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81
253화 트렌든의 꿈
[건물에 있던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건물 밖이었다는 증언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사상자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인원이 정신적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것이 인적 피해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한편 경찰 당국은 이번 일에 대해서 원인 불명으로 규정을 하고 있으며 국과수 등 각종 전문가 집단 역시…….]
뉴스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졸지에 건물을 잃은 강남서 인원들은 몰려드는 이들에 대한 통제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 좀 물러서시라니까요!”
딸랑 딸랑 딸랑!
“어허어어어이!”
알록달록한 복장을 입고 있는 무당부터 한쪽에서 피켓을 들고 열변을 토하는 이도 있었다.
“회개하라!”
일종의 종말론자 같았다.
그 외에 몇몇 동호회에서 왔는지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각종 장비를 가지고 온 이들이 여러 가지 수치를 측정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 역시 건물이 폭삭 무너진 이 일이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젠장. 낮에는 서장이 미치더니 밤에는 건물이…… 마가 낀 건가.”
형사들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 와중에 형사 하나가 뭔가 생각이 난 듯 중얼거렸다.
“참, 어제 고진천 씨 왔다 간 거 서류 정리 다 안 했는데 다시 소환해야 할까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서준모 경장이 달려와 멱살을 잡았다.
“미쳤어?”
“예? 갑자기 왜…….”
“일단…… 그건 나중에 꾸려도 되잖아! 당장 건물이 폭삭한 마당에 지금 상황에 그게 중요해!”
서 경장에게 멱살을 잡힌 형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그건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 다른 서로 이관할 거 다 하고 있잖아!”
“예…….”
서 경장이 멱살 잡았던 손을 놓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옆구리에서 권총을 뽑으려는 듯 잡고 있는 최 경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 경장의 시선이 자신의 옆구리에 와 닿은 걸 보더니 최 경장이 화들짝 놀랐다.
“젠장! 놀래라! 나도 모르게…….”
최 경장의 말에 서 경장이 한숨을 내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은 좀 잤냐.”
“아뇨. 날밤 깠죠. 혹시 몰라서 식구들 다 대리고 나가서 찜질방에서 잤습니다.”
“너도냐?”
“그럼?”
“후…….”
서 경장은 대답 대신 담배 하나만을 입에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그도 최 경장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잠을 못 잤는지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그러고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형사들을 보며 쓴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모르는 게 약이지.”
“그런데 정말 그 양반들이 이렇게 한 걸까요? 과수대도 전혀 갈피를 못 잡던데요. 심지어 진도계에 잡히긴 했는데 불가능한 수치가 나왔다잖아요.”
해당 건물에만 지진이 난 것이다.
담벼락 너머에서는 아무도 그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무리 지진이라 해도 건물이 이렇게까지 압착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여기까지 내용도 말이 안 되는데 이 더운 날 잔해를 땡땡하게 얼어버린 건 또 어떻게 설명을 하겠는가.
“몰라. 그런데 왠지 그쪽이 저지른 거 같아. 안 그러냐?”
“……예.”
촉이란 게 있다.
그들의 촉은 뭔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저지른 이가 바로 고진천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부분은 그들뿐 아니라 그동안 인터넷에 많이 떠돌던 이야기였다. 그가 예능에서 보여준 것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계인 설은 오래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였던 것이다.
“정말 외계인일까요?”
“몰라.”
“…….”
서 경장의 짜증 섞인 대답에 최 경장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건물 잔해를 바라보았다. 그런 최 경장에게 서 경장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에이 씨! 신경 쓰이게!”
“제가 뭘요!”
“넌 저걸 보고도 궁금하냐!”
“…….”
서 경장의 말에 최 경장은 입을 닫았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서 경장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갑니까?”
“블랙박스 뒤지러.”
“저도 가요!”
“젠장, 뭐가 나오면 또 어쩔 거냐고.”
서 경장은 걸어가면서도 암담함을 느꼈다. 궁금해 미칠 것 같기도 하지만 봐도 문제였다. 그럼에도 걸음은 판도라의 상자를 향해 다가가는 것 같았다.
* * *
“지져스!”
트렌든은 텔레비전을 보며 연거푸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 옆에는 리셀이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진천으로부터 더 이상의 핍박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핍박은 없었다.
알아서 스스로 심장이 멈췄던 것 덕분에 별일 없이 넘어간 것이다. 물론 그 후 심장이 멈춘 리셀을 소생시킨 트렌든과의 사이가 좀 더 가까워진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엉클! 이게 가능한 일이야?”
트렌든이 덩치에 맞지 않게 살갑게 굴며 리셀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런 트렌든의 손길을 느끼며 리셀이 대답했다.
“허허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어메이징!”
그리고는 트렌든이 또 열심히 어깨를 주물렀다. 그렇게 한참을 주무른 뒤였다. 자꾸 트렌든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리셀의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평소에도 마치 밤하늘에 뜬 달처럼 리셀의 주변을 맴돌기는 했었지만 오늘따라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런 트렌든의 행동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리셀이 질문을 던졌다.
