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63
235화 발상의 전환
리셀이 트렌든의 등에 업혀 옥상으로 올라왔다.
“느어어어…….”
“무슨 일을 하셨기에 실려오신 겁니까?”
피골이 상접한 게 툭 치면 억 하고 죽을 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승배가 질문을 하자 트렌든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매직! 대단했다고! 흙들이 뭉쳐서 컨테이너에 붙는데 엑설런트 한 장면이었다고!”
트렌든은 뭘 또 신기한 것을 봤는지 흥분해 있었지만, 듣는 승배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뭔가 진천에게 쪽 빨렸을 것이라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뒤따라 들어오던 광호가 지친 얼굴로 방에 들어서다가 멈칫했다.
“흑흑흑! 공사한 부분을 뜯겼어!”
“…….”
제라르가 방구석에서 양 무릎을 안고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었다. 마치 무슨 정신적 충격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영화 찍고 온다며?”
광호가 멍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자 승배가 그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찍긴 했죠.”
“뭐길래 저래?”
“그게 일단 영화는 영화인데…….”
승배가 어색하게 웃으며 조용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광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런데 왜 저래? 들어보니 저 양반이 딱 좋아하는 타입인데.”
듣기로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마치 정신적인 충격을 심하게 입은 모습이었다.
“막판에 나온 여배우가 딱 우루 형님 스타일이었죠.”
“쿨럭…….”
순간 광호가 사레들린 듯 기침을 토해냈다. 승배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근육 대신 지방으로 양옆으로 빵빵하신 여성분이었고 뭐 중간에 사고도 좀…….”
말끝을 흐리며 제라르를 바라보았다.
“흑흑흑! 공사를 왜 하는 건데. 날 보호해 줘야 하는 거잖아. 흑흑흑!”
“무서웠겠다.”
“……덕분에 감독은 리얼한 장면을 얻었다고 좋아하기는 했지만요.”
“그렇군.”
광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남자 배우 더 필요하지는 않다디?”
“…….”
광호의 눈을 보면서 승배는 아까 그 여배우에게 광호마저 재물로 던져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누군가 보이지 않았다.
“응? 우루 형님은요?”
다 들어왔는데 우루만 보이지 않았다. 승배의 질문에 광호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한 땀 한 땀.
“내래 뭘 잘못했다고…….”
우루가 죽을상을 하고 성벽을 쌓고 있었다. 겉에만 돌을 붙이는 작업이지만 아마 밤을 지새워야만 끝이 날 것 같았다.
“집이 최고디…….”
새삼 집 생각이 나는 우루였다.
* * *
“허어!”
강찬성 피디가 놀란 눈으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설명은 들었지만 이틀 만에 이렇게 만들어놓았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떤가.”
“이거 세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만들었는데?”
웅장해 보이는 성이 눈앞에 있었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다.
강 피디는 솔직한 마음으로 이렇게까지 해놓았으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마무리 작업을 위해 인부들이 여기저기 손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흙먼지에 더럽혀진 사내가 주저앉아 있었다.
“우루?”
“이 성의 초석을 쌓았지.”
“꽤, 상태가…….”
딱 봐도 폐인이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진천이 그런 우루를 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틀을 지새우며 쌓았으니까.”
“…….”
초석이라 보이는 바위들은 딱 봐도 큼직해 보였다. 그걸 시키는 이나 또 시킨다고 이틀을 지새우며 작업한 이나, 이들의 관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라르가 많이 힘들어하더군.”
“크음. 뭐 그게 각본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강 피디도 나중에 듣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약간은 미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강 피디에게 진천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복불복이지.”
“허, 허허허.”
“그럼 준비는 된 건가.”
진천의 질문에 강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오늘이면 다 끝난다고 했는가?”
“그렇지.”
“그럼 당장 내일이라도 시작하자고.”
“좋지.”
강 피디가 의욕을 내비치며 말을 하자 진천이 미소 지었다.
* * *
서준모 경장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퍼스트 엔터로 가해지는 압박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 하나를 노린 짓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왠지 촉이 그랬다.
그렇지만 혐의도 없는 우중만 의원을 들이팔 수는 없었다.
“이거 잠복도 하기 힘든데 어쩝니까?”
“으음.”
“그렇다고 주변 감시 카메라를 수거할 수도 없고. 명분이 없으니 말입니다.”
최후배 경장의 말에 고민하던 서 경장이 뭔가 생각이 난 듯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십니까?”
“방법 만들러.”
“예?”
“나 먼저 나간다.”
서 경장이 나가고 그 뒤를 최 경장이 허둥지둥 뒤따라 나갔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중고차 매매 단지였다.
“여긴 왜 오셨습니까?”
“너 차 장수 만나러.”
“혹시 지만철이?”
“그래.”
서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 경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걔는 왜요? 요즘 조용히 지내잖아요.”
“따라와.”
서 경장은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이, 만철아!”
차를 점검하고 있던 지만철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인상을 팍 구겼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오셨수.”
“넌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도 안 하고 그게 뭐냐?”
“에이 정말. 나 맘 잡은 거 알잖습니까.”
