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9
강철의 열제 79화
다각 다각 다각.
고윈 남작영지에서 꿈같은 휴식을 취하던 계웅삼과 일행들은 고윈 남작이 수도로 보고를 위해 가는 도중에 호위로써 따라가기로 했다. 호위라기보다는 같이 행동을 하기로 한 그들이었다. 어차피 그들이 원했던 일이기도 했다. 직접 하이안의 정세를 파악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든 그들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속으로는 환영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고윈 남작과 있으면 그들의 신원은 확실한 것 아닌가.
고윈 남작은 하이안 왕국에서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무장이다. 하지만 고윈 남작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문관 출신의 중앙 귀족들이 그를 지방으로 좌천시킨 것이었다.
고윈 남작은 하이안 왕국의 모든 국정을 각 제국에 끈이 닿아있는 인물들이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며 쥐고 흔드는 것이 싫었다. 아니, 이런 점은 하이안 왕국의 모든 무관이라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기를 드는 전장은 항상 하이안 왕국이 아닌 타국의 전장이었고, 죽어 나자빠지는 대지는 타국의 대지였다. 그나마 무장들은 시체라도 본국으로 돌아오지만 일반 병사들은 한줌의 재조차도 돌아오지 못했다.
고윈 남작은 약한 것을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계웅삼과 그 일행들은 강했다. 그래서 그들이 탐이 났다. 결국 그 그릇이 커서 자신의 휘하에 잡아 두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뜻을 따라 주리라 생각 했다. 설득은 천천히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문제는 왕성으로 복귀해서 쏟아질 문관들의 질책과 모욕이었다.
“흐음, 한가롭네요.”
캬앙.
“그럼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길 바라는 거냐?”
삼두표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샤벨타이거의 새끼인 냥이의 코를 건드리며 장난을 치자, 꼴에 맹수라고 반항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본 웅삼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쏘아붙이자, 두표가 한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리며 냥이를 들어 올렸다.
“아니요, 뭐랍디까? 그렇쥐 냥이야? 흘흘흘.”
“…….”
곰처럼 생긴 것과는 달리 능글거리는 두표의 행동에 웅삼은 도집을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라드 경!”
이러한 유혈사태의 조짐을 막아준 것은 라인만이었다. 이들이 행렬의 뒤쪽을 맡은 탓에 라인만이 선두에서 말을 달려 웅삼에게 다가온 것이다.
“무슨 일이오?”
다가온 라인만을 향해 웅삼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행렬의 이동 중에 라인만이 직접 다가오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도시로 들어서게 될 것 같습니다.”
“도시! 크하하핫, 술이다 술!”
“하하하.”
“…….”
라인만의 말에 화답한 것은 역시나 두표였다. 갑자기 술을 외치면서 날뛰며 좋아하는 두표의 모습을 본 라인만은 그의 솔직한 모습에 즐거운 웃음을 내뱉었고, 웅삼은 그의 단순함에 분노를 곱씹었다.
“어쨌든 잘 되었습니다. 거의 일주일 정도 노숙을 해오다 보니 몸이 좀 찌뿌듯했는데 잘 되었군요.”
“예. 그럼 제라드 경, 전 제자리로 가겠습니다.”
라인만은 웅삼에게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 다시 말을 몰아 선두로 달려 나갔다.
라인만을 비롯한 기사들은 웅삼에게 항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에 모든 예의를 갖추었다. 왜냐면 기사들의 목표인 소드 마스터였으니까 말이다.
“두표! 도착하면 보자.”
“…….”
냥이를 머리위에 올리며 장난치던 두표는 살기가 묻어 나오는 웅삼의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고윈 남작 옆에 붙어살아야겠구만. 흘흘.’
이미 생존방법을 터득한 두표였다.
저녁 무렵 고윈 남작의 행렬이 작은 도시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라인만의 설명으로는 하이히만 남작이 관장하는 일종의 수도로 가는 관문 도시라 했다.
“저게 뭐라 쓰인 거지?”
“모르면 닥쳐라.”
