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64
236화 미궁 속이 아닌 안드로메다로
오랜만에 찾은 서 경장을 공방의 장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
“그런데 아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단 앉게나.”
서 경장이 자리에 앉자 장인이 녹차를 가져다주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철편 조각 말일세.”
“예. 그런데 그게 이상하다는 말을 하셨잖습니까.”
“나도 까막눈이라 잘 모르는데 내가 이거 맡겼던 친구가 하도 신기해서 좀 자세히 검사를 해봤더라고.”
“그래요?”
점차 줄어드는 장인의 목소리에 서 경장이 바짝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 경장이 다가가자 장인이 주변을 잘 살피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제작 방식은 비슷한데 재료가 달라.”
장인의 말에 서 경장은 잠시 듣고만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솔직히 모르지만 아직 그의 설명이 끝이 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일부 샘플에서는 놀랍게도 과거 유적 발굴에 나왔던 것과 같은 성분이 검출되었네. 누가 보면 유물 조각을 가져온 걸로 착각할 정도로 말이야.”
“다 같은 철이 아닙니까?”
“아니지. 이미 당시 탄소강을 주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지만, 현대의 탄소강과 동일하지는 않아. 성분의 차이는 있거든. 그런데 이건 오히려 현대의 탄소강보다는 유물에서 나오는 탄소강에 더 가까운 성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
“으음.”
서 경장의 입에서 신음성이 살짝 흘렀다.
이 말은 둘 중 하나를 의미했다. 하나는 고전의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말도 안 되지만 유적일 가능성. 하지만 천년도 더 지난 것이 이렇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말이야. 고전적인 방식으로 제련은 가능하지 않아. 성분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지 그걸 재현하는 방법은 이미 실전됐기 때문이야.”
“그렇군요.”
예전에 유물을 복원하는 이들이 현대의 기술로도 과거의 기술을 재현할 수 없다는 내용의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그리고 다른 조각에서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주 극소량이지만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물질이 섞였다고 하더군.”
“예?”
“나야 쇳밥을 먹는 사람이지만 이걸 검사한 친구는 그쪽에서 전문가니까. 정확한 이야기일 거야. 뭔가 다른 무엇이 섞였는데 그것과 일치하는 성분이 지금까지 알려진 금속 종류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는 거야. 신기하지 않나?”
장인의 말에 서 경장은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당해본 그의 입장에서는 장인의 말을 웃어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게 또 있었다네.”
“그건 뭡니까?”
장인이 뭔가를 들어 올렸다.
“가죽 끈?”
“그렇다네.”
“그게 뭐가 이상한 겁니까?”
서 경장의 질문에 장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갑주를 수리하다 보니 새로이 수리한 부분이 발견이 되었다네. 내가 말했지? 꼭 실제 사용한 것 같다고 말이야.”
“지금 사용하고 있잖습니까.”
“그냥 영화나 드라마를 찍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실제로 입고 전쟁을 하는 건 사용감이 다르네. 닳아 있는 부분도 그렇고.”
장인의 설명에 서 경장이 한결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마치 이걸 입고 전쟁이라도 한 것 같았다네. 마찬가지로 보수의 흔적 역시 그런 예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고 말이네.”
“그렇군요…….”
“그런데 말일세. 기존 가죽 끈과 최근에 수선한 가죽 끈이 달랐네.”
“달라요?”
“최근 수선한 가죽 끈이 굉장히 질기더구먼. 기존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설명을 듣고는 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서 경장은 말을 끊지 않고 묵묵히 들었다. 궁금한 것은 나중에 질문을 하면 되니 말이다.
그런 서 경장을 향해 장인이 가죽 끈을 들어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것도 분석을 했지. 어차피 유적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이런 가죽 끈을 분석하는 것도 기본이니 말이야. 그리고 궁금했네. 어떤 가죽이기에 이렇게 질긴가. 알아내서 나도 재료로 쓰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 내가 모르는 무두질이 있나 싶기도 해서 말이야.”
요즘은 옛날에 쓰인 물품의 원산지까지 유추하는 세상이다. 유적 복원에 일가견이 있는 장인과 같은 이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또 이상한 겁니까?”
“이상한 정도가 아니네.”
장인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자 서 경장도 덩달아 얼굴을 굳혔다. 대체 뭐가 다르기에 이런 표정을 짓는가 해서 말이다.
장인이 굳은 얼굴을 한 채로 입을 열었다.
“소와 비슷한데 소가 아니라더군.”
“예?”
“아까 철 조각 이야기했지?”
“예. 알려지지 않은 성분이 함유되었다는 말씀 말이지요?”
“이것도일세.”
장인의 말에 서 경장이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장인이 한숨을 탁 하고 내쉬며 말했다.
“하아. 소와 일부 유전자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동물이라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것과 일치하는 짐승의 유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더군. 전혀 새로운 종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더구먼.”
“…….”
서 경장이 입을 닫았다. 그런 서 경장에게 다시 장인이 말을 이었다.
“일부 가죽 끈도 마찬가지. 돼지와 유사하지만 돼지가 아닌 다른 종일 거라는구먼. 이거 때문에 지금 그쪽도 많이 시끄러운 상태라네. 다들 흥분해 있어, 그래서 사실 나도 지금 곤란한 상태라네.”
장인의 말에 서 경장은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이걸 제게 말씀해 주십니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자네가 이곳을 찾은 이유가 이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네.”
“제가요?”
