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02
274화 습격자들의 정체
클럽 입구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내들이 있었다.
“요즘 참 평화롭지 않냐?”
“당연하지. 그 인간 안 보이니 얼마나 좋아.”
“그래도 가끔 불안해.”
불안하다는 말에 함께 말을 주고받던 사내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왜?”
“이 평화가 깨질까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 빌어먹을 인간들 안 온다고 했잖냐.”
재수 없다는 듯 말을 쏘아붙이자 불안하다는 말을 했던 사내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흐흐흐.”
“여하간 룸싸롱 와서 아가씨들에게 주야장천 군가만 시키는 인간들은 첨 봤다.”
“하긴 진상은 진상인데 희한한 진상이다, 그치?”
“그래. 뭐 어쨌든 그 일 때문에 각 조직 간에도 일단 휴전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렇지. 한때나마 중소조직들이 통합되다시피 했으니까. 가우리파라…… 젠장 무슨 생선 이름도 아니고.”
사내의 푸념에 함께 있던 사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때였다. 그들의 앞으로 봉고차 몇 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농담이나 주고받던 사내들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뭐야?”
“씨팔 일단 알려야겠다!”
달려오던 봉고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문이 열리며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젠장!”
동료가 안으로 뛰듯이 들어가자 혼자 남은 사내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역시 재빨리 뛰어 들어가며 외쳤다.
“습격이야!”
“새끼, 눈치 빠르네!”
그 순간 뒤에서 달려 들어온 사내가 붕 뜨면서 안으로 도주하던 사내의 등짝에 삼단 봉을 내리쳤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외치며 달려 들어가던 사내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커억!”
고통에 계단을 구르는 사이 사내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지나치면서 몇 명이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삼단 봉과 야구방망이로 구르고 있는 사내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퍽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계단에 걸쳐진 사내가 축 늘어졌다.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리고 통로 쪽에서는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막아!”
“빨리 조져!”
“어디서 온 개새끼들이야!”
하지만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로 일방적인 외침만 주고받다가 욕설과 비명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내 입구 쪽으로 흐트러진 옷차림의 회사원들과 야한 옷차림의 아가씨들이 사색이 되어 튀어나왔다.
안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로 떨어져 내린 조직원이 바닥에 뒹굴었다. 그 뒤로 따라 들어간 사내가 사시미라 불리는 칼을 휘둘렀다.
사정없이 들이밀었다 뽑은 칼날에는 핏물이 번져 있었다.
“빨리 끝내!”
하지만 습격을 받은 쪽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한쪽에 몰리는가 싶더니 일제히 치고 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치고받던 중 가장 맹렬하게 주먹을 휘두르던 조직의 두목인 윤도수가 습격자들 중 하나를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너?”
“오랜만입니다. 도수 형님.”
“씨팔, 명산실업이 왜!”
명산실업이 이 바닥에서 거물이었지만 일선 조직들을 이유 없이 두들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큰물에서 노는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몇 마디 하면 일선 조직들은 알아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명산실업이 그들을 친 것이었다.
“뭐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쇼.”
“뭐 그딴…….”
“가우리파.”
뭐라 하려던 순간 튀어나온 단어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구기며 외쳤다.
“씨팔, 그거 해체된 지가 언젠데! 그리고 막말로 그때 도움 요청할 때 쌩 깠잖아!”
“쌩 깐 게 아니라 방치한 거요. 그런데 더는 방치할 이유가 없어진 거고.”
사내의 이죽거림에 도수는 이를 악물었다.
“씨팔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잖아! 우리가 힘이 없어서 명산실업에 설설 긴 줄 알아! 이 사실이 알려지면…….”
“뭐 알려져도 문제없을 거요. 우린 말 그대로 가우리파를 치는 거니까.”
“너 설마?”
“저 뒤에 전화질하는 놈에게 물어보슈. 아마 전부 정신없을 거요.”
그의 말에 도수가 이를 악물었다. 고약하게 당해 버렸다는 생각뿐이었다.
* * *
“꿇어 새끼들아.”
“쿨럭.”
나이트클럽의 한복판에는 사내들이 피범벅이 된 채 꿇어앉아 있었다. 모두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승자나 패자나 말이다.
“후우. 개새끼들.”
“허?”
개새끼라 불린 사내가 혀를 차더니 그대로 욕설을 뱉은 사내를 걷어찼다. 턱이 돌아가며 욕을 했던 사내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옆구리 쪽에 피가 흥건한 것이 칼을 맞은 것이 분명했다.
“칼 가져와.”
이어 엎어진 사내의 다리를 한쪽 발로 밟고는 그대로 건네받은 칼로 아킬레스건을 그었다.
서걱!
“끄아아아악!”
비명이 홀을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가타부타 말도 없었다.
“혀, 형님!”
“형님!”
“어딜 일어서, 이 개새끼들아!”
무릎 꿇어있던 사내들이 뒤늦게 몸을 일으켰지만, 욕설과 함께 사방에서 쏟아지는 매질에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씨파. 말이 많아.”
얼굴에 튄 피를 소매로 닦아낸 사내가 방금 아킬레스건을 그은 칼을 옆에 있는 조직원에게 건네주고는 전화를 걸었다.
“후욱.”
숨을 몰아쉰 사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중한 음성을 내뱉었다.
“끝났습니다. 실장님.”
* * *
[끝났습니다. 실장님.]“애들은?”
[좀 상한 애들이 있어 병원으로 보냈습니다.]“얼마나?”
[죄송합니다. 열이나 됩니다.]열이나 된다는 소리에 눈가를 찌푸린 유성원이 대답했다.
“알았다. 정리 잘해라.”