“뭐 할 말이 있는가?”
“뭐, 그냥…….”
리셀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것이 똥 마려운 강아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 리셀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허허허! 시원하게 말하게나.”
리셀의 말에 트렌든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담아두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있잖아.”
“뭘 말하는 건가?”
“매직.”
“응?”
“나도 배울 수 있나?”
수줍게 말을 뱉은 트렌든의 양 볼이 불그스름했다. 리셀은 물론이고 방구석을 청소하던 승배나 설거지를 하던 광호나 모두 놀란 눈으로 트렌든을 바라보았다.
그때 트렌든이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내 어릴 적 꿈이 슈퍼 히어로였거든. 난 어릴 때 빗자루는 모두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
“빗자루?”
“이 동네에는 그걸 타고 날아다니거든. 피유우우우! 이렇게!”
손을 펴서 어린아이처럼 휘저었다. 그러는 트렌든의 눈동자는 매우 반짝였다. 초롱초롱하다고나 할까.
잠깐 그 거구가 빗자루를 타는 장면을 상상했던 승배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별로 상상할 만한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트렌든은 실망한 표정을 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안 되는구나.”
“일단…….”
리셀이 입을 열자 트렌든의 고개가 팍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들어 올려졌다. 그런 트렌든에게 리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혼자 결정할 것은 아니니 기다리게.”
그렇게 말을 한 리셀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평상 위에 앉아 뭔가 고글 같은 걸 쓰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손을 휘휘 젓는 진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리셀이 다가가자 그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글을 벗어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리셀은 진천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트렌든의 꿈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자 진천이 잠시 손에 들린 고글을 바라보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받았다.
“알아서 하도록.”
그러고는 다시 고글을 쓰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허허.”
짧게 웃음을 지은 리셀이 트렌든에게 다가가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트렌든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때 광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승배에게 다가갔다.
“저건 뭐냐?”
진천이 쓴 고글을 가리켰다.
“저거요? VR 기기요.”
“그게 뭔데.”
“가상현실 체험하는 기기요.”
“그런 거도 있냐?”
“네.”
“그런데 뭘 보시기에…….”
광호가 진천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가끔 손을 뻗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승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걸 그룹 360도 입체 영상요.”
“…….”
“바로 눈앞에서 춤추는 거 같다니까요?”
광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신이 나서 환호를 내지르는 트렌든이 눈에 보였다. 그 고글은 아까 낮에 트렌든이 사가지고 와서 진천에게 선물을 한 것이었다.
지금 보니 사전 작업을 해놨던 것이다.
트렌든을 앞에 두고 리셀이 입을 열었다.
“사실 마법은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하네.”
“으음.”
약간 불안한 감정이 트렌든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리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만에 한두 명 꼴의 재능이 있지.”
“오 마이 갓…….”
리셀의 말에 트렌든이 입을 떡 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거기에 어느 정도 제대로 마법사라 불릴 수 있는 이들은 그 선택된 이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라네. 그래도 좋은가?”
리셀의 질문에 트렌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럼 한번 재능이 있는지부터 알아보자꾸나.”
리셀이 웃으며 바닥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손에서 은은한 빛이 퍼져 나가더니 옥상 위에 빛이 반짝였다. 원이 그려지고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그려졌다.
“이 위에 올라가게나.”
트렌든이 긴장된 얼굴로 원 위에 올라섰다.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지?”
“상상을 하게.”
“상상? Why?”
“마법은 심상의 구현일세. 자, 마법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눈을 감는 게 집중에는 좋을 것이야.”
트렌든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수초가 지나자 마법진의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곳에서 빛이 솟구쳐 올랐다.
마치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다는 오로라와 같았다. 그 빛이 이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승배와 광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글을 쓰고 있던 진천 역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느껴지는가?”
“조금…….”
“그걸 내가 포용한다고 생각을 하게.”
“으음.”
리셀의 말에 트렌든이 약간 고심하더니 집중을 했다. 그러자 빛이 일제히 트렌든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트렌든이 호흡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하아.”
“눈을 뜨게나.”
뭔가 충만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게 뭔지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트렌든에게 리셀이 친절하게 말을 해주었다.
“마나의 세계에 첫 발을 디딘 것을 축하하네.”
트렌든이 환하게 웃었다.
승배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오오! 이 힘은!”
환희에 찬 승배에게 리셀이 친절하게 한마디 해줬다.
“내려오게.”
“…….”
눈을 뜬 승배는 한쪽 벽에 쭈그리고 앉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광호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똑같은 포즈로 바닥을 긁었다. 일만 명 중에 구천구백구십구 명에 속하는 재능을 가진 두 사람이었다.
그냥 인간으로 살아갈 재능 말이다.
트렌든이 되자 둘이 서로 해본다고 나섰던 것이다.
“허허…….”
리셀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왜냐면 진천이 승배가 나온 마법진으로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이내 리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진천이 올라가는 것까지는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진천이 물었다.
“내게 재능은?”
“……그.”
리셀은 심히 곤란했다.
없다고 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부터 말릴걸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25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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