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17
189화 침투
영상을 다 본 김창진 경위는 할 말을 잊었다.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서준모 경장과 최후배 경장은 잠자코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더 지난 뒤 그의 입에서 길고 긴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하아아아.”
“이제 정신이 좀 드냐.”
서 경장의 질문에 김 경위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게 정신이 들고 말고 할 일입니까.”
“아니지.”
“어떻게 이런 일이…….”
김 경위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웅얼거리자 서 경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이런 일을 벌여놓고서 한가하게 뮤직드라마니 뭐니를 찍는다고 떠들다니…….”
김 경위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자 서 경장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신경 쓸 거 같은 사람들 같으냐?”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는 멈춰 있는 동영상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안에 보인 그들의 모습,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총격도 있었다면서요.”
“그래. 탄피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사방에 총알 자국이 나 있었지. 정신없이 쏴댄 모양이드라.”
“그런 게 왜 안 알려졌지요?”
김 경위의 말에 서 경장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소음기는 뻘로 있냐?”
“그건 그렇지만…….”
말끝을 흐리는 김 경위에게 서 경장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클, 다시 가보니 그 흔적들도 싹 사라졌더라.”
그의 말에 김 경위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수리라도 했으면 흔적은 있을 것 아닙니까.”
“말했잖아. 싹 사라졌다. 수리를 한 흔적도 없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흔적이 없었다는 것처럼 돼 있더라.”
“그게 말이 됩니까?”
김 경위가 황당하다는 듯 말을 내뱉자 옆에 잠자코 듣던 최 경장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럼 이건요?”
“그건…… 끙.”
할 말이 없었다. 귀신 소동도 만들어내고 사람의 기억도 조작하고, 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정보부 요원들까지 바보로 만들어 돌려보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한 짓이라고 의심되는 모든 일이 의문투성이였다. 그쯤 되니까 미국에서 뭔가 냄새를 맡고 달려든 것이겠지만 말이다.
“뭐 일이 이렇다 보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범죄자들을 가만 놔두겠다는 겁니까?”
“그것도 모르겠다.”
“예?”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국회의원에 대한 테러는 맞기는 한데 이걸 파보면 뭐가 나올 거 같냐.”
“그건 무슨 말입니까?”
“얼마 되지도 않은 법인이 세무조사를 맞았다. 물론 그 전까지 번 것도 없는 법인이 말이야. 그것도 뜬금없이.”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가 입을 다물었다.
사건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피해자가 평소 무슨 원한 살 만한 일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상대가 국회의원이라도 대충은 알아야 수사를 할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미심쩍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는 할 수 없었던 게 상대가 국회의원이었다. 하지만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불건전한 일. 성 상납과 관련된 일일 것이라는 그림은 나왔다.
다만 확인을 할 수 없다 뿐이지.
퍼스트 엔터도 그와 관련된 일이 분명했다. 그렇게 따지면 법적으로는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맞을 짓을 한 거다. 테러라 했지만 결국 안면에 한방 맞은 것과 차가 부서진 정도다.
물론 두 번에 걸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걸 알기 때문에 당한 우 의원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 이후의 일도 어떻게 보면 연장선상이었다.
방어적 성향이 강했다. 물론 가우리파 관련 일은 조직 폭력 결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지만, 사실 그것 역시 실체는 없다.
그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소위 조직 폭력배라 지칭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조직 폭력배라 해도 법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피해자들 역시 피해를 입었다기보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머리를 숙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룸에서 실종된 이들 역시 나중에 미국 요원들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후의 일도 자기 방어에 가까운 일.
그들의 정신 조작이야 수사 방해로 인한 업무방해죄 정도다.
이런저런 자잘한 죄들이 있기는 한데 이걸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에는 왠지 맥 빠진다. 다만 이들에 대한 두려움은 생겨났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게다가 접근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황 아닌가.
“거 일단 정체나 알아보지요?”
“무슨 정체?”
“그냥 어떤 사람인지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는지 좀 알아봐야 할 것 아닙니까. 막말로 고진천 그 양반 외에는 우리가 아는 게 없잖습니까.”
“후우.”
최 경장의 말에 서 경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일단 시간 나는 대로 움직여 보자. 그리고 판단은 그 이후에 하자고.”
“그게 좋겠습니다.”
세 사람은 한숨만 남긴 채 걸음을 옮겼다.
* * *
자정이 지나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새벽.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적막감을 뚫고 차량 소리가 울려왔다.
차가 멈추고 검은 인영들이 차에서 쏟아져 나왔다.
“쯧, 헬기도 못 쓰고…….”
“여기저기 광고할 일 있나?”
“뭐 그건 그렇지만.”
몇몇 요원이 툴툴거렸다. 그때 마이클이 내리자 다들 잡담을 멈추었다.
“일단 여기서부터는 배로 이동을 한다. 타깃에 대해서는 사전에 브리핑을 한 내용과 변함없다. 질문?”
마이클의 말에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저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만만하게 생각하지는 말도록. 알다시피 이전에 그쪽 인원들 포획에 실패한 일이 있으니 말이야.”
