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6
강철의 열제 76화
제19장 강림! 마의 열제
“어디 한 번 놀아 보자꾸나!”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는 것처럼 즐거운 표정을 하면서 달려드는 진천의 모습에 을지부루와 우루역시 입가에 한껏 미소를 베어 물었다.
대체 얼마만인가?
산맥속의 좁은 길을 달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바다에 살던 물고기를 우물에 넣어 보라.
어찌 되겠는가?
그들은 그들이 달려야 할 대륙을 달리는 것이다.
“뭐지 대체!”
병사 하나가 뒤로 튕겨져 날아가는 모습과 갑자기 출처를 알 수 없는 노호성을 들은 하멜 기사는 당황한 눈으로 한쪽을 바라보았다.
“모, 모두 대형을 갖춰라!”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당황한 하멜 기사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병사들을 일깨웠다. 온통 검은 색으로 보이는 이백여 기마가 달려오는 모습에서 적의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장님이거나 백치일 것이다.
“어서 모여!”
하멜 기사의 다급함에 병사들이 허둥지둥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바지를 반쯤 벗고 튀어나오는 병사들도 뒤섞여 있었다. 하멜 기사의 다급한 목소리는 남작의 불안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무, 무슨 일인가!”
“남작님, 일단 이쪽은 위험 하오니…….”
피슛!
“어……?”
“남작님!”
마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남작의 모습……. 그는 자신을 향해 경악이 섞인 눈으로 소리를 지르는 하멜 기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각인시킨 채 모든 사고를 정지 시켰다. 자신의 이마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으로 무너질 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하멜의 눈에는 경악이 서렸다.
“모두 주변을 뒤져라. 마법사다!”
하멜은 주변의 병사들에게 외쳤다. 남작의 미간에 뚫린 작은 구멍을 보고 생각난 것은 마법에 의한 저격뿐이었다. 몰려오는 적 기마들과의 거리는 아직 팔백여 미르(m). 미간에 구멍만을 낼 무기는 없다. 오로지 마법만이 가능했고, 대인 마법의 구현거리는 삼백미르(m)가 최고였다.
하지만 이것도 고 서클의 마법사이니 적어도 이백여 미르를 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퍽! 퍼퍼퍽!
“커억!”
“으어억!”
“뭐, 뭐야!”
순간 병사들의 몸통이 뒤로 튕겨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까는 경황이 없었기에 당황했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한 병사의 몸을 뚫고 나온 작은 화살이 뒤에 있던 병사의 몸통에 틀어박힘으로써 마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아차린 하멜은 절망을 느꼈다.
“빌어먹을, 눈에도 안 보이는 화살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는 궁수들 대신 기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기마병이 활을 쏜다는 것은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수민족을 제외한 어느 제국의 부대들도 기마궁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적어도 하멜이 아는 한 화살은 멀리 날아가 봐야 이백미르(m). 그것도 갑옷을 뚫기는커녕 몸에 슬쩍 박히는 수준인 것이다.
텅!
“커헉!”
“방패도 소용없다! 집 뒤로 숨어라!”
방패를 뚫고 박히는 화살에 하멜은 소리 내어 외쳤다. 하지만 이미 가우리 군은 마을을 향해 들이닥치고 있었다.
“제길. 모두 집과 골목사이로 몸을 숨겨서 시가전으로 돌입한다!”
애초에 제대로 된 전투는 예상하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일사불란한 군세가 나올 리가 없었다. 하멜은 지금 상황에서는 기병들의 돌진을 막을 수 있는 진형을 짤 수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돌진력이 떨어진 이후를 노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빨리 움지아아아악!”
히히힝!
병사 중에 고참병 하나가 골목이 꺾어지는 부분에서 하멜의 명령을 전달하다가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한 채, 옆구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뒤이어 나온 말의 울음소리.
“아아악! 제발 날 죽여줘어어! 죽여줘어!”
다각 다각 다각.
“헉!”
옆구리를 뚫고 삐져나온 창대를 부여잡고 죽여 달라며 바동거리는 모습은 다른 병사들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건장한 병사가 창대에 꿰여진 상태에서 발악을 하는 데에도 창은 흔들림이 없었다. 얼어붙은 병사들의 귓가로 말의 발굽소리가 차분히 들려왔다.
