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898
270화 태왕기의 완성
전화를 끊은 서준모 경장에게 최후배 경장이 불안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형님, 그거 진짜 믿으시는 겁니까?”
“닥쳐! 네놈이 제일 빨랐잖아!”
“그, 그야 나도 모르게…….”
최 경장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뭔가 불만인 듯 입을 놀렸다.
“그러는 자기는 안 했나…….”
“이익!”
“누워서 침 뱉기지.”
“끙.”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 경장이 한숨을 탁 내뱉자 최 경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막말로 과거에서 왔든 간에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이 설명되느냔 말입니다.”
“……안 되지.”
“내 말이요!”
최 경장의 말에 서 경장은 맥이 탁 풀렸다.
솔직히 아직도 믿지 못하겠지만, 지금까지 그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한다면 그건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이해 불가의 존재.
갑주. 그리고 마법. 그리고 오래된 역사의 조각.
“모르겠다. 그런데…….”
“예.”
“우중만이는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서 경장의 말에 최 경장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꿩 대신 닭입니까?”
“뭐…… 꿩에 비유하긴 좀 그렇지 않냐?”
“호랑이라고 하죠. 호랑이는 못 잡으니까.”
“그래.”
언제부터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닭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비유였다.
둘은 차를 몰고 움직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얼마 전 활용했던 중고차 판매상이 있는 곳이었다. 다시 한 번 블랙박스를 활용해야 할 때가 왔다.
* * *
“이대로 보내도 될까요?”
“문제가 생긴다면 소환하면 되네.”
가은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묻자 리셀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서준모 경장과 최후배 경장을 보낼 때 마법진을 새긴 목걸이를 함께 보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저주가 발동하지 않는 일종의 마법 아이템이라고 속여서 들려 보낸 것이다. 몸에서 떼어 내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 저주마법이 활성화되어 몸이 불타오를 거라는 말을 곁들여 주면서.
물론 그런 마법은 아니었다.
저주마법을 거는 학파가 존재했었다는 말은 있지만, 적어도 리셀은 그런 마법을 알지는 못했다.
그 마나석은 일종의 위치추적마법이 걸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리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열심히 가지고 다닐 걸세.”
리셀의 말에 가은이 피식 웃었다.
정말 이들과 함께 있는 순간순간이 정말 마법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 예로 한쪽에선 트렌든이 얼음덩이를 만들어 내고는 그것을 핥아 먹어 보며 ‘지저스!’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던 가은의 입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의 시선 끝에 고진천의 모습이 걸렸다.
처음에는 자신의 작품을 가장 빛내 줄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야성에 조금씩 반해 갔다. 그러나 그의 정체를 알고 난 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휘몰아쳐 왔다.
그는 왕이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먼 과거에서 온 왕.
열제라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제야 그 야성과 빛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더욱 그에게 빠져들었다.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설렘을 추억으로 간직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 일 뒤인가요?”
“허허.”
리셀이 그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때 뭔가를 논의하던 진천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
“아니에요.”
“울지 마라.”
진천의 말에 가은이 화들짝 놀랐다.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볼을 만져 본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왜 이러지…….”
그때 진천의 두툼한 손이 그녀의 볼을 매만졌다. 딱딱한 엄지가 그녀의 눈가를 훔쳐 주었다. 눈물이 닦였지만, 그보다 더 많은 눈물이 빈자리를 타고 흘렀다.
그런 그녀에게 진천이 다시 말했다.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예.”
“그러니 서운해 마라.”
가은은 목 놓아 울었다. 마음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울고 진천은 그녀의 앞에 석상처럼 서 있었다.
* * *
구슬피 시작되었던 노래가 어느새 웅장하게 몰아쳐 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높이를 올렸고 악기들이 진동을 해 나갔다. 남자와 여자의 음성이 악기와 어우러져 울려 퍼졌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지만, 그 안의 악기들은 너무도 익숙한 것들.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 그리고 대금과 가야금이 그 절정을 알리고 있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면이 끝이 났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작곡자인 홍도기도 멍한 표정일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강찬성 피디가 입을 열었다.
“하아.”
말이 아닌 탄식. 그리고 작곡가인 홍도기 역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그림일 줄은…….”
“아니야. 잘했어. 나도 이게 한계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야. 다만 영상이 아니…….”
화면에 멈춰진 고진천과 그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이 너무 잘한 거야. 처절하게.”
강 피디는 훌훌 턴 느낌이었다.
십 분의 러닝 타임을 가진 뮤직드라마였다. 그런데 마치 수십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 안의 이야기는 너무 꽉 차 있었다. 뭐 하나 버릴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
“이 이후로 누구도 왕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거 같네요.”
스텝 중 하나가 멍한 음성을 내뱉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특히 이후로는 광개토대왕에 관련된 드라마를 만들 수 없을 겁니다. 고진천 씨가 아니라면요.”
“그렇지?”
“이건 세계에도 먹힐 드라맙니다. 왜 이걸 뮤직드라마로 시작했는지 안타까울 정돕니다.”
