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41
113화 꽃등심에 숨겨진 비밀
“요즘 돌아가신 아버님을 자주 뵙는 거 같아.”
“…….”
뭔가 마치 해탈한 것 같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전창걸 대표를 보며 구빈관은 무어라 위로의 말을 붙이지 못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옥탑에 올라갔다가 뭔가 큰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충격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충격의 강도가 점점 세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전 대표가 살짝 반개한 눈으로 빈관을 바라보았다.
‘후,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아!’
창문을 등지고 있어서인지 후광 효과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저번에 이야기한 대로 태석이가 들어올 거다. 실장직이니 잘 배우고.”
“예, 대표님.”
“그래. 잘될 거야, 잘…….”
전 대표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런 전 대표를 뒤로하고 빈관이 대표실을 나왔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 박태석이 드디어 퍼스트 엔터에 들어서게 되었다. 새로운 상관을 맞이하는 직원들은 나름 긴장된 모습으로 기다렸다. 사무실로 들어온 태석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업무 파악에 들어갔다.
그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고진천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태석의 눈이 살짝 빛났다.
‘이자를 주시하라 했지?’
박연우 실장이 미리 이야기했던 진천을 만나게 되자 태석은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전에 방송국을 돌아다니면서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지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빈관이 진천에게 인사를 한 뒤 태석에게 함께 다가왔다.
인사를 시키려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퍼스트 엔터의 실장으로 온 박태석이라고 합니다.”
“반갑군.”
“아, 아하하. 예.”
순간 태석은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과묵한 것을 떠나 하대하는 어투에 약간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이었다.
그의 어투에 대해서는 사전에 전 대표로부터 살짝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는 더했다.
“이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쁠 것 없지.”
“참, 그런 의미로 식사 한 끼 어떠십니까? 마침 오늘 제 스케줄이 비었는데. 어떤가?”
태석이 시선을 돌려 빈관을 바라보았다.
진천의 스케줄이 비었느냐는 의미였다. 하지만 빈관은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슬며시 저었다. 말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고 태석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제대로 대접하지요. 아! 참고로 법인카드가 아니라 제 사비로 말입니다. 하하하!”
“아…….”
빈관은 우려했던 일이 터진 것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스케줄이 없다고 받아들인 것이 분명했다. 물론 없기도 했다.
“혼자는 그렇고 데리고 다니는 놈이 하나 있는데.”
“상관없습니다! 그럼 마침 저녁 시간도 다 되어 가는데 조금 있다가 뵙지요. 숙소가 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혹시 좋아하시는 음식 있으십니까?”
“꽃등심.”
“알겠습니다. 마침 제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 그리 가시지요.”
“좋군.”
진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글지글!
“…….”
구워지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불판 위의 고기를 보며 태석은 웃을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와 진천 그리고 빈관과 군식구라고 소개받은 계웅삼이라는 사내까지 총 네 명이었다.
네 명이서 두 개의 불판을 차지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이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육질이 좋군.”
“투뿔 꽃등심이니까요…….”
“역시 투뿔이야.”
진천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마찬가지로 음식이 마음에 든다는 그의 말에 태석도 마주 웃었다. 하지만 반은 울상이었다. 그때 한쪽에서 말없이 음식을 먹던 웅삼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더 시켜도 되지요?”
“뭐, 모자라시면…….”
“여기 꽃등심 한 근이랑 갈빗살 한 근 더요!”
“이쪽도 시켜라.”
“예. 두 근씩요!”
“…….”
인분도 아니고 근이다. 몇 번째 다시 시키는 것인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워낙 자주 말해서.
그때 빈관의 어색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태석을 향해 딱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제야 아까 빈관이 고개를 저었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태석은 울상을 지으며 생각했다.
‘강하게 말리지!’
후회는 이미 떠나간 배였다.
계산대에서 한도 초과된 카드를 들고 쩔쩔매는 태석을 뒤로하고 나온 진천은 빈관을 불렀다.
“빈관.”
“예.”
“어떤 자냐?”
“예?”
느닷없이 어떤 자냐는 질문을 하자 빈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웅삼이 태석을 향해 턱짓을 했다.
“아, 예. NS에 계시던 분인데 유능한 분입니다.”
“단지 그것뿐?”
진천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빈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뭐, 박 실장과 트러블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침 독립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전 대표님과 말이 되어 오셨습니다.”
“…….”
빈관의 설명을 들으며 진천은 빈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진천의 눈치를 보며 빈관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뭔가 문제가 있으십니까?”
“눈치를 자주 살피더군.”
“눈치요?”
진천의 말에 빈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빈관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이 먹는데 그만 먹으라고는 할 수 없고 언제쯤 더 시키지 않으려는지 눈치를 살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두 분 식사량이 많으셔서…….”
“아닐 건데. 그런 똥 씹은 얼굴도 했지만 다른 꿍꿍이가 있던데.”
