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26
198화 좌충우돌이 만들어낸 구멍들
수진을 배웅해 주고 남은 서 경장과 일행은 뭔가 부족한 느낌에 입맛을 다셨다.
“이건 뭐 변죽만 울린 느낌이네요.”
최 경장이 투덜거리자 서 경장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렇게 해서 뭐가 툭툭 튀어나오면 세상에 안 잡힐 놈이 어딨겠냐. 게다가 이상한 것도 막 하는 이들인데.”
“그건 그렇지만.”
최 경장이 입맛을 다셨다. 그때 옆에 있던 김 경위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 야사에 나오는 이의 이름과 동명이인이라는 게 전분가 보네.”
“그걸 어따 씁니까.”
작가인 수진의 입장에서야 재미있는 소재고 신기할 수 있는 거지만 이들이 보기에는 그다지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야사 같은 걸로도 뭘 만들 거리가 있나 봅니다.”
“그거 몰라? 대장금도 사실 실록에 한 줄 달랑 있는 걸 살 붙여서 만든 거잖아.”
“그렇긴 하죠.”
그때 서 경장이 잠시 멈칫했다.
“형님, 안 갑니까?”
김 경위와 최 경장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멈춰 있는 서 경장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것이다.
그때 서 경장이 피실피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실성한 사람마냥 웃음을 흘리는 모습에 최 경장이 답답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뭡니까, 실성한 양반처럼?”
“아니, 뭔가 생각이 났는데 그게 좀 웃겨서.”
“쯧. 지금 건진 거 하나 없는데 웃음이 나옵니까?”
“아까 말이야.”
최 경장이 질책과 같은 말을 뱉었지만 서 경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뭐 말입니까?”
김 경위가 뭔가 싶어 말을 받자 서 경장이 다시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아까 그 야사 이야기 듣고 지금 나오는데 마침 그게 떠오르더라고.”
“뭐가 말입니까?”
“그 왜 이전에 있잖아. 국궁 장인 소개받아서 갔을 때 말이야.”
“그게 왜요?”
서 경장의 말에 최 경장이 그게 왜 웃을 만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때 그랬잖아, 그 형태가 조선의 합성궁보다는 고구려 시기 유물과 비슷하다고.”
“뭐 비슷한 이야기를 하긴 했죠.”
“게다가 그 갑주들.”
“무슨 갑주요?”
“그 사진에 나온 갑주 형태도 고구려 시기 갑주라잖아.”
“에이, 그건 오버죠. 딱 봐도 견적 나오는구만요. 지금 태왕기 만들기 위한 거잖습니까.”
최 경장의 말에 서 경장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래서 웃은 거다. 하다하다 이젠 별생각이 든다.”
“왜요? 그 고구려 말기의 야사 주인공 이름이 그 양반이랑 같으니 왠지 동일 인물인 거 같습니까?”
최 경장의 말에 서 경장도 김 경위도 피식하니 웃음을 흘렸다. 이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기야 지금 벌어지는 일이 어디 일반적이어야 말이죠.”
최 경장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고개를 흔들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걸 계속 파봐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 * *
희대의 스캔들로 시작된 고진천의 연애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테러 이야기와 그와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 민, 형사 이야기로 그득했다.
물론 테러를 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자작극이니 하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왜냐면 따로 고소, 고발을 한 상황에서 그를 진천이 테러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거이 갑주를 손봐야디 않겠습네까?”
“그건 그렇지.”
우루의 말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직 리셀이 가지고 있는 보급품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새것을 꺼내어 쓸 수는 없었다. 크기도 약간씩 달랐고 말이다.
“기런데 이런 걸 손볼 이가 있나 모르겠습네다.”
“비슷한 걸 만드는 이들이 있지 않나?”
진천이 고개를 돌리니 승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뭐 장인 비슷한 이들이 있기는 한데. 보통 이런 건 의상 팀에서 하게 마련이라……. 강찬성 피디님께 문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극 전문이시니까 잘 아실 거 같은데요.”
승배야 주는 대로 입고 휘둘렀기에 자세한 것은 몰랐다.
또 이런 고가의 의상은 대여해서 입거나 주문 제작해서 쓰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유사 소재를 활용하여 무게를 줄인 것이었지 이렇게 진짜배기가 아니었다.
“그럼 연락해 보도록.”
“제가요?”
승배가 멍하니 바라보자 진천을 비롯한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해 쏟아졌다.
마치 ‘그럼 내가 하리?’라는 질문이 담긴 시선이었다. 입맛을 다신 승배가 조용히 대답했다.
“예…….”
* * *
“이거…….”
눈앞에 쌓인 갑주를 본 노중현은 혀를 찼다.
“이건데요.”
“이거 전부 진짜네?”
“그러니까 말이에요. 여태 의상 팀에 있으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양반들은 처음이라니까요.”
툴툴거리는 의뢰인을 앞에 두고 갑주들을 살피던 중현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손길이 분주해졌다. 그것을 본 의상 팀 직원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왜요? 문제 있어요?”
“으음.”
신음을 흘리는 모습에 불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중현은 굳어진 채로 갑주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손길이 멈추었다.
“이거…….”
“에이, 가능하면 손봐주세요. 유물 복원 같은 것도 해보셨으니 이쪽에서는 최고시잖아요.”
혹시나 거절할까 봐 의상 팀 직원이 너스레를 떨며 들러붙었다. 하지만 중현이 그를 부른 것은 다른 이유였다.