“고, 공격준비!”
다각 다각.
“어서 죽여줘어어!”
길쭉한 창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자 병사들이 공포와 긴장감 속에서 무기들을 거머쥐었다. 그럼에도 태연한 말의 발굽소리와 함께 드디어 말의 머리가 골목 사이로 나타났다.
“헉!”
단지 말일 뿐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전의는 이미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말머리에 솟아오른 세 개의 뿔.
차가운 강철 마갑 사이로 번뜩이는 살기어린 말의 눈.
그 말의 온몸을 감싸는 검은색 스케일 메일. 그리고 말 위에는 창을 겨드랑이에 붙인 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
그의 머리에도 세 개의 뿔이 있었다.
“으아아악!”
창대는 병사를 꿴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내장이 창대에 쓸리며 밑으로 내려가자 본능적으로 창대를 움켜쥐며 악을 써대는 병사. 그 모습을 보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얼어붙은 병사들…….
후우웅!
“크악!”
“으아아아아!”
창대가 병사들에게 휘둘러지자 꿰인 사내가 바람소리를 내며 창대에서 뽑혀져 날아갔다.
콰당탕!
“크윽!”
“어억!”
피를 뿜으며 날아온 고참병사와 충돌한 병사들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뒤엉켰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단 한 기의 기마인대도 말이다.
“모, 모두 공겨……!”
“마, 마족!”
“히에에엑!”
정신을 차린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고 가만히 내려다만 보는 사내의 눈동자. 머리와 갑주는 짙은 어둠을 상징 하는 듯했다. 그리고 투구에 솟아오른 세 개의 뿔. 이미 그들은 전의를 잃었다.
“……마족이라.”
“시, 신의 이름으로 처단하자!”
히이잉!
퍽!
용기를 낸 병사의 외침은 육중한 말의 발길질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쪽 벽에 피를 칠하며 쓰러져 내렸다.
“기왕에 부를 거면 마왕, 아니지 마의 열제라 불러라. 흐하하하하!”
“마왕의 강림이다아아!”
“으아악!”
병사들은 혼이 달아나는 듯 소리를 지르며 등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골목을 빠져 나가지도 못한 채 손도끼와 창에 의해 모조리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의 마지막 외침은 마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마왕의 강림이라고…….
“빌어먹을, 모두 퇴각한다!”
하멜은 병사들의 비명을 들으면서 더 이상의 저항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가차 없이 퇴각을 명했고, 자신도 말을 잡아타고 골목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눈에 뜨인 것은 무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도망칠 생각을 잊고 있는 병사들의 멍청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냐!”
“저, 저기.”
“으음.”
잘 정돈된 군세. 그들의 후방을 막아서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잘 정돈된 부대였다. 적들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할 하멜이 아니었다. 분명 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다는 것은 자신들을 모두 사로잡거나 몰살을 시키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의미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흐으음.”
하멜은 깊은 숨을 뱉어냈다.
결국 그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작마저 초반에 죽여 버릴 정도면 자신이 순순히 포로가 된다 하더라도 살려 줄 확률이 희박한 것이다.
“전 병력은 포위를 뚫는다. 적의 포위는 그다지 두껍지 않으니 한 방향으로 뚫고 퇴각한다!”
“예…….”
사기 꺾인 대답에 하멜은 답답함을 감추며 다시 한 번 외쳤다. 이미 그들이 따로 선택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
그때 하멜의 뇌리로 검은 무리의 기마가 기억이 났다. 어떤 병사인지 몰라도 마족이라는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마왕이라고도 누가 외쳤지만, 분명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왕이 뭐 하러 이렇게 변방을 치겠는가? 그것도 누군가가 도망치는 것이 두려워 에워싸면서까지 말이다. 하멜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간 마왕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르느냐, 영혼조차 구원받지 못함을. 자, 나를 따르라!”
“그, 그래 맞아!”
“정말 마왕인가?”
“퉤이! 어차피 살려면 여길 뚫어야 한다고.”
