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09
281화 일석삼조
“알겠습니다.”
이승배가 고진천에게 걸려 왔던 전화를 끊자, 이실라 공녀가 궁금한 듯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됐대요?”
“다행히 구했답니다. 뭐 좀 상했는데 일이 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심상치 않다?”
승배의 대답에 이실라 공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의문에 승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뿔뿔이 흩어졌잖습니까. 그런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뭔 일들이 있었답니다.”
“무슨 일?”
통화가 짧지 않았기에 뭔가 들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그러자 승배가 머리를 긁으며 대답을 이어 나갔다.
“뭐 웅삼 형님은 창고서 쥐새끼 좀 때려잡았다고 했고, 우루 아저씨는 몇 놈 지분거려서 치우고 왔다고들 하시는데 아무래도 뭔 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트렌든 형님 쪽도 뭔가 있는 거 같다고 그러고요.”
“흐음.”
승배의 말에 이실라 공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부 우중만 의원과 관련된 이들이었다. 이쪽도 있기는 했다.
제이 그리고…… 이실라 공녀 본인. 여기서 이실라 공녀가 준 타격은 어마어마하다.
“일단 우리도 조심해야겠네.”
“예.”
“녹화는?”
“거의 끝나 갑니다.”
승배가 무대를 슬쩍 보니 노래가 끝난 판도라 멤버가 인사를 꾸벅하고 있었다. 녹화를 마친 그녀들과 함께 차로 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출발을 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다들 잘 따라 주었다. 전창걸 대표 역시 일을 마치고 함께 벤에 올랐다. 그렇게 차량이 출발하고 나서였다.
“응?”
운전을 하고 있던 박노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전 대표가 물었다.
“뭐 이상합니까?”
“아니 아까부터 똑같은 차가 따라오는데…….”
“이쪽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이 많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지요.”
전 대표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하지만 박 영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꽤 가까이 붙어서 따라오는 거 같아서.”
순간 뒷자리에 있던 승배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때였다. 전 대표의 스마트폰이 울려왔다.
“음?”
전화를 확인한 순간 전 대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별로 반갑지 않은 이름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네, 박 실장.”
전화 통화를 하던 전 대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말인가?”
묵묵히 통화를 하던 전 대표가 탄식을 쏟아 내며 다시 질문을 했다.
“후우.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하나.”
* * *
[후우.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하나.]“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외부로 알리지 말라 하셔서요. 주가에도 문제가 있을 거고. 아시다시피 최근에 제가 좀 사고도 쳤던 게 있잖습니까. 그래서 아버지께서 더 숨기셨던 것 같습니다.”
목소리에서는 서글픔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박연우의 입가에는 조소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이들은 다들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마치 웃음을 억지로 참는다는 듯 말이다.
[거기가 어디라고?]“여기 아버지 쉬실 때 오시던 별장입니다. 거기밖에 없잖습니까. 조용한 데가.”
[마침 근처구먼.]“저도 사실 이런 말 드리기 어렵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대표님이랑 제가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말입니다.”
[뭐, 그렇지.]“하지만 그건 그거고 아버진…… 아버지니까요. 오래 버티실 수 없을 겁니다.”
[내 곧 가겠네. 오래는 못 있더라도 얼굴은 봬야지.]“감사합니다.”
[아니야. 당연한 것을.]“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끊은 연우가 혓바닥을 쭉 내밀며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우헤헤헤!”
“히야! 연기력 죽이십니다!”
그런 연우의 모습에 김신양이 박수를 치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앞에서 스스로 입을 막고 있던 사내들이 와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우리 실장 형님 연기 죽이십니다!”
명산실업에서 파견 나온 조직원 중 하나가 엄지를 턱하니 올리며 칭찬을 하자 연우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엔터 일을 하다 보면 연기 지도도 하고 그러다 보면 전문가 되는 것 아니겠나?”
연우가 비릿하게 웃으며 대꾸하자 사내들이 와하하 웃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주로 어떤 연기를 지도합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베드신이지.”
“우오!”
조직원들이 와하고 박수를 쳤다. 그런 그들을 보며 연우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붙였다.
“뭐 어쨌든 이번 일하면서 일 처리 깔끔한 친구가 눈에 보이면 내 성일이 형님께 부탁할거야. 내 대신 연기 지도할 선생님으로 말이지.”
연우의 말에 사내들이 왁자지껄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말을 하곤 잠시 자리를 옮겼다. 그런 그를 신양이 따라 움직였다.
“저 친구들 확보해 놓으실 겁니까?”
“그래. 알아보니까 명산실업 직속은 아니고, 경기도 쪽 조직이라더라. 안 그래도 일을 대신 처리할 조직 하나 필요했는데 적당히 규모도 있고, 또 저기 오야가 젊고 그러니 이참에 선을 대놓는 게 낫지.”
“하긴.”
신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명산실업에 계속 끌려갈 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뭘 하나 부탁하더라도 손해가 클 게 뻔했다. 돈 쓰면서 굽실거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저런 조직 하나 섭외해 놓으면 좀 일이 쉽다.
게다가 이 일 자체가 명산실업의 오더다. 명산의 천성일과는 최근에 소원해졌다 쳐도 어차피 형님 동생 했던 사이니 거짓말도 아니다. 적당히 명산실업을 등에 업고 부리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신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올까요?”
“오지. 전 대표라면. 멀쩡한 아버지 죽어 나자빠지기 전이라고 했는데 안 오면 그게 개새끼지.”
“하, 하하하.”
