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33
105화 그리운 목소리
“…….”
“큼.”
전창걸 대표가 시선을 옮기자 계웅삼이 헛기침을 하며 슬며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다시 고진천을 향했다.
“끙.”
이번엔 전 대표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천은 대체 뭐냐는 듯 그를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 대표가 왈가왈부할 일은 하나뿐이다. 판도라 멤버 숙소에 외인을 들인 것.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거론하기가 애매했다.
그 외인을 전 대표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또 다른 군식구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계약 조건에 들어가 있는 진천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여자를 들인 것도 아니고 남자 하나를 들인 것이니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지금은 진천을 떠받들고 다녀도 모자랄 판이다.
판도라에 도움이 된 것은 둘째 문제다. 그로 인해서 굵직한 배우들도 들어왔고 또 그 스스로의 능력으로 신드롬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그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시장에 열풍이 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뭐라 한 수 있겠는가.
전 대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이분들은 뉘신지…….”
“내 수하, 그리고 그…….”
진천이 일단 웅삼을 보며 대답하고는 이실라 공녀를 보고는 말끝을 흐렸다. 뭐라 설명하기가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이오.”
“으으음”
“웅삼 님…….”
전 대표가 슬쩍 신음을 흘렸고 이실라는 얼굴이 발개진 채로 양볼을 감쌌다.
“혹시 연예인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돌직구를 날렸다.
“불가.”
따아아앙!
전 대표가 날린 돌직구를 진천이 그대로 받아쳐 장외홈런을 만들어 버렸다. 본인도 아닌 진천이 딴지를 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것도 이런 저런 말을 하지도 않고 그대로 대놓고 불가하다는 말을 하니 말이다.
“아, 아니 그건 본인 의사를 좀…….”
전 대표가 당황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어렵겠네요.”
“억!”
본인 입에서도 안 된다는 말이 나오자 전 대표는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그, 다시 한 번 생각을…….”
말을 이어가던 전 대표의 입이 다물려졌다. 다른 행동은 없었다. 진천이 옥상 난간을 한 번 쳐다본 게 다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 대표의 입이 다물려지기에는 충분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대화보단 행동을 더 즐겨하는 진천 때문에 전 대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털레털레 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그때 뭔지 모르던 웅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데 된다 만다 하는 거요?”
웅삼의 질문을 받은 광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나 드라마를 할 생각이 있냐는 것이지요.”
“난 왜 안 물어보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웅삼을 보며 광호는 왠지 진천이 말 대신 폭력으로 다스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맞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리 태평인 건지…….
전 대표를 따라 판도라 멤버들까지 사라지고 남은 이들은 이실라 공녀와 웅삼 그리고 진천과 광호였다.
판도라 멤버들은 뭔가 얻어 들을 게 있나 싶어 뭉그적거렸지만 진천의 서슬에 눌려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등 떠밀려 나가야만 했다.
진천이 이실라 공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바빠서 제대로 대화를 못했군.”
“아닙니다.”
이실라 공녀는 의외로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름 강단이 있는 여인이기도 했고, 또 웅삼이 이미 한 번 비슷한 경로로 날아온 전력이 있기에 조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제 전쟁은 일단락이 난 상황.
“전쟁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인가?”
“일단락은 됐습니다.”
“흐음.”
약간 조심스러운 음성이었다. 말 그대로 전쟁은 일단락이 났다. 하지만 그것은 터그람 왕국과의 전쟁이지, 오랫동안 이어져온 제국과의 전쟁까지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국의 내전이 빠르게 마무리 되어 버린 감이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가 웅삼이 카말 공국의 별동대를 이끌고 다니면서 휘저은 탓이었지만, 아직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원래 이게 일 년 뒤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법진이 새겨진 마나석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웅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 년 뒤에 되돌아가는 마법이 새겨진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진천이 웅삼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런데 넌 여기 왜 왔냐는 시선이었다.
“그건 저도 잘…….”
웅삼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알 리가 없었다.
그때 웅삼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마나석을 대량으로 확보한 덕에 이 마나석에 내재된 마법진들을 전부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예, 그것 때문에 적진에 제가 직접 들어가 전투를…….”
“그렇군.”
웅삼이 나름 당위성을 가져다 붙이려는 찰나에 진천이 다시 말을 끊어 버렸다. 기회를 놓친 웅삼은 다시 눈치를 보았다.
“흐음.”
고민하던 진천이 한쪽으로 가 캐비닛을 열었다. 캐비닛을 열자 그 안에는 그가 입고 온 갑주와 환두대도를 담은 화구통 그리고 손도끼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진천은 그 밑에 놓여져 있던 가방을 꺼내었다.
가방을 가져와 열자 오만 원권 다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웅삼은 이게 뭔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한 이삼 일간 판도라 멤버와 함께 생활을 해왔던 이실라 공녀는 그것이 화폐임을 알아챘다.
진천은 그 중에 두 다발을 꺼내어 이실라 공녀에게 내밀었다.
“이곳의 화폐다.”
“예.”
“마법진에 문제가 없다면 두 달 조금 더 후에 우리는 문제없이 돌아갈 것이야.”
“예.”
