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86
258화 예의를 갖춰라
“이거 국정원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미 빨빨거리고 움직이고 있지 않냐?”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는 입을 다물었다. 움직이고는 있다.
다만 걸린 게 많아서인지 그 움직임이 미미하다. 솔직히 이들이야 운이 좋아 잡은 증거지만 다른 이들은 제대로 된 증거도 잡지 못했을 게 뻔했다.
게다가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상대는 고진천이다.
그냥 스타도 아니고 최단기간에 전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끌어들인 스타다. 그것도 어디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하고도 말이다.
물론 이후 예능 파괴자라 불리며 엄청난 활약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또 한 가지 있다면 트렌든과의 이벤트전.
세계 최고라는 말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그것도 격투기라는 종목에서 말이다. 심지어 트렌든은 무제한급이다. 정식 시합은 아니지만 당연히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그러니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게 뻔하다. 다만 이들이 짐작하고 있는 부분과 다른 건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 때문이라는 점이다.
미국 쪽에서는 그가 미 연구 자료를 탈취한 테러리스트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혼란을 던져 주었다. 물론 바보도 아니고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믿는 척하면서 틈을 보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그가 지금 화려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아직 여유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도 정확한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움직임이 소극적인 것뿐이다.
“그래서 우 의원을 파자?”
“그럼 이 인간…… 인지 외계인인지 모를 이들을 파리?”
“그건 아니죠. 다만 한마디로 궁금은 하니까 주변에서 알짱거려 보겠다는 거 같아서 서글픕니다. 천하의 서준모가 말입니다.”
“‘미친 뽕마왕 정도만 되도 총 들고 쳐들어갔다.”
“끙.”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서 경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경찰이 나쁜 새끼 잡는 데 이유가 있냐?”
“없죠.”
“우중만이가 착한 새끼냐?”
“나쁜 새끼죠.”
“그럼 뭐가 더 필요해?”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증거요.”
“뭐, 그렇겠지?”
물론 지금도 죄라면 죄라고 할 만한 게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엮기에는 국회의원이라는 금배지가 가지고 있는 위력이 너무도 강했다.
“선배가 뽕마왕을 날리고도 안전한 것은 위에 양반들이 몸 사리기 위해 전부 뒤집어씌웠기 때문인 것은 알죠?”
“알지.”
“지금 형님이 상대한다는 놈이 그 위에 양반들이에요.”
“뭐, 그렇지. 그나마 지금은 할 만하지 않냐?”
“그렇기는 하죠. 지금 국회에서도 핫이슈니까요. 다만 제명이니 그런 행동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밥그릇이 생각보다 꽤 많이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경위의 말을 들어 보니 그도 우 의원에 관해 어느 정도 조사해 두었던 게 있는 모양이었다.
“너, 뭐 좀 뒤져 봤구나.”
“당연히 뒤져 봤죠. 간을 봐야 견적을 뽑으니.”
“어때?”
“어렵긴 합니다. 솔직히 건들기는 싫습니다. 만수무강에 지장 있거든요.”
김 경위의 말에 서 경장이 픽 하니 웃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종자들을 가끔 본다. 대충 현실과 타협하고 그렇게 적당히 챙기며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말 영화에서나 나오는 꼴통처럼 들이받는 인간들도 있다.
그건 병이다.
마치 전문직의 직업병 같은 것이다.
청소부 눈앞에 쓰레기가 있으면 치우고 싶어지고 편집자 눈앞에 오타가 있으면 읽기보단 먼저 수정하려 들고…… 형사는 나쁜 놈이 보이면 잡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뭐 해 보자. 무리는 하지 말자.”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가 살짝 의외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이 웬일로 그런 소릴 하십니까?”
“뭐 경험해 봤잖냐. 해 봐야 근본적인 청소는 되지 않는다는 거.”
“…….”
뽕마왕을 무너트렸을 때의 이야기다.
결국 죽은 뽕마왕만 모든 걸 떠안았다. 다른 구린 이들은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말이다.
서 경장은 아마도 그런 결말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뽕마왕에게 총질을 한 것은 최소한 자신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않으려 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노 선배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정도.
