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87
159화 확산되는 위기
송가은 작가가 되돌아오고 옥상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시아론 리셀은 끊임없이 쇼핑을 다녔고, 고진천은 그에게 뭔가를 따로 주문했다. 그리고 계웅삼도, 뒤이어 을지우루도…….
거기에 필리언 제라르 역시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실라 론 카말 공녀 역시 부탁을 했다. 웅삼을 통해서지만.
그 바람에 트렌든의 재산은 빠르게 축이 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주문은 그럭저럭 감당할 만했지만 리셀의 주문은 그야말로 미쳐 돌아갈 정도였다.
“무슨 핵융합로를 산다고 그래!”
“비싼가?”
“비싼 게 문제가 아니라고 영감!”
가끔은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발언까지 했다. 아쉬운 표정으로 또다시 쇼핑한 것들을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 모습에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대체 얼마나 들어가는 거지?”
지금까지 넣은 것만 해도 적은 수량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또 들어가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옥상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전창걸 대표였다. 여전히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약 연장을 노래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하니 힘이 빠질 만도 했다.
그의 등장에 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꽤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때 전 대표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광고 하나만 찍읍시다.”
“더는 귀찮은 일 안 한다 했는데.”
진천도 더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 대표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계약 연장도 안 해주면서 남은 기간에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도 너무한 것 아니오!”
전 대표가 울상을 지었다. 한쪽에선 우루가 활을 집어 들려 하고 있었고 그를 웅삼이 말리고 있었다.
그때 제라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갔다.
“걸그룹하고 찍는 광고라면 내가 대신해 주지.”
“……익!”
순간 전 대표는 주먹을 날릴 뻔했다.
물론 날린다 해서 뭐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종종 연습실을 기웃거리며 계약해 주겠노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도 귀찮게 굴기에 그럼 계약하자 하니 한 달만 하겠다는 거였다.
해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미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사실 옥상에 있는 인간들은 죄다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진천 이후 계약한 이실라는 결국 제대로 써먹질 못했다.
뭔가 모델로 써먹으려니 온몸에 있는 상처 때문에 할 수가 없었고, 다른 쪽에 활용을 하려니 마치 로봇처럼 대사를 치는 바람에 두 손 두 발 다 놓았다.
결국 진천 이외에는 쭉정이였다. 한 번 제대로 써먹은 웅삼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얼마 전 한우 홍보대사는 오로지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설득 때문에 간 것이다. 한돈은 이미 두어 달 전에 했고 말이다.
그때 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주지.”
“저, 정말이오?”
“대신 그게 마지막이다.”
“아, 알았소.”
차라리 한 건이라도 더 광고를 찍어서 버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던 전 대표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려갔다. 그래도 이번 광고는 나쁘지 않았다.
6개월 단발인데 그 광고비가 탑급이었기 때문이다.
전 대표가 내려가고 난 뒤 이승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시게요?”
“뭐, 고생했으니 하나 정도는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건 그렇죠…….”
승배가 보기에도 전 대표가 그동안 고생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진천이란 이름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그가 가지는 파괴력 덕분에 퍼스트 엔터가 이만큼 큰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계약 연장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때 또다시 방문객이 옥상 문을 두들겼다.
“형님!”
활짝 웃으며 발걸음을 들인 이는 바로 곽주호였다. 드라마 끝나고 이후 광고 때문에 더 바빴던 그였다. 게다가 동남아권에 드라마가 서비스되기 때문에 나돌아 다닌 시간이 꽤 많았다.
“왔군.”
형님이라는 소리에 우루가 얼굴을 찌푸렸지만 나서지 않았다. 대신 불만 어린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개나 소나 다 형님이디.”
우루의 투덜거림에 승배와 광호가 움찔했다. 그들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거 정말입니까?”
“뭘?”
“재계약 안 한다는 거 말입니다. 저야 형님 보고 오긴 했지만 전 대표처럼 일 깔끔하게 하는 사람도 없는데.”
“음.”
진천도 전 대표 하는 일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때 주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로운 얼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수하들.”
“예? 아…….”
아직 주호는 그가 전쟁용병 비슷한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쯤으로 생각했다.
“트렌든 씨는 아직 안 돌아갔나 봅니다?”
“이유가 있지.”
“그래요? 그럼 그런 거죠. 그런데 저도 소개 좀 해주시죠?”
기왕에 진천의 수하라 하니 주호는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가 모르는 진천의 모습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굳이…….”
소개를 해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즈음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하얀 스티로폼 박스를 든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주호는 박수 중 하나를 열어 소주병을 꺼내 들며 말했다.
“간만에 꽃등심 달리죠?”
“이쪽은 을지우루. 저기는 제라르, 저기는…….”
왠지 기분 좋아진 진천의 약식 소개가 이어졌다.
지글지글!
옥상 한쪽에 줄줄이 늘어져 있던 드럼통으로 만든 바비큐 통들을 일렬로 연결해서 고기를 구웠다. 진천의 먹성을 알기에 주호가 준비해 온 고기는 꽤 많았지만 새로 생긴 입에 대해서는 몰랐다.
“이거 더 주문해야겠는데요?”
특히 우루의 먹성이 남달랐다. 그나마 리셀은 정상적이었다.
고기를 씹어 삼킨 주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왜 안 하시는 겁니까.”
