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18
190화 시작된 습격
긴 고민을 하던 진천의 입이 열렸다.
“어쩐다.”
“뭐가 말입네까?”
우루가 조심스럽게 묻자 진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물고기 밥이 제일 좋기는 한데.”
“길티요. 돌에 매달아서 던지면 딱 좋지 않갔습네까?”
“그런데 죽이면 더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고.”
“기런 거 따지면 전쟁 어케합네까.”
“…….”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트렌든의 얼굴이 구겨졌다.
결국 지금 진천의 고민은 죽일까 말까였다. 아마 이 사실을 침투해 오는 요원들이 알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광분할 것이다.
“포로는 잡아봐야 쓸모 없지 않나?”
진천이 이 말을 뱉으며 슬쩍 트렌든을 바라보았다.
순간 트렌든은 울컥했다. 이딴 인간들에게 그동안 매 맞아가며 번 돈을 쏟아부었다니…….
“허허허. 그래도 많은 것을 해주지 않았습니까.”
리셀이 한마디 하자 트렌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역시 해먹은 게 많은 인간일수록 내 가치를 안다는 건가.’
좋아서 촉촉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슬퍼서다.
자신의 가치가 결국 한국말로 삥 뜯기는 정도로 정해진다는 것이 말이다.
그래도 약간 당당해질 수 있었다.
“음. 그건 그렇군.”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트렌든은 잠시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 미소를 짓다가 그대로 굳어졌다. 갑자기 이 순간 뭔가 떠오른 것이다.
‘서, 설마 이런 게 스톡홀름 신드롬인 건가!’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인질극 때 인질이 그들을 풀어주려는 경찰보다 그들을 억압했던 범인들에게 동조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인질들이 그 상황에 있던 폭력은 잊어버리고 강자의 논리에 동화되는 현상인 것이다. 그것을 유래가 되었던 스톡홀름의 이름을 따 ‘스톡홀름 증후군’ 혹은 ‘스톡홀름 신드롬’이라 부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트렌든의 경우는 납치 감금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폭력까지 수시로 이루어졌다. 물론 자초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결과를 따지자면 말이다.
그런데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이들과 동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자의 논리도 맞다. 덤볐다가 뼈저리게 맞았다. 그런데 어느새 이들과 한편이 되어 걱정하고 심지어…….
‘내가 이 총을 왜 든 거지!’
트렌든이 스스로에게 벌어진 현상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우루가 미간을 찌푸리며 구시렁거렸다.
“저 아새끼래 왜 케 떠는 거이야? 저래서 써먹기나 하갔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을 건데 냅두죠, 뭐.”
웅삼이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들을 보며 트렌든이 눈물을 머금었다.
‘Oh, shit! 이 상황에서 화가 나기보단 슬퍼진다…….’
트렌든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검은 인영의 사내들이 마치 바람처럼 움직이며 숲으로 진입해 왔다. 그러면서도 거의 소음이 없다시피 했다. 그들의 행동은 신속하면서도 정확했으며 마치 밤거리를 거니는 유령과도 같았다.
번들거리는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멀리 막사가 보였다. 사전에 파악한 막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몇몇이 주변을 장악하고 일부는 막사로 소리 죽여 움직였다. 막사 주변에는 엄폐할 곳이 적었다.
[곤란한데.]근처까지는 어떻게 움직였지만, 더 접근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다. 물론 경계를 서는 이가 있을 경우에나 해당되지만 말이다. 몇몇이 경계의 유무를 확인했다. 그리고 짧은 신호음이 귀에 장착된 이어링을 통해 울려왔다.
신호의 의미는 이상 무.
몇몇이 눈을 마주치곤 수신호를 넣었다. 그리고 막사 입구를 떨치며 진입했다.
“…….”
주변을 지키는 이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소음 총소리라든지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울릴 법한데 말이다.
순간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안에 아무도 없다면 나와야 했다. 그런데 진입한 이들이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신호음에도 반응이 없었다.
‘설마 당한 건가?’
팀장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서렸다. 만일을 대비해 저격수들에게 신호를 날렸다. 그러자 다시 세 명이 막사 앞으로 달려갔다. 나머지 인원은 천막을 통째로 날려 버릴 작정으로 겨냥했다.
입구로 간 인원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막사 입구를 잡았다. 그러고는 힘껏 떨쳐 올렸다. 방아쇠에 힘을 가하려는 순간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막사 안에는 작은 촛불 하나가 켜 있어 그 안을 살피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사망한 대원이라도 있을 법한데 말이다.
천막을 들춘 대원 말고 막사 입구에 있던 나머지 두 명이 천막 안을 들여다보았다. 혹시 바닥에 무언가 함정이 있지 않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바닥은 멀쩡했다. 천장도 평범했다. 어디에도 진입한 대원의 흔적은 없었다.
이어링으로 막사 입구에서 살피던 이들의 음성이 울려왔다.
[아무것도 없습니다.]“확실해?”
[확실합니다.]다시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팀장은 손짓을 했다.
안을 더 살피라는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대원 둘이 막사 안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물론 한 명은 여전히 막사 입구를 들추고 있었다.
“억!”
침묵해야 할 이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하지만 아무도 실수를 한 대원을 나무라지 않았다. 모두 패닉에 빠졌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팀장이 멍한 얼굴로 막사 안을 바라보았다.
