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31
103화 승냥이와 너구리
이실라 공녀는 새로 갈아입은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흐음. 가슴이 좀 죄이는 느낌이군요.”
“호호…….”
“언니 C컵 아니었어? 굴욕이네?”
“시끄러!”
“허리는 좀 헐렁하고.”
“23이라며?”
“닥쳐!”
레이니는 지금의 상황이 즐거운지 한마디씩 던졌고, 몸매로는 어디 가도 뒤지지 않는다던 제이는 지금 굴욕을 맛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이실라 공녀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이었다. 크고 작은 상처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들을 했기에…….”
세인은 그 상처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참 여기가 화장실이에요.”
“화장실?”
이실라 공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변기를 보여주던 제이가 인상을 팍 쓰며 외쳤다.
“야! 너 물 안 내렸지!”
“아껴야 잘살지!”
레이니가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런 그녀를 향해 제이가 기세등등하여 다시 말했다.
“너! 토크쇼 나가면 다 퍼트린다!”
“안 돼! 내 이미지는 뭐가 되고!”
“그럼 제때제때 물 내려!”
제이가 인상을 쓰며 변기의 물을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실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물이 아니었구나.’
마침 목이 말랐던 차였기에 물을 뜰 만한 것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실라 공녀가 적응을 하는 동안 계웅삼은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음.”
일단 몸을 씻으라고 밀어 넣어진 곳에는 도무지 씻을 만한 것이 없었다.
“이건 대체…….”
살펴보니 우물이 있는데 물이 너무 적게 들어 있었다.
그때 우물 옆에 뭔가 쇠붙이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눌러 보니 물이 새로 채워졌다.
“흐으음.”
그것을 본 웅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하십니까?”
화장실 벽에 귀를 대고 있는 고진천을 보고 이승배가 멀뚱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쉿.”
진천은 대답 대신 입술 끝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때 웅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이렇게 새로 채워지는 것이군!’
그 목소리를 들은 진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진천이 소파로 가 가로로 누우며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하지만 잠시 후 진천은 벌떡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화장실을 향하고 있었다.
성큼 걸어간 진천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솨아아아!
“왜 그러십니까?”
웅삼이 샤워부스 안에서 물을 맞으며 서 있었다. 굳은 채 서 있는 진천을 보며 내심 찔린 웅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이렇게 쓰는 거 아닙니까?”
“…….”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진천의 옆으로 고개를 내민 승배가 입을 열었다.
“찬물로 씻으세요? 아직 날이 찬데. 그거 빨간 쪽으로 돌리면 따듯한 물 나오니까 쓰셔도 돼요. 온수 틀어 놨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승배가 갑자기 급한 모습으로 들어와 바지를 까 내렸다.
“죄송. 조금 급해서.”
졸졸졸졸!
변기에 소변을 본 승배가 물을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웅삼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요상하게 생겼더라니.”
“…….”
그때 웅삼의 눈과 진천의 눈이 마주쳤다.
“아, 제가 저 물 쓸까 봐 그러신 겁니까? 에이, 사람이 눈치가 있지, 어떻게…….”
와장창!
화장실에서 울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한쪽에서 찌개를 끓이고 있던 박노문이 고개를 돌렸다.
“뭔 일이래?”
“그냥…… 일상 같습니다.”
광호의 말에 박 영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찌개를 끓였다.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샤워실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웅삼이 눈물을 훔치며 웅얼거렸다.
“에이씨. 내가 뭘 잘못했기에…….”
쏟아지는 물줄기는 점점 따듯해져 갔지만 웅삼의 마음은 춥기만 했다. 서러웠다.
웅삼이 몸을 닦고 나오자 밥상이 차려졌다.
“밥 먹을 거지?”
“음.”
“광호는?”
“전 배부릅니다.”
“그려.”
고기로 배를 채웠기에 뭐가 더 들어갈 배는 없었다. 진천만이 자리에 앉아서 국그릇에 채워진 밥을 받아 들 뿐이었다.
“제 것도 좀…….”
물기를 닦고 나온 웅삼이 조심스럽게 말을 하자 박 영감이 밥을 떠주었다. 그러자 웅삼이 침울하게 대꾸했다.
“저, 그래도 먹는 걸로 차별은 좀…….”
서럽다는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진천이 박 영감을 보았다. 그러자 박 영감이 이해했다는 듯 국그릇에 다시 밥을 떠주었다.
옛말로 고봉밥이었다.
그리고 다시 식사가 시작되었다.
밥을 먹던 진천이 웬일로 웅삼에게 반찬을 주었다. 그것도 한 움큼이나.
“먹도록.”
“감사합니다.”
웅삼은 진천이 준 것을 들었다. 그러자 박 영감이 놀라 말리려 했다. 그 순간 진천에게서 살기가 쏟아졌다.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우두둑!
대여섯 개의 청양고추가 웅삼의 입에서 분쇄되는 소리가 울려왔다. 동시에 진천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박 영감은 안절부절못했다.
“매울 텐데…….”
“웁!”
순간 웅삼의 눈이 부릅떠졌다. 진천의 미소는 진해졌다.
“우와아, 이거 꽤 맵네요?”
“응?”
“이야아, 이런 거 오랜만에 먹는데요?”
“오랜만?”
진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눈치를 채지 못한 웅삼이 활기차게 말을 이었다.
“뭐 옛일이긴 한데 집안이 바다 너머 상행을 많이 했을 때 먹었었지요. 물론 이렇게 큰 건 아니고 작은 놈들이었는데 그놈들도 꽤 매웠지요. 그런데 이거 의외로 중독성이 있습니다.”
“…….”
“이거 더 없습니까?”
웅삼의 말에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매운 건가?’
