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48
220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뭔, 외화만 봤나.”
제이가 영혼까지 탈탈 털린 채 축 늘어져 있는 세인을 보며 혀를 찼다.
처음으로 키스신을 찍었다지만, 그 강도가 너무 높았던 탓에 퉁퉁 부르튼 입술은 둘째 치고 정신마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있었다.
그런 제이의 툴툴거림에 연습용 영상을 제공했던 승배가 몸을 움찔거렸다.
나름 명장면이라 생각할 만한 것들로 구성을 해서 줬건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우. 짐승도 아니고.”
제이가 흘겨보며 중얼거리자 진천이 팔짱을 낀 채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난 분명히 말했다.”
“뭘요?”
진천의 굳은 표정을 보고 제이가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진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촬영, 난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아주 핑계는 좋아요. 전쟁 두 번 하다간 애 혀를 뽑아버리겠네. 아주 뽕을 뽑으세요. 이긍. 세인아 밥은 먹어지냐?”
“…….”
진천은 제이의 타박에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런 진천의 모습에 제이는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배드신이었다면 큰일 났겠네.”
제이가 사라진 뒤 진천이 대본을 들춰보았다. 여태 한 번도 제대로 들춰보지 않던 대본을 말이다. 잠시 후 진천의 얼굴은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세인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린 키스신을 확인하는 송가은 작가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잘하지?”
“그, 그러네요.”
“역시 상 남자야. 거침이 없어.”
강 피디는 다른 의미로 칭찬을 했지만 가은은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다. 그때 누군가가 가은에게 음료수를 건네었다.
“안녕.”
금발에 느끼한 눈짓을 보내는 남자.
필리언 제라르였다.
“무슨 일로…….”
가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묻자 제라르는 나름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쭉 들이켜시라고. 고생 많은데.”
“감사합니다.”
제라르의 권유에 가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강 피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나는?”
“남자는 취급 안 합니다.”
“허?”
음료를 마시는 가은을 보며 제라르가 한마디 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예?”
“키스신.”
“…….”
가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화살 한 대가 날아왔다.
따앙!
“웃!”
제라르가 몸을 뒤로 날리며 칼을 뽑아 들고 연달아 휘둘렀다. 그러자 연이어 날아온 화살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 양반이 귀도 좋아!”
“닥치라우!”
을지우루가 성난 얼굴로 화살을 날리며 쫓아오고 있었다. 그런 우루의 맹공에 제라르가 열심히 화살을 막으며 도주하고 있었다.
“휘유.”
제라르가 쫓겨가는 모습을 보며 가은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분노한 우루의 음성이 들려왔다.
“위아래도 없는 아새끼 골통을 꿰어버리갔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걸 이참에 제대로 알려주디!”
“…….”
가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더불어 옛 위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변색되어 가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아니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다 똑같다는 걸.
어쩌면 더할지도…….
혹은 저 인간들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 * *
“이제 좀 살 만한가 봐.”
존의 질문에 마이클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현재 마이클에게 있던 지휘권은 존에게 넘어가 있었다. 물론 지휘라고 해봐야 지금 상황에서 지켜만 보는 정도였다.
이해를 할 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실종된 특수 부대원은 모두 구출이 완료되었다. 물론 모두가 멀쩡하지는 않았다. 북한에서 송환된 인원들은 요양이 필요했고, 마이클과 함께 바다에서 포획되었던 이들 중 몇몇은 신체의 일부를 잃었다.
정확히는 겉이 아닌 안이 털렸다.
인신매매라는 것이 항상 외형적인 노동력을 요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장이라든지 각막 정도에서 끝났다는 점이다. 심장이라도 떼어줘야 했다면 첩보사에 두고 남을 어이없는 결과였을 것이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역사에 길이 남을 개망신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이들이 작전을 실패한 것은 맞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규명을 못 했다. 그렇다고 증거 없이 타깃들을 들추기에는 쏠린 눈이 많았다.
지금 그 타깃은 이 땅에서, 아니,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어 있는 톱스타였다.
물론 그 톱스타라는 것이 완벽한 방패가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역사가 말해준다. 하지만, 모든 시선이 이렇게 몰려 있는 상황에서 뭘 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점은 맞았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악당 중에 유명인사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누가 악당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는 없고 심증만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스미스.”
존이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왠지 의기소침해 보이는 그에게 존이 농담을 던졌다.
“제법 털이 많이 자랐는데?”
“제발 그런 인사는 하지 말아줘. 난 아직 그날의 능욕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스미스의 말에 존이 쓴웃음을 지었다.
온몸의 털이 밀린 채 알몸으로 떠돌던 그 역시 많은 고역을 당했다. 남성이 취향인 구매자에게 끌려가 성적인 부분에서 잊지 못할 악몽을 선사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퇴원은 한 거군.”
“빌어먹을 아직 의자에 제대로 앉는 게 두려울 지경이야.”
“그건 좀 안타깝군.”
인상을 찌푸리면서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았다.
그때 마이클이 질문을 던졌다.
“위에서는?”
“일단 잠시 지켜보라고 하더군.”
