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8
강철의 열제 78화
다음날 아침, 고진천은 막사에서 나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날의 충격에서 모두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마을사람들은 대체로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만천(萬天)의 지존이자 만인(萬人)과 만물(萬物)을 포용하시는 열제 폐하께 경배 올리옵네다!”
“음.”
을지부루와 우루의 선창에 고개를 까딱거린 진천이 임시로 마련된 단상위로 올라갔다.
“이곳엔 우리가 주둔한다. 그리고 분명히 밝힐 것은 그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적은 북로셀린과 신성제국.”
“…….”
마을 사람들은 진천의 말에 불안 반 의아함 반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남로셀린은 그대들의 방패가 되어 주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 방패가 되겠다. 여기서 군사들이 머무르는 동안 그들에게 협조를 다하여라.”
설득이 아닌 명령이었지만 마을 사람들 어느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칼자루는 진천이 쥐고 있었고, 적어도 신성제국군을 부수어 버린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호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 아니던가? 거기에 복수를 대신 해주며 목숨까지 구해 주었으니, 불안하지만 믿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이제부터 우리는 남로셀린 각지를 돌며 전란에 빠진 그대들과 같은 이들을 구해서 지속적으로 이리 보낼 것이다. 그들을 가족처럼 여기도록. 그리고 일손이 필요하면 여기 병사들을 통해 지원받도록. 그리고 군사 훈련을 받고 싶은 자도 지원을 받는다. 당장 복수를 하기는 힘들어도 언젠가는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이것은 아이나 여자에게도 해당한다.”
웅성웅성.
“해산하도록.”
자신의 말만을 짧게 끝내버린 진천은 다시 단상을 내려가 막사로 되돌아갔다.
일일이 구해서 백성들을 이끌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목적인 백성충원계획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된 곳이 이 지점이었던 것이다. 여기를 거점으로 신병의 훈련을 기율이 맡아 병행하며, 백성들을 모아서 한 번에 신성제국을 통해 이동 하려는 계획을 만든 것이다.
이곳은 어느 정도 깊숙한 지역이었으며, 이곳으로 오는 동안 이들이 이곳에 거점을 잡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이점은 남로셀린 뿐만 아니라 레간쟈 산맥에서 신성제국의 영토에 진입 했을 때에도 증거를 남기지 않은 진천의 덕이었다.
이 인원이 흔적도 없이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방법은 간단했다.
증거 인멸.
만약 연휘가람이 있었다면 안 걸리고 이동할 방법을 찾아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휘가람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방법은 뻔했다.
휘가람식의 안 걸리고 이동하기.
부루 우루식은 지나가며 걸리면 다 때려잡기.
진천식은 아예 지나가기 전에 미리 주변을 싹 쓸어버리는 방법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진천식을 사용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러니 적어도 주변에 위험할 만한 적이 없다는 얘기였다.
“고조 주변에는 문제가 없습네다.”
“기렇습네다. 여기를 약탈하던 놈들을 제외 하고는 신성제국 영지의 병사들은 국경 주변이나 들락거리는 수준으로 보입네다.”
“음.”
을지부루와 을지우루가 보고하는 가운데 진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서류와 지도를 살피고 있었다.
일단 이곳을 거점화하기 위한 작업은 마쳤으니 진천이 북로셀린의 잔여병들이 들이치는 마을을 습격해서 마을민들을 구해만 오면 되는 것이다. 만약에 북로셀린의 공세가 없는 마을이라면 진천이 애써 들어갈 이유가 없다. 왜냐면 그들이 설명을 한다 해도 같은 약탈자로만 비칠 것이 뻔하다.
적당한 원한과 적당한 구원이 모아져야 진천의 계획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 남로셀린 백성들 입장에서는 잔인한 판단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너희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났다!’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오오오! 구원자시여,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라고 하겠는가. 아무리 전란이라지만 말이다.
만약에 그냥 포로가 필요 하다면 끌고 가면 되지만 진천에게 필요한 것은 포로가 아닌 백성이다. 포로는 잡아들일 북로셀린 군과 가끔 주변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신성제국 병사들로도 충분했다.
지금 상황에서 이 마을 백성들은 반기는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피하거나 꺼리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전란에서 군대의 중요성을 모르는 백성들도 아니었고, 이들이 오기 전 그 절망의 상황을 겪었기에 순응할 뿐이었다.
“기율.”
“예, 열제 폐하.”
고진천이 몇 명의 장수를 모아놓고 있는 상황에서 부여기율을 부르자 기율의 신형이 마치 신병처럼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어딘지 모르게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모습은 그 옆의 몽류화도 마찬가지였다.
“넌, 여기서 신병의 훈련과 우리가 보내오는 백성들의 신변안전을 맡는다.”
“충!”
“류화.”
“예! 열제 폐하!”
이번에는 류화가 번개처럼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하였다.
“일전에 말하였던 대로 본국으로 돌아가 계웅삼이의 탈출을 지원하여라. 만약 일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시신을 확인하도록.”
“충!”
류화가 군례를 올리자 진천이 주변을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머지 귀마대원과 후송을 위한 경기병 일백은 나를 따라 내일 밤부터 이동을 시작한다.”
“충!”
“이만 해산 하도록.”
근거지를 마련한 진천은 을지부루와 우루만을 대동하고 본격적인 백성 모으기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제20장 종횡무진 삼두표 – 그들이 마족이 된 이유
“니들 대체 뭐야!”