생각해 보니 안 매운 고추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것들은 꽤 크기가 큰 것들뿐이었지만 말이다. 진천이 말없이 청양고추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청양고추를 씹은 진천이 말했다.
“물.”
물 한 통을 다 비웠다. 그에게 있어 웅삼이는 하나같이 얄미운 부분만 있는 놈이었다.
탁!
진천이 숟가락을 탁 하니 놓고 그대로 나갔다. 입맛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커어억!”
진천이 나간 뒤 화장실로 뛰어간 웅삼이 변기를 부여잡고 있었다.
“젠장. 혓바닥 다 타버리는 줄 알았네.”
혓바닥을 돌로 박박 문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얼얼하기 그지없었다.
“젠장, 어렸을 때도 그 쥐똥만 한 걸 먹고 뒈질 뻔했는데.”
입가를 닦은 웅삼이 진천이 나간 방향을 보며 히죽 웃었다. 어쨌든 소소한 복수 하나는 한 느낌이었다.
* * *
우중만 의원이 술을 따라주며 덕담을 건네었다.
“사업은 잘되는가.”
“그저 열심히 하고는 있습니다.”
“아버님 뒤를 이어 하려면 더 노력해야 할 걸세.”
“모자라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연우는 우 의원이 따라주는 술을 공손하게 받았다.
“이제 곧 선거철이 오잖습니까.”
“뭐, 그렇지.”
“그때가 되면 늦을 것 같아 좀 준비했습니다.”
“고맙네.”
연우의 말에 우 의원이 짧게 답했다.
‘뭘 그런 걸 하나’ 혹은 ‘어허! 이 사람이!’라며 마지못해 받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고맙다 할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예.”
“얼마 전에 보니 꽤 눈길이 가는 친구가 있더군.”
우 의원의 말에 연우는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던 바였다.
“그렇습니까?”
“판도라라는 그룹이던가?”
“예, 요즘 꽤 뜨는 그룹이지요. 조금만 밀어 줘도 쭉쭉 더 잘나갈 아이들입니다.”
“그렇군.”
우 의원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연우는 그 담담함 속에 웅크리고 있는 너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우 의원의 유일한 낙이 바로 여자였다. 난잡하게 노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양반은 아니다.
그저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적당히도 세간의 시선에서는 곱지 않을 것이기는 했다. 그런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3선 의원이었다.
이유는 다른 것 없었다.
나름 깔끔한 거래를 잘하는 이였다. 받았으면 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또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뒤를 닦아 주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의 타깃에 판도라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중에 누가 눈에 들어오시는지…….”
“하핫! 이거 남자끼리 이야기니 말하지만 제이? 맞나?”
“아아!”
연우가 알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속마음으로는 ‘이미 그룹명과 이름까지 외워 놓고선 무슨 맞냐고 확인을 해?’라고 욕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는 친구인가?”
“이전에 우리 연습생이었습니다.”
“그래?”
연우의 말에 우 의원이 반색했다.
제이뿐 아니라 레이니도 NS엔터의 연습생 출신이었다. 그간 공이 있던 전창걸 대표였기에 독립하면서 그 둘이 이적하는 것을 용인했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당시에는 둘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뭐 지금은 소속이 바뀌었지만 말입니다.”
“으음. 그렇군.”
약간 아쉽다는 어투. 하지만 그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다. 그동안 그의 취향에 맞은 여자를 넣어 준 그로서는 대충 알아서 찌르기를 원하는 모습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우 의원과의 관계 때문에 전 대표가 나가서 퍼스트 엔터를 차린 것이다. 하지만 연우는 그게 나쁘다고 보지 않았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를 원하는 남자.
인기를 원하는 여자.
그리고 그로써 잘되는 회사.
나쁠 것 없다고 봤다. 게다가 최근 대형 기획사들이 시스템으로 치고 나오는 지금 탑 그룹에는 조금 손색이 있는 NS엔터 입장에서는 이런 끈을 이용하는 게 나았다.
또 있다.
비용이 절감된다. 그렇게 절감된 비용으로 중소규모 기획사의 싹수 있는 신인을 당겨 온다든지 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이 정도쯤 나왔다면 대충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도 연우가 가만히 있자 우 의원이 헛기침을 흘렸다.
“허어, 흠.”
그러자 연우가 죄송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쪽 양반이 좀 꼬장꼬장해서 어르신의 호의를 제대로 받을까 모르겠습니다.”
“으음.”
“대신 이전부터 어르신을 뵙고 싶어 하는 애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끈을 놓을 필요는 없다.
“뭐, 대표가 꼬장꼬장해도 본인 마음이 맞으면 또 되지 않겠습니까?”
“흠흠. 내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네.”
약간 풀어 주자 미끼를 덥석 물었다. 연우가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다만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시간?”
“아무래도 사람을 넣어야 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사람?”
우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연우가 말을 이었다.
“그쪽에 인력이 좀 부족한데 매니저 한 명 넣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요.”
“그럼?”
“기다리시면 그 친구가 알아서 찾아오게끔 할 겁니다.”
“허허허!”
우 의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속이 시원하다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그때 연우가 휴대폰을 들었다.
“들여보내.”
짧은 통화. 단 한마디. 하지만 그 한마디에 문이 열리며 늘씬한 미녀가 천천히 들어섰다.
“어허, 이 친구는 누군가?”
“그저 어르신을 뵙고 미래에 대해 조언도 얻고 싶어 하는 친구입니다.”
“오세희라 합니다.”
“이거 참. 이런 늙은이에게 뭐 들을 게 있다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것과는 달리 우 의원의 눈은 위아래를 훑고 있었다. 웃음소리 속에서 연우 역시 뜻 모를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10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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