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21
193화 마무리
숨죽이고 걸음을 옮기던 대원들이 순간 멈칫했다.
뭔가를 목격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스미스가 히죽 웃었다. 성치 않은 손으로 작전에 참가한 보람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손에 구멍을 뚫어놓은 그 여자였다.
그들이 총구를 겨냥하며 나서자 그제야 이들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이실라 론 카말 공녀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정규전 위주로 싸워왔던 탓에 주변을 놓쳤던 것이다.
“이거 오랜만이네.”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실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나 아냐?”
“쯧, 그새 까먹은 거야? 내 손에 구멍을 내놓고도?”
스미스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이실라 공녀가 인상을 팍 쓰며 말을 받았다.
“쯧, 손이 아니라 거길 뚫어놨어야 싸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을…….”
실수했다는 듯 말을 내뱉는 이실라 공녀가 바라보는 곳은 스미스의 허리춤 아래였다. 스미스는 순간 등줄기가 싸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반대로 열불이 솟구쳐 올랐다.
“농담이 나와?”
“농담 같니?”
“……큭.”
총구 세 개에 노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그녀에게 스미스가 이를 갈았다. 스미스가 번들거리는 눈알로 그녀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음산한 목소리를 흘렸다.
“저번에 보니 몸매도 좋던데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벗겨서 끌고 다녀주지.”
“너 보라고 벗은 거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이실라 공녀의 반문에 스미스 대신 같이 있던 대원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딱 보니 미친년 같은데. 까짓 하나 실종 처리하고 재미 좀 보죠? 그때도 저렇게 나불거리는지 봅시다.”
“에이씨. 또 미친년이래.”
언제나 듣던 별명이었지만, 이곳까지 와서 불리니 좋을 리가 없는 이실라 공녀가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총구가 움직였다. 실없는 소리를 해대었지만 그들의 긴장감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때 이실라가 갑자기 눈을 깜빡거리더니 혀를 꼬았다.
“무셔워또!”
“응?”
순간 그녀가 희한하게 혀를 굴리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 발음처럼 들렸던 것이다.
“울 애기 조금만 기다려.”
순간 스미스와 나머지 두 대원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 섬광이 번뜩였다.
“어…….”
눈앞에 믿겨지지 않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들이 들고 있던 총이 모조리 잘려 나간 것이었다.
“나도 아직 못 봤는데, 넌 봤다 이거지?”
스미스는 뭔가 오한이 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계웅삼이었다.
“뭘 어째?”
“Shit!”
순간 스미스는 권총을 뽑아 들었고, 다른 대원은 각자 대검과 권총을 뽑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동작이 끝나기도 전에 웅삼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조금 전 상황이 반복되었다.
“어억!”
대검이 잘려 나가고 권총이 잘려 나갔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들을 향해 웅삼의 장도가 빛을 발했다.
웅삼의 분노를 담은 칼날의 폭풍이 그들을 덮쳤다.
“젠장. 또!”
바닷가의 바위를 엄폐 삼아 마련한 베이스캠프에서는 분통 터지는 목소리만 터져 나왔다. 또다시 연락이 끊어졌다. 절반 이상이 연락이 되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연결 끊어졌습니다.”
상황을 체크하던 대원의 보고에 마이클이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작전이었기에 뼈아팠다. 위에서 자중하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강행했던 작전이기에 더욱 실패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다들 안색이 어두웠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라도 알아야 오더를 내릴 것인데 교전을 시작한다는 말만 나오면 이후로는 묵묵부답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침묵이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뛰었던 작전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뭐라도 알아야 강행을 하든 철수를 하든 결정을 내릴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모두 한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작전은 실패 같습니다.”
기어이 그 단어가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평소라면 피해를 입더라도 관철시키는 마이클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명령을…….”
막말로 부상자가 있는지 파악이라도 할 수 있어야 구출 후 철수를 택하든 할 것 아닌가.
“일단 베이스로 귀환시켜.”
“그럼 부상자는…….”
“동선 체크해서 되돌아오는 팀이 확인토록 한다. 단 무리는 하지 않도록.”
“Sir.”
마이클의 명령에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
누군가의 입에서 멍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뭔가가 잡혔기 때문이다.
“뭐야?”
동료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여유로운 발걸음이었다. 마치 산책을 하듯 걸어오는 모습에 이걸 쏴야 하나 포로로 잡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일었다.
금발과 꽁지머리.
제라르와 웅삼이었다.
[모르는 건가?] [이쪽으로 똑바로 오고 있는데?]하도 어이없는지 대원들이 무전을 이용해 말을 주고받았다. 그때 또다시 음성이 울려왔다.
[두 명입니다. 어떻게 할까요?]“음.”
이어진 보고에 마이클의 머릿속으로 짧은 고민이 이어졌다. 지금 상황에서는 포로로 잡는 게 맞았다. 빈손으로 가는가 싶었는데 이렇게 나타나 주는 게 어쩌면 고맙기까지 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쪽을 파악하고 걸어오는 모습이 너무 여유롭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 짧은 고민이 스치는 시간.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의 시간은 모두 소모되었다.
[다, 달려옵니다! 빠릅니다!]순간 무전이 시끄러워졌다. 고민을 하던 마이클 역시 그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제압해! 죽여도 무방하다!”
명령과 동시에 답답한 소음이 파도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투투툭! 투투툭! 투투투투!
베이스에 있던 대원들의 소총이 연신 금속 탄피를 내뱉었다. 이어 자리를 잡은 저격수가 겨냥을 하려 했지만 이내 욕설을 뱉으며 조준경에서 눈을 떼었다.
