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47
119화 레알?
“어? 오랜만이야, 송 작가!”
강찬성 피디는 오랜만에 촬영장을 찾은 송가은 작가를 보며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이야 뭐, 항상 하는 일인데.”
“그래도 이번 촬영만 마치면 나머지는 자잘한 후반 작업밖에 안 남잖아요.
“그렇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강 피디를 보며 가은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송 작가가 제때 대본을 맞춰 줘서 스케줄 짜기가 좋았지 뭐.”
“그야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맞출 수 있었던 거죠.”
“대본이 좋았잖아? 이번 수정고도 그렇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걸요.”
지금 언급한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진천이 직접 등장해서 주인공과 교차 장면을 만드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잘 찍는다 하더라도 그간 확 떠버린 진천의 그림자를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다시금 이슈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런데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언젠가 통화를 할 때 고진천을 상대할 대역을 구하는 데 꽤 애먹었다고 이야기하던 기억이 났다.
“해결했지.”
가은의 질문에 강 피디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강 피디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가은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어떻게요?”
“고진천 그 양반하고 비슷한 친구가 하나 더 있더라고.”
“예에?”
“조금 있다가 보면 돼.”
강 피디의 말에 가은은 궁금하면서도 기대가 되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촬영 준비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스태프들이 분주해졌다. 동원되는 카메라 수도 그 어느 때와 달랐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가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비가 많이 동원되네요?”
“한 방에 갈 거야.”
“한 방에요?”
“응.”
보통 촬영을 하다 보면 리허설 촬영도 있고, 부분 촬영 등 여러 번에 걸쳐서 들어간다. 그런데 한 방에 간다고 하니 의아함을 느낄 만 했다.
“그게 오히려 장면이 더 살거든.”
“하긴요.”
이전에 촬영을 할 때도 느꼈다. 긴장감 차이가 컸다. 그러고 보니 못 보던 장비는 물론이고 처음 보는 팀원들도 있었다. 가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본 강 피디가 미소를 띠며 말을 보탰다.
“익스트림 스포츠 전문 촬영팀도 함께 불렀지. 스포츠 쪽이랑 말이야.”
“어쩐지.”
어쩐지 처음 보는 스태프들이 많다 싶었다. 제대로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이윽고 분장을 마친 고진천이 등장했다.
“아!”
가은의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오랜만에 봤지만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잡아끄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극 중 곽주호가 주로 입는 갑주를 입고 나온 사내였다.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걸음걸이부터가 묘한 기세를 느끼게 하는 남자였다.
“저 사람이?”
“같이 무예를 닦은 친구라더군.”
“그렇군요.”
가은은 긴장되면서도 흥미 넘치는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설명은 다 들으셨겠죠?”
“들었수.”
계웅삼이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억지로 끌려 나온 사람마냥 말이다. 물론 억지로 끌려 나온 것은 맞았다. 밥값은 해야 한다고 진천이 한마디 던졌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웅삼이 조감독에게 질문했다.
“동선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라는 거요?”
“예.”
“뭐, 그럼 후딱 합시다.”
웅삼의 말에 조감독이 서둘러 빠졌다.
그러고 나서 진천과 마주 섰다. 여전히 똥 씹은 얼굴이었다. 차라리 때리는 역할이면 좋겠지만 결국 지는 역할이다.
“시늉만 하면 되는 거죠?”
웅삼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진천의 입술 한쪽이 슬며시 올라가며 송곳니가 드러났다. 동시에 웅삼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진천이 말했다.
“왜 이래, 선수끼리?”
“…….”
순간 웅삼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 순간 강 피디의 외침이 시작되었다.
“자, 갑시다! 고!”
동시에 웅삼의 허리춤에서 빛살이 번뜩였다.
쩌어엉!
“억!”
“쉿! 오디오 물려!”
굉음이 울려 퍼지자 스태프 중 하나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런 스태프에게 주의를 준 오디오 감독이었지만 그의 입 역시 반쯤은 벌어져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진천과 웅삼의 격돌을 바라보던 오디오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익스트림 스포츠와 다른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찍는 카메라 감독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카메라 워킹을 이어 가고 있었다.
“미친, 이걸 찍으라니…….”
평소 익스트림 전문 촬영을 하던 유 감독은 진땀을 흘리며 촬영을 하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웬 드라마 촬영장에 자신을 부르나 했더니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제대로 촬영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그의 눈이 확 커졌다.
“미친, 진짜로 쳤어!”
그의 화면 안에 안면을 얻어맞고 땅바닥에 나자빠지는 웅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가가 찢어져 피가 튀기는 모습, 그러면서도 살기등등한 웅삼의 모습이 연이어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진짜로 치고 맞았고 또 저 살기등등한 모습 역시 가짜가 아니었다. 촬영을 하면서 유 감독은 떨리는 입술을 들썩였다.
“대체 강 감독님은 어쩌자고 이런 촬영을 하는 거지? 아니, 저런 인간들은 어떻게…….”
이 화인이라는 드라마의 액션 중 진천이 나오는 장면이 왜 리얼하고 호쾌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액션이 아닌 리얼이기 때문이었다.
