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12
184화 주호의 후회
우루가 몽둥이를 손에 들고 뒷짐을 지며 말했다.
“뎀비라우.”
“예?”
순간 액션 배우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갑옷을 입어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덤비라는 말에 아직 적응을 못 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미 진천을 겪어본 이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더욱 긴장된 얼굴로 손에 들린 환두대도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걸로 말입니까?”
“기럼? 기거로 닭이라도 잡으라고 준 줄 아는 거이네?”
분명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오히려 바짝 정신이 들었다. 이 상황이 데자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신입들은 어이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아니, 지금 이걸로 무슨 사고가 터지면 어쩌려고…….”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안 오면 내가 가디.”
바람이 일었다.
뻐어억!
강렬한 타격음과 동시에 맨 앞에 있던 액션 배우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그리고 투구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즈음에서 머리를 강타당한 액션 배우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기저기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듯 우루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춤을 췄고, 그럴 때마다 배우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이 미친 새끼!”
결국에 악에 받친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라, 나도 몰라!”
여기저기서 스르릉 하는 쇳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환두대도를 뽑아 든 액션 배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양태진은 우루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훈련을…….”
“이건 저번보다 더하는데?”
“이러다가 전부 병원에 실려 가겠어.”
태진이 뒤를 돌아보자 일부 액션 배우들이 마치 전쟁터에서 방진을 짜듯 스크럼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일찌감치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으음.”
다시 앞을 보니 그들과 지금 달려든 이들의 차이점을 알 것 같았다. 지금 뒤에 방진을 짠 이들은 이전에 화인을 찍었던 액션 배우들이고 지금 앞으로 달려 나간 이들은 모두 신입들이었다.
그나마 자신은 이미 우루에게서 위험한 냄새를 감지했기에 저 대열에 끼지 않았던 것이다.
태진이 슬금슬금 뒤로 끼었다. 그러고는 익숙한 후배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저번보다 더합니다.”
그 말에 태진이 이를 악물며 다시 물었다.
“저번엔 어땠는데?”
태진의 질문에 진형을 이끌고 있던 승배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냥 다 조상님들 뵈는 정도였죠.”
“그래?”
“농담처럼 조상님들 보았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본 겁니다. 우린 그걸 임사체험이라고 했고요.”
태진도 소문은 들어봤다. 다만 지금은 그걸 물을 시간이 없었다.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꺾인 배우 하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닥치라우.”
하지만 그조차 시끄럽다는 듯 우루가 몽둥이를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이어서 또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울려왔다. 이번엔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한 채 입에 거품을 물고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미, 미친! 지금 이게 훈련이라고! 전부 병신 만들 기세잖아!”
순간 태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딱 봐도 정상인 이들이 없었다. 어디 하나 부러진 것은 애교다. 이쯤 되면 이건 훈련을 빙자한 양민학살이었다.
“씨팍!”
순간 열이 오른 태진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환두대도를 빠르게 그었다. 하지만 그의 일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우루가 몽둥이를 살짝 돌리며 쳐 내리자 환두대도가 방향만 바뀌어 바닥을 긁었다. 하지만 이어 태진은 그대로 어깨로 우루를 밀쳤다. 아니, 밀치려 했다.
터억!
“억!”
오히려 태진이 뒤로 물러섰다. 마치 바윗덩이에 몸을 날린 느낌이었다. 놀란 태진이 우루를 보았다.
우루가 발을 들어 올렸다.
뻐어억!
길게 울려 퍼지는 타격음에 태진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러고는 벽면에 부닥쳤다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쿨럭! 젠장!”
온몸에 울려오는 충격에 정신이 멍했다. 그때 육의찬 감독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태진이 괜찮냐?”
“괜찮습니다. 기왕 하는 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해야…… 웁!”
태진이 피를 토했다.
순간 의찬이 놀라 외쳤다.
“태진아! 태진아!”
“쿨럭. 혀, 형님…….”
앞섶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피를 토한 태진이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몽둥이가 휘둘러지고 또 한 명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팔이 희한하게 꺾인 것이 부러진 게 틀림없었다.
또 누군가는 살이 터져 피범벅이 되어 끈 끊어진 목각 인형마냥 흐느적거리며 쓰러졌다.
“하아…….”
길고 긴 한숨이 흘러내렸다. 정신은 가물거렸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지 싶었다.
몸이 능청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 귀찮았다.
의찬은 질린 얼굴로 체육관 실내에 널브러진 소속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부 갑주를 입고 있었던 탓에 마치 고대의 전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 이래 놓으면 어떻게 촬영을…….”
전부 반병신을 만들어놓았다. 딱 봐도 전부 4주에서 8주 이상의 중경상자다. 이러면 촬영이고 뭐고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끝까지 방진을 이루며 버티던 이들까지 쓰러지자 고요가 흘렀다. 승배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제 치료해야디.”
“예? 예! 감사합니다!”
승배가 감격에 찬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한 뒤 미리 옮겨둔 시체 더미…… 아니, 환자 더미에 쓰러진 이들을 옮겼다. 트렌든도, 광호도 한 손을 보탰다.
어벙벙한 얼굴로 서 있는 의찬의 어깨를 진천이 툭 쳐주었다.
“커피가 마시고 싶군.”
“예?”
“가지.”
“이, 이대로요?”
“…….”
의찬이 당황한 얼굴로 되묻자 진천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러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몽둥이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우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올라가시지요.”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다. 아마도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든지 의사들이 밖에 있든지 할 것이라는 생각 혹은 소망 한 자락을 가슴에 품고 진천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후우우우.”
