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10
182화 죽음 그 이상
강찬성 피디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투자를 안 받는다고?”
“예. 아직은 뮤직드라마 한 편이니까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강 피디가 송가은 작가의 말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끝을 흐렸다. 제작투자를 배제하고 진행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가 뮤직드라마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말이 흘러나간 뒤 하루 사이에 투자 문의가 빗발쳤다.
즉 돈 줄 테니 끼워달라.
이 말들이었다. 다들 성공의 냄새를 짙게 맡았다는 의미였다. 화인의 그늘이 아직도 남아 있는 지금 투자자들이 안달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고진천이 주연인 드라마 아닌가.
당연히 돈 있는 사람은 다 끼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투자를 안 받겠다고 하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작품을 찍을 때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
강 피디가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뮤직드라마라 하지만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야. 알잖아. 설마 독립영화 찍듯이 찍으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에요.”
“그럼 자금은? 송 작가가 댈 거야?”
가은 역시 돈이 없지는 않았다. 회당 사천만 원씩 받는 스타작가가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제작비를 모두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진천님이 댈 거예요.”
“뭐? 그 양반이 아무리 많이 벌었어도…….”
“지인분이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신다네요.”
가은의 말에 강 피디가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그래? 운이 좋은 양반이로구만!”
* * *
“돈은 숫자에 불과한 거야.”
“…….”
계웅삼의 말은 트렌든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침울해 있는 트렌든에게 웅삼이 그의 등을 두들겨 주며 말을 이었다.
“까짓 좋게 생각해서 목숨 값이라 생각하면 싼 거잖아. 그치?”
“…….”
순간 트렌든은 울컥했다.
‘그게 위로냐! 갓 뎀!’
하지만 이곳 옥상에서 만큼은 힘이 깡패다. 그동안 격투기를 하며 번 돈이 적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금액이 정말 어마어마했다. 이번만 해도 한 방에 한국 돈으로 백억이 빠져나갔다.
물론 투자라면 회수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은…….
“먹 튀…….”
“응?”
웅삼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트렌든이 어색하게 웃으며 수습했다.
“아니야, 웅삼.”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
“OK.”
나름 깔끔하게 위로했다고 생각했는지 팔을 휘휘 저으며 걸어가는 웅삼을 보며 트렌든은 다시 얼굴을 구겼다.
“뭔 십 분짜리 만드는데 백억이나…….”
그때 눈치를 보며 다가온 이승배가 혀를 차며 트렌든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괜찮으세요?”
승배의 말에 트렌든이 구겨진 얼굴을 들며 말했다.
“안 괜찮으면?”
“뭐 그렇죠, 하하하.”
답 없다.
승배는 그저 웃음 지으며 상황을 뭉뚱그렸다.
“전쟁 좋아하네.”
트렌든이 다시 울상을 지었다. 그때 고진천이 송가은 작가에게 전쟁에 임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한 뒤 트렌든에게 말했다.
군자금이 필요하다고. 그게 이 돈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 평상 위에서 뭔가가 절그럭 거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응?”
거무튀튀한 색의 갑주다.
언제 우울했냐는 듯 트렌든이 이체를 띠며 다가갔다. 그뿐 아니라 승배와 광호 역시 저절로 이끌려갔다.
평상 위에 늘어놓은 것은 바로 진천과 일행들의 갑주였다.
“스케일메일 같은데?”
“비슷한 종류이기는 하죠.”
트렌든의 중얼거림에 승배가 대답을 하고는 다시 감탄사를 흘렸다.
“히야. 이게 진짜구나.”
촬영용 소품 이외에 진짜 갑주를 보는 것은 승배도 처음이었다. 물론 박물관에 가면 복원품이라든지 유물을 모아놓은 것이 있지만 실전에 쓰이는 실물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거 좀 들어봐도 됩니까?”
승배가 조심스럽게 묻자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에게 무기는 뭐다 이런 식의 예상도 했었기에 조금 조심스러웠던 것에 비해 쿨한 대답이었다.
“와…….”
묵직했다. 단지 무게뿐만이 아니었다. 그 느낌이 달랐다.
생명을 보호하는 것의 무게감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그때 환두대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스르릉.
온몸이 쭈뼛하게 만드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진천의 손에서 그의 환두대도가 차가운 몸통을 드러내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물론 승배가 진검을 만져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쪽 일 하는 사람 치고 진검을 안 다뤄본 사람은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검들은 베어야 짚단이고 대나무였다.
지금 진천이 들고 있는 것은 사람을 베는 것이다.
한여름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옥상을 장악하는 것 같았다.
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이어 칼 뽑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에서 웅삼과 제라르가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고 손질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활을 주로 쓰는 우루마저도 환두대도를 뽑아들고 손질을 했다.
그리고 구석에서는 리셀이 까만 돌들을 쌓아놓고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끔 꺼내 뭔가를 하는 걸 봤지만 저게 뭔지 모르는 승배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왠지 득의양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뭡니까?”
트렌든이었다. 풀 죽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지금은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승배의 물음에 트렌든이 귀엣말을 했다.
“저게 뭔지 알아?”
“글쎄요. 차돌은 아닌데…….”
“마나석이란 건데.”
