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54
226화 전방위 압박
전 대표가 내려간 사무실은 이미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멍하니 있지만 말고 다른 쪽 스케줄도 확인해 봐!”
“다른 쪽도 말입니까?”
“지금 상황 보면 몰라? 행사 잡힌 곳 일일이 전화로 확인해서 예정대로 진행 문제없는지 파악해 보란 말이야!”
내부에서는 연달아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다들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라고요? 지금 취소하시면 위약금을 무실 수 있습니다! 뭐라고요? 이미 입금했다고요?”
황당한 내용의 전화가 연달아 울려오고 있었다. 최근 들어 성세를 보이던 퍼스트 엔터로서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진천에 대해 광고 등의 문의를 해왔던 곳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입들을 닫고 있었다.
인상을 굳힌 전 대표가 대표실로 들어가 스마트 폰을 들었다.
“형님 접니다.”
[창걸이구나.]“지금 무슨 일입니까 이게.”
[무슨 일이라니…….]“누가 우릴 지금 까는 겁니까?”
[…….]전 대표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대답이 끊어졌다. 그러자 전 대표가 다시 말을 이었다.
“희연이 오디션 때 정말 좋다고 하신 건 형님입니다. 아시지요?”
[그렇긴 한데……. 막상 뽑아놓고 나니 작가가 의중이 좀 다르다고 해서.]왠지 궁색해 보이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 대표는 확신을 가진 듯 얼굴을 굳힌 채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작가인 박영성이에게 전화해 볼까요?”
[…….]답변이 오지 않았다. 박영성 작가와 전 대표와는 마찬가지로 형 아우 하는 사이다. 오히려 박 작가가 전 대표의 도움을 받아 입문하게 된 경우다.
“뭐라 안 할 테니 말해주십쇼. 맞아도 대충 뭐 때문인지는 알아야 하잖습니까.”
전 대표의 목소리가 사정조로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미안해. 안 맞아서 그래. 나 회의 들어가야 한다. 그럼 다음에 술 한잔하자.]“형님! 형님!”
전 대표가 소리쳐 불렀지만 통화는 이미 끊어져 버렸다.
이후 몇 군데 더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대충 비슷했다.
“하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몸을 묻었다.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NS인가.”
NS엔터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NS엔터가 힘 있는 기획사지만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한다. 그쯤 생각이 미치자 전 대표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NS엔터보다 더 큰, 혹은 더 높은 곳을 떠올리니 딱 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우중만 의원이었다.
하지만 저번 세무조사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까지 할 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형태를 보니 그 말고는 다른 이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빈관이 들어왔다.
“하다못해 지역 시장 행사까지 다 끊어졌습니다.”
“미치겠군.”
빈관의 보고에 전 대표가 얼굴을 쓸었다.
“전부 위약금을 물더라도 취소하겠다고들 합니다.”
“후우.”
한숨만 나왔다.
* * *
“뭐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계약해지라니!”
강찬성 피디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글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음 촬영부터는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행팀의 보고에 강 피디가 발끈했다.
“미친 거 아냐? 아니 외주 촬영팀이 저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게…….”
강 피디의 외침에 진행팀장이 어두운 낯빛으로 뭔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강 피디가 뭔가 더 심각한 상황임을 알아차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뭐야. 한 번에 털어놔. 찔끔찔끔 이야기 던져서 사람 속 뒤집지 말고.”
“일단 펑크가 난 것 같아서 다른 팀에 연락을 하려 했는데 전부 스케줄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돼?”
“안 됩니다.”
“허?”
강 피디가 혀를 찼다.
다 떠나서 그가 누구인가.
바로 이 바닥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이다. 시청률 제조기라는 말은 이미 흔한 수식어다. 그런 그를 건든다는 건, 막말로 마음먹고 휘젓는다면 외주 촬영팀이나 조명팀 한두 개 접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지금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다면 그건 뭔가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놈이기에!”
열이 끝까지 오른 강 피디가 스마트 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알 만한 곳에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 전화가 아예 연결되지 않았다. 받지 않는다는 기계음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일이 어떻게 된 거지?”
강 피디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박수진 작가의 얼굴이 굳어졌다.
난데없는 스카우트 제의였다. 가까운 시기에 미니시리즈로 데뷔를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호조건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 이곳을 그만두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그래서 수진은 그건 좀 곤란하다고 말했다. 최소한 지금 하는 작업은 마무리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자 이제는 협박 비슷하게 되돌아왔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어디든 데뷔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이다. 잘 생각하라는 말이었다.
처음 들떴던 마음은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송가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초췌한 얼굴의 가은이 그녀를 맞이했다.
“어, 어서와. 정리는?”
“예. 다 했습니다.”
“그래? 어서 들어와.”
안으로 들어선 수진이 자료를 내려놓으며 앉았다. 그제야 그녀의 굳은 얼굴을 본 가은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무슨 일 있니?”
“작가님.”