그때 리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짓 오랜만에 하는구먼.”
묵갑귀마대의 훈련에 끌려갈 때마다 하던 짓을 여기 와서까지 할 줄은 몰랐다. 최고의 구급요원인 리셀의 마법이 펼쳐졌다. 의찬이 보지 못하는 이곳에서 말이다.
* * *
천성일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대로 된 무력 집단 하나 만들자고 영입한 이들이 전부 죽어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실종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전부 총을 맞아 죽은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테러 집단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물론 아니다. 맞는다면 지금 성일이 이렇게 온전히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간첩 아닌 게 다행인가.”
성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작정하고 덮은 사건이었다. 요즘처럼 국제적인 사건이 많이 벌어지는 시기가 아니라면 아마 전부 간첩의 탈을 썼을 게 뻔했다.
물론 남은 가족들의 반발은 별로 없었다. 가족이 거의 없거나 반발할 정도의 애정이 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성일 역시 그런 이들로 모았기 때문에 예상했던 결과였다.
문제는 지금 일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성일을 소환한 것은 바로 우중만 의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이는 우 의원이나 그의 보좌관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며 캐주얼한 양복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회색빛 머릿결을 가지런히 쓸어 넘긴 그의 얼굴에는 커다란 선글라스가 쓰여 있어 무슨 표정인지 알기 어려웠다.
“미스터 천?”
“에, 예스.”
옆에 통역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을 이었다.
“만나뵈어 반갑습니다. 미 정보부에서 나왔습니다.”
성일의 목구멍에서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내미는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젠장. 이젠 미 정보부라니…….’
요즘은 옛날에 놀던 작은 물이 그리웠다.
* * *
“좀 늦었습니다.”
곽주호가 호탕한 음성을 내뱉으며 서울액션스쿨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동시에 풍기는 비릿한 향.
“이, 이건 뭐야?”
주호가 콧잔등을 찡긋하며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촤아악!
피가 튀었다. 한 사내가 마치 만세를 하듯 팔을 번쩍 올리고 있었고 이내 핑그르르 돌며 털썩 엎어졌다.
“…….”
주호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서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에 피가 튀어 있는 모습에 마치 좀비들이 몰려나오는 호러 영화의 배경처럼 느껴졌다.
“오? 늦었네?”
그 가운데 서서 장도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그를 반기는 이가 있었다. 이 참상을 만들어낸 이, 계웅삼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올 곳이 아닌 듯한…….”
“이게 뉘기야!”
그때 묵직한 팔이 주호의 어깨에 둘러졌다. 마찬가지로 피가 갑주 곳곳에 덕지덕지 묻은 을지우루가 그를 환하게 웃으며 반기고 있었다.
“니보라우. 내래 특별히 챙겨주가서.”
“굳이 그러실 필요는…….”
“날래 가자우!”
“그, 그게…….”
평소 을지문덕 장군을 존경하였던 덕을 본 주호가 우루의 손에 이끌려 들어갔다. 평소 터프하기로 소문난 주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후, 깨어난 액션스쿨의 배우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팔다리를 살펴보았다.
“부, 분명 아까 팔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았는데?”
“모, 몸이 멀쩡한데?”
다들 놀란 나머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벌써 두 번째다. 처음에 모두 나가떨어졌던 그들은 리셀의 응급처치를 받고 멀쩡하게 부활했다. 부러진 팔다리는 다시 원상복구 되었고 터져 나갔던 내장기관은 온전히 자리를 찾았다.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우루가 첫 번째 시험이 끝났다고 했다.
첫 훈련의 명목은 체력 및 신체 내구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웅삼이 장도를 뽑으며 나왔다. 그가 내건 시험명은 반사 신경 테스트였다.
그 결과 이곳의 전원이 웅삼의 장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물론 리셀이 또다시 응급처치를 했기에 모두 제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은 남아 있어 다들 어리둥절한 것이었다.
이런 부분에도 정신 조작을 하면 어떨까 했지만, 우루와 웅삼이 몸소 움직여 체감을 하게 해준 귀중한 경험까지 잊을 수 있어 약간 억지로 우기기로 한 것이다.
“다 가짜라니까. 임사체험 해본 사람은 알 거야.”
승배가 설레발을 쳤다. 광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을 잡았다.
“후우. 난 이번에 머리가 잘려 나가는 것 같았어.”
둘이 바람을 잡자 얼떨떨하던 몇몇이 수긍을 했다. 그들은 모두 임사체험 유경험자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았다.
“여, 여기에 웬 피가…….”
“아, 왜 이렇게 빈혈이 있지.”
“헛! 갑옷이 잘려 있어! 분명 아까 몸통이 잘렸던 곳이야!”
그런 그들에게 우루가 친절히 말해주었다.
“이거이 갑주만 가른 거이야. 알간?”
허연 이를 드러내며 말하는 우루에게 잘린 갑옷을 보며 놀라던 액션 배우는 입을 다물었다.
굳이 ‘여기에 피도 있는데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애매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주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이게 훈련입니까?”
“이제 할 만하지.”
“…….”
고진천의 대답에 주호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리셀 덕에 실전 경험을 무수히 쌓을 수 있거든.”
“…….”
주호는 왠지 진천의 목소리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사실 이 훈련 방식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진천이었기 때문이다. 원조에서 오는 강렬함을 주호가 느낀 것이다.
그리고 오늘 온 것을 후회했다.
(18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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