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57
129화 원정대의 자격
“언니, 지금 뭐 해! 리허설 들어가야지!”
“아, 응.”
“요즘 왜 이렇게 멍한 표정을 지어.”
레이니는 제이를 보며 이상하다는 눈초리를 보내었다. 평소답지 않게 꽤 가라앉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소화가 덜 됐나 봐.”
“그러게 작작 좀 먹지.”
레이니가 핀잔을 주자 제이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먹을 수 있는 것만 욕심내야 하는데 말이지.”
“그건 또 뭔 소리래?”
뭔가 쏘아붙일 줄 알았던 제이가 넋두리만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서자 레이니가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제이는 방송국 복도를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던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역시나였다. 뭔가 해줄 듯하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는 식으로 접근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게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문제는 상대가 국회의원이라는 점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국회의원.
게다가 박태석도 끼어 있다. 그냥 터트렸다가는 오히려 매장당할 확률이 컸다.
멤버들에게 알릴까도 생각했지만, 오히려 걱정만 끼칠 것 같았다.
게다가 일이 잘못되면 퍼스트 엔터 자체에까지 타격을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태석이 다가왔다.
“제이야.”
“예, 실장님.”
“이번 주 스케줄 빌 때 함께 좀 움직이자.”
태석이 능글맞게 다가와 말을 걸자 제이는 난감했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요구해 오면 들이받기라도 할 텐데 그 요구사항만 딱 빼고 우회해서 항상 접근해 오니 뭔가 결정적인 수가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이번 주에는 멤버들하고 식사하기로 했어요.”
“이 일은 중요하다. 알잖아.”
태석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제이는 여기서 선을 그어야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해요. 그리고 의원님께는 정말 감사하지만 제 힘으로 해보겠다고 전해 주세요.”
“뭐? 제이, 그게 무슨…….”
태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판도라 리허설 들어갑니다!”
“예!”
“제이야!”
“그럼 올라갑니다!”
무어라 말을 더 붙이려는 태석을 두고 제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갔다. 그런 그를 레이니와 세인이 스쳐 지나갔다.
* * *
리셀 시아론의 머리통은 지금 터질 지경이었다.
“으으음.”
마법진을 구동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고진천이 있는 세상에서 어떤 상황과 맞닥트리게 될지 모르기에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휘하의 마법사들을 보내는 것도 염두에 두었었지만 최선의 선택은 본인이 직접 넘어가는 것이었다.
“역시 마법진을 수정하고 내가 넘어가는 게 최선인가.”
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곳의 마나석이 풍부하다는 점. 모자라는 마력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대무덕이 리셀을 찾아왔다.
“뭔가 방법이 좀 나오는가?”
“넘어가는 게 최선입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아무래도 그쪽으로 제가 넘어가야 이런저런 상황에 맞닥트리더라도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음.”
리셀의 말에 무덕이 신음을 흘렸다. 그런 무덕에게 리셀이 말을 이었다.
“일단 이곳의 마법진에 다른 마법사들이 함께 구동할 수 있는 수식을 적용 중이니 걱정 마십시오.”
“가능하겠는가? 시간이 없지 않은가?”
“상관없습니다. 다만 효율이 많이 낮은 것만 빼고 말입니다.”
“효율이 낮다?”
“모자라는 마력은 마나석을 이용하고 마법사들을 대거 동원하면 됩니다. 단순하지만 들어가는 자원이 많아 쓰지 않는 방법이기는 합니다만.”
“그런가?”
“다행히 마나석이 풍부하니 해볼 만은 합니다.”
“바사 공왕, 아니지. 이제는 바사 왕이지. 바사 왕에게 마나석을 부탁해야겠구만.”
“그래야 할 겁니다.”
“그러면 함께 넘어갈 인원에 대해서는 염두에 둔 이가 있는가?”
“제가 넘어가면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래도 안전을 위해 사람을 붙이는 게 좋겠네.”
무덕의 말에 리셀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구를?”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불필요한 인간을 보태야겠지.”
무덕의 말에 리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인지 감이 잘 안 잡혔기 때문이다.
“저 말입니까?”
“그래.”
필리언 제라르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왜 접니까?”
그의 질문에 무덕이 대답했다.
“첫째는 무력.”
“흠.”
사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지만 가우리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의 소유자가 바로 제라르였다.
그것을 알아주는 듯해서 제라르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졌다.
“둘째는 지금 우리 가우리에서 가장 불필요한 인물이니까.”
“차라리 첫 번째만 말씀하시지…….”
“왜?”
대놓고 상처를 준 무덕은 대체 왜 그래야 하느냐는 듯 제라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도집을 툭툭 건드렸다.
