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76
148화 우루의 몫
“어서 오십쇼!”
“큼. 큼.”
사내들이 허리를 구십 도 꺾으면서 인사를 올리자 을지우루가 차에서 내리며 헛기침을 했다.
“오늘도 큰형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로 연기력이 좋은 이가 나서 우루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우루가 못 이기는 척 발을 들이며 말했다.
“뭐, 그런 거야 시간을 내주어야디. 암.”
우루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따르던 웅삼이 입가를 끌어 올리며 방금 말을 내뱉은 사내의 어깨를 도닥거려 주었다.
둘이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의 사내들이 한숨을 내쉬며 따라 들어갔다. 그중 하나가 자조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끙, 뭐하는 짓인지.”
그러자 한 중년 사내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원래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피하는 게 상책이야.”
“그렇긴 하죠.”
그들에게 있어 웅삼은 자연재해였다. 그리고 그런 자연재해가 떠받드는 우루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흐음.”
조금 전 감시자들이 내민 사진을 보며 사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이네?”
“그러게.”
“혹시 위에서 말하던 배후의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어쩌시겠습니까?”
감시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사내들 중 하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뭐, 어차피 뒤에 뭐가 있든 말든 간에 경고 삼아 건드는 거 아닌가?”
“비슷하긴 합니다. 일단 끌고 와서 뒤를 좀 확인해 봐야 하니까요.”
“쯧, 끌고 다니는 게 더 귀찮은 건데.”
“그러게.”
“일단 좀 부탁드립니다.”
“뭐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젠장, 결국 또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인생인 거지.”
“누가 뭐래?”
사내들은 시시덕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여섯 명의 사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감시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섯 명으로 될까요?”
“뭐 되겠지. 인간 병기라고 하는 양반들이니까.”
“자신 없으면 움직이지도 않았겠지만…….”
“그러니까.”
감시자들이 여유 넘치는 사내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에이씨. 어디다 외모 지적질이야 지적질이!”
“누가 아니래? 아니, 이 가슴이 어디가 어때서!”
“막말로 그런 여자가 세상에 어딨냐고!”
“그것뿐이야! 저 인간들은 오면 군가야, 어떻게 된 게! 차라리 걸그룹 노래를 목 터지게 부르라 하든가!”
우루에게 외모 지적질을 당하고 나오는 여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니들이 이해해라. 어서 각자 가게로 돌아가고.”
“네.”
“고생들 했다.”
사내들은 그녀들을 달래기 바빴다. 그때 먼저 나가던 아가씨 하나가 멈칫하더니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또?”
왠지 이 장면을 본 듯했다. 동시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코너를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이는 예상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들이 예상한 인물은 바로 고진천이었던 것이다.
“누구요.”
하지만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들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했다. 일부는 약간 깡마르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였다. 그러나 기도가 달랐다. 위험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것이 일반 조직원들과도 다른 느낌이었다.
‘뭐지.’
“조용히 들어가면 좋겠는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알면서 그딴 소리를 하나?”
“우리는 안쪽에 있는 놈들만 데려가면 된다고.”
“뭐 이딴 새끼가…….”
순간 안쪽에서 울려 나오던 군가가 멈추었다. 그리고 안쪽에서 여자 하나가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앞을 두리번거리더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들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냥 가시는 게 좋겠다는데요.”
“허?”
“기분이 좋아서 그러신다고 그냥 가시래요.”
“뭐야, 우리가 오는 걸 알았다는 건가?”
“정보가 샌 거야?”
“에이, 그건 아닌가 본데.”
사내들이 두런두런 말을 나누었다. 그 또한 여유로워 보였다.
룸에서 나온 여자의 반응을 본 조직원들은 다시 사내들에게 입을 열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남의 영업장이니 곱게 가시오.”
물론 마음 같아서는 확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왠지 본능이 그것을 막았다.
이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다.
깡 없으면 죽는 거라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웅삼의 등장 이후 철칙이 생겼다.
깡 잘못 부리면 죽는다.
그냥 개죽음일 뿐이다. 상대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말이 돌아다녔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안에 친구들에게 곱게 가자고 전해줘요. 우리도 험하게 손쓰기 싫으니까.”
“그게…….”
“에이씨. 뭘 자꾸 말을 섞어. 그냥 가면 되지.”
그때 뒤쪽에 있던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러자 룸 앞을 지키던 조직원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쯤 해서 안 되면 되든 안 되든 싸워야 한다.
그도 안 하면 이 짓 은퇴해야 한다.
순간 성큼성큼 걸어오던 사내가 주먹을 내지르는 사내의 팔을 잡는가 싶더니 그대로 당기며 손바닥으로 관절을 밀어쳤다.
우둑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팔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하지만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사내가 턱을 잡고 한 번 털었다.
덜커덕하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그대로 나자빠졌다.
“어으으어!”
턱이 빠진 듯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달려들던 둘 역시 몇 합까지 가지 않았다. 명치와 관자놀이를 맞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봐, 간단하잖아. 기다려. 끌고 나올 테니까.”
사내가 손을 털며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있던 여자를 끌어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보곤 동료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자식은 꼭 저렇게 해서 작전 그르치더니 나와서도 저 지랄이야.”
“야야. 우리 중에 사고 안 친 놈이 어딨냐.”
“하기사.”
사내들은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 담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그때 안에서 우당탕하며 여자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뭐야.”
여자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뭔가 무서운 광경을 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조용했다.
“뭐야?”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내들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고는 거의 동시에 각자의 허리춤에서 칼 한 자루씩을 뽑아 들었다.
일반적으로 조직들이 즐겨 쓰는 것과는 다른 형태였다.
군용에 가까운 대검이라고 봐야 했다.
