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44
116화 꼬리가 길면 잡힌다
트렌든은 혼란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외, 외계인이라니!’
설마가 사람 잡았다. 눈앞의 괴물들은 지구인이 아닌 것이다. 믿기 어려운 괴력을 봤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어쩌지.’
트렌든은 초조했다. 지금 눈앞의 외계인들은 자신의 처분을 가지고 고심하고 있었다. 외계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광호라 불리는 외계인의 협력자도 함께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건물 전체가 외계인의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트렌든이 머리를 감쌌다.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국의 아는 줄을 이용해 이 사실을 알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51구역은 뭐해, 저놈들 안 잡아 가고!’
외계인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미국의 51구역에 대한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한쪽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고 뭔가를 중얼거리거나 왠지 초조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잠시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는 트렌든을 보며 계웅삼이 중얼거렸다.
“왜 저래?”
“뭔가 복잡할 겁니다.”
“꼭 자아분열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네.”
웅삼의 중얼거림에 고진천이 답했다.
“멘붕이지.”
“그런 말도 아십니까?”
“당근이지.”
“그건 또 뭡니까?”
“당연하다는 말.”
“아아.”
진천과 웅삼의 대화는 평화롭기만 했다.
물론 그 대상이 되는 트렌든은 마치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마냥 자아분열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정말 어쩌실 겁니까?”
그때 광호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 둘의 행동으로 봐서는 우려했던 결과까지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비행기가 양도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흐음.”
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웅삼이 기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런 거 있던데 재산 양도한다는 유언장 작성 후에 자살로 처리! 깔끔하잖습니까? 비행기도 오고 말입니다.”
“또 드라마 보신 겁니까!”
광호가 웅삼의 의견에 발끈했다. 요즘 웅삼의 학습 기구는 텔레비전이었다. 그 악영향을 적잖이 많이 끼치고 있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달고 다닐 수도 없고…….”
웅삼은 말을 제대로 다 맺지 못했다. 진천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 *
“여긴 내 집이라고요!”
“주인은 전 대표지.”
“빌린 건 저라구요!”
이승배는 억울했다. 하지만 이어진 고진천의 대답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월세는 안 내지, 내 덕에.”
“그, 그래도!”
말을 더듬거리고 있는 승배를 보던 계웅삼이 머리를 긁으며 끼어들었다.
“그런데 얘는 왜 데리고 있는 겁니까?”
“빌린 건 저라니까요!”
“얼마면 되는데?”
“크윽!”
옥탑방 보증금이 해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웅삼이 이전에 주변을 돌면서 삥 뜯은 금액이 아직도 상당수 남았다. 그게 아니라도 진천의 가방에는 현찰이 넉넉했다.
“주고 내보내죠?”
“흑흑흑!”
웅삼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승배가 흐느꼈다. 주객이 완전 전도되어 버린 상황에 절망감을 느낀 것이다. 그것도 제일 마지막에 굴러온 돌 때문에.
“쯧, 거 대포 렌즌가 뭔가도 사주고 했건만.”
“…….”
이미 받아먹은 게 있는 승배는 더 이상 저항을 하지 못했다. 다만 트렌든의 반대쪽 구석으로 가 쪼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이곳에서 숙식한다.”
“나, 날 인질로!”
“포로다.”
“큭, 결국 외계인의…….”
트렌든이 허물어져 내렸다. 그 옆에서 웅삼이 염장을 질렀다.
“앞으로 잘해 보자고.”
결국 트렌든은 웅삼이 달고 다니기로 했다. 항상 그를 가두어 놓을 수는 없으니 웅삼이 그를 끌고 다니며 감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웅삼이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진천의 명령이다.
항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퍼스트 엔터의 옥탑방에는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정확히는 포로가 하나 더 는 것이다. 광호에 이어서 말이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벽을 보고 있던 승배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져 가고 있었다.
액션 스쿨로 간다는 핑계를 대고 나온 승배는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분명 대화를 하고 있었어.”
고진천이 트렌든에게 이곳에서 살라는 둥 포로라는 둥의 말을 내뱉었다. 승배도 분명히 들었다. 문제는 트렌든의 반응이었다. 진천의 말을 알아듣는 모습이었다.
대충 눈치로 알아듣는 것 같은 모습과 대화를 통해 알아듣는 모습을 구분 못 할 바보는 아니었다. 문제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한국말과 영어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 중 진천이나 웅삼의 말은 분명 승배에게 똑똑히 들려왔지만 트렌든의 말은 영어였다. 한쪽은 한국어로 말하고 한쪽은 영어로 말하면서도 대화가 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더 이상한 것은 바로 광호였다.
마치 그 상황을 당연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 수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단어.
에일리언.
트렌든이 마지막에 허물어지면서 내뱉은 단어였다. 영어 지식이 짧은 승배라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단어였다.
외계인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심지어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검색해 봤다. 역시다.
처음 진천이 이곳에 왔을 때 빛이 있었다고 했다. 워낙 사고가 사고였기에 유야무야되었지만 생각할수록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고 외계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 그의 복장이 외계의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과거의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호기심 반 재미 반이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뭐지? 뭐지? 어떻게 하지?”
