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88
260화 한가로운 한때
진천은 벽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텔레비전을 보며 속물들이나 할 말을 내뱉었다.
“역시 돈이 좋군.”
확실히 이곳은 돈만 많으면 누릴 것이 많았다.
그럼 가우리에서는?
“…….”
잠시 생각을 해 봤던 진천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순간 떠오른 것들은…… 좋은 갑주, 좋은 칼, 좋은 창, 좋은 활 등등등 이었다.
진천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머리를 벅벅벅 긁었다.
“일단 전쟁과 관련된 것은 빼고…….”
다시 생각을 했다.
다시 떠오른 것들은…… 좋은 술, 좋은 안주, 좋은 음식 그리고 없었다.
“삭막하군.”
진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물론 저자에 나가면 나름 구경거리는 많았지만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하이안 왕국만 가도 볼거리는 많았다.
귀족들을 위한 연극과 가곡. 음악. 그리고 일반 백성들을 상대로 떠돌아다니는 놀이패 비슷한 게 있었다. 하지만 가우리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동물원 비슷한 것은 있군.”
동물원이라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억지로 비유를 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몬스터라 불리는 짐승들을 가두어 둔 우리였다. 물론 일반 백성들이 쉬이 접근하지는 못하게 막았다.
아무리 패고 길들여도 흉측한 본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나?”
진천이 다시 쓴웃음을 머금었다.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 덕에 국가라는 탈을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쟁에 특화된 집단이었다. 하지만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이 그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것쯤, 그가 잘 알았다.
단지 무력을 가지고 일어선 나라는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문화가 강성한 나라가 살아남게 마련이었다. 상위 문화에 저절로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확실히 고민해 봐야 할 문제군.”
아마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방송이라는 것을 하다 보니 문화라는 것이 무기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문화 침략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었고, 백성들의 머리에 어떤 것이 심어지느냐에 따라 나라에 충성을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무정신이라…….”
가우리에 대한 서책을 뒤져 보았을 때 가장 많이 보았던 것이 바로 저 단어였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
아이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온 백성이 무기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장정처럼 칼을 휘두른다기보다는 노나 활 등을 다루는 정도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보탬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의 손에 무기를 들릴 정도면 이미 그 전쟁은 기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전쟁은 피로를 동반하게 된다. 병영에서도 그런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해 술을 풀곤 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이런 즐길 거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진천은 이곳의 문물 중에 가능한 것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약간 삐뚤빼뚤하지만 정확한 한글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와서 또 한 가지 마음에 든 것은 바로 이 문자였다.
외우기 쉽고 쓰기 좋았다. 그 외에도 수치를 재는 것 등에 반드시 필요했다. 병영에서도 무기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이 수치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가지를 적어 내려가던 진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꾸만 귓가를 거슬리게 하는 소음 때문이었다. 그 소음의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우와! 이런 것도 있어!”
“스위트룸이잖니.”
레이니가 동네 마실 나온 아이처럼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런 레이니를 보며 제이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흥! 언니는 이런데 와 봤어?”
“훗! 우리 주혁 오빠랑 와 봤지. 물론 너무 뜨거운 나머지 침대 주변에서만 지냈지만.”
“아악! 저질! 내 귀가 썩는다!”
“영원히 동심이나 지키고 살려무나. 오호호호호!”
둘을 보며 진천은 잠시 저들을 밖으로 집어 던질까 고민을 했다. 그때 세인이 한쪽에서 훌쩍거리고 있었다.
“히이잉!”
“…….”
뭔가 책 같은데 그걸 보며 눈물 콧물을 짜고 있었다. 물론 소파에 길게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진천이 끝내 입을 열고야 말았다.
“안 가냐?”
“조금만 더 놀고 갈게요. 활동도 끝났단 말이에요.”
레이니가 투정을 부렸다. 심지어 ‘아이잉!’ 하며 어깨를 앞뒤로 번갈아 가며 흔드는 교태도 부렸다. 순간 앞에 놓인 물 컵을 던질 뻔한 것을 참은 진천의 귓가로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뭐예요? 비키니 콘테스트, 경주마 걸? 이거 뭐 레이싱 걸 비슷한 거예요? 미스 가우리 선발…….”
“보지 마라!”
순간 진천이 자신이 적어 내려가던 종이를 재빨리 갈무리하며 외쳤다.
“엄연히 문화를 융성하기 위한 나의 고심일 뿐…….”
“어우, 엉큼해.”
“…….”
제이가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더니 히죽 웃고는 냉장고로 갔다. 그런 진천의 옆으로 우루가 다가왔다. 딱딱하게 굳은 모습에 진천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우루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
-레이싱 모델 축국, 전장에 나갈 때 사기 진작을 위한 치어리더 육성…….
진천의 생각과 유사한 내용이 우루가 적은 종이에 그득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 맞부딪쳤다.
“네놈.”
“폐하!”
갑자기 진천과 우루가 양손을 맞잡는 모습을 본 리셀이 몸을 움찔거렸다.
“헛흠.”
우중만 의원 영상을 찍은 뒤 남자가 저렇게 뭔가 친근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떠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 옆에서 트렌든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예스!”
