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28
200화 첫 촬영
첫 촬영 장소에 모인 이들이 혀를 내둘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인 벌판.
일상에서 말을 타는 일이 없는 이들이었지만 이런 곳이라면 한 번쯤은 마음껏 달려보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쪽에는 촬영 장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액션 배우들은 그 규모를 보고 또다시 놀랐다.
“무슨 카메라가…….”
그들과 달리 화인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익숙한 듯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역시 이번에도 한 번에 가겠네?”
“아마도. 그렇겠지?”
그들의 말소리를 들은 액션 배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질문을 던져왔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 번에 가다뇨?”
그들의 질문에 승배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섬에서 한 걸 생각해 보십쇼.”
그 한마디에 몇몇이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욕지기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액션 배우 출신 중에는 나름 험하게 군 생활을 했던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양태진은 특수전 부대원으로 실전까지 치러본 경험자였다. 물론 오래전 이야기지만. 그런 경험을 가진 그도 치를 떨 정도의 경험이었다.
“화인 때도 사실 비슷했습니다. 스쳐도 정신 줄 놓고 쓰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무슨 컷을 자르고 재촬영합니까. 게다가 액션은요? 그때그때 달라지는 게 저 양반들 액션입니다.”
승배의 말에 액션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마따나 종잡을 수 없는 이들이었다. 거기까지 말을 한 승배가 주변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찍은 거 또 찍자고 하면 가만있겠습니까? 저 성격에?”
일순 액션 배우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주연 배우를 상징하는 의자에 탁하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만사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가 있었다.
고진천.
동시에 모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강찬성 피디가 어려워하는 배우가 있다는 걸 요 며칠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알았다. 그런데 더 웃긴 건 강 피디가 별로 자존심 상해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화끈한 영상이 나오겠지? 혹시나 해서 응급처치 요원부터 병원까지 수배해 놨으니 걱정 말라고.”
강 피디의 말을 들은 배우들이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강 피디의 눈알이 번들거리는 것이 뭔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기까지 했다.
최근 화인 이후 뭔가 허무감에 빠진 이처럼 살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저걸 보니 알 것 같았다.
액션 중독이었다.
이건 약도 없다. 스스로 죽을 걸 알고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조금 더 조금 더 하면서 몰아친다. 심지어 저 양반은 액션을 담당하는 무술 감독도 아닌데 말이다.
“두 번은 없다.”
“알겠네! 내 철저히 준비하겠네.”
둘의 대화에 더욱 오싹함이 드는 액션 배우들이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준비를 하던 중 한쪽에 소란이 일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기럼 일케 발가숭이로 전장에 내보낸다는 거이네!”
“그게 아니라 말이 감당할 수 있는 걸 해야죠!”
한쪽에서 을지우루와 촬영에 쓰일 말을 끌고 온 사육사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딱 봐도 뭔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한쪽에 쌓여 있는 마갑은 그 자체만으로도 흉기라 해도 무방했다.
지금 그들이 입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물 마갑인 것이었다. 우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틴 거 아이간? 전마가 이것도 감당하지 못하면 그거이 말이 되네? 기럴 꺼면 당장에 모가질 따서 육포라도 만들어야디!”
“미쳤습니까?”
순간 사육사가 발끈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순간 액션 배우들은 물론이고 승배와 광호 등이 얼어붙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우루의 얼굴이 점차 악귀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부르르 떤 그가 으르렁거리는 음성을 내뱉었다.
“……내래 미치면 어케 되는지 보여주디.”
“마, 말려!”
순간 승배와 광호 그리고 트렌든이 달려갔다. 우루의 손에는 어느새 환두대도가 들려 있었고 그 광채를 번뜩이고 있었다.
그런 우루의 팔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놓으라우! 내래 오늘 저녁 말 괴기로 잔치를 벌이갔어! 쓰지도 못할 거 배라도 불러야 하디 않가서!”
“참으십쇼!”
“헤이! 우루! 이건 아니야!”
“제발 좀!”
트렌든이 환두대도를 쥔 우루의 팔을 잡았고 승배와 광호가 양다리를 잡았다. 눈이 뒤집힌 우루를 보며 사육사가 창백한 얼굴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저, 정말 미쳤어!”
“닥쳐!”
순간 우루의 다리를 잡고 있던 광호가 사육사의 안면에 박치기를 날렸다.
빠악!
“컥!”
순간 사육사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쯤 되자 우루의 분이 조금 풀렸다.
광호가 재빨리 사육사의 양다리를 끌고 이동했다. 그리고 남은 승배와 트렌든이 우루를 다독였다.
“얘들은 전마가 아닙니다. 당연히 저 양반이 저렇게 날뛰지요.”
“기럼 어카네? 앙?”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당장 우리가 타도 애들 헐떡거릴 게 뻔합니다. 상태를 보십쇼.”
“끄응.”
우루가 말들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딱 봐도 부실했다. 말들을 살피고 난 우루가 진천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이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진천이 대답했다.
“그래서?”
“……알갔습네다.”
진천이 한마디 하자 우루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그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며 트렌든이 당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헤이, 승배. 무슨 대화를 한 거야. 이 통역기 문제 있나?”
“그건 아닌데요…….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왓? 나도 군대 다녀왔다고!”
“한국 군대요.”
승배가 한숨을 내쉬었다.
딱 보니 척이었다. 까라면 까는 거다.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대화 보니 딱 그거였다. 승배가 서둘러 우루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아마 올라타는 순간 말 척추 나갈지도 모릅니다.”
“기래서?”