“이거 누가 만들었냐.”
“왜요? 좀 이상해요? 에이, 드라마에 나오는 의상이 조금씩은 고증과 다르잖아요. 그 사람들이야 뽀대가 나야 한다는 이유로…….”
“그게 아니야.”
“예?”
“이거 제대로 된 복원품이다. 아니, 녹만 안 슬었지 이건…….”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의상 팀 직원에게 잠시 흐렸던 뒷말을 이었다.
“……유물이라고 해도 믿겠네.”
“그 정도예요?”
의상 팀 직원의 말에 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건 말 그대로 드라마용이라기보다는 실전용이야. 그리고 일부는 실제로 쓰던 흔적이 있고.”
그때 그의 손길이 멈추었다. 손상된 부분, 미세한 흔적이지만 병기에 의해 파손된 부분이 있었다.
“그래요?”
“그래. 이 흔적도 흔적이지만 대체 누가 이걸 만들었지?”
혀를 내둘렀다.
이걸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럼 맡아주시는 겁니까?”
“맡긴 하는데 비용이 꽤 들 거야.”
고개를 끄덕이고 난 뒤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와 문의를 했던 형사들이 언뜻 기억 속에 스쳐 지나갔다.
* * *
고진천이 시선을 돌려 액션스쿨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군.”
눈동자가 흉흉한 것이 적당히 달궈진 느낌이었다. 섬에 가서 작정하고 밀어붙인 덕이었다.
“이제 곧 촬영에 들어간다.”
“예.”
모두 입을 맞춰 대답했다. 그들을 보며 진천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촬영이라 생각하지 마라.”
“예.”
“긴장을 풀지 마라.”
“예.”
다시 대답이 들려왔다. 그들을 보며 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모자람은 많았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갑주가 수리되는 대로 다시 촬영에 들어갈 것이니 그리 알도록.”
“알겠습니다.”
“해산.”
진천의 말에 액션스쿨 배우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흩어졌다.
액션스쿨 배우들이 사라지고 난 뒤 진천과 일행이 모여들었다.
“갑주들은?”
진천의 질문에 이승배가 대답했다.
“그건 강 피디님 측에서 맡겨서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도 손상된 의상에 한해서 계속적으로 수리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의복은?”
“일반 의복은 대여를 통해 진행하도록 할 예정이랍니다.”
이전 고구려 관련 드라마가 없었던 것도 아니기에 일반 갑주들을 제외하고는 그쪽을 통해 해결을 보기로 한 것이었다. 승배를 통해 몇 가지를 확인한 진천이 다시 일행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 잘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다른 문제 있나.”
진천의 질문에 리셀이 나서서 대답했다.
“별문제 없습니다. 감시의 눈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 뮤직드라마를 하기로 한 이유가 그들을 노리는 이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만큼 이 부분이 중요했다.
섬으로 간 이유도 그들을 유인해서 한 번 타격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쯤 되면 저쪽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시간 정도면 이들은 이미 되돌아간 뒤일 것이다.
트렌든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마 미칠 지경일걸? 물론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지만 함부로 손을 쓰기는 힘들 거야.”
“음.”
즉흥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것투성이였지만, 묘하게도 상황이 항상 맞아떨어졌다. 어차피 긴 시간을 벌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아마 미칠 지경일 것이다.
사건의 초점이 다 다르니 말이다.
* * *
“왜 연락이 없을까.”
천성일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이쯤이면 연락이 왔어야 했다.
그가 기다리는 전화는 바로 마이클의 연락이었다.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그 일을 해내야 우중만 의원에게 낯이 서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그가 한 일이라고는 죄 깨진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아이언맨이 나타난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있었다. 바로 고진천이었다. 문제는 그 아이언맨이 잠잠해진 것이다.
“이거 괜히 돈 쓴 건가.”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쓴 돈이 약간 아쉬워지는 성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지. 몇 번이나 나타난 놈이야. 보험은 들어놓는 게 좋지.”
고개를 끄덕인 성일의 휴대전화기로 누군가가 연락을 해왔다.
[형님.]“어 그래. 알아봤냐?”
[이거 재미있는 내용 하나가 잡혔습니다.]“뭔데?”
[그 고진천이란 양반 말입니다.]“그래. 뭔데? 와이프가 어디 있는지 찾은 거야?”
[그거 신분증 만든 겁니다.]순간 성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뭔가 약점이라도 찾은 표정이었다.
“그래? 확실한 거야?”
[우연히 걸려든 건데. 확실합니다. 진구파 식구였던 애들 중 하나가 이 사실을 알고 있더라고요.]“하핫!”
성일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구파 관련해서 진천에 대한 뭔가를 털어볼 수 있을까 해서 일을 시켰더니 결국 이런 건을 가지고 온 것이다.
“진구는?”
[그쪽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성원도 마찬가지고요.]“그래?”
진구를 회유해서 뭐라도 얻으려 했지만 그 부분은 여의치 않았다. 아쉽기도 했지만 지금 가진 것만 해도 꽤 큰 성과였다.
“이거 괜히 돈을 줬잖아.”
성일이 빙긋 웃었다.
지금 진천은 톱스타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때에 그의 신분에 관한 일이라면 큰 약점이 될 수 있었다.
성일의 미소가 점점 짙어져 갔다.
(199화에서 계속)
#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