“젠장. 너무 빨라! 잡을 수가 없어!”
“어떻게 모래밭에서…….”
“수류탄이라도 던져!”
저격병은 물론이고 소총을 쏘아대던 특수전 대원들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잔상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때 달려오던 두 명 중 하나의 검에서 노란 빛이 일어났다. 제라르였다. 그의 모습에 대원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피해!”
노란 빛을 띤 검이 휘둘러지자 마치 광선총처럼 빛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그것의 정체는 모르지만 위험하다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콰직!
그 노란 빛이 대원들이 던진 수류탄을 휩쓸자 수류탄이 채 터지지도 못하고 증발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한 대원이 얼어붙은 채 욕설을 내뱉었다.
“갓뎀! 아이언맨이라며! 저건 제다이잖아!”
“닥치고 쏴! 소란 말이야!”
바위 뒤에 있던 대원 둘이 양옆으로 빠져나가며 계속 소총을 연사했다. 한 방향보다는 좌우로 흩어지며 사선이 교차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짧은 비명과 함께 고꾸라졌다.
“저격이다!”
“화, 화살이야! 화살이라고!”
비명을 내지르며 고꾸라졌던 대원이 비명처럼 같은 말을 연달아 외쳤다. 그가 총을 들었던 손에는 화살 한 대가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제라르 옆에서 달리던 웅삼이 잠시 몸을 숙이는가 싶더니 손을 뿌렸다. 그러자 마치 산탄총처럼 뭔가가 날아와 그들을 두들겼다.
빠다다닥!
그들을 두들긴 것은 모래였지만, 그 기세가 워낙 흉흉해 모두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엄폐했던 것이다.
“던져 버려!”
바위 뒤에 몸을 숨긴 대원들이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그때 뭔가가 튀는 소리가 울려왔다.
“웃!”
한 대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에 돌가루가 튀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그그극!
귓가를 자극하는 마찰음에 수류탄을 꺼내 들었던 대원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가 등을 기대고 있던 바위였다.
“맙소사…….”
그의 눈앞에서 마치 피사의 탑처럼 비스듬히 서 있던 바위의 상부가 천천히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구궁!
바위의 상부가 미끄러져 내리며 묵직한 소음을 만들어내었다.
멍하니 한 손에 수류탄을 들고 있던 대원의 눈앞에 꽁지머리의 사내, 웅삼이 한쪽 눈썹을 치켜든 채 반듯하게 잘린 바위 위에서 장도를 겨누고 있었다.
“그거 놓고 죽도록 맞을래, 아니면 쥐고 있다가 죽도록 맞을래?
웅삼의 질문에 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안전핀을 뽑지 못한 수류탄을 그대로 놓았다. 어차피 같은 결과를 가지고 있는 질문임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트렌든이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적을 제압하는 시간보다 포로를 옮기는 시간이 더 걸릴 지경이었다. 그의 뒤로는 뒤늦게 습격 사실을 알아챈 광호와 이승배가 따르고 있었다.
물론 트렌든이 깨운 거다. 손이 모자랐기 때문에 말이다.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뭘 알겠냐.”
승배가 질린 얼굴로 트렌든의 뒤를 따르고 있었고, 광호는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때 수풀 너머에서 남자의 신음 소리 비슷한 게 울려왔다.
“어헉! 헉!”
“…….”
순간 트렌든과 승배, 광호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실라 공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쉿. 가만있어.”
“어흑!”
왠지 야릇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소리에 셋은 작게 헛기침을 하며 수풀을 들췄다.
“크흠.”
“어어? 움직이면 잘린다니까? 반 토막 가지고 살아갈래?”
수풀 너머의 광경을 본 셋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실라 공녀가 알몸으로 나무에 묶여 있는 남자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롱소드.
나직하게 울리는 절삭음.
사각 사각.
잠시 후 그녀가 만족한 음성을 내뱉으며 일어섰다.
“깔끔하네.”
그녀의 앞에는 세 명의 남자가 반들거리는 몸을 부끄럽게 내비치며 울먹이고 있었다.
“뭐 한 거야?”
“날도 더우니까 좀 깎아줬지.”
이실라 공녀가 그렇게 대답하며 롱소드를 훅 불었다. 그러자 잔털 같은 게 흩날렸다. 자연스럽게 트렌든 일행의 시선이 나무에 묶여 있는 남자들을 향했다.
정말 말끔했다.
머리카락, 눈썹, 팔다리에 난 털도 싹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왜 앉아 있었는지 그 사내가 왜 울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다 밀었네.”
“그러게요.”
“저런 칼로 저렇게까지 깎을 수 있나?”
이 기괴한 장면을 목격한 그들은 이실라 공녀의 엽기 행각에 살짝 질린 얼굴을 했다. 그때 이실라 공녀가 그들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거.”
“응? 예?”
승배가 멍하니 있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이실라 공녀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니가 한 거야.”
“예?”
갑자기 이게 뭔 일인가 싶어 그녀를 보자, 이실라 공녀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승배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우리 자기에게 쓸데없는 말 하면 똑같이 밀어줄 거야. 아차 하단 잘리는 수가 있어.”
“예!”
소름끼치는 말을 들은 승배는 바짝 언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때 트렌든의 귓가로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왔다.
[이보게.]“응? 삼촌?”
리셀의 메시지 마법이었다. 신기한 얼굴을 한 트렌든에게 리셀이 다시 몇 마디 건넸다.
[마이클인지 하는 친구 그리 가네.]“…….”
리셀의 메시지를 들은 트렌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땡큐, 삼촌.”
(19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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