쓰각!
“저,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그건…….”
웅삼의 검이 진천의 몸을 스치며 갑주가 쩍 하니 벌어졌다. 그러면서 피까지 튀었다. 그때 뒤에 서 있던 광호가 강 피디를 만류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과, 광호 씨.”
“저 정도는 살살 하는 겁니다.”
“…….”
분장이 아닌 진짜 피가 튀는 장면을 보면서도 저게 살살 하는 거라는 말에 이 촬영을 진행했던 강 피디가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보다 입단속을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일단…… 그래야겠지.”
하얗게 질린 강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살이 찢기고 하는 현장을 그대로 담았다는 것이 소문이라도 나면 작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처를 입는 상황에서도 촬영을 강행하는 배우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중에 순화시키면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후우.”
하얗게 질린 강 피디였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전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전율은 또 한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거야.’
가은의 눈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칼 소리, 온몸을 조여 오는 긴장감.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처절하게 느껴졌다.
가은이 가방을 꼭 쥐었다.
그녀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가방 안에 있는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바로 광개토대왕 일대기.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 후세에 알려져 있는 역사적 인물을 담은 이야기였다. 물론 이전에도 그에 대한 드라마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모자람을 느꼈다.
그 모자람이 진천을 보면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그 옛날 광개토대왕의 모습이 지금 보이는 진천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왕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위압감과 카리스마.
이것은 흉내 낸다고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연기한다 해도 전부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대배우들은 충분한 카리스마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나이는 저런 액션을 펼치기에는 이미 많았고, 또 한계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천이야말로 최고의 캐스팅 카드였다.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오늘 대역으로 출연한 웅삼이라는 남자다.
그 역시 모자람이 없었다.
처음 봤을 때는 약간 느물거리나 싶더니 촬영에 들어가자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 주었다. 오히려 진천의 액션이 빛을 발하게 해주었다. 그전까지의 액션은 사실 받아 내기 급급한 것에 가까웠다.
물론 배역 자체가 압도적으로 강한 사내였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멋진 그림을 만들어 내기에는 요원했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가은이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정말 신의 한 수군요.”
“내 생각도 그래.”
강 피디가 희열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콰콰쾅!
웅삼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런 웅삼의 눈에 진천이 하늘로 뛰어오르는 모습이 가득 채워졌다.
“쯧.”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커다란 동작이었지만 웅삼은 피하지 않았다. 이게 마지막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 중간 맞은 것도 적당히 수준을 맞춘 것이다.
그들이 맘먹고 싸우기에는 이 장소는 협소했고 또 이 촬영 장비라는 것들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광호의 말로는 적어도 사람이 괴물처럼 보이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괴물이 사람 탈을 썼다는 의심보다는.
콰쾅! 콰직!
진천이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검을 웅삼의 가슴에 내리꽂았다. 정확히는 겨드랑이 사이다. 진천의 검날이 돌바닥을 그대로 가르고 파고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적막한 가운데 누군가의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그게 시작이었다. 우레와 같다고나 할까?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오히려 그 열렬한 반응이 웅삼에게는 얼떨떨함을 가져다주었다. 웅삼의 가슴 위에 무릎 꿇듯 앉아 있던 진천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한마디 했다.
“밥값은 했군. 잘했어.”
“…….”
처음이었다.
전쟁터에서 적장 모가지를 그렇게 수없이 땄을 때에도 칭찬은 없었다. 그런데 이 촬영 하나를 하고 나니 잘했다는 말을 들었다.
웅삼은 이게 뭔가 싶었다.
왠지 좋으면서도 서글펐다.
‘우라질!’
“대박이야!”
“이거 제대로 찍혔나 모르겠는데.”
“그보다 효과팀 죽이는데?”
아직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스태프들은 효과팀을 칭찬했다. 하지만 현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 칼이 안 빠져!”
“이거 감독님! 세트장 바닥이 다 부서졌습니다!”
“이거 본 촬영은 어떻게 하죠?”
“구급상자 가져와!”
현장으로 달려 나간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환호했던 이들의 얼굴이 점차 굳어져 갔다.
그들이 입고 있던 갑주를 벗겨 내자 온몸에 새겨진 검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급반이 달려와 피를 닦아 내었다. 하지만 분장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분장이 아니었다.
다시 피가 배어 나오고 그 부위에 서둘러 지혈제를 뿌리고 상처를 동여맸다. 부서진 세트장을 보며 혀를 내두르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진짠가.”
“……대체 뭘 한 거야.”
“미친…….”
그런 그들에게 스태프들이 다가와 심각한 얼굴로 한 명, 한 명 붙잡고 비밀 서약을 시켰다. 어디까지나 이 촬영은 배우들이 부상을 입고서 스스로 강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반박하기에는 배우들의 표정이 너무 평온했다.
진천이나 또 대역으로 등장한 웅삼이나.
오히려 실실거리며 음료를 마시는 데 집중했다.
“우와! 이거 짜릿한데! 이게 이름이 뭐라고?”
“콜랍니다.”
“오!”
마치 콜라 처음 마셔 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말이다.
(12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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