순간 신양은 ‘멀쩡한 아버지 시한부 인생에 금방 숨 넘어 갈 것처럼 말한 자식새끼는 뭡니까?’하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속에 있을 때 존재의 의미가 있는 법.
입으로 튀어나오면 죽빵 맞기 십상이다.
히죽 웃은 연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전화해 봐도 안 받을 거고. 확인해 봐야 맘만 뒤숭숭해질 거다. 그 인간 아버지라면 껌뻑 죽잖냐.”
“그렇죠. 회장님도 전 대표에게는 잘해 주셨으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이런 필요한 때에 딱 쓸모가 있지. 기가 막히지 않아? 내 임기응변이? 아버지가 쉰다고 해외에 나가셨을 때 딱 써먹고 말이지. 전화기도 놓고 갔으니 이 얼마나 좋아?”
“죽입니다.”
“흐흐흐. 그 이실라라는 년 잡아 족치면서 좀 풀고 판도라 년들도 이참에 확 돌려 버리는 거야.”
연우의 살기에 찬 눈빛에 신양이 살짝 놀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계획에…….”
“이것도 임기응변이야. 알아? 흐흐. 이런 걸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쯤 되겠네. 전 대표까지 말이야.”
마치 미친놈처럼 웃어 대는 연우를 보며 신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몰리긴 확실히 몰렸던 모양이었다. 아까 방송국에서도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혼자 오면 어쩌죠?”
신양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묻자 연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차들을 뒤에 붙였는줄 알아? 택시 잡기도 어려운 곳을 지날 때 연락하라고 시킨 거 거든.”
“딱 좋네. 한적하고.”
연우가 히죽 웃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정말 조용했다.
* * *
“시한부요?”
이승배가 살짝 놀란 눈을 하며 묻자 전창걸 대표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확실합니까?”
“회장님 전화기가 꺼져 있더군.”
승배가 미간을 모았다.
“일단 나 좀 내려주고 가시면 됩니다.”
“별장이라고 했지요?”
“내가 어딘지는 압니다.”
그때 뒤따라오던 차량이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박 영감은 너털웃음을 머금었다.
“거참. 그냥 앞질러 가는 걸 보니 과민반응이었나 보네.”
벤이 점차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승용차 하나가 별장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사내들이 우루루 마중을 나갔다.
“어디쯤이야?”
“곧 올 겁니다. 통화 끝난 다음에 질러왔으니까요. 인적이 드문 곳이라 우리가 밟고 왔어도 금방 올 겁니다.”
“그래?”
그때 저 멀리서 차 불빛이 보였다.
“저건가 봅니다!”
“그래? 손님 맞을 준비해야지.”
사내들이 흩어졌다.
한 이삼 분 지나자 구불구불한 길을 타고 벤이 별장으로 들어섰다. 그 차를 맞이한 것은 김신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어, 신양이구나.”
전 대표가 벤에서 내리며 신양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그러자 신양이 슬쩍 벤 안을 살피며 말을 붙였다.
“어? 벤으로 오셨네요?”
“아, 같이 일을 보고 오느라. 그래, 회장님은?”
“삼촌! 오셨습니까?”
그때 안쪽에서 박연우가 나오며 큰 목소리로 전 대표를 불렀다.
“어, 그래. 고생이 많다.”
그때 신양이 연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연우가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그 사이 신양이 운전자석 쪽으로 가서 박노문에게 말을 걸었다.
“길이 험하지요?”
“뭐, 시골길이 다 그렇죠. 허허.”
“일단 차를 한쪽에 세워야 하니 열쇠 주십시오.”
“아, 우리는 이대로 갈 거라서.”
박 영감이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신양이 입맛을 다시더니 갑자기 상체를 불쑥 집어넣더니 차키를 뽑아내었다.
“엇!”
“쉬다 가시라니까.”
열쇠를 뽑아낸 신양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별장 대문이 닫혔다.
“너?”
전 대표가 얼굴을 굳히며 연우를 바라보았다.
“왜요?”
“거짓말이냐?”
“이런, 죄송합니다.”
전 대표의 말에 연우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숙였다가 일으키는 연우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피어났다.
“허, 네놈 단단히 미쳤구나.”
“미쳤지, 씨팔. 당신 나갈 때 아버지에게 난리를 치더라도 자근자근 밟았어야 했는데 그냥 놔둔 내가 미쳤지.”
“으음.”
사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험악해 보이는 사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야? 진짜 왔네? 나 판도라 팬인데!”
“캬! 역시 엔터 쪽 일을 해야 뭔가 떨어질 거 같더라니만.”
“박 실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맨 마지막에 연우에게 말을 건넨 사내가 열심히 허리를 앞뒤로 움직여대었다. 그 모습을 본 전 대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차키를 빼앗긴 박 영감 역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차 안의 판도라 맴버들도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다. 그녀들의 시선이 이실라 공녀를 향했다. 그녀가 있으니 든든한 것이다.
그녀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본 승배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자조감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차 안에 있어.”
이실라 공녀가 벤에서 내렸다. 그 뒤를 승배가 따라 내렸다.
“어쩌냐, 이거.”
전 대표가 미안한 얼굴로 말을 걸자 승배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다행이죠. 우리 없을 때 이런 일 벌어졌으면 끔찍하잖아요.”
“괜찮겠냐?”
전 대표가 승배에게 묻자 그는 그 질문을 바로 전달하듯 물었다.
“괜찮겠죠?”
그가 질문을 던진 상대는 바로 이실라 공녀였다.
(28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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