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36
108화 암세포 그리고 트렌든의 재방문
방 안으로 들어온 이승배가 미간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졌다.
“이건 뭡니까?”
“사람.”
짤막한 답변을 날린 고진천을 향해 승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 어디 이집트 특별관이라도 터셨는 줄 알았는데요?”
“이집트?”
“이건 누가 봐도 미라인데요?”
“미라?”
“있어요, 그런 거.”
미라가 뭐냐는 듯 되묻는 진천에게 승배가 다시 방 안에 놓여 있는 미라 형상의 인간을 바라보며 얼버무렸다.
온몸에 붕대를 감은 게 누가 봐도 미라다. 자세히 보니 눈알이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 살아 있는 건 맞아 보였다.
“살아는 있네요.”
“살려는 놓았지.”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얼마 전에 온 내 수하.”
“제 텔레비전 잘라 버린…….”
“음.”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자르지 않았어도 이미 진천이 주먹으로 박살을 내버려서 쓰지는 못했다. 불만은 없었다. 그렇게 잘라 버린 후 새것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먼저 현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이후 텔레비전에서 몇 가지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암반 위에 찍힌 사람의 발자국과 사람의 형상 등……. 노란 줄이 그어져 있는 사이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무실 뒷산 아닌가?”
“그렇지.”
승배가 뉴스를 보면서 중얼거리자 진천이 대답했다. 순간 승배가 진천을 바라보았고 진천은 시선을 피했다.
[주변 주민들의 증언으로는 전날 이곳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고 하는데 아직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대해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이어서 한 쌍의 남녀가 모자이크 처리가 된 채 변조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사람 같기도 하고 괴물 같기도 했어요!] [칼 비슷한 걸 휘두르는 것 같았는데 나무가 터져 나가고 사방에 불똥이 막…….]다시 아나운서가 화면이 잡혔다.
[작은 동산 하나를 초토화시킨 이 괴생물체들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외계인 설까지 있는 상황입니다. 주변 CCTV를 분석한 결과…….]“CCTV면 감시하는 그것 아닌가?”
“맞는데요?”
느닷없이 들려온 진천의 질문에 승배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동공이 약간이지만 확장된 것이 뭔가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방송이 이어졌다.
[……시설이 낙후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에 경찰 당국은 이 상황에 대하여 목격자들의 제보를 기다리는 상황입니다.]승배가 슬쩍 보니 진천의 동공이 다시 작아져 있었다. 뭔가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뭔가 있는데…….’
뉴스가 지나간 뒤 진천이 몸을 일으켰다.
“나가시게요?”
“흐음. 촬영이 있어서 나가 봐야겠군.”
“고생하세요. 그런데 이분은 그냥 두나요?”
진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승배도 밖으로 향했다. 남은 것은 오로지 미라 형상을 하고 있는 계웅삼뿐이었다.
모든 스케줄을 뒤로 미룬 채 칩거에 들어가 있던 트렌든이 착잡한 시선을 던졌다.
“…….”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퍼스트 엔터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복잡한 마음을 감춘 채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해할 수 없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 트렌든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깨진 것을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굴욕적이었다. 아직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설 정도로 충격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는 미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계단 끝에 녹슨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심호흡을 한 트렌든이 철문을 열었다. 삐거덕 하는 거친 경첩 소리가 울려왔다. 아까보다는 차분해진 발걸음으로 옥상 안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다시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 몸서리를 친 트렌든이 옥탑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이야! 이게 누구야!”
“안녕하십니까! 이젠 대표님이시죠?”
전창걸 대표는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태석이 너는 웬일이냐?”
“웬일은요.”
히죽 웃은 박태석이 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잘나가시죠?”
“하하핫!”
“정말 부럽습니다. 그때 정말 따라 나가고 싶었는데…….”
“그때야 뭐 될지 안 될지 모르던 때인데 뭘.”
“아무래도 그렇지만 지금 보니 정말 아쉽습니다.”
태석이 정말 아쉽다는 눈빛을 보내자 전 대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생각 있냐?”
“있으면 받아 주실 겁니까?”
그러자 태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석의 대답을 들은 전 대표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안 그래도 스케줄은 늘어나고 관리하는 인원들은 모자라던 상황이었다.
“NS 나오게?”
“뭐랄까, 대표님 나가시고 나서 조금 그렇습니다.”
“왜?”
“박 실장 말입니다.”
“친했잖아?”
“친하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실세니까 제가 종종 알랑방귀 좀 뀌었죠 뭐.”
대놓고 알랑방귀를 뀌었다고 말하는 태석을 보며 전 대표는 의구심을 지웠다. 그가 아는 태석은 처세만큼은 잘하는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일부 매니저들에게 욕을 먹기는 하지만 전 대표는 그것 역시 살아남는 기술이라 생각했기에 뭐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을 잘했다. 인맥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뭐 문제가 있냐?”
“다른 건 아닌데…….”
“뭔데? 말해 봐라.”
“전 대표님 앞길 방해하는 것 보고 치가 떨려서…….”