“뭐 일단 여기까지 하고 움직이지요.”
“그래. 명산을 좀 파 봐라.”
“제가요?”
“그래.”
“형님은요?”
“우 의원이랑…….”
서 경장이 말을 흐리자 김 경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또 있나 싶어서였다.
“NS엔터의 박연우 실장.”
“으음. 뭐 연관이 없진 않으니까요.”
“그럼 고생해라.”
서 경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 경위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김 경위를 보내고 주차된 자신의 차에 도착했을 때 서 경장은 불청객을 만났다.
“잠시 가 주셔야겠습니다.”
“이거 참.”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들을 보며 서 경장은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하던 대사를 남이 하니 좀 이상타, 기분이. 안 그러냐?”
“그러게요.”
서 경장의 말에 최 경장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앞에 있던 사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태도에 서 경장이 살짝 안색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가잔다고 그냥 가겠소? 당신들이라면?”
그러자 사내들이 신분증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서 경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이씨! 그거 보고 내가 어떻게 알아! 기억도 잘 안 나는구만! 그거 하나 딸랑 내밀면 내가 니들이 국정원인지 안기분지 어떻게 아냐고! 이게 영환 줄 알아!”
“영화가 요즘 여럿 잡는다니까요. 대충 플라스틱 명함으로 딱 찍어서 가져오면 다 되는 줄 안다니까요.”
서 경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어서 최 경장이 맞장구치며 말을 받았다. 그러자 국정원 요원들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봐도 불쾌하다는 표현이었다.
“어이, 형씨들 이러면 곤란해. 우리 바쁘니까 진짜면 정식으로 서로…….”
“형님 서는 무너졌잖습니까?”
“젠장. 그랬지. 여하튼 정식 절차 밟고. 난 당신들 못 믿겠으니까 알았어?”
그때 서 경장의 스마트폰이 진동음을 울려왔다.
그러자 앞에 있던 국정원 요원 하나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전화 받아 보시죠.”
“…….”
서 경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연히 입에서는 당장이라도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려는 걸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여보세요.”
[나 부서장인데. 너 무슨 짓 저질렀냐?]“무슨 짓은 무슨 짓이요.”
[거기 국정원에서 너보고 좀 협조해 달란다.]“……걔들이 왜요.”
서 경장이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사실 이들이 국정원 요원인 것은 진작 알아챘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보다는 왜 그들이 자신을 부르는지 혹은 치울 수 있는 건 치울 수 있는 시간을 벌려 했던 것이다.
[모르지. 그러니 내가 물었잖아!]“왜 이러십니까. 선량하고 정직한 경찰인데.”
[정직 선량까지는 모르겠고 니가 경찰인 건 나도 안다.]“아이씨.”
[너…… 지금 나한테 그런 거냐!]“아뇨 내 팔자가 드센 거 같아 혼잣말한 겁니다.]
서 경장의 말에 부서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심각한 건 아니지 싶긴 한데. 대충 뭐 아는 거 있으면 던져 주고 마무리해라. 너 이번에 사고 치면 더 내려갈 곳도 없어.]“왜 없습니까. 경찰 역사상 기록 한 번 세우는 거지. 최단기간 승진에 최단기간 강등 기록. 순경이면 딱이네.”
[제발이지, 요즘은 숨죽이고 살았으면서 왜 그러냐.]부서장의 말속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낙하산인 서장과는 달리 부서장은 꽤 오래 그를 알아 왔다. 예전 일만 해도 그가 동분서주해서 무마해 주었고 말이다.
서 경장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뭐, 그냥 애들도 커 가고 하니까 월급이나 받아먹자고 살고는 했죠. 뭐 빠지게 해 봐야 빠져나갈 새끼들은 다 빠져나가고…… 아싸리 그때 뽕마왕 새끼뿐 아니라 연관된 새끼들 다 쏴 버리고 마무리 지었어야 했는데.”
[야! 서준모!]“걱정 마십쇼. 사고 안 칩니다. 이번엔, 나도 상대 보는 눈은 있습니다. 그런데 있잖습니까.”