막사 안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방금 들어선 이들까지 사라지고 없었다.
그냥 사라졌다.
걸어 들어가자마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모두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들었다.
억!
그때였다.
저 멀리서 짧은 비명성이 울려왔다.
비명은 연달아 울려왔다. 순간 팀장은 이를 악물며 손바닥을 휘저었다. 동시에 대원들이 산개를 하기 시작했다. 비명을 뱉은 이들은 이들의 후방을 맡아줄 저격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비명이 울려온 위치가 그랬다.
대원들과 함께 은폐를 하며 팀장은 이를 악물며 주변을 살폈다.
‘젠장. 함정인 건가?’
그때 이어링으로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건가!]섬에 도착한 포인트를 지키고 있던 마이클의 음성이었다. 그도 방금 그 비명을 들었는지 그의 음성에는 질책이 담겨 있었다.
“함정 같습니다.”
[막사는!]“그게 아무도 없었는데, 진입했던 요원들이…….”
팀장이 보고를 주저하자 마이클의 날 선 음성이 들려왔다.
[뭐야! 빨리 보고해!]팀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내뱉었다.
“후우.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뭐?]돌아온 반문에 팀장이 씁쓸한 음성을 담아 뱉었다.
“사라졌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말입니다.”
[…….]“……”
팀장의 보고에 마이클은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잠시 할 말을 잊었던 마이클이 다시 입을 움직였다.
“장난치나?”
[이 상황에 장난치겠습니까.]돌아온 음성은 허탈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마이클의 등을 툭툭 쳤다.
“뭐야.”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그의 손에는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그 태블릿에는 조금 전 타격조로부터 실시간 전송되었던 영상 중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한 명이 막사를 들추고 있었다.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두 명이 들어갔다. 그리고 사라졌다.
눈앞에서.
“……젠장.”
마이클의 얼굴이 구겨졌다.
“제길.”
저격수가 매복했던 지역으로 왔던 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격수가 자리를 잡았던 곳에는 핏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대원은 보고를 했다.
“당한 흔적만 있습니다.”
[……알았다.]마이클에게 보고를 한 대원은 다시 피가 묻어 있는 흔적을 보곤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동시에 방아쇠에 힘을 주었다.
서걱!
뭔가가 잘리는 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
비명이 터져 나오려 벌어지는 입이 단단히 틀어 막혔다.
“읍!”
총을 들고 있던 양팔이 잘려 뒹굴고 있었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 그의 입을 잡고 있는 이의 다른 손에는 완만하게 휘어진 장도가 들려 있었다.
계웅삼이었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는 후방에 있던 동료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쉿. 조용해야지.”
“으읍!”
그렇게 타이른 웅삼이 장도 손잡이로 그의 뒷목을 내려쳤다.
트렌든은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격수들이 몸에 화살을 박은 채 늘어져 있었다. 몸에 기복이 있는 것이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리셀이 손을 쓰며 치료를 했다. 그러고는 트렌든에게 넘겼다.
트렌든이 정말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합니까?”
“허허허…….”
웃는 리셀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무언의 질문이 담겨 있었다.
“후우우.”
트렌든이 손에 들린 권총을 내려다보았다.
이럴 거면 이걸 왜 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내저은 트렌든이 정말 싫다는 얼굴로 쓰러져 있는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무장과 옷이었다.
그때 그들의 이어링으로 음성이 울려나왔다. 그 음성을 듣고는 불쌍하다는 듯 고개를 젓던 트렌든의 얼굴이 굳어졌다.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니, 잊을 수 없는 음성이 맞았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음성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트렌든이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마이클…….”
“젠장!”
마이클이 이어링을 집어 던졌다. 저격수를 확인하러 움직였던 이들의 연락마저 끊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조용히 처리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
“알아!”
마이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적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 되어버린 상황이었기에 침묵의 원칙도 없었다.
“후욱!”
숨을 몰아쉰 마이클이 대원들에게 알렸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마라. 사살도 무방하다. 이상.”
마이클이 이를 갈았다.
* * *
“잭?”
“더글라스!”
막사 안으로 들어갔던 이들은 주변 풍경이 바뀐 것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조금 전 막사 안으로 진입했던 동료들이 눈앞에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온 거지?”
“막사 안으로…….”
먼저 막사 안으로 들어갔던 이들과 뒤에 들어왔던 이들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하지만 네 명의 대원들은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대장? 대장!”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로지 그곳에 있는 네 명만 무전이 통할 뿐이었다.
“여긴 어디지?”
“젠장. 몰라. 그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이야.”
그들은 불길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 같기는 한데 마치 전염병이라도 돈 것처럼 나무들이 헐벗어 있었다. 그나마도 얼마 안 남은 모습이 음산하기까지 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짜증을 내는 동료에게 한 대원이 불안한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나머지 세 명의 눈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 유령 소동 기억해?”
“…….”
퍼스트 엔터에 진입했던 이들이 겪은 일.
웃어넘겼던 그 일을 지금 들으니 왠지 등줄기가 오싹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순간 그들이 동시에 총신을 사방으로 돌렸다. 온몸을 조여오는 살기에 반응한 것이다.
“개 같은…….”
총을 쥔 대원이 허탈한 음성을 흘렸다.
번들거리는 살기에 찬 눈동자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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