삼두표는 도시 관문에 커다랗게 적힌 문자를 보고 갸우뚱 거렸다. 말은 완벽에 가깝도록 훈련을 받았지만 문자까지 익히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웅삼은 시도 때도 없이 쫑알대는 두표의 입에다가 주먹을 가져다 박아 주고 싶었지만, 주변의 눈 때문에 그저 한 마디 쏘아 줄 뿐이었다.
그러나 두표의 눈치 없는 입심이 보통인가?
“모르니 물어야쥬. 알면 묻지도 않습니다요.”
“땅에 묻어줄까…….”
웅삼의 눈빛에 살기가 어리며 번들거리자 두표가 말을 몰아 조금씩 옆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참, 만날 묻는다고 하시네. 뭐 내가 씨앗이라도 되남. 땅 파고 묻게. 거참, 모르면 모른다고 하시지…….”
“…….”
두표는 웅삼의 말 한마디에도 지지 않고 궁시랑 대면서도, 쏟아질 분노를 피해 천천히 고윈 남작의 행렬이 있는 앞쪽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웅삼은 고개를 슬쩍 돌리며 뒤에 따라오는 유월에게 손을 내밀었다.
“활. 저 자식, 주뎅이 꿰어 버릴란다.”
“끼이랴!”
다그닥 다그닥.
웅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표와 말이 앞쪽으로 달려 나가 버렸다.
“애초에 부장급 이상을 데려 오는 게 아니었어…….”
이빨을 가는 웅삼이었다.
“병사들을 시켜 직접 말을 마구간에 넣도록 시키게.”
“걱정 마시고 들어가시지요, 남작님.”
제법 큰 여관 앞에 도착한 고윈 남작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당부 하자 라인만이 고개를 살짝 꺾으며 말했다. 그런 그들의 뒤로 계웅삼과 나머지 오 인이 따라왔다.
“여관이 상당히 크군요.”
“음? 아, 제라드 경.”
웅삼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자 고윈 남작이 작게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환대했다. 물론 그를 바라보는 웅삼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일단 웅삼이 실력자임이 밝혀졌음에도 고윈 남작의 행동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물론 이렇게 환대를 하지만 절대로 행렬을 유지하며 오는 동안에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물론 병사들에게 잘해 주는 덕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원칙이 있는 인물이었다.
웅삼 같은 실력자라면 어떻게든 더 친해지기 위해 같이 여행을 하면서 말을 붙이는 것이 정상일 진데 철저히 실력에 맞는 위치에 웅삼을 배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고윈 남작은 웅삼과 손을 맞잡은 이후부터는 경계의 눈빛을 버리고 신뢰를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그 점에서 웅삼이 미안함을 가질 정도였다.
“일단 뜨거운 물을 받아 놓으라 했으니, 몸부터 풀고 만나도록 합시다.”
“그러지요.”
“그럼 올라가…… 아니? 동생 분 얼굴이 왜…….”
웅삼과 담소를 나누고 올라가려던 고윈 남작이 갑자기 의혹에 찬 얼굴로 질문을 했다. 그 곳에는 삼두표가 얼굴이 떡이 된 채 강유월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졸다가 말에서 떨어졌나 봅니다.”
웅삼의 태연한 말에 삼두표의 얼굴에 원망의 눈초리가 감돌았다.
졸다가 떨어진 것은 맞았다.
하지만 졸면서 가다가 떨어질 실력은 아니었다. 괜히 기마민족인가. 문제는 등자와 말고삐가 날카로운 물건에 의해 동시에 다 잘려진 것이 문제랄까?
웅삼은 두표에게로 다가와 어깨를 두들겨 주며 따듯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졌다,
“음, 많이 상했구나. 어서 올라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자려무나. 다친 상태에서 술은 무리다. 알았지?”
“수, 술은!”
“아아, 수술은 안 해도 되니, 술만 먹지 말라고.”
“…….”
고윈 남작은 웅삼이 동생을 사랑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두표는 술 얘기 꺼내면 확 수술해 버린다는 웅삼의 말뜻을 알아듣고 비 맞은 곰 마냥 절뚝이며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웅삼은 그런 두표의 뒷모습을 보며 한마디 더 꺼냈다.