“이유는?”
마이클이 으르렁거리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존이 혀를 차며 대답을 해주었다.
“너무 막 나갔으니까.”
“언제부터 주변 눈치를 봤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마이클이 냉소 어린 음성을 내뱉자 존이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런 말은 성공하고 나서 하는 말 아니었나?”
“크윽!”
마이클의 방식은 사실 거칠고 뒤끝이 안 좋았다.
다만 그런 만큼 결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에서도 종종 눈감아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성공했을 경우였다. 이번처럼 실패했을 경우에는 제대로 역풍을 맞게 된다.
방금 전의 지적은 그 부분을 말한 것이다. 존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한국에 있는 우리 쪽 사람들이 옹호를 해줄 수 있는 게 있다고. 아무리 우리 쪽에 우호적이라지만 그들도 결국 한국인이고 정치인이란 말이지.”
“으음.”
“한국의 정보부도 우리의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실패까지 했으니 아마 그들도 입을 다물 거란 말이야.”
“빌어먹을! 그럼 대충 뭐라도 던져주면 되잖아!”
마이클이 거친 음성을 내뱉자 존이 피식 웃으며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농담이지? 아까도 말했지만 그들도 결국 한국인이고 정치인이라고. 이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 아마 주려면 랩터(F22)를 줘도 모자랄걸? 이미 이쪽에서 저질렀던 것을 그들이 한 번은 눈감아줬으니까 말이야.”
“제길!”
마이클이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어찌 되었든 당분간은 잠자코 있으라고. 지금 그들을 건드리기에는 너무 핫 하니까.”
“이미 건드려 놓고 놔둔다는 건 놈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인 걸 몰라?”
마이클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되묻자 존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잊었어? 건드려 놓은 건 마이클 당신이야.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를 했고.”
“하지만!”
“들어. 마이클. 지금 책임자는 나야. 당신의 그 빌어먹을 성미 때문에 제대로 증거도 수집 못 했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거야. 증거만 있다면 막말로 한국의 정치인들이 문제겠어?”
“큭!”
마이클이 부르르 떨었다.
존의 말이 맞았다. 결국 설득할 수 있는 증거가 없기에 더는 무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 분노에 사로잡힌 그에게 존이 다시 한 번 경고하듯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은 그냥 있는 게 돕는 거야. 이미 한 번 실패했으니까.”
존은 그렇게 경고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마이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얼음이 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의 옆에서 잠자코 서 있던 스미스가 입을 열었다.
“마이클.”
“왜.”
“난 그년을 잡아다가 내가 당한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다고.”
스미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런 스미스를 보며 마이클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실패했으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했지?”
“존의 말로는.”
“성공하면 되지 않겠어?”
마이클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하자 스미스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라는 듯.
* * *
“하아아아.”
길고 긴 한숨이 쏟아지듯 밀려 나왔다.
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하는 마음에 보냈던 조직원들이 다 정신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명산실업의 문제도 문제였지만 다른 조직에서 빌려온 이들도 적지 않았기에 지금 그의 머리는 더 복잡했다. 주변에서는 명산실업이 주변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수를 쓴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물론 핑계는 있다.
바로 고진천이라는 핑계. 하지만 누가 그 핑계를 믿겠는가. 다른 것도 아닌 촬영이 너무 거칠어 전부 정신병자가 됐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도 아직 믿기 어려운데 누가 믿겠는가.
“빌어먹을. 오히려 이빨을 드러내 버렸어.”
물론 이전에 찾아왔을 때 이미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역시 이쪽에서 이빨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제의를 해온 것이었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진천은 약속대로 멀쩡히 돌려보냈다.
몸만은 멀쩡히 말이다.
다만 정신적인 상처는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아니, 보상을 떠나 어떻게 촬영을 하면 이렇게까지 사람이 병신이 되어서 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아.”
그때 그의 전화기가 울려왔다.
그 전화기에 뜬 번호를 본 성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받고 싶지 않은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우중만 의원의 전화였다.
“미치겠군.”
전화기를 들었다.
“예, 어르신.”
[명산실업이 언제부터 병원을 차렸나.]“무슨 말씀이신지.”
[정신병자들이 드글거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헛소문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하지 말게.]우중만 의원의 말에 성일은 입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이 번호로 전화 통화가 오는 것은 보좌관이었는데 직접 전화가 온 것을 보니 꽤 성이 나 있는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아무리 명산실업을 그가 이끈다 해도 우 의원의 눈과 귀가 되어줄 만한 놈들은 있게 마련이었다.
아마도 그들을 통해 이야기가 새어나갔을 것이다.
굳이 그들의 입이 아니어도 새어나갈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내가 누굴 믿고 일을 해야 하지?]“할 말이 없습니다.”
[마지막이야. 이제 더는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마지막이라는 말에 성일의 이빨이 꽉 다물려졌다. 우 의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만약 또 이런 모습을 보이면 성일이 자네는 은퇴를 해야 할 거야.]“……명심하겠습니다.”
눈가에 핏발이 선 성일이 겨우 대답을 짜내었다.
(22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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