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90
262화 믿을 수 없는 일도 믿어야 한다
박연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일까요?”
“몰라.”
김신양의 질문에 연우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상황이 또 뒤바뀌었다. 물론 그렇다고 우중만 의원이 이전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는 해 취급할 수 없게 변해 버렸다.
즉 변한 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상황이 되자마자 연락이 온 것이다. 며칠 시간 차이도 없이 말이다.
“혹시 그때 그 일 때문일까요.”
신양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짚이는 게 있었다. 그런 신양의 질문에 연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순간 사타구니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살다 살다 거기에 손자국이 난 적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멍이 들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연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천성일이 들어왔다.
“잘 있었나?”
“예, 형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런 천성일의 뒤로 연우로서는 이곳에 있지 말아야 할 이가 들어왔다. 유성원이었다.
진구파 때의 기억이 결코 좋지 못했던 연우가 그를 살짝 바라보자 성일이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앞으로 종종 볼 거야. 꽤 신경 써서 모신 친구니까.”
귀찮은 듯 뱉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남다른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걸 알았는지 성원이 고개를 살짝 숙여 연우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 성원에게 연우 역시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게 있다.”
“강 피디 건이라면 이제 더 이상은 쉽지 않습니다.”
“그거 말고.”
“그럼.”
성일이 연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실라.”
“그…….”
이실라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연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듣기만 해도 욱신거리는 이름이었다.
“그날 뭔가가 있다. 그걸 처음부터 뒤지기 위해서는 그년이 필요해. 좀 데려와라. 그리고 너도.”
성일이 턱짓으로 연우의 옆에 앉은 신양을 가리켰다. 그러자 신양이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저 말입니까?”
“너도 그날 왔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그날 입구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온 게 전붑니다.”
신양의 변명에 성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오라고!”
“예.”
성일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신양은 그대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독 오른 독사와 같은 그들에게 대거리를 해 봐야 손해밖에 없다. 게다가 연우도 아닌 그가 엉겨 봐야 피밖에 더 볼 게 없다.
“그년도 마찬가지다.”
그때 신양이 연우의 눈치를 보며 나섰다.
“그게 조금 어렵습니다.”
“내가 지급 계집 대 달라는 걸로 보이냐?”
순간 성일이 으르렁거렸다. 그 사나운 눈빛에 신양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기에 눈빛을 피하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게 우리도 찾고 있습니다.”
신양의 말에 성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신양은 연우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 그년이 우리 쪽에 사고를 좀 쳐서.”
“그딴 년을 어르신께 끌고 온 거냐?”
“그게 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성일을 대신해서 성원이 나섰다.
“다른 의도는 아닙니다. 솔직히 NS엔터에서 우리 어르신께 해코지를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전히 연우는 입을 닫고 있었다. 대신 신양이 성원의 말을 받으며 대꾸했다.
“아시다시피 그날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영상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촬영 영상은 거치식이 아니라 손으로 들고 찍은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내부의 감시카메라는 그 이실라라는 여자 이외에 드나든 사람이 아무도 찍힌 적이 없습니다.”
성원의 말에 신양은 연우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때 연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오는 날 갑자기 의원님이 외국 여자를 찾았습니다.”
“음.”
연우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성일이 화를 누그러트리며 귀를 기울였다. 압박을 할 만큼 했기에 이제는 풀어 줄 때였다.
“사실 그 여자 그날 처음 만났습니다.”
“뭐?”
그날 처음 만났다는 말에 성일의 눈썹이 역팔자로 변했다. 하지만 연우는 흔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의원님이 부탁하기 전에 이미 와서 오디션을 봤던 친굽니다. 나름 상품성이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의원님이 외국 여자를 찾았습니다.”
“으음.”
“막말로 우연이긴 했지만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여자 역시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 그쪽으론 말이 통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귀한 원석 하나를 보낸 겁니다.”
“잘했다는 건가?”
성일이 화를 억지로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연우도 그의 분노에 휘둘리지 않았다.
“설명을 들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피해잡니다.”
연우가 물러서지 않는 모습에 성원이 테이블 아래로 성일의 허벅지를 슬쩍 찔렀다. 사전에 부탁한 부분이었다. 그러자 일단 성일이 화를 누그러트렸다.
“말해.”
“그래서 신양이를 통해 보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니 보좌관을 남기고 이실라를 도로 내보냈습니다. 그냥 차인 겁니다.”
“음.”
“이쪽에서 온갖 말로 치장해서 보냈는데 손도 잡아 보지 않고 찬 건 의원님이었습니다.”
연우의 말에 신양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날 경호원 분들도 봤을 겁니다.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되돌아왔습니다.”
연우가 신양의 말을 이어 설명을 마무리했다. 그때 성원이 다시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여자를 찾고 있다는 말은 뭡니까?”
성원의 질문에 연우는 잠시 얼굴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막말로 이 나라에서 그분 말만 들으면 넌 뜬 거나 다름없다고 엉덩이 두들겨서 보냈는데 그대로 퇴짜 맞고 왔습니다. 그럼 우린 뭐가 됩니까.”