옆에 있던 웅삼이 뚱한 표정으로 말을 뱉자 빈관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해이실 겁니다. 뭐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진천 님이 요즘 우리 사무실에서 가장 핫 하시니까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알았다.”
빈관의 말에 진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차로 향했다. 그때 태석이 계산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이게 가능해?”
울상을 지은 태석의 말에 빈관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저야 종종 봤던 일인지라……. 그런데 같이 있던 분도 그렇게 드시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허어.”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그때 단골집 주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보며 태석은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태석을 남겨 두고 차에 돌아온 진천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NS엔터의 박연우와는 좋은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광호를 만나게 된 인연도 그렇고 계속 뭔가가 엮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만난 태석 역시 자주 자신을 살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NS인지 뭔지가 뭡니까?”
웅삼도 뭔가를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 왔다.
“흠.”
웅삼의 질문에 진천은 딱히 뭐라고 대답하기가 모호했다. 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실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도 할 수는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천이 약간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삥 뜯은 사이?”
“……삥도 아십니까?”
“내가 너보다 먼저 왔다.”
“예.”
진천의 말에 웅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웅삼에게 진천이 명령을 내렸다.
“저놈 주시해라.”
“예? 제가요?”
“그래.”
“무슨 수로요?”
“수는 내가 만들어 주마.”
진천의 말에 웅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빈관이 운전석에 타 차를 몰아갔다.
* * *
전창걸 대표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고진천을 맞이하고는 불안에 떨었다. 최근 들어 그가 대표실로 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상전도 이런 상전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 대표가 하는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는 않았다. 가끔이지만 과격한 행동을 보여주고 또 심장이 벌렁거리게 하는 일을 서슴없이 벌일 뿐이었다. 그 가끔 때문에 심장이 이따금씩 휴식을 취하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이전에도 그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더했다.
서울을 며칠 만에 단신으로 장악한 흉포한 자를 발끝으로 부리는 것을 알고는 더욱 두려워졌다. 물론 트렌든을 박살 내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이미 그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흔히 조폭이라면 회칼과 쇠파이프 같은 게 난무하는 동네 아닌가. 그런 곳을 단신으로 장악했다는 건 사실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벌인 이를 수하로 두고 있으니 얼마나 살 떨리는가. 그때 진천이 입을 열었다.
“이실라.”
“응?”
“단기지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지.”
“저, 정말이오?”
“단!”
진천이 시선을 들어 전 대표를 보았다. 순간 전 대표는 침을 삼켰다. 본능이 경고한 것이다. 전 대표는 잠시 차분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진천의 말을 제지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얼마든지.”
전 대표는 품 안에서 약통을 열어 한 알을 꺼내 입에 넣은 뒤 물을 삼켰다. 그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이다.
“말해 보시오.”
“매니저 하나를 내가 추천하지.”
“안 되오!”
“누군지 듣지도 않고?”
“그 가우리 파 두목은 안 되오!”
“…….”
진천은 지금 이 순간 한 가지를 고민했다.
이놈을 팰까 웅삼을 팰까.
하지만 진천은 이성적으로 해결을 보기로 했다.
“그럼…….”
진천이 몸을 그대로 일으키자 이번에는 전 대표가 다급해졌다.
“그, 그것만 빼고 다른 걸 다 들어주겠소!”
“불가!”
“아, 왜!”
전 대표가 진천을 향해 울상을 지으며 항변을 했다. 물론 마치 떼쓰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사람 좀 만들려고.”
“사람?”
“개과천선.”
“…….”
전 대표는 불신의 시선을 보내었다. 사실 전 대표가 웅삼을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만으로도 뿌리 깊은 불신을 심어 주기에 충분한 일을 웅삼은 이룩해 낸 것이다.
‘개가 똥을 참지!’
전 대표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진천의 입이 다시 열렸다.
“대신 못 미더우면 이번에 온 박 실장을 함께 붙이도록.”
“태석이 말이오?”
“맘에 들더군.”
진천의 말에 전 대표는 잠시 고민을 했다. 태석이라면 그런대로 잘 컨트롤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 것이다.
고민하고 있는 그를 슬쩍 바라본 진천이 다시 발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아니면 말고.”
“코, 콜!”
“콜?”
“하겠다는 말이오!”
그제야 진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와아! 언니 데뷔하는 거예요?”
레이니의 말에 이실라 론 카말 공녀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난데없이 찾아온 고진천과 계웅삼이 그녀에게 연예 활동을 하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때 웅삼이 나서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차피 잠깐이면 됩니다.”
“그게…….”
살짝 굳은 웅삼의 표정을 보니 뭔가 다른 게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열제이시…… 헙!”
순간, 이실라 공녀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반사적으로 열제라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열제? 그게 뭐야?”
“아무것도 아니다.”
“뭐지?”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는 레이니를 뒤로하고 이실라 공녀는 진천을 따라 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들었다.
(11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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