[예, 실장님.]통화를 끊자 옆에 있던 천성일이 약간 초조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안 왔대?”
“예. 연락을 미처 못 했는지 몰라도 안 왔답니다.”
“젠장.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성일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일단 전 조직이 잘 마무리되었으니 어떻게든 반응이 오겠지요.”
성원의 말에 성일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질문을 했다.
“애들 많이 상했다지?”
“예. 아무래도…….”
성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일이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입에 물곤 투덜거렸다.
“젠장 쓸 만한 놈들은 전부 병원에 가 있으니.”
본진이 털렸을 때 은퇴한 이들이 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촬영장에 보냈던 이들도 꽤 심하게 상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이런 일이 있을 때 손실이 컸다.
머릿수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 에이스 한두 명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었다.
“전화 넣어.”
“알겠습니다.”
원래는 성일이 연락을 해야 했지만 영어가 안됐다. 다행히 성원이 영어가 되어 일을 대신 시킨 것이다.
“일은 마무리되었는데 나타나진 않았습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볼 예정입니다.”
[알고 있소. 저격조들도 다 확인했으니.]“그렇…… 습니까.”
[일단 이쪽도 주시하고 있으니 잘 부탁하오.]“알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무리하자 성일이 질문을 했다.
“마이클이 뭐라는데?”
“이미 알고 있더군요.”
“벌써?”
“저격조들을 배치했었나 봅니다.”
성원의 말에 성일의 얼굴이 살짝 해쓱해졌다.
“젠장 양키 새끼들이라 그런지 총 얘기가 자연스럽네.”
“상대가 워낙 괴물들이잖습니까.”
“그야……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성일이 피식 웃으며 성원에게 한마디 했다.
“그나저나 적당한 이유를 단 덕에 우리도 그간 손해 본 걸 이번 기회에 만회했어. 역시 유 실장이야.”
“별말씀을요.”
이번 습격 작전의 목적은 고진천 일행들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그간의 사건을 분석해 본 결과 가우리파라는 이름으로 잠시 반짝했던 이가 고진천의 수하로 확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걸 명분삼아 친 것이다.
물론 고진천은 두렵다. 하지만 외국에서 온 용병들과 일전에 받아들인 필리핀 조직을 동원하면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칼이나 야구방망이가 아닌 총을 다루는데 익숙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울 한복판에서 총질이야 문제가 있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이미 되어 있었다.
북한 출신 밀입국자들은 아마 자신들이 무슨 일로 불려 왔는지도 모르게 일이 마무리되는 순간 다 죽을 것이다.
고정 무장간첩 내지는 불순분자라는 핑계로. 물론 요즘 한창 뜨는 중동 쪽 테러리스트 집단도 있지만 그쪽은 오히려 과격하기에 부담이 있었다.
그러느니 만만한 북한을 엮는 게 좋았다.
물론 북에서도 펄쩍 뛰겠지만 지금 북과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니 적당히 치고받으면 될 일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성원이 낸 것이었다.
이렇게 미끼를 푸는 동시에 본보기 삼아 명산실업이 건제하다는 모습도 보이고, 한동안 심하게 출혈을 한 재정도 다시 확보하는 것이 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렇게 한 뒤 다시 친명산실업의 조직들에게 다시 그 자리를 나눠 주는 것이다. 일종의 논공행상이다.
물론 잘게 쪼갤 것이다.
이전보다 더 확실한 장악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는 우중만 의원이 다시 이전과 같은 권력을 가지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끈 떨어진 연이 되었다는 걸 알면 주변 조직들이 이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명산실업이 군림할 수 있는 건 그 힘도 있었지만 뒷배가 적지 않게 작용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일을 기획한 것이다.
일석이조가 아닌 일석삼조의 효과다.
성원을 영입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전의 진구보다는 그를 더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실장.”
“예.”
“이번 일 잘 끝나면 확실하게 챙겨 주지. 솔직히 내 자리는 못 주지만 나 외에 그 어떤 누구도 유 실장에게 고개를 못 들게 해 주겠어.”
성일의 말에 성원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 모습조차 성일은 듬직하게 느껴졌다.
“참, 그놈은 어떻게 됐지?”
“형사 말입니까?”
“그래. 아까 그놈. 좀 상해서 와 가지고 정신이나 제대로 차렸나 궁금해서.”
“정신은 차렸답니다. 일단 응급조치만 하고 애들이 건들고 있는데 아직 나온 게 없는 모양입니다.”
“죽여도 좋으니까 제대로 불게 해. 뭣하면 그놈 식구들도 끌고 오던가.”
“그건 좀.”
“왜?”
성일의 반문에 성원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형사만 없어진 것도 약간 부담입니다. 물론 어르신이 알아서 봐주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식구들까지 사라지면 그건 좀 문제가 될 겁니다.”
“적절히 이용하면 되잖아. 예를 들면 오밤중에 의문의 침입자로 인한 강도 혹은…… 강간.”
성일이 허연 이를 드러내며 말하자 성원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협박으로는 그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소문 들어보니 꽤 독종 같으니까요.”
“그래.”
“적당히 꾸며 보겠습니다.”
성일이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 몸을 묻었다.
* * *
“허.”
핏자국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골목에 도착한 리셀이 혀를 차더니 허리를 굽혀 마나석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목걸이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변고가 난 게로구먼.”
미간을 잔뜩 찌푸린 리셀이 몇 걸음 더 가서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을 주워들었다. 아마도 이것의 주인이 서준모 경장일 것 같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액정에 쓰인 글자를 읽을 수 없는 리셀은 그저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액정에는 이런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이쁜 딸.’
(27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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