“혹시 리셀 어르신이라면 뭐라도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승배의 말에 우루가 눈빛을 빛냈다. 그때 마침 한쪽에 만들어진 임시 텐트에서 리셀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사육사와 광호가 따라 나왔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액션 배우들이 한마디씩 했다.
“뭐지? 저 이해 안 가는 상황은.”
“몰라, 무서워.”
“왠지 데자뷔처럼 떠오르지 않아? 우리 훈련할 때같이 말이야.”
“말하지 마, 소름끼쳐.”
액션 배우들이 팔에 돋은 소름을 쓰다듬으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육사는 마갑을 말에 실었다. 말들도 염려했던 것과 달리 약간 답답해하기는 해도 얌전히 마갑을 받아들였다. 그때 곽주호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걸 진짜로 올린 거야?”
“예.”
승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자 주호가 혀를 차며 다시 말했다.
“무슨 수로?”
“마법이죠.”
승배가 대답을 하며 리셀을 슬쩍 바라보았다. 한정적이지만 무게 감소와 관련된 마법을 활용했다.
실전에는 쓰지 않는 방법이라고 했다. 말의 체력 보존에는 좋지만 완전무장을 한 기마의 제대로 된 위력은 그 무게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젠장. 그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내가 입고 있는 거에도 걸어달라고 할걸!”
주호가 투덜거리자 승배가 진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그러다 걸리면 더 무거워지지 않을까요?”
“…….”
“가벼워진다는 건 무거워질 수도 있다는 거니까요.”
승배의 말에 주호가 입을 가리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고는 승배에게 감탄 어린 한마디를 했다.
“너 머리 잘 돌아간다.”
“이쯤 되면 생존 기술이죠.”
“하긴 매일 붙어사니까.”
주호가 이해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광호가 사육사를 한쪽으로 유인하자 리셀이 말에게 또 다른 마법을 부렸다.
근력 증가와 관련된 마법이었다.
이것은 부작용이 있었다. 바로 마법이 끝나면 그 후유증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그래도 갑주를 입고 말을 타는 인원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다.
마주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었다.
그렇게 작은 소란이 끝나고 다들 촬영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들어갔다.
“오, 왠지 멋진걸?”
“그러게? 실감난다고 해야 하나…….”
말 위에 올라탄 액션 배우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었다.
“주저앉을 것 같았는데 잘 버티네.”
“이 정도 체력이 되니 옛날에 마갑 씌우고 전쟁도 하고 했겠지.”
“그렇지?”
마법의 존재를 모르는 액션 배우들은 신기한 채로 말을 주고받았다. 사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해놓으니 꽤 절도 있어 보였다. 게다가 이 육중한 느낌에 그동안 고생한 게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마냥 흩어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를 두근거림이 차지했다.
천성이 액션 배우들이다. 저마다 이런 장면쯤은 꿈꾸어왔던 것이다. 주인공에게 총 맞고 공중제비하며 나자빠지는 것과 이런 웅장한 장면에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비교할 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은 강 피디에게 진천이 리셀을 끌고 갔다. 이미 한차례 소개를 받은 듯 일어서 그를 반겼다.
“예, 이쪽은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강 피디가 걱정이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리셀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허허, 저 역시 준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비 같은 건…….”
“사전에 미리 준비를 했지요. 아무래도 외부의 눈도 있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요.”
“아, 예.”
강 피디는 사실 걱정이 앞섰다. 지금 눈앞에 있는 리셀이 마술을 이용하여 저기 보이는 병력의 수를 뻥튀기 한다는데 당최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수효과 팀을 동원하여 CG로 인원을 늘리려 했던 강 피디에게 리셀을 진천이 소개했던 것이다. 그것도 마술사로 말이다. 물론 마술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트릭이라지만 건물을 사라지게 만들고 또 사람이 벽을 통과하게끔 보이기도 하는 게 바로 마술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술을 영상에 접목해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어본 사례도 없었고, 또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영상의 마술이 있는데 굳이 왜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지금 자금을 대는 쪽도 진천이었고, 또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재촬영도 감수하겠다고 하니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동선 파악부터 하겠습니다!”
조감독의 외침에 따라 배우들이 말을 몰아오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진천이 있었다. 묵직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자 느낌이 또 남달랐다.
“이야! 이래서 탱크에 비교를 하나 보구나.”
오십 기도 안 되는 중갑기병이었지만, 땅바닥에 그들이 달려오는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강 피디 역시 느껴지는 박력감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요.”
“어? 마침 잘 왔네.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송가은 작가가 모니터 옆에 다가왔다. 그런 그녀가 설레는 모습으로 진천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먼 거리였지만 그녀를 알아봤는지 그가 고개를 살짝 까딱여 주었다.
그가 알은체를 해주는 게 기분이 좋은 가은이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동선의 파악과 카메라 리허설이 끝나고 본 촬영을 준비했다. 분주한 움직임이 어느새 멈추었다.
마치 백 미터 달리기를 앞둔 선수들마냥 시작점에 멈추어 있었다.
“슛 들어갑니다!”
확성기에서 조감독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어 강 피디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곤 입을 열었다.
“가자!”
“스타트!”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슬레이트가 내려졌다. 그와 동시에 찰갑으로 무장을 한 이들이 천천히 달려 나갔다.
두두두! 두두두!
말들이 달려오고 카메라들이 일제히 돌아갔다.
그때였다.
빛이 일며 너른 들판에 변화가 일었다.
“뭐, 뭐야!”
오디오가 물리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강 피디가 놀라 벌떡 일어서며 입을 떡 벌렸다.
강 피디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입을 벌렸다.
사십여 기의 기마가 아닌 수백은 되는 중장기병이 너른 들판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고 있었다.
(20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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