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97
269화 그들이 사는 방법
“…….”
침묵이 흘렀다. 세 명의 남자는 아직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고,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쯧, 옷이라도 입혀서 데려오지.”
진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하자, 리셀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들을 데려온 건은 논의가 무색하게 간단했다. 먼저 가은이 전화를 했다. 지금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대답은 지금은 목욕탕에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했다. 가은은 주변에 먼저 가 있겠다고 하고 목욕탕 위치를 물어보았고 최후배 경장은 친절하게 위치를 말해 주었다.
이후는 간단했다. 리셀이 가서 그들을 모두 낚아 온 것이다.
물론 옷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대로 리셀에게 납치되어 버린 것이다.
“주변에 눈이 없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허허허.”
“하긴 뒤를 생각했을 때 그게 좋긴 하겠군.”
두런두런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세 명의 알몸 남들의 안색이 그대로 창백해졌다. 그때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이 아닌 셋인데?”
“눈치가 저자도 뭔가를 아는 듯했사옵니다.”
리셀의 대답에 모두의 이목이 김창진 경위를 향해 집중되었다. 순간 김 경위는 하늘이 노래짐을 느꼈다.
“뭐라도 던져 주도록.”
호텔 가운을 입은 세 명이 거실 카펫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진천이 앉아 있었고 그 뒤에는 우루와 웅삼 그리고 제라르와 리셀이 시립하듯 서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가은이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운을 입어서인지 아니면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진정이 된 김 경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실수하시는 겁니다.”
협박이라기보다는 정중한 충고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그러자 우루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실수는 후환을 살려 둔 거이 실수디.”
“그건 그렇군.”
“역시 울절께서 선경지명이 있으셔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데려온 거야.”
“지금이라도 싹 치우죠?”
“허허허.”
우루의 말에 진천이 먼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제라르와 웅삼이 맞장구 쳤다. 그리고는 리셀은 뭐가 재미있는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들의 반응을 본 서 경장과 최 경장이 김 경위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김 경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서 경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뭐라고 불러야 할지…… 조상님이라고 해야…….”
“죽은 놈 취급인 건가.”
진천이 이를 드러내며 웃자 서 경장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아닙니다.”
“폐하!”
서 경장이 변명을 하는 사이 최 경장이 넙죽 엎어지며 외쳤다. 그러자 김 경위와 서 경장이 놀란 눈을 했다. 그때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말하라.”
“소, 소인들이 무지하여 폐하께 누를 끼쳤사옵니다.”
“…….”
김 경위와 서 경장은 어이없어하며 최 경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반응은 달랐다.
“일어나라우. 고조 예의가 있구만기래.”
우루가 말을 하자 최 경장이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일어섰다. 그리고 김 경위와 서 경장이 동시에 외쳤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본능이 움직인 것이다. 이래야 할 것 같다는 본능.
그 모습을 보며 가은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일어선 셋은 너 나 할 것 없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하여 미국의 정보부에서 인원을 파견한 것이옵니다. 또한 이 나라의 정보부 역시 폐하의 옥체에 손을 대려는 발칙한 모의를 하고 있음을 소인들이 알아낸 것이옵니다!”
“맞사옵니다! 그리하여 폐하의 신상에 누가 될까 두려워 송 작가로 하여금 이를 귀띰해 주었던 것입니다!”
최 경장의 말에 서 경장의 외침이 잘 버무려졌다. 이때다 싶은 김 경위가 끼어들었다.
“소인은 직접 적진으로 침투하여 이중첩자, 아니 간자 노릇을 하며 그들의 정보를 캐내었사옵니다!”
김 경위가 외치자 서 경장과 최 경장이 동시에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두 사람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김 경위는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었다.
‘나도 좀 살자!’
호텔 가운만 아니라면 사극을 찍는 촬영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나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본 진천은 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진천의 질문에 다들 시선을 슬슬 피했다. 심지어 개중 머리를 그나마 굴리는 리셀 역시 허허 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진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들 중 머리를 전문으로 쓰는 이는 없었던 것이다.
“흐음.”
그때 트렌든이 슬쩍 끼어들었다.
“이 친구들 진짜 같기는 한데. 저주 같은 거 걸면 어때? 그랜드 파! 할 수 있잖아?”
이젠 아예 엉클에서 그랜드 파로 부르는 트렌든의 말에 리셀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찡긋거리는 트렌든의 모습을 보고 뭘 하자는지 알아챘다.
“그러면 제가 이들에게 마법을 써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사옵니다. 아마 다른 생각을 하는 즉시 온몸이 불에 타 버릴 겁니다.”
“굳!”
트렌든이 환하게 웃었다. 반대로 앞의 세 명은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이는 어디에든 있기 마련이었다.
“기런 것도 됩네까?”
“…….”
리셀은 잠시 우루를 태워 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다행히 눈앞의 세 명은 그런 것을 눈치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라지고 갑자기 나타나고 공간을 이동하고…….
건물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게 무너져 버리는 모습을 기억했다. 당연히 지금 리셀이 한 말을 진실로 믿고 있었다.