마이클의 당부에 몇몇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일에 동원된 이들과 비교를 하지 말라는 자신감의 발로인 듯했다. 그런 요원들에게 마이클이 다시 말을 이었다.
“긴장해라. 우리가 목표로 하는 아이언맨 유닛 혹은 그에 비견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슈퍼 솔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총알은 먹히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긴장을 풀기 위해 던진 말에 모두가 소리 죽여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이곳에 모인 이들은 스페셜리스트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좋아. 너무 긴장하는 것도 좋지 않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마이클이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미 그들을 태울 고무보트가 놓여 있었다.
“이동.”
삼십여 명의 특수전 요원들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중에는 마이클이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하듯 보조를 맞추며 달리고 있었다.
* * *
드르렁 드렁.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왔다. 더 이상 반항하는 이들도 없었다. 어느새 규율이 자리를 잡았고 오늘부터는 집단 훈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달리고 뛰는 것은 여전했지만 이제 뭔가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불만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그때 트렌든이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뒤틀었다.
타타타타! 타타타!
‘먼저 가! 대장, 가라고!’
‘잭!’
총 소리. 비명 소리. 안타까운 목소리. 그리고 그 기억이 눈앞에서 붉은 얼룩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크허어!”
트렌든이 숨을 터트리며 눈을 부릅떴다.
비명도 피도 아련한 동료들의 모습도 더는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앉은 트렌든이 이마를 쓸었다.
축축한 식은땀이 손바닥에 배어 나왔다.
“하아.”
쓴웃음을 지으며 탄식을 흘렸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한동안 매일같이 꾸었던 악몽이었다.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그 악몽이 그를 찾아왔던 것이다.
트렌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고 작은 코골이 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쯧.”
혀를 찬 트렌든이 막사를 나섰다.
아직 어둠이 깔려 있는 게 새벽인 듯했다.
“후우.”
왠지 답답한 게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나왔지만 바람에 소금기가 섞여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상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막사 안보다는 나아 그렇게 조금 더 서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찝찝한데.”
왠지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상시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느낌이었지만, 위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넘기기도 그랬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이렇게 설명하지 못할 답답함과 찝찝함이 항상 있어왔다. 그리고 이전 팀원들을 모두 잃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은 비슷했다.
그때 그의 시선에 뭔가가 어슬렁거리는 게 잡혔다.
“응?”
어두운 탓에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꽁지머리를 보니 계웅삼 같았다. 트렌든이 걸음을 옮겼다.
“헤이.”
“일어났네?”
“찜찜해. 꼭 뭐라도 벌어질 것 같아서.”
“감각 좋은데?”
웅삼의 말에 트렌든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손님이 오나 봐.”
웅삼의 말에 트렌든의 얼굴 위로 당황이 서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웅삼은 여전히 태연했다.
“뭐? 확실한 거야?”
“아무래도.”
웅삼이 턱짓을 하자 바다 쪽 절벽 위에 서 있는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숫자는 넷. 확인하지 않아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진천, 제라르, 리셀, 을지우루.
트렌든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촤아아악!
열심히 노를 젓는 인영들의 얼굴은 시커먼 위장크림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눈앞에 섬 바위들이 들어왔다.
몇몇이 수신호에 따라 먼저 바다로 몸을 미끄러트렸다. 그러고는 바위 쪽으로 접근하더니 주변을 살폈다. 이후 그들만 볼 수 있는 불빛이 미세하게 반짝였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요원들이 빠르게 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자리를 잡은 이들이 좌우 경계를 하고 있을 때 뒤쪽에 도착한 이들이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빠르게 복장을 환복한 뒤 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안 거야?”
트렌든의 질문에 웅삼이 리셀을 슬쩍 바라보았다.
“매직…….”
트렌든이 탄성을 흘렸다. 이러니 이들이 이렇게 여유롭게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트렌든이 걱정했던 것이 바로 습격이었다.
아무리 이들이 뛰어나다 해도 은밀하게 침투해 오는 이들의 습격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트렌든이 침을 삼켰다.
그래도 저들은 분명 총화기로 무장했을 것이다.
이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총화기라는 현대의 병기에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저 태연하기만 했다.
“이건 영화와는 다르다고.”
트렌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이래? 나도 총 있어.”
제라르가 히죽 웃으며 총을 꺼냈다. 저번에 얻은 기념품이었다. 그러자 웅삼이 제라르가 들고 있는 총을 낚아채서 트렌든에게 던져 주었다.
“억! 내 건데!”
총을 받은 트렌든이 빠르게 탄창을 빼고 슬라이스를 당겨 점검했다. 차가운 감촉이 오랜만이지만 여전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불만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제라르에게 웅삼이 말을 이었다.
“저기 많이 들고 올 건데 뭐.”
“오! 그렇겠네?”
제라르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권총을 손에 든 트렌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믿을 만한 이는 진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들과 달리 굳은 얼굴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곳에 온 시간이 있기에 이들과 달리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흐으음.”
진천의 입에서 약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19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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