는 것도 아니고 계속 뱉어 내신대요!”
“몰라. 에이 냄새.”
수부가 뜬 자리에는 동그랗게 부쳐진 전이 수부들의 비위를 자극 하며 존재 하고 있었다.
끼이익.
“충!”
“음.”
장보고 선단장이 예를 올리자 제라르가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받았다.
“어디 보자.”
오랜만에 배를 탄 덕에 제라르는 며칠간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비록 방금 전에도 토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되었다.
펼쳐 놓은 해도를 바라보는 제라르의 눈엔 고민이 서렸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이후가 문제였다. 목표로 삼은 무인도를 거점으로 잡기 전에 적선들을 만나도 곤란했다. 게다가 안전한 항로도 필요한 상태였다.
“할 수 없군.”
제라르의 눈이 걸린 곳은 바로 세이렌의 바다였다.
세이렌은 말 그대로 인간여성의 상체에 물고기의 하체를 한 반인반어였다. 문제는 이 세이렌들의 바다를 통과 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을 동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세이렌의 노래 때문이었다.
배가 지나가면 세이렌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애절한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수부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다로 뛰어들거나 배를 세이렌 쪽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세이렌의 앞쪽은 항상 소용돌이가 존재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수부들과 배는 바다로 가라앉는 것이다.
“뭐 경계만 슬쩍 걸쳐서 가면 되겠지.”
“장 선단장.”
“예, 대모달.”
“요리로 해서 이리로 해서 요렇게 갑시다.”
“…….”
지도 위를 손가락으로 몇 번 그으며 무슨 마부에게 길 알려 주듯 말하는 제라르였다. 그럼에도 많이 익숙해진 듯 장 선단장은 해도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장들에게 지시를 했다.
“선두선이 나갈 방향을 알려 주어라.”
“예!”
“아참, 그리고 장 선단장, 우리가 가는 곳은 위험한 지역인데…….”
지시를 하고 있는 장보고에게 다가간 제라르는 세이렌의 습성과 지나야 할 지역의 위험성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약간은 놀람과 경계의 눈빛을 띠우며 장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선장들도 놀라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한 번 해도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우리로선 적선도 피해야 하고 세이렌들도 피해야 하는 상황이니 그리 알라고.”
“예!”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달한 제라르를 향해 대답을 모았다.
항해 일주일째.
아직까지는 일정이 순조로웠다.
수부들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포로들도 비록 노예라고 명목을 삼아 끌고는 왔지만 마음의 평안을 주도록 최선을 다했다.
사실 가우리군이 끌고는 나왔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이들은 생명의 은인이다. 고블린에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 준 사람들이니 어느 정도 호감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회유 속에 여섯 척의 선단은 여전히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어?”
“왜.”
갑판을 돌아다니던 한 수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동료수부가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대신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소리 안 들려?”
“어라?”
그때서야 자신의 귀에도 무언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쾅!
“젠장!”
선실을 박차고 나온 제라르가 험악한 표정을 하고 갑판으로 달려 나갔다. 마침내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갑판으로 올라간 제라르의 귓가로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갑판에는 이미 많은 수의 수부들이 나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모두 물러서!”
제라르는 황급히 마나를 끌어올려 수부들을 향해 외쳤다.
‘빌어먹을, 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제라르의 머릿속으로 후회가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귀를 막는다고 안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제라르는 자신의 귀에 마나를 끌어 올리며 기둥으로 가서 자신의 몸을 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수부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물러서란 말이야!”
“지들유?”
“그래, 어서…… 어?”
제라르의 필사적인 외침에 돌아온 것은 수부들의 말똥말똥한 눈빛이었다.
제라르가 나오기 전 수부들은 생전 처음 들려오는 노래 가락에 신기한 듯이 몰려 나와 듣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먼 바다에서 누가 노래를 하는 거지?”
“글쎄…….”
“아, 가락 참 좋다.”
저마다 한마디씩을 하면서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제라르가 달려 나와 소리를 지른 것이다.
“모두 물러서.”
“……?”
“아니, 대모달께서 왜 저러시지?”
수부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제라르가 열을 내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모두 물러서란 말이야!”
“지들유?”
제라르의 외침이 다시 들려오자 수부 하나가 눈을 말똥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제라르의 눈이 커지며 이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모두 멀쩡…… 하네?”
“그렇쥬.”
“아, 근데 계속 흥얼거리기만 하고 곡조는 언제 뽑는대?”
“소리는 이쁜디, 와 노래를 안혀어.”
“…….”
제라르는 수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할 말을 잊어 버렸다. 노래를 듣게 되면 다른 이들의 대화소리가 먼저 안 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눈이 흐리멍덩하게 변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수부들은 저마다 고물에 매달려 지들끼리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관둘란다. 노래 한번 들을라다가 답답해 복장 터지겠다.”
“좀만 있어봐. 부르겠지.”
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성질 급한 수부가 뒤로 나오며 투덜거리자 옆에 있던 동료가 아쉽다는 눈으로 붙잡았다. 그러자 성질 급한 수부가 잡은 손을 뿌리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있긴 뭘 있어. 귀신처럼 ‘아아아아아.’ 이러고만 있는디. 내가 봤을 때 저건 노래가 아녀.”
“뭔대?”
“뭐긴, 귀신 씨나락 까 묵는 소리지.”
“낄낄낄낄낄!”
순간 배에 폭소가 울려 퍼졌다.
제라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른 배들의 진행 방향을 살펴보았다. 다른 배들의 상황도 지금 이 배와 똑같았다. 수부들이 저마다 신기한 듯이 떠드는 것이 제라르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었다.
“내 함 부를 거니께, 진짜 노래를 들어 보드라고~!”
“허이!”
웃통을 벗어젖힌 수부가 갑판 가운데로 튀어 나오더니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마치 말발굽 소리처럼 빠르게 울리는 곡조에 수부의 걸쭉한 음성이 바닷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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