승배는 깊어지는 의혹에 혼란스러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전창걸 대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있어 고진천은 양파다. 까면 깔수록 그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만드니까.
“트렌튼…….”
전 대표는 지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대표님, 우세요?”
옆에서 구빈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눈앞이 흐리니 우는 게 맞는가 보다.”
울어야 할 상황이 맞는 듯했다. 몸이 알아서 먼저 반응하니 말이다. 트렌든쯤 되는 거물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면야 허리를 넙죽 접으며 감사하다고 해야 할 판이다.
진천에게 보기 안 좋은 꼴을 당했다 하더라도 세계 격투기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 나름대로의 상품성은 아직도 유효했다.
그런데 지금 트렌든이 웅삼과 함께 매니저 보조로 움직일 거라는 말을 한 것이다. 물론 고진천이 말했다. 그런데 눈치를 보아하니 이것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트렌든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약간 안색이 어둡다. 비유를 하자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노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어느 시점부터 전 대표가 끌려가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라든지 사업자의 사업권에 저해되는 부분이라면 차라리 거절을 하든지 해서 속이 편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가지.”
“……그럼 월급은.”
“밥만 먹여 주면 되지.”
진천의 말에 전 대표는 커다란 심적 부담만 가진 채 트렌든까지 떠맡게 되었다.
“그럼 고생하도록.”
진천 일행이 나간 뒤 남은 전 대표에게 빈관이 위로하듯 말문을 열었다.
“위기는 기회라잖습니까. 눈치가 이상한데 대표님이 잘 대해 주면서 접촉하다 보면 또 압니까? 계약하자고 할지? 제가 알기론 트렌든은 계약하고 활동하는 매니지먼트가 없습니다.”
“그으래?”
침울해져 있던 전 대표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전 대표의 반전에 빈관이 한마디 덧붙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잖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위기는 기회지.”
“예.”
전 대표가 생기를 되찾아 갔다. 물론 그 모습을 빈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위안 삼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듯.
* * *
“이야, 오늘 무대 죽이는데!”
“감사합니다, 실장님!”
“다들 고생했어!”
박태석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판도라 멤버들에게 일일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면서 칭찬을 쏟아내었다. 물론 그녀들의 무대는 나무랄 것이 없었다.
전창걸 대표가 직접 발굴을 하고 제대로 트레이닝을 시킨 만큼 그녀들의 무대는 항상 좋았다.
“다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식당이요?”
태석의 말에 레이니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하루 일정이 빡빡했던 탓에 이동하면서 도시락을 먹기 일쑤였다. 그게 아니라면 대기실에서 음식을 시켜 먹거나 말이다.
집밥은 아니지만 편히 앉아서 먹는 음식이 그리울 만했다.
“당연하지!”
“와아아!”
예상대로 태석이 식당에서 식사를 할 것이라고 하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뭐 먹을래?”
“꽃등심!”
순간 태석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말을 꺼낸 제이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흐흐흐. 농담이에요. 이야기 들었어요. 엄청 털리셨다면서요?”
“끙, 그렇지.”
인상을 구기고 있는 태석을 보며 세인이 간편하게 정리를 했다.
“그냥 따듯한 찌개가 있는 한정식 집이면 좋을 거 같아요.”
“맞아요.”
세인의 말에 레이니가 맞장구를 쳤다. 제이 역시 의견이 다르지 않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고!”
태석이 차 문을 열어 주자 판도라 멤버들이 올라타며 다들 기분이 좋은 듯 한마디씩 했다.
“실장님이 오시고 일이 좀 편해진 것 같아.”
“맞아. 스케줄도 편하고.”
“그러네.”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며 태석은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이야! 말만이라도 고마운데?”
태석의 말에 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그녀의 공치사를 받으며 태석이 차 문을 닫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당연히 그래야지. 짬을 내야 작업을 할 수 있지 않겠어? 친해지자고, 우리.’
태석의 눈이 백미러에 비친 제이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들과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 이후 타깃인 제이에게 접근을 해야 하니 말이다. 일이 민감한 만큼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야 하는 법이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온 그녀들은 문자를 한 통 받아야 했다.
“응?”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승배의 문자인 것이다.
반 장난삼아 만든 모임이었다. 그래서인지 바빠진 요즘에는 그다지 모일 일도 없었다. 아니, 모이지 못했다고 봐야 했다.
“문자 받았어, 언니?”
“받았지.”
레이니의 질문에 제이가 대답했다. 그러고 나선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오늘은 그냥 쉬자.”
“그럴까?”
제이의 말에 레이니가 피곤한 표정으로 반색했다. 하지만 세인은 생각이 좀 다른 듯했다.
“한 번 보는 건 어때? 한동안 승배 오빠도 못 봤는데.”
“흐음.”
그녀의 대답에 제이가 가자미눈을 하고 세인을 바라보았다. 미묘한 시선에 세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언니?”
“진천 아저씨가 요즘 뭐하는지 궁금한 건 아니고?”
“아, 아니야.”
“흐흐흐, 아닌데 왜 얼굴이 벌게져?”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벌게진 얼굴의 세인이었다.
(11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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