“뭘 말하는 거지?”
“재계약이요.”
“…….”
주호의 질문에 진천은 대답 대신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답답할 만도 한데 주호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강요한다고 해서 대답해 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었으니까.”
“때라뇨?”
“돌아갈 때.”
“어디 가시는 겁니까?”
주호의 질문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도 왔다 갔다 하면서 활동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혹시 멀리 가십니까?”
재차 이어진 질문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시기에…….”
“아마 다시 보긴 힘들 거다.”
순간 주호가 얼굴을 굳혔다. 지금 진천이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형님, 설마 또 전쟁터라도…….”
“너 뉘기…….”
빠악!
우루는 진천이 집어 던진 감자에 이마를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숯불에 굽기 위해 알루미늄 포일로 싸놓았던 감자였다.
그 모습을 보며 트렌든이 웅삼에게 말을 걸었다.
“저 양반은 웅삼과 다른데?”
“뭐가?”
“그런 거 있잖아. 이쯤이면 맞겠다 안 맞겠다 그런 거.”
“눈치? 없어 그런 거. 본능만 가득 찬 양반이지.”
“그렇군!”
트렌든이 재미난 걸 알았다는 듯 손바닥을 두들겼다.
“비슷하다.”
“전쟁용병 그거 안 하면 안 됩니까?”
주호가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진천의 강함이야 알지만, 전쟁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니 해야겠지. 안 하면 제일 좋지만 말이야.”
진천이 대답했다. 주호는 그런 진천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 초점이 어긋난 질문과 답이었지만 각자 그 안에 담긴 것은 진심이었다.
“송 작가가 상심이 크겠네요.”
“음.”
“차기작 주인공으로 형님을 정해놓은 건 이 바닥에서 모를 사람이 없는데 말이죠.”
“…….”
가은의 이야기가 나오자 진천이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결국, 그녀의 기억은 고치지 않았다.
그녀의 소원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떠들 이는 아니라는 생각에 그리해 주었다.
대신 다시는 드라마 이야기를 꺼낼 일이 없을 것이다.
어느덧 준비해 온 고기도 다 떨어지고 자리가 정리되자 주호가 일어섰다.
“형님.”
“음.”
“다시 생각해 주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정이 들었잖습니까.”
“…….”
정이란 말에 진천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정이 들어버렸다. 전쟁과 전쟁 준비가 전부였던 삶에서 처음으로 외도를 했다. 그 속에서 소소한 인간관계를 가져보았다. 생소했고 신선했으며 꽤 재미있었다.
그것만큼은 진짜였다.
“열심히 하도록.”
“예.”
주호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되돌아갔다. 닫힌 옥상 문을 보며 진천이 중얼거렸다.
“정이라…….”
뭔가 이들에게 남기고 싶어졌다.
떠나기 전에 말이다.
* * *
영상이 끝이 나고 불이 켜졌다.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이 멈추어진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스미스 요원.”
“예!”
스미스 요원이라 불린 백인 남성이 대답했다. 그러자 중년의 백인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질문을 이었다.
“저거 진짜라는 거지?”
“어떠한 조작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쪽 조사반의 보고에 의하면 건물에는 지진이나 지각에 의한 변화는 없었고 또한 화약의 흔적도 없었다 합니다.”
“으음.”
그때 화면을 지켜보던 다른 이가 다시 말을 붙였다.
“저 슈트가 제대로 작동하는 건가?”
“그건 모르겠지만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이 몇을 포섭해 본 결과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괴력을 발휘했다 합니다. 또한 아이언맨 사건이라 알려진 다른 두 사건에서도 보면 같은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그건 나도 봤지. 그런데 그 영상에서는 슈트가 없었지 않나?”
“아마도 옷 안에 숨기는 형태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부피가 다르지 않나?”
뭔가를 옷 안에 입었다면 좀 더 부피가 커야 하지 않나 하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스미스 요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정보가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 쪽에도 비슷한 게 있지 않나?”
“있기는 합니다만, 크기부터 좀 다릅니다. 아직 이쪽은 양산형 타입이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문제란 거네.”
스미스 요원의 말을 자르며 맨 처음 말을 뱉은 중년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국장님, 언제부터 한국이 저런 기술력을 보유했을까요?”
“흐으음.”
“난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토니 스터커가 진짜 있다면 모르지만.”
“이보게 짐, 그러면 끔찍한 거야. 헐크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아닌가?”
“하하하!”
짧은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내 웃음은 잦아들었다. 국장이라 불린 사내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 쪽에선?”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현지 요원의 보고로는 한국 정부에서도 저들을 찾기 위해 감시망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시끄럽던데.”
“아무래도 한국 국회의원이 테러를 당한 사건과 연계되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 인터넷 문화는 알아주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때 한쪽에 있던 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알고서도 모르는 체하는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둔 그들은 조금 더 논의를 하고 자리를 끝마쳤다.
“스미스.”
“예.”
“일단 한국에 인원을 늘리고 위성도 더 동원해.”
“위성도 말입니까?”
“그래. 한국에서도 아마 내주지 않으려 할지도 몰라. 최대한 얻어 올 수 있는 건 얻어와야지. 그러려면 일단 이쪽에서 알고 있는 게 많아야 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최대한 동원해 보겠습니다.”
“고생하라고.”
미 정보부.
동영상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까지 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16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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