누군가의 말에 강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들은 태왕기 뮤직드라마의 최종 편집본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이 차지하는 시간은 육 분.
그들의 대사와 음성 처절한 전투를 그대로 담았다. 그리고 이후부터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해서 총 십 분의 러닝 타임을 만든 것이다.
“앞으로 다시 이런 걸 만들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질문에 강 피디가 대답했다.
“이건 기술로 연기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저들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어.”
강 피디의 말에 모두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 피디가 손수건을 찾았다. 눈앞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늙었나 보다.”
눈물을 닦으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 피디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 영상을 봤던 이들이 모두 휴지나 손수건으로 벌게진 눈가를 닦고 있었다.
강 피디와 눈이 마주친 누군가가 대답했다.
“우리 다 늙었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허, 허허.”
강 피디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스텝 중 하나가 말했다.
“액션을 보고 울 수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게…….”
누군가의 최후를 아름답게 그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처절하게 싸우고 몰아치고 광대한 벌판을 달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일대기를 본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심장은 아직도 쿵쾅쿵쾅 뛰었다.
“만약 말이야.”
강 피디가 중얼거렸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런 가운데 강 피디의 음성이 차분하게 흘렀다.
“과거에 광개토대왕이라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대답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 비추어진 고진천의 모습은 위대했던 과거의 제왕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어떠한 영상적인 테크닉으로도 담을 수 없는 진정한 왕의 모습이었다.
“아마도요.”
누군가의 음성에 아련함이 그려졌다.
“이거 언제 공개되는 겁니까?”
“오 일 후.”
강 피디의 말에 모두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겠군요.”
그 말에 강 피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히겠지.”
* * *
“우중만인가 하는 놈 그냥 없애 버리죠?”
계웅삼이 툭 던진 말에 트렌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노노. 아마 더 복잡해질걸? 아까 보니 한국 마피아와 결탁되어 있다고 하니 그 연결고리만 터트리면 알아서 몰락할 거라고.”
트렌든의 말에 웅삼이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제라르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차피 없애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제라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중만을 처리하는 건 쉽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이 떠난 이후에 시끄러워질 수가 있다.
“일단 형사들이라는 이들이 들쑤실 테니 그 사이 우리가 증거가 될 만한 걸 찾아 주면 알아서 하겠지.”
고진천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기는 하지만 더 크게 일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밤이 지나면 남은 날은 사 일이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리셀.”
“예.”
“다녀오도록.”
“……예.”
아무래도 몰래 다녀오기에는 리셀이 가장 좋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도 다른 이들보다 나았다.
우루나 웅삼 그리고 제라르 등이 움직이면 무슨 일이 있을 때 쓸 방법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살인멸구.
너무 단순한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이기에 리셀을 보내는 것이었다. 다 죽이고 증거 자료 같은 걸 찾으면 뭘 하겠는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리셀이 몸을 숨긴 뒤 방을 나섰다.
* * *
“빨리 움직여!”
“어서!”
명산실업의 지하창고에서는 건장한 사내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전에 옮겨 놨던 상자들을 다시 빼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유성원이 이를 악물고 지켜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들이닥치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빌어먹을.”
이들이 옮기는 것은 바로 총기류였다. 이렇게 급하게 옮기는 것은 바로 위에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에서 들이닥칠 것이라는 정보 말이다.
이 역시 우중만 의원과 연결된 비선에서 온 연락이었다.
위에서는 천성일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성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 * *
“어떻게 됐어?”
[늦지 않게 옮겼습니다.]“알겠네.”
우중만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끊었다.
“젠장! 갑자기 국정원이 왜 움직여!”
“미국 쪽 움직임이 들킨 것 아닙니까?”
“으음.”
보좌관의 말에 우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정보부에서도 모를 일이 아니었다.
미국이 아무리 압박을 주었다 하더라도 그 협박이 전부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미국의 압박을 풀어낼 만한 정보를 얻었으니 움직였을 것이다.
“금고의 물건도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좌관의 말에 우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곳이 가장 안전해.”
“하지만 국정원이…….”
“국정원이라 해도 내 집은 못 뒤져. 나랑 연관된 놈들이 한둘이야?”
우 의원의 말에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의원은 둘째 치고 정부를 구성하는 요인들 중에 그의 신세를 안 진 이들은 없었다.
우 의원에게는 그들이 고객이었다.
당연히 그들 역시 우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치부가 우 의원에게 있으니 말이다.
“일단 전화 돌려서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나간 뒤 우중만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서재를 뒤적였다. 서재가 통으로 움직였다.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금고였다.
“이게 여기 있는데 누가 여길 들어와.”
우 의원이 입술을 꾹 다물고 굳게 닫힌 금고를 바라보았다.
그 금고를 한쪽에 투명마법을 펼치고 있던 리셀이 활짝 웃으며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우 의원이 낮게 웃었다.
“흐흐흐흐흐!”
‘허허허허허!’
리셀은 속으로 웃었다.
(27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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