마치 꼬우면 덤비라는 듯.
그 모습을 보며 제라르가 인상을 팍 구겼다.
“뭔 놈의 나라가 항상 주먹순이야.”
“꼬우면 뽑거라.”
“……쳇.”
무덕이 히죽 웃으며 언제든 받아 주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아니꼬웠지만 뽑지 않았다. 굳이 나서서 매타작을 당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무덕은 제라르의 옆으로 또 한 명을 데려왔다. 그를 본 순간 제라르는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역시 내밖에 없디요.”
“그래. 그래도 니가 가야 든든하지.”
“길티요!”
또 한 명의 없어도 되는 인간은 바로 을지우루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루는 싱글벙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우루를 보며 제라르는 초승달처럼 변한 시선을 보내었다.
“아새끼 왜 이리 실실거리는 기야? 차라리 다른 놈 보내면 안 되갔습네까? 이거이 영 마음에 안 듭네다.”
“쯧. 잘 도닥여서 다녀오게.”
“알겠습네다. 아무래도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고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갔디요.”
“그래.”
무덕은 우루를 잘 도닥였다.
준비를 하겠다며 우루가 먼저 나갔다. 우루가 사라지자 제라르가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다.
“두 번째 이윱니까?”
“뭐, 전쟁 때에만 필요하니까.”
“그런데 왜 저한테 하시는 거랑 다릅니까!”
왠지 불평등하다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러자 무덕이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말했다.
“요즘 많이 늘었거든. 버거워.”
“…….”
“꼬우면 실력을 키우든가.”
요즘 들어 많이 삐딱해진 무덕이었다.
* * *
“젠장!”
박태석은 통화를 끊으며 신경질을 부렸다.
한 소리 들은 것이다. 물론 박연우 실장에게서 말이다.
“그년이 눈치가 빠른 걸 어쩌란 말이야!”
태석은 툴툴거렸다. 왠지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가진 제이라면 쉽게 넘어올 줄 알았었다. 그런데 자유분방은 하되 눈치는 빠르고 적절히 빼는 게 영 맘같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후우. 어쩐다.”
태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억지로 끌고 갔다가는 우 의원에게도 찍힐 게 뻔했다.
“뭔가 약점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젠장.”
딱히 약점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그게 더 머리를 아프게 했다. 골몰히 머리를 굴리던 태석이 눈빛을 굳혔다.
“뭐……. 없으면 만들어야겠지.”
태석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제이의 발걸음이 움직인 것은 바로 옥탑이었다.
정확히는 고진천이었다. 애인인 곽주호에게 알릴까도 생각했지만, 그 성격상 들이받아 버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진천은?
마찬가지로 왠지 말보다 손이 나갈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 무뚝뚝한 눈빛을 생각한다면 뭔가 다른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왠지 그를 보면 무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문이 열리자 옥탑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광경 역시 눈에 들어왔다.
“…….”
계웅삼이 있었고, 그의 손을 꼭 붙들고 있는 트렌든의 모습과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승배.
“헛!”
트렌든이 그녀를 본 순간 웅삼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떼었다. 마치 연애질하다가 들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진천을 만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광호가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제이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진천 오라버니 좀 뵀으면 해서.”
“지금은 좀.”
“중요한 일이야.”
제이가 평소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을 짓자 승배도 그녀의 곁에 다가왔다.
“무슨 일이길래.”
“좀 그래. 진천 오라버니에게 말하고 싶어.”
“들어오도록.”
진천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왔다. 그러자 광호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방으로 들어서며 제이는 확실히 이곳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전에는 뭔가 엄숙하다기보다는 자유분방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오라버니.”
“음.”
정좌를 한 채 앉아 있는 진천의 모습조차 익숙지 않은 느낌이었다. 왠지 카리스마가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저 의논을 드릴 일이 있어요.”
“말하도록.”
“그게…….”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오기로 결심을 한 그녀였기에 천천히 말문을 열어 갔다.
옥탑방 벽 옆에는 승배와 트렌든 그리고 웅삼이 있었다. 승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뭐랍니까?”
“쉿.”
웅삼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 중 가장 귀가 밝은 웅삼에게 안에서 나누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웅삼이 인상을 찌푸리며 트렌든을 보았다.
어느새 그의 손을 꼬옥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웅삼의 험악한 시선을 받은 트렌든이 미안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살살 잡을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웅삼이 투덜거렸다.
“쌩쌩이만 아니면 그냥.”
쌩쌩이는 트렌든이 사주기로 한 그의 새로운 애마 이름이었다.
귀를 기울이던 웅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스폰서면 좋은 거 아니야?”
“뭐?”
승배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13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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