“장군님, 우리 헛짓거리 한 거네요?”
서로를 마주보며 놀라고 있는 사내들…….
바로 계웅삼 일행과 신성제국군에 쫓기던 네 명의 사내들이었다. 머리는 검었으나 눈이 푸른 이질적인 모습과 눈과 머리가 검정에 가까운 웅삼 일행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젠장. 어찌됐든 거기 형씨들, 우리 자리를 피합시다. 피차 쫓기는 것은 마찬가지 인데.”
“좋습니다.”
여전히 경계의 눈빛은 가지고 있었지만, 일단 공동의 적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 상황에서의 합작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웅삼 일행으로서는 지리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조력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고, 그들은 웅삼 일행의 무력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신속한 행동으로 도피에 필요한 물품을 죽어 나자빠진 병사들과 그들이 있던 초소에서 충당한 그들은 전속으로 하루 밤낮을 달렸다. 어느 정도 달린 결과 안전하다 판단이 된 그들은 노숙을 위해 산자락에 있는 작은 동굴을 찾아 잠시 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했네?”
숨을 돌리던 계웅삼이 한쪽에서 숨을 고르던 사내들을 향해 눈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 전 큰나무라 합니다.”
“큰나무?”
“예.”
웅삼의 자연스러운 하대에도 네 명의 리더인 듯한 자가 공손히 대답을 했다. 웅삼이 손을 내밀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제라드요.”
“뇌, 뇌전의 제라르!”
“아니……, 그냥 계웅삼이요…….”
사내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더 이상 가명이 필요 없으리라 판단한 웅삼이 자신의 본명을 밝히자, 나머지 일행들이 따라서 자신들의 이름을 차례로 소개했다.
“삼두표요.”
“강유월이오.”
“무한대요.”
“걸걸중상이오.”
“관무루요.”
가명이 아닌 그들의 본명을 밝히자 맞은편 사내들의 눈이 약간 흔들렸다. 웅삼은 이들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쪽들은?”
“아! 전…… 맑은 강이라 합니다.”
웅삼이 고개를 약간 들며 묻자 큰나무 뒤의 사내가 서두르듯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뒤이어 다른 사내들이 소개를 했다.
“전 창공의 매입니다.”
“바람나무입니다.”
소개가 끝이 났음에도 웅삼 일행은 이들의 이름형식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이 세계의 이름은 이들처럼 자연을 그대로 따온 이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이내 접어 버렸다. 웅삼의 기억 속에 있는 서쪽 변방의 이름들도 그가 생각하기엔 괴상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요기부터 합시다.”
“그러죠.”
웅삼의 말에 서로 챙긴 음식들을 꺼내어 입에 넣고 씹었다. 말라비틀어진 빵 조각과 육포쪼가리였지만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 한 것이다. 쫓기는 주제에 불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웅삼이 큰나무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도 마족으로 오인 받는가 보군.”
“그렇습니다. 사실 신성제국을 제외한 하이안 왕국이나 북방지역에서는 저희들에 대한 탄압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아니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수도에 마족이 출현해 신성제국의 사신들을 거의 죽이다시피 하고 달아난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저희마저…….”
“…….”
질문을 한 웅삼의 일행이 큰나무의 설명을 듣다가 동시에 움찔했다. 그 모습에 말꼬리를 흐린 큰나무가 그들을 한번 훑어보면서 다시 떠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마족들은 여섯 명인데, 세이버와 비슷한 검을 쓰는 마족과…….”
움찔!
웅삼의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강철봉을 다루는 거한과…….”
“쿨럭!”
삼두표의 기침소리…….
“마족의 힘을 담은 무시…… 무시한 활을 든 마족 등 모두 여섯이라고 들었는데…….”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큰나무 일행들은 웅삼 일행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웅삼 일행들은 그들의 눈빛을 피해 고개를 돌리기에 바빴다. 어찌 보면 이들의 수난이 웅삼 일행 덕 아니겠는가?
“당신들이군요.”
“쩝. 말 다해놓고 확인은 무신…….”
“두표, 조용히 해라.”
두표가 슬쩍 철봉을 잡아가며 말하자 웅삼이 팔을 들어 그의 행동을 막았다. 순간 긴장했던 큰나무 일행들은 웅삼을 바라보았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우리는 마족인지 뭔지가 아니니 안심하지.”
“그 점은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신고 같은 걸 할 생각도 없습니다.”
웅삼의 말에 큰 나무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러자 웅삼의 음성에 차가움이 묻어나왔다.
“다행이군.”
순간 큰나무는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갈 뻔 했다는 것을 느꼈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큰나무가 조심스럽게 계웅삼에게 말을 붙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쫓기게 된 겁니까? 분명 신성제국사람들이 검은 머리나 눈동자를 보고 마족이라 부르기는 하지만 실제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냥 하듯 잡아들이는 것은 몇 백 년 만입니다.”
“…….”
웅삼은 큰나무의 말을 듣고는 한쪽의 샤벨타이거 새끼인 냥이에게 먹이를 주는 척 하며 딴 짓을 하는 삼두표를 노려보았다.
빠드득.
움찔.
웅삼의 이빨이 거북한 소리를 내었고 두표의 큰 덩치가 눈에 띄게 축소되어져만 갔다.
쫓기기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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