하멜의 설득이 성공 했는지 병사들의 눈에 전의가 감돌았다. 전의라기보다는 궁지에 몰린 쥐 마냥 살기가 등등해진 것이다.
“흐음.”
말 위에 선 몽류화의 입에서 낮은 침음성이 흘렀다. 적의 기세가 왠지 심상치 않은 것이다. 그 반면에 신병들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실전이라고는 몬스터와의 전투뿐이었다. 몽류화야 별 차이가 없다 생각하지만 병사들은 또 다른 것이다.
“할 수 없지.”
류화는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이들도 전쟁을 겪어야한다. 그리고 그 첫 전투가 어떻게 결론지어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행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가 한 팔을 들어 올리며 진격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누군가가 잔뜩 긴장한 병사들의 선두로 걸어 나갔다.
“빌어먹을 자식.”
부여기율이었다.
기율은 마치 산책이나 하는 듯 도끼를 어깨에 걸쳐 메고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류화는 겉으로는 욕설을 뱉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다.
터벅 터벅 터벅.
긴장감이 도는 병사들과는 달리 여유가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기율의 발걸음은 모든 이들의 이목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어디보자…….”
적들을 살피는 기율의 목소리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리 큰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신병들은 기율의 음성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푸흐흐.
“……?”
적진을 살피던 기율이 갑자기 기묘한 웃음을 흘렸다.
“저 꼬락서니들하고는……. 완전히 패잔병들이군. 저놈은 무슨 짓을 하다 온 건지 웃옷은 어디다가 던져 버리고 말이야. 쯧쯧.”
“…….”
침묵을 삼키던 가우리 병사들의 시선이 전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 전방을 살핀 다기 보다는 좀 더 세세히 보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신성제국 병사들은 전의를 불태우며 돌진을 위해 부대정렬을 하고 있었다. 그 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율의 말대로 복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기르는 오크 정도랑 비슷하다지? 그럼 이 전투는 하나마나지.”
“……!”
기율의 말에 가우리 병사들은 하나둘씩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기율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한마디 덧붙였다.
“어디 그럼……, 슬슬 싸워 볼까? 저기 적진에 가장 먼저 도달해서 싸우는 병사에겐 내가 특별한 포상을 약속하지. 음, 그래! 뭐니 뭐니 해도 먹는 게 남는 거지. 밀 한 수레!”
“헛!”
보통 가우리 병사들이라면 쌀에 눈이 돌아갔겠지만은 신병들은 밀 한 수레에 눈이 쉽게 돌아가 버렸다. 병사들의 긴장이 사라진 상태에서 포상이 나오자 점점 미묘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때 돌발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밀 한 수레는 제겁니다!”
“오! 평생병사 하일론!”
노예를 때려죽인 죄로 평생 병사를 하게 된 하일론이 자신의 도끼를 부여잡고 기율의 옆에 섰다.
“아무래도 입이 많아서 밀이든 뭐든 많이 벌어야 해서 말입니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아이가 일곱이지?”
“뭐, 그리 되었습니다.”
오년 안에 아이를 다섯이나 만들라는 고진천의 명령에 고민하던 하일론에게 소규모 화전민 마을에서 생겨난 고아들은 행운이었다. 처음에는 다섯을 만들라는 그 의미를 몰랐지만, 진천의 명령은 최소한 다섯 명의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결국 하일론은 고아들을 거두다 보니 보이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기왕에 평생 병사를 할 바에야 출세를 해 보라는 기율의 말에 항상 일선에서 싸워왔다. 그리고 받은 포상으로는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고 자기가 거둔 아이들의 우상이 되어왔던 것이다. 적어도 신병들 중 자기 실력에 가장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하일론일 것이다.
“그럼 저 먼저 갑니다! 우이야아아아!”
“이런! 나도 가지. 이야아아아!”
두 사람이 대열도 갖추지 않은 채 서로 경주하듯이 달려 나가자 한쪽에 있던 넬이 방패를 고쳐 잡더니 튀어 나갔다.
“하일론 아저씨, 같이 가요!”
“에라 모르겠다!”
“오크나 사람이나!”
“밀 한 수레다아!”
두 사람을 따르는 어린 넬의 발걸음에 모두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저마다 한마디씩을 뱉어내며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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