수진이 울상을 짓자, 가은이 얼굴을 굳히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해. 무슨 일이야?”
그러자 수진은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가은은 일이 좀 심각하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강찬성 피디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하지만 연이어 통화 중이라는 신호음만이 울릴 뿐이었다.
“후우.”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방해였다.
그때 강 피디에게서 전화가 왔다.
“감독님?”
[어! 그쪽에도 무슨 일 생긴 거야?]항상 나쁜 직감은 맞는 것 같았다. 강 피디의 말을 들은 가은은 그쪽에도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는지 차분한 음성으로 수진에게 벌어진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쪽에도 무슨 일이 생기신 건가요?”
[이 개새끼들!]강 피디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자 가은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 바닥에서 그의 힘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중소 기획사 하나쯤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그가 이런 욕설을 내뱉는다는 건 뭔가 생각 이상의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무슨 일이에요?”
[욕해서 미안, 송 작가. 사실은…….]강 피디의 설명을 듣던 가은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섭외된 장소부터 시작해서 제작팀 일부까지 모두 계약이 파기되었다는 것이다.
위약금을 물은 곳도 있을 정도였다.
다름 아닌 강 피디에게 그런 일이 벌어질 정도라면, 그녀의 보조 작가인 수진에게 지금 벌어진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통화를 끊은 가은이 창백해진 얼굴로 그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수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
“작가님.”
“정 안 되겠으면 그만두겠다고 해.”
“작가님!”
수진이 울상을 지었다. 그런 그녀에게 가은이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타깃이 따로 있는 것 같아. 네가 휘말릴 필요는 없어.”
“하지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수진에게 가은이 손을 꼭 잡아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일이 잘 풀리면 그때 돌아오면 되잖아. 그치?”
“작가님…….”
“일단 돌아가.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가은의 말에 수진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억울한 듯 엉엉 울 뿐이었다. 가은은 그런 수진의 등을 도닥여 주었다.
송가은의 사무실을 나온 수진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으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러고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울먹이는 그녀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쟈갸!”
* * *
쾅!
주먹이 책상 위를 두들기자 그 위에 놓인 집기들이 들썩였다.
“어떤 씨펄 놈이 우리 이쁜이를 울려!”
순간 주변의 이목이 최후배 경장에게 쏠렸다. 하지만 최 경장은 주변 따위는 신경 안 쓴다는 듯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새끼야!”
[엉엉엉! 그게 아니라 나 협박당했어!]“다, 당장 기다려! 어디야! 내가 갈게!”
최 경장의 눈에는 불똥이 막 튈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주변 동료들과 선배들은 다들 그에게 무어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심지어 그의 앞에 앉아서 조서를 꾸미던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의 사내조차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 서준모 경장이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야?”
“형님! 우리 애기가 협박당했답니다!”
“뭐? 혹시 박수진 작가?”
“예!”
둘이 뭔가 썸을 타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벌써 이렇게까지 진행이 되었던 걸 몰랐던 서 경장은 혀를 찰 뿐이었다.
옷을 집어 드는 최 경장을 본 서 경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붙잡았다.
“야! 쟤는 어쩌고? 조서 꾸미는 중이잖아.”
순간 최 경장의 눈이 눈앞에 앉아 있는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시선을 슬슬 피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최 경장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반항을 했다.
“미, 민주 경찰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의 항변에 최 경장이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으르렁거리는 음성을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민주 경찰이 될지 아니면 반미치광이가 돼서 피의자를 죽일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곱게 불고 가자. 안 그럼 씨팔 그냥 너 조지는 걸로 끝내지 않아.”
“예?”
“여기서 사고 한번 칠까?”
최 경장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그 사내의 손에 쥐여줬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잡아 그의 허벅지에 총구를 들이대며 말을 이었다.
“씨팔 범죄자 새끼가 형사 총을 빼앗아서 탈출하려고 하네? 이러다 실랑이 끝에 한 방 쏠지도 모르겠네. 어이쿠, 이거 자칫 잘못하면 고자 되겠는걸?”
“히, 히이익!”
번들거리는 최 경장의 눈빛을 본 사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 경장이 귀찮다는 듯 말을 이었다.
“에이 씨, 장난 치냐? 쏘려면 빨리 쏘든지. 너 바쁘다며?”
“다, 다 불겠습니다!”
사내가 비명과 같은 외침을 터트리자 그제야 총구를 거두었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술술 부는 사내의 이야기를 최 경장이 마저 받아 적었다.
“흐흐흑!”
“새끼 울긴.”
“무슨 경찰이…….”
그런 사내의 어깨를 두들겨 준 최 경장이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이거 가스총이다.”
“…….”
“열심히 살아, 인마.”
순간 울던 사내가 얼굴을 확 일그러트렸다.
달려 나가는 최 경장과 서 경장의 뒤로 사내의 욕설이 들려오는 듯했다.
(227화에서 계속)
# 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