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41
213화 신궁 우루
“…….”
명산실업에서 동원된 조직원들이 약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진짜 쏘겠어?”
“그래, 보통은 거 뭐시냐 씨진지 먼지로 때운담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불안한 마음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중 하나가 뭔가 걸린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피 주머니 같은 건 왜 달아줬지?”
그는 자신의 가슴팍에 넣어놓은 혈액팩 비슷한 게 못내 걸리는 표정이었다. 그것이 들어 있는 곳에는 겨우 알아볼 수 있을 표식만 새겨져 있었다.
“그거 있잖아. 영화 보면 피가 팍 하고 터져 나가는 거.”
“야! 그건 총 맞는 거고! 그리고 아까 보니 그냥 쌩 갑옷에 피 주머니 비슷한 거만 넣더만. 그런 건 특수효과 어쩌고 팀이 붙어야 하는 거지.”
그냥 한판 붙으면 된다는 마음에 온 그들을 반긴 것은 바로 화살비를 뚫고 달리는 장면이었다. 다들 투구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한 번 쓰고 또 다른 상황에서 다른 모습으로 촬영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모든 장착이 끝난 그들에게 우루가 다가와 말문을 열었다.
“걱정들 말라우. 내래 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쏘니까네.”
“…….”
순간 조직원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들의 가슴팍 혹은 몸뚱이에 작게 새겨진 표식을 보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아니겠지.”
“그래.”
하지만 불안했다. 그때 광호가 다가와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화살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게…… 진짜는 아니고 그렇게 보이는 홀로그램 비슷한 겁니다. 일종의 마술이라…….”
“염병. 마술이면 비둘기나 날릴 것이지 뭔 화살을 날려.”
“괜히 쫄았네.”
홀로그램 운운하자 이내 조직원들의 얼굴이 풀어졌다. 설마 진짜 쏘지는 않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광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중에 진짜도 섞이는데 여러분의 몸에 표시된 곳에 날아가 박힐 겁니다. 빗나가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광호가 설명을 하면서도 자신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슬쩍 뒤쪽에 있는 우루를 쳐다보았다. 우루가 마주 웃어주었다. 마치 나만 믿으라는 듯.
광호의 말에 조직원들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이건 쏜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햇갈리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달리는 사람의 몸에 화살을 쏘는 일은 하지 않겠지 싶으면서도 지금 말을 보면 실제로 쏜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석이라도 달렸나?”
뭔가 쏘면 저절로 날아와 박히는 그런 건가 싶었다.
그때 광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실 수 있으면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셔도 무방합니다.”
이런 말을 하니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사전에 언질을 받은 게 있어 반발하지 않고 말을 들었다. 진천과 붙기 전까지는 그들의 통제에 따라주어야 한다는 천성일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면 만약 일이 잘 돼도 사고가 아닐 수 있으니 알아서들 잘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내용이었다.
“시펄, 이런 거 달아놓은 걸 보니 뭔가 있겠지.”
누군가의 투덜거림에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고개들을 끄덕였다. 그들의 반응을 보며 광호는 한숨을 내쉬고는 되돌아갔다. 마치 내 일은 여기까지라는 듯.
“슛 들어갑니다!”
조연출의 외침에 스태프들이 분주해졌다. 특히 카메라 감독들과 오디오 감독들의 행동이 기민해졌다. 지금까지 작업을 해온 결과 아차 하다가는 좋은 장면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촬영 또한 요구하기 힘들다는 것도 이들이 긴장하는 이유였다.
일단 촬영 한 번 하면 배우들이 딱 봐도 물먹은 솜처럼 변한다는 걸 봐왔기 때문이다.
진짜 전투라도 치른 것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놓고 ‘한 번 더 갑시다’라고 외쳤다가는 난도질당할 것 같은 분위기도 한몫했다.
적 병력 분장을 한 조직원들이 한쪽에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우루와 리셀이 한 백여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서서 그들을 향해 있었다.
우루의 옆에는 승배와 광호가 화살을 담은 통을 들고 서 있었다. 화살이 떨어지면 바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가자!”
강 피디의 외침이 떨어지자 슬레이트가 떨어졌다. 연이어 신호가 떨어지자 명산실업에서 동원한 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뛰는 게 제일 싫은데!”
“빌어먹을!”
그들이 입은 갑옷의 무게가 꽤 나가는 탓에 달리는 걸음이 꽤 힘겨워 보였다. 사전에 적응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무거운 게 쉽게 적응이 되지는 않는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화살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수많은 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심지어 파공성도 들렸고 아무리 봐도 가짜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야! 씨팔, 막아!”
누군가가 반사적으로 외치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사전에 홀로그램이니 마술이니 언질이 있었다 해도 저렇게 생생하게 날아오는 게 가짜라고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본능인 것이었다.
후두두둑!
화살이 빗발치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어?”
분명 사방으로 화살이 떨어져 내리는데 충격이 없었다. 주변의 몇몇은 방패에 화살이 튕겨 나가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충격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시, 신기하네?”
조직원들은 그제야 사전에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때였다.
쾌액!
그 화살 비를 뚫고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화살 한 대가 날아들었다. 그 섬뜩함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건 환상 따위가 낼 수 없는 느낌이었다.
퍼억!
“컥!”
화살이 몸을 파고드는 순간 몸통이 뒤로 튕겨 나갔다.
숨이 딱 막히는 느낌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나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피가 점점이 뿌려지는 모습이 느리게 펼쳐졌다.
‘나 화살 맞은 거냐?’
튕겨 나가 땅바닥을 구르며 든 생각은 그것 하나였다.
힘겹게 시선을 내려다보니 가슴팍에 아직도 부르르 떨고 있는 화살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가슴팍에 넣어두었던 가짜 피일 것이다.