“그래요? 게임에서나 쓰는 말인데?”
승배가 왠지 익숙한 명칭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트렌든이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른 말로는 스테미너 스톤이라 하지.”
“네?”
“한국말로 정력석.”
“…….”
트렌든의 말에 승배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 승배에게 트렌든이 목에 걸고 있던 까만 돌을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남자에게 이게 그렇게 좋다대.”
언제 얻었는지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는 트렌든이었다. 그런 트렌든에게 승배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백억짜리 정력석이네요.”
“…….”
트렌든이 다시 우울 모드로 돌아갔다.
“갑옷이 모자라군.”
진천의 말에 광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소품은 대여할 것 아닙니까?”
“기런 허섭한 걸 어케 입네!”
한쪽에 있던 우루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광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뭔가 불안했다.
“여분이라면 좀 있습니다.”
그때 한쪽에 있던 리셀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진천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허허…….”
리셀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런 리셀에게 광호가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평소에도 그런 걸 가지고 계십니까?”
마법사가 갑옷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질문을 받은 리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
“아,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하아.”
오히려 질문을 던진 광호가 찔끔했다. 하지만 리셀은 그저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축 처진 모습의 리셀을 대신해서 제라르가 다가와 광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해하라고. 저 양반 고생이 많았거든. 아마 대륙에서 가장 바쁘면서도 부려먹히는 마법사일 거니까.”
“예?”
“한때는 마법사의 위명보다 다른 걸로 불렸다고. 보급의 신이라는 말로 말이지.”
“…….”
장거리 이동마법을 하게 된 이후로 미친 듯이 부려먹히던 리셀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광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봄날은 갔다.
쩔그럭 쩔걱.
공간이 열리며 묵빛 찰갑과 환두대도 등의 무장과 부무장들이 쏟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봐도 봐도 신기하다는 듯 승배와 트렌든이 감탄을 흘렸다.
“우와!”
“굿!”
그런 그들에게 진천이 한마디 했다.
“골라.”
“서, 선물입니까?”
진천의 말에 승배와 트렌든이 눈을 반짝거렸다. 하지만 반대로 광호는 뭔가 불안감을 느꼈다.
“찍어야지. 드라마.”
“…….”
진천의 한마디에 셋은 그대로 석상이 되었다. 특히 승배는 아까 느꼈던 무게감이 곱절로 다가오고 있었다.
덜컹!
문이 열리며 곽주호가 나타났다.
“이야! 이게 다 뭡니까?”
천연덕스럽게 나타난 주호를 보며 트렌든, 승배, 광호는 또 하나의 희생양이 도착했다는 것을 느꼈다.
왠지 조금 위안이 되었다.
* * *
서울 액션 스쿨의 육의찬 감독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이번 태왕기의 뮤직드라마에 그의 소속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화인 이후로 그들의 액션은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어딜 가나 그들을 불렀고, 그 덕에 지금 서울 액션 스쿨은 그 어떤 때보다도 바쁘고 활황이었다. 즉 한마디로 대박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그런 대작에 끼어들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날개를 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면 다시 고진천과 엮일 것을 생각한 액션배우들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하루하루가 죽음과 맞서 싸우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읽은 의찬이 그들에게 힘을 불어주며 말했다.
“야! 이것도 기회야. 화인에 출연했던 놈들 중 지금 금값 아닌 놈들 어딨냐!”
그 말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는지 고개들을 끄덕였다.
반면에 이후 들어온 새로운 액션배우들은 이 기회를 잡기 위해 눈을 반짝거렸다.
그들 역시 새로운 트렌드를 좇아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그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눈을 반짝이는 후배들을 보며 김유석은 안타깝다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다들 한 번쯤은 죽는다고 생각하고.”
“예!”
유석의 말에 후배 액션배우들은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유석과 함께 진천에게 조련을 당했던 이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겪어봐서 그래.”
“난 아직도 자다가 벌떡 벌떡 일어선다고.”
그때 문밖에서 차 소리가 울려왔다.
“왔나 보다!”
진천이 방문한다는 말을 들은 차라 의찬이 그를 맞이하러 뛰어나갔다. 그리고 유석과 다른 배우들 역시 군기가 바짝 선 병사마냥 뛰어나갔다.
드라마는 끝이 났어도 몸은 기억하는 것이다. 차는 두 대였다. 하나는 승합차고 다른 하나는 트럭이었다. 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커어억!”
쩔그럭.
쇳소리 그리고 상당히 고통스러운 음성과 함께 나타난 이는 바로 이승배였다.
“승배……냐?”
“더헉!”
쩔걱!
차 문을 열고 나온 승배는 갑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다. 옆구리에는 부무장과 환두대도를 차고 있었다. 심지어 허벅지에는 활도 달려 있었다.
“저거 어디서 한 거랍니까? 실감나는데요?”
승배의 갑주를 본 눈치 없는 후배 액션배우들의 질문 따위는 유석이나 다른 액션배우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도 진천의 갑주는 실제로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저건 그냥 의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까짓 한두 번 죽어보냐.”
유석이 단단히 마음을 먹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사형선고에 가까운 투박한 음성이 승합차 안에서 울려나왔다.
“기거 가지고 되간? 지옥을 봐야디.”
(18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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