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37
209화 진천이 저지르면 누군가는 고생을 한다
촬영이 끝난 뒤 스태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코를 잡았다.
“아 젠장, 이런 건 또 처음이네.”
“마, 말시키지…… 우웁!”
몇몇 스태프는 대놓고 입을 틀어막으며 허리를 꺾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온 토사물 냄새에 스태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몇몇 컷은 달리다가 토하는 장면이 찍혀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강 피디는 기분이 좋았다.
“모처럼 편집다운 편집을 할 수 있겠네.”
“그렇죠? 이전 촬영은 정말 뭘 버려야 할지 한숨만 나왔는데 이번 촬영에서는 딱 거를 장면이 튀어나와 주니까요.”
“그래도 다들 이 악물고 달려 올라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야.”
“간만에 CG팀도 할 일이 많아지겠네요.”
“그렇지. 바닥에 깔린 토사물 지우려면.”
오로지 이 현장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배우들뿐이었다.
“하아.”
그들 중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바로 곽주호였다. 주호는 볼이 홀쭉해진 모습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보통 그 정도 급이 되는 배우라면 촬영이 일단 멈추면 매니저라든지 스태프들이 달려오는 게 정상인데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배우들만 있었다.
심지어 그의 갑주에도 토사물의 흔적이 있었다.
그 역시 달리다가 뱉어낸 것이다.
“죽겠네.”
주호는 한숨을 토해내었다.
진천의 일에 과감히 끼어든 것까지는 뭔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타임슬립이라는 상상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일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두근거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혹독한 현실이었다.
지금은 그의 존재감마저 묻혀 버렸다. 물론 그의 인지도만큼 많은 촬영 장면이 존재했다. 지금은 그것마저 두려웠다.
단체 신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잡는데 그걸 어떻게 소화하겠는가.
심지어 그런 전투 신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 을지우루에게 끌려갔다. 그러다 보니 후회도 했다.
“괜히 팬이라 했어.”
을지문덕 장군을 존경했다는 그 말 때문인지 우루가 그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주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배우에서 장수로 전업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칼 쓰는 법, 몸 쓰는 법. 어떻게 하면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쉽게 죽일 수 있는지까지 우루의 생생한 가르침이 꿈에도 나올 지경이었다.
섬에 있을 때만 해도 실미도 꿈을 꿨는데 최근에는 잠만 들면 전장의 한복판에서 진천과 우루 등의 명령을 받고 죽어라 싸우기만 했다. 그러다 칼을 맞아 죽으면 그날은 일찍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다.
그 때문인지 몸은 더 홀쭉해졌다.
좋아진 점이라면 그 덕에 눈빛이 살아나 무장 역할에 더욱 어울리는 눈초리를 가지게 된 점이다.
물론 이것은 그만의 혜택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배우들이 받고 있는 혜택이었다. 전부 눈가가 번들거리는 게 당장에라도 전쟁이 벌어지면 다 뛰어나갈 것 같았다. 심지어 리셀의 마법 덕에 상처도 금방금방 치료가 되었다.
물론 다른 배우들은 그게 가벼운 상처로 기억하고 또 일부는 그게 상처가 아닌 분장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다 리셀의 능력이었다.
문제는 주호는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아는 이들 중 하나였다. 엊그제는 팔이 통으로 잘려 나갈 뻔했다.
물론 리셀은 잘린 팔도 잘 붙일 수 있다면서 인자하게 말을 해주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투덜거릴 때 즈음에는 어디선가 나타난 우루가 ‘그 꿈 이뤄주디’ 하는 말을 내뱉고는 그를 끌고 간다.
그럴 때면 차라리 팔다리 중 하나 잘려 나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만 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주변이 점차 사라져 버린다.
곁에 있는 아군의 숨소리, 침 넘어가는 소리와 손에 부여잡은 병장기의 차가움만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새 전장에 동화되어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악다구니처럼 무기를 휘두르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가 갈망하는 한 가지는 오직 승리였다.
“큭.”
웃음이 절로 비어져 나왔다.
그의 눈이 진천을 향했다.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이 시간이 너무도 귀중하게 느껴졌다.
그 일생에 이런 경험 어찌할 수 있겠는가.
“인생작이 뮤직드라마가 될 줄이야.”
너털웃음이 흘러나왔다.
* * *
작곡을 맡은 디콘 엔터테인먼트의 홍도기와 집 엔터테인먼트의 성민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의 눈앞에는 촬영 편집본의 일부가 재생되고 있었다.
“형, 이게 촬영본 맞아?”
“맞단다.”
민우의 질문에 홍도기는 한숨을 토해내며 대꾸를 했다.
원래는 도기가 작곡한 곡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상을 접한 뒤로 작곡한 모든 스케치 곡들을 폐기했다. 그리고 평소 친한 동생이었던 민우를 불렀던 것이다.
“이거 미친 거 아냐? 이거 특수효과까지 다 넣은 거래?”
“CG 없는 편집본이래.”
도기의 말에 민우가 얼이 빠진 표정을 하며 중얼거렸다.
“미쳤다. 감독도 미쳤고, 이걸 찍는 사람들도 미쳤고…….”
“나도 미치겠다.”
푸념을 쏟아내는 도기를 보며 민우가 이를 갈았다.
“왜 나까지 끌어들여! 이건 독배야! 여기다 어떻게 음악을 씌우냐고! 이거 뮤직드라마잖아!”