“그럼 아닌가? 자네가 정말 이쪽에 취미가 있다는 말을 내가 믿을 거 같은가?”
장인의 말에 서 경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사실 허술한 부분이 있기도 했다. 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지푸라기나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들쑤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랬군.”
“이젠 더 모르겠네요.”
“허허, 사실 나도 자네가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니 알아본 거라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밑의 아이들에게 맡겼을 거고 말이야.”
서 경장의 말에 장인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의 웃음을 들으면서도 서 경장은 더 혼란스러웠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았다.
고진천이라는 사람은 말이다.
점점 사건은 미궁 속으로…… 아니, 안드로메다로 빠져들고 있었다.
* * *
“우와!”
“이거 정말로 삼 일 만에 만든 게 맞습니까?”
“실제로는 이틀이라던데?”
촬영을 위해 모여든 스태프들이 눈앞에 놓여 있는 성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성곽을 급조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폐컨테이너를 활용했다고 했는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이거 정말 죽이는데요?”
“그렇지?”
오늘은 예술영화가 아닌 액션을 찍기 위해 도착한 장구봉 감독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직위는 촬영감독이었다. 그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장비들을 보며 희희낙락했다.
오랜만에 이런 장비를 만지니 다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 한동안 에로 영화판에 있던 이들이었다. 일부는 특촬물 외주를 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외인부대마냥 꾸려진 스태프들이 모여들자 강찬성 피디는 마음이 든든하다는 걸 느꼈다. 다들 실력은 있는 이들이었다.
초기에 중국에서 한국의 제작팀을 통으로 데려갈 때 다들 뽑혀갔던 실력자들이었다.
물론 계약이 끝나고는 다들 돌아와야만 했다.
지금은 감독이나 스토리 작가 등 중요인물들만 중국에 진출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과 같은 기술자들은 제일 먼저 필요가 없어져 쫓겨왔다.
중국에도 이들보다 더 저렴하고 노하우를 받아들인 스태프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결국 신세계를 찾아갔던 그들이 돌아올 곳이라고는 이런저런 일들 뿐인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다시 이런 제대로 된 현장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배치가 왜 이렇습니까?”
뭔가 카메라 배치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구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강 피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조감독 촬영 원본 좀 보여줘.”
강 피디의 말에 구봉이 눈을 반짝였다. 그동안 그렇게 보여달라고 할 때는 꽁꽁 싸매고 있던 이가 원본을 공개한다니 당연히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게 당연했다.
“허…….”
“와!”
놀라는 소리와 감탄사만이 울려 퍼졌다.
이들에게는 영상 하나하나가 충격이었다.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가운데 영상이 끝났다.
“봤지?”
“이런 걸 찍었다는 겁니까?‘
구봉이 여전히 넋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자 강 피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꽤 진도가 빠릅니다. 벌써 CG도 입히고.”
“그게 CG로 보이냐?”
“예?”
반문하는 구봉과 다른 스태프들을 보며 강 피디가 짙은 미소를 입에 그려내었다. 그러고는 그들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원본이다. 아무런 가감이 없는.”
“뭐라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우리를 바보로 압니까!”
스태프들이 들썩였다. 그런 그들을 보며 강 피디가 미소를 싹 지우고는 입을 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오늘 확인하면 된다.”
갑자기 달라진 사람처럼 보이는 강 피디의 모습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달라진 거라고 하기보다는 이쪽이 원래 그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의 카리스마를 익히 아는 스태프들이었기에 모두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강 피디가 다시 그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촬영 기회는 단 한 번뿐.”
강 피디가 말을 꺼내자 몇몇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는 지금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을 했지만 몇몇은 이미 주워들은 게 있는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촬영이니 끊어가는 촬영이니 모두 없다. 롱 테이크로 한 번에 가며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찍으면 된다.”
강 피디의 말에 스태프들이 이제야 이해를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너무 많은 장비와 사람이 동원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장비들 또한 잘 쓰이지 않는 것이 많았다.
마치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완전한 포위망을 구축해 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다들 긴장한 상태에서 촬영을 하기 바란다.”
강 피디의 서슬 퍼런 외침에 스태프들은 모두 목소리를 높였다.
“예!”
“실수하는 새끼는 내가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실력 없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거니까 그리 알도록.”
강 피디의 말에 순간 스태프들의 얼굴이 똥 씹은 것마냥 일그러졌다. 그리고 당부하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또 한 가지. 촬영이 시작되면 아까 본 영상처럼 믿기 어려운 모습이 나올 것이다. 여기 액션은 말 그대로 리얼이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져도 촬영은 멈추지 않는다.”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왔다.
“그거에 놀라서 오디오 물리게 하는 새끼는 내가 친히 이빨을 몽땅 뽑아줄 거니까 그리 알도록.”
“알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뭘 보든지 절대 놀라지 말고 촬영에 집중해라. 거듭 말하지만 찍을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다. 각자 맡은 배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예!”
마치 군인들이 외치는 것같이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보며 강 피디가 싱긋 웃었다.
“그럼 준비하도록!”
강 피디의 말에 각자 맡은 자리로 우르르 몰려갔다. 남아 있는 강 피디에게 구봉이 다가와 아직도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전에 화인 찍을 때 그랬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구봉의 말에 강 피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화인은 새 발의 피다.”
“허, 정말이우?”
“그래. 이건 다시 찍을 수 없는 그런 영상이다.”
강 피디의 말에 구봉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솟구쳐 오르는 걸 느꼈다.
(23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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