서 경장의 말에 부서장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런 부서장에게 서 경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엔 말입니다. 내가 아니어도 천벌을 내릴 사람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또 무슨 소라야? 너 뭐 사고치는 거 있지?]“제가 치는 게 사곱니까? 적어도 건물 하나는 뭉개야 사고지.”
[헛소리 말고!]“여하간 알았습니다. 이 친구들 눈앞에서 인상 쓰는 거 보니 똥이라도 마려운 것 같은데 같이 움직여 줘야겠어요, 변비 안 걸리게 하려면.”
[야! 야! 내 말 알았지! 적당히 넘겨주고…….]ㅤㄸㅣㄱ.
통화를 끊은 서 경장이 삐딱하게 그들을 보며 말했다.
“남산만 아니면 되니 가 봅시다. 어디까지나 협조요. 알았소?”
“일단 가서…….”
안기부 시절에 악명 높았던 남산을 언급하는 서 경장의 모습에 국정원 요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흑역사를 언급하는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또 있었다.
“어, 내가 다녀와서 알려 줄게. 앙! 우리 이쁜이 일 열심히 하고? 뭐? 아니야. 그냥 협조래, 협조. 우리가 수사하던 데 뭔가가 있나 봐. 에이, 뭐 안기부 때나 그랬지. 지금은 안 그래. 민주사횐데.”
그렇게 들으라는 듯 통화를 하며 이쪽을 보는 최 경장의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사내들이 서 경장과 최 경장을 데리고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 * *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던 판도라 일행들은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오…….”
“큼.”
“굳!”
“음.”
고진천 일행을 만난 곳은 바로 호텔의 실내 수영장이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의자에 누워 각자 한마디씩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옆에는 음료가 놓여 있었고 말이다.
또 모두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 안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예상할 수는 있었다.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늘씬한 몸매를 뽐내며 걸어가자 그들의 고개가 일제히 움직였다.
마치 비디오 촬영 카메라가 영상을 찍듯 천천히 말이다. 한쪽에서 물소리와 함께 젊은 여자가 몸매를 뽐내며 물에서 밖으로 나오자 또다시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탄성.
“여기서 뭐 해요?”
세인의 말에 그제야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진천과 웅삼, 그리고 우루와 트렌든이 그녀들을 알아챘다.
“음. 감상?”
뭔가 이 상황에 맞는 단어를 찾던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내뱉자 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만 제이만이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꺄하하하! 진천 오래비 돌직구 멋지네!”
“훗.”
제이의 말이 마치 칭찬처럼 들린 듯 진천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한쪽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제라르가 수영장의 끝에서 야성미 넘치는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풀쩍 뛰었다. 이내 그의 몸은 인간이 할 수 있는가 싶을 정도의 회전과 변화를 만들어 내더니 수영장 물에 풍덩 하고 빠져들었다.
여자들이 감탄사를 흘렸고, 제라르는 물에서 고개를 내밀며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제라르에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여기서 그렇게 뛰시면 곤란합니다.”
“…….”
안전요원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되긴. 어차피 나와야 할 곳이었잖느냐.”
진천이 주스를 빨대로 빨아 마시며 근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쫌! 벌거벗은 언니들만 보지 말고요!”
“보이나?”
진천이 흠칫하며 세인을 보았다. 그러자 레이니가 한심하다는 듯 대꾸했다.
“고개가 돌아갔거든요.”
“음.”
“얘들아. 대화의 자세가 안 됐잖니.”
그때 어디를 다녀왔는지 제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하얀 가운을 입고 나왔다. 진천 일행의 앞에선 그녀가 가운을 벗어젖혔다.
“자, 수영장에는 예절을 갖춰야 하지 않겠니?”
“길티!”
“흠.”
“브라보!”
남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가운을 벗어젖힌 제이의 몸에는 정말 손바닥만 한 비키니가 붙어 있었다.
한숨을 쉬는 세인과 레이니에게 진천이 명령을 내렸다.
“예의를 갖추도록.”
근엄하게 말이다.
(25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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