방해가 없지 않아 있었다. 대놓고는 하지 못해도 판도라에게 캐스팅을 빼앗긴 뒤 이리저리 뒷공작을 하려 했다는 후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뭐, 그럴 수 있지.”
말은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도 별로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좀 달리 생각됐습니다. 저도 언제까지나 바닥에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으음.”
전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석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립해서 버텨 낼 재간도 없고 말입니다.”
“쉽지는 않지.”
“예.”
대답을 한 태석이 약간 식은 커피를 들어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 저도 하나 차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그런 고민 하다가 왔습니다.”
“그래?”
“예. 받아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왕 창업을 하지 못할 거면 비슷한 위치로라도 올라갈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하니까요.”
전 대표가 고심을 했다. 솔직히 지금 일에 과부하가 온 상태였다. 이때 치고 올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고민도 있었다.
구빈관이 보조를 하고 있었지만 업계 경력에서 모자란 편이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부분이 있어 마음을 놓고 일을 맡기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지분 5%만 주십시오.”
“지분이라…….”
“저 그거 크게 키워서 먹고 싶습니다.”
태석이 눈을 빛내자 숙고하던 전 대표가 잠시 입을 닫고 있다가 말했다.
“일단 며칠만 고민하자.”
“당연하지요.”
태석도 지금 확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벌써?”
“예, 저도 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
“예. 제 몫은 해야 하잖습니까.”
태석의 말에 전 대표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전 대표는 자리를 일어선 태석과 악수를 하고 그를 환송했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전 대표는 전화기를 들었다.
“어, 오랜만이야!”
[이야! 형님, 요즘 잘나가시더니 연락도 없고!]“이 자식이! 네놈이 연락을 해야지, 이 형님이 하리!”
[하하하!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사실은…….”
전 대표는 태석에 대한 이야기를 슬며시 내비쳤다.
전화를 받은 이는 NS에서 오래 있었던 이였다. 아직도 일을 하고 있지만 오랜 친분으로 속을 어느 정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후배였던 것이다.
[흐음.]전 대표의 설명을 들은 후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소문?”
[박 실장에게 들이받았다던데요?]“뭐? 그런 말은 안 하던데?”
[저도 쉬쉬하던 이야기라. 김신양이가 태석이 뒷다마 까고 다니나 봅니다.]“그 자식은 박 실장 딸랑이 아냐?”
[그렇죠.]“뭔 내용인지는 나왔고?”
[아직은 김신양이가 까는 얘기만 들어서 잘은 모르지만, 남의 밑 닦아 주러 회사 다니는 거 아니라는 소리를 하더랍디다.]“그래?”
[뭐, 정확히는 모르지만 뭔가 단단히 틀어지기는 했나 봅니다.]“그렇단 말이지.”
전 대표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퍼스트 엔터를 나와 택시를 잡아 탄 박태석이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나오는 길입니다.”
[뭐래?]“생각 좀 한다더라고요. 뭐 따로 알아보겠지요.”
[그래?]“예. 그나저나 확실히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걱정 마라. 퍼스트 흡수하면 네놈에게 맡길 생각이시니까.]“흐흐흐.”
[웃지 마! 솔직히 내가 가고 싶었으니까!]“아이고, 퍽이나 되겠습니다. 실장님 그림자가 형님인 거 다 아는데.”
[젠장. 여하간 잘해.]“알겠습니다. 조만간 연락 오겠지요.”
[알았다. 여기선 대충 소문냈으니 너도 알아서 움직여라.]“예.”
전화 통화를 끊은 태석이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녹음 버튼이 통화가 종료됨에 따라 함께 작동이 멈추고 있었다.
“뭐 쓸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태석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음미하며 좌석에 몸을 묻었다.
그에게 있어 이번은 인생 최대의 기회였다.
* * *
트렌든은 인기척이 없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없는 건가.”
하지만 그의 시선에 덜 닫혀 있는 문이 들어왔다. 트렌든은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삐이익!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반기는 목소리는 없었다.
“응?”
그때 뭔가 기척이 느껴지자 트렌든이 반사적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 끝에는 냉장고를 뒤지는 미라가 있었다.
“뭐지, 이건?”
잠시 당황했던 트렌든은 그 미라가 사람인 것을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트렌든의 말을 들었는지 미라가 불쾌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거라니?”
“고진천, 그자는 어디 있나.”
트렌든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목소리가 곱지 않아서인지 돌아오는 대답도 그다지 곱지 않았다.
“알아서 뭐하려고.”
온몸에 부목을 대서인지 성치 않은 몸이었지만 건들거리는 것이 영 불쾌했다.
“까불지 마라.”
트렌든은 열기가 확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진천이라는 괴물에게 당했다지만, 그 누구에게도 무시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젠장. 사람이 이 꼴이다 보니 개나 소나 깝죽거리는구만.”
“뭐?”
“뭘 꼬나봐!”
“…….”
트렌든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이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나?”
“알면? 어쩌라고? 넌 내가 누군지 알아?”
트렌든은 머릿속 한구석에 있던 인내라는 상자가 펑하니 폭발해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자리에는 분노라는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10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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