선두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룸의 문을 열었다.
삐이익.
문이 열리고 낮은 조명의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실내 장식과 위에 가지런히 놓인 술병들 중 한두 개는 이미 뚜껑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사내 하나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정 중사!”
순간 뒤따라 들어온 이들이 놀라 그를 흔들었다. 그러자 고개를 흔들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나 이거야 원, 쪽팔려서.”
“뭐야? 괜찮아?”
“들어오다가 기습을 당해서.”
“뭐? 어떻게!”
“그게…….”
사실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들어온 순간 기억을 잃었고 정신을 차리니 동료들이 자신을 깨웠으니 말이다.
사내들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각자 시선을 마주쳤다.
“이거 그냥 편히 가려 했는데 안 되겠군.”
“어쩔 수 없지.”
“최대한 해보고 하나만 끌고 가지.”
그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우루와 웅삼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 가랄 때 가지 그랬어?”
“말이 짧구나.”
“알아서 하라우.”
“예.”
그때 사내들 중 하나에게서 살기가 확 하니 솟구쳤다.
“뭐야? 저거? 말투가…….”
“내래 말투가 어케서 그라네?”
“…….”
우루의 말에 사내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북파를 위주로 해왔던 공작원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살인 병기라 불리며 사지를 넘나들던 이들이었다.
그들 중 작전 중에 북한 특수부대원에게 동료를 잃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우루의 어색한 말투에 순간 살기가 치솟은 것이었다.
“뭐야. 가우리파니 뭐니 하는 찌끄러기들이 간첩단이라도 되는 거야?”
“잡아서 털어보면 알겠지. 북쪽 새끼치고는 잘 처먹었나 본데? 위로는 안 자라고 옆으로만 자란 걸 보니.”
살기가 룸 안을 덥혔다.
그때 술잔이 딱 하니 탁자 위에 소리 내며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웅삼이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쳤구나…….”
“건들디 마라우.”
웅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대답 대신 한 걸음 물러섰다.
“한 놈도 건들디 말라우.”
“예.”
웅삼이 고개를 숙였다.
우루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두 내 몫이니까네.”
우루가 몸을 천천히 일어서며 사내들을 훑었다.
“사람 목숨 몇 거둬보니 지들이 무슨 저승사자라도 되는 디 아는가 보구만.”
순간 사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늑대 새끼가 되다만 승냥이 아새끼들이야.”
사내들이 그사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들만의 신호였다. 그때 우루가 탁자 위로 턱 하니 뛰어 올랐다. 그러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왔다.
그들이 반원을 그리고 있는 곳 한가운데로 말이다.
마치 스스로 포위망에 걸어 들어온 꼴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우루의 말은 끊어지지 않았다.
“기런데 말이디. 다 좋은데 말이디. 실수를 했어야.”
“실수라. 우리 실수가 뭘까?”
사내들 중 하나가 틈을 보면서 히죽 웃음 짓고 말을 붙여왔다.
“가우리, 그 이름에 똥칠을 한 거이디.”
“그딴 이름 우리가 뭔 줄…….”
사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우지끈!
마치 통나무 하나가 통으로 부러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우루의 주먹이 그 말을 내뱉은 사내의 가슴팍을 두들겨서 낸 소리가 말이다.
“어그어…….”
사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떡 벌렸다.
벌어진 입에서는 선홍빛 피가 꾸역꾸역 솟구쳐 올라왔다. 고개를 꺼떡거리던 사내가 눈동자를 아래로 내려다보니 가슴팍 한가운데에 누군가의 팔목이 마치 기둥처럼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팔을 따라가니 그들의 포위망 한가운데에 있던 우루가 그것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몰라도 하지 말았어야 했디.”
“죽여!”
순간 남은 다섯 사내가 동시에 우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살기를 풀풀 날리며 말이다.
순간 우루가 손을 뽑자 가슴이 완전히 함몰된 사내가 흐느적하며 무너져 내렸다. 그러는 사이 현란하게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오던 사내의 손이 그대로 잡혔다.
대검을 쥔 손이 통째로 우루에게 잡힌 것이다.
놀랄 겨를도 없었다.
그대로 몸이 휙 하니 날았다. 손목부터 시작해서 팔꿈치, 어깨까지 우두둑하니 뼈란 뼈가 줄줄이 탈골되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끝에 척추가 부러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동료의 목이 부러진 것을 함께 목도해야 했다.
사람을 마치 흉기마냥 휘둘러 사내의 동료를 후려친 것이다. 그것도 머리통을 말이다. 어떻게 후려쳤는지 무기가 된 사내의 척추는 그대로 동강이 났고 맞은 이 역시 목이 구십 도로 확 꺾였다.
우루가 발끝을 툭 하니 차올리자 대검 하나가 허공에 띄워 올려졌다. 그것을 집어 내리긋자 뒤에서 달려들던 사내의 몸통이 그대로 갈라졌다.
그냥 군용 대검일 뿐인데 몸이 왼쪽 어깨부터 반대편 허리까지 쩍 하고 갈라져 버린 것이다.
“끄아아아아!”
다행히 이번 사내는 비명이라도 질렀다. 쏟아지는 자신의 상체를 바라보며 말이다.
남은 둘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는 머리통이 부서졌고, 하나는 다리가 걸려 자빠진 뒤 그대로 우루의 발에 밟혀 몸통이 박살이 났다.
싸움이랄 것도 없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우루가 서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상엔 말이디. 그 이름 하나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이도 있는 기야. 그거이 명예라 부르디.”
우루의 읊조림을 들으며 사내들은 생명의 빛을 하나둘씩 잃어갔다. 때 아닌 학살극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웅삼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14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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