하지만 왠지 이게 가짜 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몸통을 꿰뚫는 듯한 충격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누운 채로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그곳에 홀로 서서 연신 화살을 쏘아 보내는 우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친…….”
저 먼 거리에서 진짜로 쏘아 맞혔다는 생각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욕설마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머리통이 뒤로 홱 젖혀졌기 때문이다.
뒤늦게 깨달았다.
그의 투구 속 이마 위에도 가짜 피를 담은 주머니를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통이 뚫리는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죽는 건가.’
왠지 개그 프로그램에서 떠들던 어느 개그맨의 대사가 들려오는 듯했다. 웃지 못할 현실이었다.
“햐! 실감나네?”
“방금 화면 봤습니까? 제대롭니다.”
“이거 저 친구들 조폭이 아니라 진짜 배우 해도 되겠어. 표정이 정말 죽여줘.”
카메라를 돌리며 스태프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모습들이 너무도 리얼했기 때문이다. 맞고 자빠지는 것은 똑같은데 왠지 액션 배우들이 맞고 쓰러지는 모습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그때 한 스태프가 중얼거렸다.
“저것도 마술이겠죠?”
“그렇겠지?”
“그런데 저분은 왜 화살을 쏘아 보내는 거죠?”
“글쎄, 필요하다고 해서 쏘는 건데. 아마 전부 가짜 이미지면 너무 티 나니까 저렇게 하는 거겠지?”
“그런데 특수효과 팀도 없이 마술로 저게 가능합니까? 이거 아무리 봐도 아무런 장치가 없는데 말입니다.”
한 스태프가 저들에게 달아주고 남은 가짜 혈액 팩을 들어보았다. 그러고는 연신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뒤에 철판 같은 거 댄 거 빼고는 달라 보이는 게 없는데 말입니다.”
“막말로 저 거리에서 뛰는 양반들을 어떻게 일일이 맞히나? 말도 안 되는 상상하고 있어.”
“그건 그렇겠죠?”
“그래.”
“거기 입 좀 다물어.”
한쪽에 있던 오디오 감독의 주의에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던 스태프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다시 감탄을 흘리며 서 있었다.
퍼퍽! 퍽!
“커억!”
허벅지에 한 방 옆구리에 한 방을 맞았다.
그 충격에 달리던 방향 그대로 빙그르르 돌며 나자빠진 조직원이 화살 맞은 곳을 부여잡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새끼! 진짜로 쏜 거야?”
화살을 맞은 곳이 얼얼했다. 화살 맞은 부위를 움켜줬던 손을 펴보니 시뻘건 것이 진짜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뚫린 부위를 보니 정말 쇠를 뚫고 들어간 것이 맞았다.
“이거…….”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컷!”
강 피디의 외침과 동시에 달리던 조직원들이 하나둘 멈추며 허리를 숙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후욱! 훅!”
“아 씨! 다시 뛰라면 안 한다.”
“젠장.”
다들 욕설을 내뱉으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허리를 꺾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들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뭐야? 왜 안 일어나?”
그때 뒤늦게 뒤를 돌아본 그들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잡혔다.
화살을 몸에 매단 채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촬영이 끝났음에도 아직 누워 있는 꼴이 이상했던 것이다.
“야! 정신 차려!”
뒤쪽에 있던 이 중 하나가 쓰러진 조직원의 몸을 일으키며 외치는 게 왠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조직원들이 뒤로 달려갔다.
“끄으으.”
“어, 어떻게 된 거야?”
“미, 미친놈이 진짜로 쐈…….”
“뭐?”
순간 어이없어진 조직원 하나가 화살대를 잡아 뽑았다. 그러자 화살을 맞은 조직원이 놀라 외쳤다.
“야, 그거 그냥 뽑으면…….”
영화에서 보면 나오지 않는가.
화살을 뽑으면 살이 찢어진다든지 또는 화살촉이 그대로 몸 안에 남는다든지 말이다. 그런데 화살은 몸에서 그냥 힘없이 쑥 뽑혀져 나왔다.
“어?”
“끄아아아아!”
화살을 뽑힌 이는 비명을 내질렀지만 뽑은 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화살에는 촉이 없었다. 그렇다고 촉이 빠져서 몸에 남은 것 같지도 않았다. 촉이 없는데다가 끝이 많이 뭉툭했다.
처음부터 그런 것처럼 말이다.
“야야, 정신 차려.”
“아아아…… 어?”
그제야 비명을 질렀던 이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서둘러 갑주를 풀어 안을 보았다.
시뻘건 가짜 혈액 팩이 들려 나왔다. 그 혈액 팩은 한쪽만이 뚫려 있었다. 하지만 고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억!”
“허! 이거 멍들었네?”
“이런 개새끼, 진짜로 쐈네! 거봐! 맞잖아!”
맞은 부위가 아픈지 욕설을 연달아 내뱉었지만 화살을 들고 있던 조직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화살을 쏘아 보내던 우루를 바라본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진짜 쐈다고? 이걸?”
멍하니 내뱉은 말에 욕설을 내지르던 사내가 굳어졌다. 그러고는 그 역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족히 백 명은 되었다.
그런데 그 백여 명이 백여 미터를 달리는 그 짧은 시간에 화살에 맞아 쓰러진 것이다.
한 명에게 말이다. 물론 사전에 약속된 동작으로 방패를 들고 뭐하고 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표시된 곳에 일일이 화살을 맞힌다는 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짜 혈액 팩 뒤에 댄 철판이 움푹 우그러져 있는 모습을 본 조직원은 만약 이게 빗나갔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214화에서 계속)
# 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