“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리셀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트렌든의 손 위에 떠 있는 작은 불덩이 때문이었다. 단순한 원소생성마법이었지만 트렌든이 드디어 해 낸 것이었다. 물론 리셀이라는 선생이 있었고 또 마나석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지만 꽤 재능 있는 모습이었다.
“허허허, 이곳의 마나만 순수했다면 좋았을 것을 그게 안타깝구나. 하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마나에 더 빨리 적응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언빌리버블! 그랜파! 어때? 엑스맨 같지 않아?”
이제 불 하나를 피워 올렸지만 트렌든은 들뜬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런 트렌든을 리셀이 대견하다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선물이오.”
웅삼이 내민 것을 받아 든 이실라 공녀가 반색했다.
“고마워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붉혔다.
“어머…….”
“언젠가 이것을 입고 내게 보여 주리라 믿소.”
“아이 참.”
그녀가 받아 든 것은 여성용 속옷이었다.
그것도 꽤나 많이 야한 형태의 것이었다. 하지만 웅삼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이미 그녀가 리셀에게 보관을 부탁한 짐에는 이런 속옷이 종류별로 한 가득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좋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제라르가 안 보이네요?”
“뭐, 어디서 지분거리겠지. 멀쩡하던 인간인데 세이렌들에게 미친 듯이 차이더니 이상하게 변했어. 쯧.”
“그래요? 원래는 안 그랬어요?”
“뭐 그 정도는 아니었소. 훗.”
그렇게 둘은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뭐 우리 동네에선 내 이름 하나면 모두 통하지. 훗훗훗.”
제라르가 나름 멋지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여자들이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었다.
제라르가 있는 곳은 바로 호텔의 바였다.
이곳에서 그는 한국으로 관광 온 여자들을 낚을 수 있었다. 그 여자들은 원래 일행은 아니었고 각기 혼자 여행을 온 이들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관광하다가 마음이 맞아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그때 금발여인이 뭔가를 떨어트렸다. 그 순간 제라르가 재빨리 떨어트린 물건을 낚아챘다. 거의 전광석화란 표현에 어울렸다.
“이런, 조심하지.”
“어머! 고마워요.”
여자가 떨어트릴 뻔한 것을 잡아 준 제라르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제라르가 별것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순간 여자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어머! 프랑스 말도 잘하시네요?”
“후훗.”
순간 여자가 자신도 모르게 프랑스어로 말을 했었던 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동양인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했다.
“영어 아니었어?”
“응?”
그 여인이 이상하다며 몇 마디 중얼거렸다. 그러자 제라르가 너털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런 많이 취해 보이지는 않소.”
제라르의 말에 동양인 여자가 놀라 대답했다.
“일본 말도 아세요?”
“응?”
순간 제라르의 얼굴이 굳었다. 두 여인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제라르를 바라보았다. 그 앞에 있던 또 다른 여자가 금발 여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녀의 말을 들은 제라르가 놀라 외쳤다.
“아, 나 이상한 사람 아니오!”
“이태리 말도 알아들어요?”
그녀들의 말에 제라르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멀찍이 있던 남자가 놀라 외쳤다.
“빌어먹을! 왜 저 여자들은 영어로 말을 하는데 저 남자는 독일어로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순간 바에 있던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제라르는 그곳을 번개처럼 탈출했다.
통역 아이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었다.
* * *
“아만도. 뭐래?”
“아직 기다리라더군.”
아만도의 말에 아킬리노가 얼굴을 찡그렸다.
지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나름 명산실업에서 그들이 지내는 데에 문제가 없도록 도와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여기에 있는 것은 편히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빌어먹을.”
“아만도. 어차피 우리만으로는 어려운 걸 알잖아. 이들도 이미 당해서 더 조심하려는 것뿐이야.”
아만도의 말에 아킬리노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할 마음은 있는 거야?”
“내가 외부로 알아봤는데 나름 철저히 준비 중인 것 같아. 우리가 부탁한 것 외에도 따로 더 구하는가 보더군.”
“음.”
아만도의 말에 아킬리노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애들 잘 관리해. 배부른 돼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해.”
“걱정 마. 다들 프로들이니까.”
“그래. 그리고 미스터 천에게 우리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고 확실히 알리라고.”
“오케이.”
아킬리노의 말에 아만도가 어깨를 으쓱였다.
* * *
“이거 우 의원만 믿다가 결딴나겠는걸.”
박연우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김신양이 한숨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그나마 우리는 좀 나은 편입니다. 다른 곳은 완전 다 까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피디들이 다들 칼을 간 듯합니다.”
“젠장. 우 의원이 멀쩡했으면 이런 일이 없이 유도리 있게 풀어 갈 수 있었을 건데.”
추후에 우 의원의 위세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등 그런 변명을 대면서 일선 피디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밀어주면서 풀려 했었다. 하지만 우 의원이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완전 역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뭐래, 그 인간은?”
“오늘 중으로 중대 발표를 하겠답니다.”
신양의 말에 연우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걱정스런 음성을 내뱉었다.
“설마 스스로 의원직을 그만두겠다거나 그러는 건…….”
“버티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기다려 봐야지 않겠습니까?”
그때 신양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신양이 놀란 표정으로 연우에게 말을 전했다.
“지금 우 의원이 텔레비전에서 생방 인터뷰를 한답니다!”
“뭐?”
연우가 놀라 벌떡 일어섰다.
(26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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