“수출업에 손 떼긴 한 거 같더라.”
“안 합니다. 그거. 이젠 이걸로도 먹고살 만하니까요.”
서 경장의 말에 만철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서 경장이 그가 살피던 차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남의 차 따가지고 도색 새로 해서 수출하는 건 옛말이지. 그치?”
“아시면서 왜 그럽니까?”
만철이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지었다.
서 경장의 말대로 그는 차량을 절도해서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로 차 적을 세탁해 내보내는 일을 하다가 잡혔었다. 하지만 오가는 말마따나 그 일에 손을 뗀 지는 오래되었다.
그때 서 경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예.”
“무사고랑 사고 난 거랑 가격 차이가 좀 있지 않냐?”
순간 서 경장의 말에 만철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당연히 사고 차량과 사고가 나지 않은 차량은 가격 차이가 크다.
“그렇죠.”
만철은 굳은 얼굴을 피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서 경장이 전시된 차를 툭툭 치더니 만철을 보았다.
“안 찔리냐?”
“뭐가요.”
“에이. 왜 그래, 선수끼리.”
“아, 뭐요! 나 진짜 그런 짓 안 한다니까요!”
“허위 매물도 범법이다.”
“그, 그게 뭔 말입니까!”
“미끼 걸어놓고 막상 오면 팔렸다면서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면서? 그러다 안 사면 동생들 면상 들이밀고 말이야.”
“그, 그건…….”
“그거 엄연히 협박이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서 경장의 말에 만철이 죽을상을 했다.
사실 이런 방법은 그만이 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끼 걸고 온 사람들을 끌고 다니다가 사게 한다든지 물론 그 과정에 약간의 분위기를 조성한 적은 있다.
물론 대놓고 협박은 안 한다.
인상 안 좋은 이 몇 데리고 다니면 알아서 지레짐작하다 보니 차를 안 사더라도 출장비 명목으로 조금 챙기고는 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약간의 사고 차량을 수리해서 깔끔하게 한 뒤 미리 안 알린다든지 정도였다.
모든 사고 차량이 보험을 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 진짜 왜 그래요!”
“그냥. 그러지 말라고.”
“알았으니 좀 가십쇼!”
“뭐, 알았다. 그런데 나 조금 도와줄 게 있는데.”
역시나 목적이 있었다는 생각에 만철이 얼굴을 구기며 버럭 소릴 질렀다.
“대체 뭔데요!”
서 경장이 히죽 웃으며 차를 탕탕 두들겼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블랙박스 다 달려 있지? 요즘 건 거의 달려 있드만.”
“예?”
“내가 짚어주는 데다가 차 좀 주차해 놔줘야겠다.”
“뭐라고요?”
서 경장의 요구에 만철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뒤따라와서 뭘 하나 지켜보던 최 경장은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흘렸다.
일종의 이동식 감시카메라 대용으로 만철의 차들을 이용하려는 계획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결국 만철은 서 경장의 요구에 굴복했다.
거절했다가는 더 귀찮게 굴 게 뻔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약간이지만 불법적인 행동을 했기에, 그걸 걸고넘어지면 더 힘들어질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서 경장과 최 경장은 김창진 경위를 만났다.
“블랙박스를요? 형님 천잰데요?”
“뭐 그렇게까지야.”
서 경장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김 경위는 혀를 내둘렀다. 사건 현장의 차량 블랙박스를 증거 자료를 찾기 위해 내용을 살피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증거를 모으기 위해 직접 이용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 집어치우고. 넌 뭐 좀 나왔냐?”
서 경장의 질문에 김 경위가 머리를 긁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같은 일개 형사가 뭘 알아냈겠습니까만은…….”
서 경장이 눈을 빛냈다. 모르면 모른다고 했을 것이다. 뭔가 알아냈으니 저리 말하는 것이다.
“뭔데?”
“우 의원 집에 경호원들 말입니다.”
“경호원?”
“명산에서 나온 애들입니다. 정확히는 명산실업 계열사인 태성 경호 소속 직원이지요.”
김 경위의 말에 서 경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걸 가지고 연관성을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냐?”
“그렇긴 한데, 엊그제 경호원 중 하나가 떡이 됐거든요.”
“왜? 누가 침입이라도 한 거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애 하나가 떡이 된 날 천성일이가 우 의원에게 끌려갔었나 봅니다. 그 뒤에 경호 인력이 더 보충이 됐지요.”
“음.”
확실히 뭔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의미 같았다.
“기존 경호 형태를 보면 이런 경우는 없었거든요. 확실히 뭔가 쫓기는 게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럼 그것을 노리고 차량을 배치하면 뭔가 나오겠네?”
“그렇죠. 천성일이를 자꾸 부른다는 건 뭔가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겁니다.”
김 경위의 말이 그럴듯했다.
“좋아. 차량 배치하고 신경 좀 더 쓰자.”
“알겠습니다.”
서 경장의 눈빛이 빛났다.
그때 그의 품에서 전화가 울렸다.
“응?”
“누굽니까?”
“대장장이.”
“예?”
되묻는 김 경위의 질문에 서 경장은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23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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