“푹 쉬! 거! 라! 사랑하는 아! 우! 야! 식사는 방으로 따로 보내주마.”
“…….”
웅삼의 기괴한 미소에 나머지 일행들은 웅삼의 말을 더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떠 올렸다.
캬웅.
“……떠그랄.”
캬앙~!
“후우우, 쫌팽 장군 같으니.”
한숨을 쏟아내는 삼두표의 한없이 넓은 등판이 왠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였다.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냥이가 자신의 주인을 보고 처량하게 울었다.
지금 두표에게서 한숨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눈앞에서 김을 피워 올리는 식사였다. 목욕을 마친 두표에게 배달된 식사는 웅삼이 주방에 특별히 주문하였다는 환자용 영양식이었다.
영양식……. 좋은 말로 영양식이고 한 마디로 멀건 죽 한 대접이었다.
후루룩.
탁.
“…….”
한 입.
말이 한 대접이지 두표에겐 한 입이었다.
꾸르륵.
“…….”
그 한 입은 배를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것을 잘 말해 주는 듯 배속에서 격렬한 반응이 소리로 변하여 표출 되었다.
두표의 눈이 가늘어 졌다.
까드득.
쥐여진 주먹에서 뼈가 마찰되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한쪽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애병인 강철봉으로 손이가고 있었다.
“반항아 삼두표라고 불리던 나다.”
두표의 눈이 빛나며 봉을 감아쥐었다. 삼두표의 기도에 비장미마저 서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판단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냥이를 가슴에 품은 삼두표가 자신의 짐 보따리를 등에 걸쳤다.
덜컹.
“흘흘흘.”
열려진 창문 밖으로 그를 부르는 손짓이 보이는 듯 했다.
* * *
“…….”
“저…… 내일 아침에 출발 하니 그전에는 돌아올 겁니다.”
“…….”
아침식사를 위해 삼두표를 부르러 갔던 강유월이 본 것은 텅 비어있는 침상이었다. 전날 계웅삼은 두표에게 환자의 특권을 누리게 하기 위해 독방에 넣어 주었었다. 물론 두표 입장에서는 격리였다.
아무런 말없이 서 있는 웅삼에게 주변의 일행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웅삼의 귀로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놈 덩치가 왜 크나 했더니, 이젠 알겠군.”
나직한 웅삼의 목소리.
나머지 일행들은 그 속에 묻어나오는 분노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 덩치가 죄다 간이었던 거야. 암.”
“…….”
스르릉.
“뭐 돌아오면 확인해 봐야겠군.”
장도를 뽑아낸 웅삼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날을 혀로 핥았다. 그리고 일행들은 등 뒤의 땀이 순식간에 식어 버리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아 귀 간지러. 어이, 쥔장. 여기 어찌 됐어!”
“갑니다!”
삼두표의 커다란 음성에 음식점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커다랗게 목소리를 내며 음식을 들고 달려왔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서비스입니다.”
“으하핫! 역시 맘에 들어 쥔장. 응? 하나 빠졌네?”
“네?”
웃음을 터트리던 두표가 눈을 껌뻑이자 주인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분명히 양고기 볶음 삼인분에 자신이 오리구이 하나를 서비스로 가져오지 않았던가?
“술!”
“예에?”
“아, 사람아. 이런 훌륭한 음식에 술이 들어가야지. 그리고 어제 먹은 술도 해장할 겸.”
“…….”
어제 저녁에 쳐들어 와서는 장정 스무 명이 먹을 술을 혼자 다 처리한 인간이 아침부터 술을 찾자 주인은 할 말을 잊은 것이다. 잠시 후 술이 한 통 나오자 두표는 그제야 즐거운 표정으로 술을 퍼마셔대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 말게. 여기 신성기사 두 명이면 내 신변은 걱정 안 해도 되니 염려 말고 기다리게. 주신의 은총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면 한 순간도 쉬지 않는 것이 사제의 사명이라네.”
“아…… 예.”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신성제국의 사제 팔로 2세는 천천히 몸을 돌려 화려한 여관을 빠져 나왔다. 그 뒤를 귀족으로 보이는 자가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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