“미안하다. 계약은 파기 못 한다.”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도기는 물러설 수 없다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민우가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어쩌라고! 이거 까딱 잘못하면 영상을 망친 작곡가라는 오명이 평생 따라다닌다고!”
“죽더라도 같이 죽자.”
“…….”
처연한 얼굴로 히죽 웃는 도기를 보며 민우가 잠시 잡았던 멱살을 조여볼까 고민했다.
“후우우.”
민우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 민우의 어깨를 도기가 두들겨 주며 말했다.
“이건 기회다. 이거 터지면 우리도 글로벌이다. 이런 영상을 가진 뮤직드라마가 안 뜰 거 같냐?”
“세계적으로 묻힐 수도 있어.”
“막말로 이 정도면 욕 좀 먹어도 할 만하다. 어떤 놈이 이거에 걸맞게 만들겠냐?”
도기의 말에 민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 민우에게 도기가 다시 한마디 던졌다.
“레이니 전번도 따놨다.”
“고마워, 형.”
어느새 도기의 손을 곡 붙잡고 있는 민우였다.
* * *
“이거 마술이라고요?”
“그렇다던데.”
“이게요?”
“응.”
그래픽 제작팀의 이민호 팀장과 팀원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제작 중인 태왕기의 영상이 놓여 있었다.
“이게 어떻게 마술이에요?”
“내 말이.”
이 팀장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고 팀원들은 어이없다는 듯 화면을 돌려보고 확대해 보고 또다시 보고를 반복했다.
처음 일을 맡을 때 마술로 눈속임을 해서 군세를 뻥튀기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며 짜증도 내었다. 원래 그런 건 CG팀에서 맡아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영상을 받아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뭐가 가짜고 뭐가 진짜인지 구분이 안 갔다. 어디 복사해서 붙인 것 같은 인물은 보이지도 않았다. 이쯤 되니 이들도 패닉에 빠져들어 버렸다.
그렇게 반복해서 보던 그래픽팀의 막내는 불안한 눈빛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이게 마술이면 우린 밥숟갈 놓으라는 건가요?”
“…….”
이 팀장은 대답을 하지 못했고, 한쪽에 있던 팀원 하나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나도 마술을 배워야 하나…….”
* * *
얼마 전 복귀한 김신양이 박연우 실장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의 표정은 왠지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인데.”
“진구가 죽었습니다.”
“뭐?”
“진구파의 이진구가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신양의 말에 연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마무리된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왜?”
“심장마빕니다.”
“쯧, 그런데 그게 왜?”
“그냥 심장마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심장마비가 아니라는 말에 연우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만약 그냥 죽은 거라면 신양이 지금 저런 표정으로 보고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야. 자세히 말해.”
“천성일이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천성일이? 왜? 다 망한 진구파를 왜 건드는 건데?”
명산실업의 천성일이 언급되자 연우가 어두운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신양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쪽에서 뭔가 눈치를 챈 듯합니다. 천성일이 본보기로 보냈다는 말이 많습니다.”
“빌어먹을.”
물론 이런 식의 뒤처리는 비밀로 하는 게 많았다.
왜냐면 그 역시 범죄니까. 하지만 비밀로 한 일이 새어 나온다는 건 한 가지다.
우리에게 거슬리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
마치 중동이나 그쪽의 테러 집단이 테러를 저지르고 자신들의 일이라고 선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구는 명산의 일을 거스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유성원에게 접촉이 잦습니다.”
“유성원이라면…….”
“우리가 일을 의뢰했을 때 진구파의 넘버 투였던 잡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일은 자신들도 손해만 본 일이었다.
“그래도 그 일은 그쪽이 실패를 해서 그냥 묻힌 거잖아. 그런데 왜?”
“이후의 일을 눈치 챈 듯합니다.”
우중만 의원에게 성상납을 하면서 제이를 손대게 유도한 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씨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 유성원이 자신들이 우 의원에게 미끼를 던진 것까지 알 리는 없었다. 하지만 명산이라면 알 수도 있었다.
우 의원의 비호를 받는 조직이기도 했고, 또 자신이 의뢰했던 일을 손댔던 곳이기도 했다.
“어쩌지.”
불안했다.
연우는 안절부절못했다.
신양 역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어르신을 뵈어야겠다.”
“우 의원님 말입니까?”
“그래. 일단 구명줄이라도 만들어놔야지.”
연우의 말에 신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요즘 두문불출하고 계시잖습니까.”
여론이 신경 쓰여 우중만 의원은 지금 칩거 중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양의 말에 연우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더 굶었을 거 아냐.”
“으음.”
“일단 저번 일도 있고 하니까 병문안 한번 가야겠다.”
연우의 말에 신양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애 하나 준비해.”
“그럼 저번에 조연으로 데뷔한…….”
“걔 말고.”
연우의 말에 신양이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유안이 준비해.”
“트위니의 유안 말입니까?”
순간 신양이 당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연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
“하지만 유안이는…….”
화인 캐스팅에서 세인에게 밀려나면서 한풀 꺾였다지만 아직도 트위니는 걸 그룹 중에서도 잘 나가는 그룹이었다.
“걔 성격 알잖아? 저번에 화인 캐스팅 깨진 거 알고 거품 문 거.”
“그야 그렇지만…….”
“일단 불러. 내가 알아서 설득하지.”
연우의 말에 신양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신양이 나가자 연우가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소리쳤다.
“아우, 머리통에 쥐나겠네!”
(21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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