“부작용은 없겠지?”
“위해를 가할 마음만 없으면 사라집니다.”
“그렇다는군.”
진천의 말에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트렌든이 그들의 고민거리를 지워 주었다. 트렌든이 그들에게 다가가 뒤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나 봐. 같은 편이 되면 편하잖아.”
그들의 시선이 트렌든을 향했다.
‘어쩌면…….’
순간 서 경장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따지고 보면 악연이다. 진천에게 박살 난 건 트렌든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서 경장은 그 이유를 저주 마법에 무게를 두었다.
‘어쩐지.’
서 경장이 마음을 먹는 순간 최 경장이 먼저 나섰다.
“신의 믿음을 이렇게라도 보일 수 있다면 저주라 할지라도 웃으며 받아들이겠나이다!”
그 모습을 보며 서 경장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딱 간신이 됐겠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자신도 최 경장의 옆에 넙죽 엎드려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선 리셀이 마법을 부렸다. 물론 보기에는 뭔가 불길해 보이는 빛이 그들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단순한 환상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그들은 진땀을 흘리며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그럼 이야기 나누도록.”
진천이 먼저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그들의 앞으로 온 것은 바로 웅삼이었다. 우루는 리셀에게 끌려갔고, 제라르는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사라졌다.
“우리 할 말이 많을 거 같아. 그치?”
“가우리파…….”
“맞고 할까?”
“아뇨.”
최 경장이 도리질을 치자 웅삼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우둘투둘함에 최 경장은 이 껄렁거리는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중만이 요즘 뭐 해? 그놈 파고 있다며?”
웅삼의 질문에 서 경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우중만이는 이번일로 크게 타격을 입은 덕에 그가 명산실업에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물론 정계에서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 같아?”
웅삼의 질문에 서 경장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우중만이라면 아마 다시 회복을 한 지금 어떻게든 복수를 할 것이 분명했다.
“모습이 어느 정도 드러난 지금 아마 이전보다 더 한 복수를 꾸미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그래? 정신 못 차렸네?”
두려워 하기는커녕 피식 웃는 모습에 서 경장은 속으로 대단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수로 복수할까? 명산 가지고는 안 될 건데.”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니들이 알아봐.”
“예?”
“니들이 알아보라고.”
순간 셋이 서로를 둘러보았다. 그때 웅삼이 다시 말을 이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떠나는 마당에 뒤는 깨끗해야 하지 않겠어?”
떠난다는 말에 셋의 눈이 다시 웅삼을 향했다.
그런 그들에게 웅삼이 말했다.
“일주일 안에 니들 저주도 풀릴 거야. 그동안만 고생해.”
그 말은 곧 이들이 일주일 안에 뜬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떻게 뜨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하면 안 될 질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들 역시 우중만을 곱게 놔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왕 그의 명줄을 잡을 자료를 얻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의 비밀 장부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비밀 장부?”
“명산실업과의 연결고리를 잡으면 확실히 엮을 수 있습니다.”
서 경장의 말에 웅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편하고.”
“예. 그럼 좀 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너 이중첩자.”
“옙!”
“너 정보분지 뭔지 하는 애들 동선 파악하면 연락해라.”
“거기까지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는 김 경위를 보며 웅삼이 잠깐 고민을 했다. 딱 보니 제대로 첩자 질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보자…….”
고민을 하던 웅삼이 손바닥을 탁 치고는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순간 세 명은 불안해졌다.
* * *
김창진 경위가 모습을 드러내자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합니까?”
“중요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정보라는 말에 정보부 요원들이 눈을 빛냈다.
“중요한 정보?”
“일단 이 영상 좀 보십시오.”
김 경위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그러자 태블릿에서 영상이 플레이 되었다.
“아, 아이언 맨?”
가슴팍에서 빛이 나는 사내가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우중만 의원의 저택에서 몰래 나오는 모습이었다. 손에 뭔가를 들고 나왔다. 이어 다른 영상에는 그가 눈에 익숙한 건물로 들어갔다.
“여긴?”
“명산실업입니다. 이곳에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보부 요원들이 심각한 고민을 하는 모습이었다. 분명 아이언맨은 우중만 의원을 테러했던 이였다. 그런데 명산 실업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뭔가를 들고 나온 것도 이상했다. 뭘 훔쳐 나온 것이라고 보기에는 들어간 곳이 명산실업이라는 게 걸렸다.
“우 의원이 더글라스 상원의원과 계속 접촉을 하고 있잖습니까.”
“그건 나중에 말하도록 하지.”
누군가 무심코 흘린 말에 김 경위를 슬쩍 바라보며 입을 막았다.
“이건 어디서 확보한 겁니까?”
“서 경장과 최 경장이 확보한 겁니다. 아마 그 친구들도 알려 올 겁니다. 제가 여기 있는 걸 모를 테니까요.”
말을 하기가 무섭게 스마트폰이 진동음을 울렸다.
정보부 요원이 꺼내 든 스마트폰에는 서준모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27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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