그렇게 말을 하며 다시 웅삼을 보았다. 그리고 강조했다.
“문제가 없다면 말이지.”
웅삼은 진천의 시선을 받으며 문제가 없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때였다.
우우웅!
웅삼의 목에 걸린 마나석과 진천의 손바닥 위에 있던 마나석이 갑자기 공명하기 시작했다.
“으음.”
한쪽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광호의 눈이 커졌다.
두 개의 마나석이 공명하면서 푸르른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그 푸른 빛은 서로를 연결하듯 이어졌다.
그리고.…….
[니보라우! 내말 들리네? 구라쟁이 이 아새끼래 들리면 말 좀 하라우!]익숙한 그리고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술이 들썩였다.
“들린다.”
* * *
[들린다.]“…….”
“이, 이것은!”
순간 마법진 주변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약간의 울림이 있지만 어찌 모르겠는가. 무뚝뚝하면서도 고저 없는 대꾸.
“폐하아아아아아!”
“열제이시여!”
대무덕과 을지우루 그리고 마법진을 활성화시킨 리셀과 마법사들이 환호했다. 진천의 생존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열제 폐하! 몸은 괜찮으시옵니까!”
[별 문제 없다.]“아아!”
마치 오랜 짐을 내려놓은 표정들이 마법사들의 얼굴 위로 번져 나갔다. 특히 리셀의 표정이 더욱 밝았다.
“폐하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설명하겠나이다!”
마법진을 운용 중인 리셀을 대신하여 무덕이 나섰다.
[음.]“계 장군 함께 있사옵니까?”
[있지.]“아!”
계웅삼의 존재를 확인한 무덕의 얼굴이 밝아졌다.
“원래는 함께 움직여야 할 마나석이 처음 마법진이 가동되면서 각기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마나석의 충전이 빠르게 되면서 일단 하나로 뭉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가?]“아무래도 이곳에서 계 장군이 마나석 주변에 자주 있다 보니 충전이 빠르게 이루어 진 듯합니다. 만약 반대였다면 폐하께서 먼저 움직이셨을 것인데…….”
[그렇군.]“지금 이 통신을 가동하는 것은 확보한 마나석이 많은 상태라 가능합니다만, 이것을 운용하는 울절의 정신력 소모가 심하여 자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가지고 계신 마나석에도 무리가 가는 행위라 하옵니다.”
[음.]“그리고 처음과는 계산이 달라져 이곳에서 마법진을 최대 한도로 충전을 해야 한다 하옵니다.”
[계산이 달라진다?]“예, 처음부터 사람이 직접 이동을 염두해 놓은 것이 아니기에 마나석의 마력량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옵니다.”
[대책은 있나?]“다행히 이번 전쟁을 통해 마나석을 다량으로 확보한 덕에 낭비가 심하지만 이곳에서 마법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있다고 합니다.”
무덕이 리셀과 마법사들의 눈치를 보며 설명을 길게 이어나갔다. 다행히 별다른 내용은 없는지 마법사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난 이대로 있기만 하면 되겠군.]“그렇습니다. 사전에 마법진이 가동되기 전에 다시 한 번 통신을 넣을 예정이옵니다.”
[알겠다. 다른 할 말은?]“혹시 이실라 공녀도 그곳에 있사옵니까?”
[있지.]“다행이옵니다. 마지막으로…….”
무덕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계 장군은 알아서 처분하소서.”
* * *
[계 장군은 알아서 처분하소서.]“음.”
“딸꾹!”
마치 충신이 ‘차라리 제 목을 치소서!’ 하는 느낌의 읍소였다. 물론 내용은 다르지만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마나석이 빛을 잃었다.
“…….”
진천이 웅삼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웅삼은 그 미소를 맞으며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맞은 것으로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실라 공녀는 당분간 판도라 멤버들과 함께하도록.”
“알겠습니다.”
“불편한 곳은 없는가.”
“없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나름 재미있는 문물이 많은 곳이다.”
“그리 보입니다.”
진천의 말에 이실라 공녀가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잠깐이지만 신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좋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하도록.”
“예.”
“저, 저는…….”
그때 웅삼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진천이 고개를 돌리자 웅삼이 조심스럽게 손을 모았다.
“저도…… 돈.”
웅삼이 어색하게 웃으며 마치 용돈을 바라는 아이마냥 양손을 내밀고 있었다.
“…….”
진천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웅삼이 약간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말씀하셨잖습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눈을 껌뻑였다. 진천은 그런 웅삼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가방으로 손을 가져갔다.
“응?”
웅삼의 머리 위로 그늘이 만들어졌다. 가방의 손잡이를 잡은 진천이 그 가방을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형광등 불빛을 가린 진천의 검은 실루엣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할 수 없으면…….”
“저, 굳이 안 주셔도…….”
웅삼이 뒤로 엉덩이를 밀며 손을 거두어 들였다. 하지만 후회는 늦은 법이었다. 진천의 말이 이어졌다.
“……죽어라.”
“어억!”
콰직!
007 가방으로 대변되는 네모반듯한 가방이 웅삼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피할 수 없으면 죽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웅삼의 몸부림이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광호는 역시 자신이 본 웅삼이란 인간에 대한 판단이 맞았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10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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