“그렇겠지요.”
성원이 조곤조곤 말을 받아 주었다. 한결 말하기 편한 분위기로 이끈 것이다. 성원이 다소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그 여자. 그냥 키워도 돈이 될 자질이 있었습니다. 그런 원석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가 어디 작은 엔터 회사도 아니잖습니까. 포주도 아니고 말입니다.”
성원의 말에 성일이 얼굴을 굳혔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NS쯤 되면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야 한다. 성원이 재빨리 추임새를 넣었다.
“그렇죠.”
“해서 어쩔 수 없이 전 그 여자에게 확신을 심어 줘야 했습니다.”
“확신이라면 어떤 겁니까?”
성원의 질문에 연우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제가 우 의원님 역할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
“마침 제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해서 그녀의 구겨진 자존심을 세워 주려 했지만 우 의원님께 받은 상처가 컸는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겁니다.”
연우의 말에 신양이 그를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그게 딱 지금 상황을 말하는 것 같았다. 분명 내용은 비슷한데 해석만 다르지 않은가.
‘이렇게도 포장하는구나.’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은 달랐다. 성원이 끼어들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냥 보냈다는 겁니까?”
“회사의 위신이 있습니다.”
“나가서 떠들 수도 있는데 그냥 보냈다는 걸 믿으란 말입니까?”
성원의 음성은 조곤조곤했지만 제대로 허를 찌르고 있었다. 전에 돈을 뜯길 때에도 속 터질 정도로 만들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연우는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말했다.
“그…….”
그때 성일이 결정타를 날렸다.
“내가 알아보기 어려워서 이러는 것 같아?”
성일의 말에 연우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신양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똑바로 말해.”
성일이 다시 으르렁거리며 협박을 하자 연우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그년이 내게 화를 풀었습니다.”
“화를 풀어?”
“……그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연우에게 성원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지금은 믿으니까, 저희 대표님이 직접 오신 겁니다. 만약 그 믿음이 깨어진다면 앞으로는 저나 대표님을 볼 일이 없을 겁니다. 아무리 어르신이 어렵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그 힘을 직접 활용해 보셨지 않습니까.”
성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이는 성일의 으름장보다도 더한 협박이었다.
“거시기를…….”
연우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하지만 더는 숨겨 봐야 답 없다는 걸 안 그는 그날의 일을 말해야만 했다.
“오디션을 봤으면 연락처가 있었을 거 아냐!”
성일이 버럭 소릴 질렀지만 답은 없었다. 신양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연락처가 엉터리였습니다. 우리도 그년을 아직까지 찾는 중입니다.”
“젠장 빌어먹을!”
성일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때 옆에 묵묵히 있던 성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여자를 잡아야 뭔가 풀릴 것 같습니다.”
“찜찜하지?”
성일이 묻자 성원은 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어르신께서 우연히 외국 여자를 찾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걸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힘이 듭니다.”
“그렇지.”
이전이라면 우연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벌어지는 일들 중에 평범하다고 할 만한 일들은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경찰서 건물이 짜부라지고 얼어붙는 일도 벌어지는 상황이다.
심지어 누가 촬영했는지도 모르는데 촬영이 되었다.
“경찰서 쪽에 알아보니 그날 증거 자료를 본 이들 중에서 투명인간 말이 나왔답니다.”
“그건 듣긴 했지.”
듣긴 했지만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성원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물론 솔직히 그걸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나름의 트릭이 있었다면 꼭 거짓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트릭?”
“이미 우리 어렸을 때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에펠탑을 없애던 마술사가 있었지 않습니까?”
“아…….”
성원의 말에 성일이 탄성을 흘렸다.
“물론 어르신의 경우 지척에서 당한 것이기에 마술로 치부할 수는 없지만 뭔가 우리가 모르는 트릭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 역시 우연으로 치부하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납니다.”
성원의 말에 성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솔직히 믿지 못할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지.”
명산실업 건물 쪼개진 것도 강남서 붕괴 사건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날 하늘을 날아 내리던 이들을 본 이가 한둘이 아니었고 그 동영상은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쿨한 여자라 해도 몸 던져 가면서 뜨고 싶어 하는 여자가 연락처를 허위로 적는다? 이거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성원의 말에 연우와 신양이 움찔거렸다.
사실 그들도 의심했던 부분이 바로 그 점이었다. 하지만 의심에서 끝냈다. 만에 하나 연관이 있다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년 찾고 있다고 했지.”
“예.”
“지금까지 자료 다 뱉어 내.”
“알겠습니다.”
신양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연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성원이.”
“예.”
“우리 연줄 있는 지구대 애들 다 동원해 줄 테니 인근 감시 카메라 다 뒤져서라도 찾아. 그년부터 끌고 온 뒤부터 일을 풀어 가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이어서 성일이 연우와 신양을 노려보았다.
“만에 하나 그년이 정말 연관이 있다면 각오해야 할 거다.”
으르렁거리는 성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연우와 신양의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잡히지 않기를 비는 두 사람이었다.
(26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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