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1
강철의 열제 91화
부아아악!
퍼억!
“히익!”
공기를 찢어내는 소리가 거칠게 울리고 삼두표의 묵빛 봉이 적병의 머리를 지나갔다. 물론 지나간 자리에는 머리통이 터져나간 시체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옆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에 북로셀린 군은 공포에 사로 잡혀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전진! 전진하지 못하고 뭐하나!”
시체로 매운 벽은 적들의 발길을 오래 잡을 수 없었다. 물밀듯이 몰려오는 북로셀린 병사들을 맞아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지만 수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북로셀린 군을 막아선 것은 두표였다.
서걱!
“아악!
“전진 하지 않는 자는 이처럼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주변에서 떨고 있는 병사의 목을 내리쳐 버린 북로셀린의 기사가 살기를 띠고 외쳤으나 이상하게도 병사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떠나고 있지 않았다.
퍼억!
“히이익!”
“괴물!”
둔탁한 소리와 비명소리들이 병사들의 앞쪽에서 울려 퍼졌다. 눈살을 찌푸린 기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지만 무언가가 뿌려지듯 날아왔다.
“웃!”
기사에게도 무엇인가가 날아들자 재빨리 손으로 잡아챘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닌지 갑옷 위로 작은 살점 같은 것들이 피와 엉키어 날아와 묻었다.
투투툭.
“뭐지?”
의아한 마음에 북로셀린의 기사는 병사들을 윽박지르는 것을 멈추고 방금 전에 손으로 낚아 챈 것을 바라보았다.
“헙!”
기사의 손안에서 반쯤 터진 사람의 눈알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기사가 병사들을 헤치고 나갔다.
“모두 비켜라!”
신속하게 나선 기사는 마치 공터처럼 변한 곳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흘흘, 아까부터 떠들던 놈이 너구나.”
거구의 두표가 웃음을 흘리며 기사를 반겼다. 하지만 기사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은 것은 두표의 주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시체로 벽을 매운 남로셀린 군의 지독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지만 지금의 참상에 비교를 한다면 아이들 장난이었다. 시체로 보수되어진 방벽 위에 또다시 그득히 쌓인 북로셀린 군의 시체들……. 새로이 만들어진 북로셀린 군들의 시체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머리가 없었다.
잘린 것도 아니었다. 주변여기저기에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허연 뇌수조각들은 둔기에 맞아 터져나간 것임을 증명 하고 있었다. 어떤 시체는 입 위에가 없었고, 어떤 것은 머리통 자체가 없었다. 차라리 반만 박살난 것은 양호한 것이었다. 기사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삼두표가 들고 있는 무기로 향했다.
머리카락과 뇌수가 덕지덕지 붙어 흘러내리는 묵빛의 강철봉. 여기 죽어나간 수십의 병사들을 일부러 머리통만 골라 터트린 것이었다. 기사의 눈이 무기와 머리 없는 시체 등의 주변만을 훑고 있자, 두표가 콧바람을 뿜으며 도발해왔다.
“킁, 이놈은 눈깔로 싸우네?”
“크윽!”
아무런 말과 행동대신 두표를 훑어보기만 하자 비꼰 것이었다. 그제야 기사는 자신의 행동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롱 소드를 고쳐 잡았다.
“오라! 마족의 사생아!”
“얼씨구?”
북로셀린 역시 신성제국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북부용병들을 마족의 사생아들이라 치부했다. 그렇게 외치고 난 기사가 긴장된 얼굴로 그를 노려보자, 두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어찌된 놈들이 죄다 마족 아니면 마족의 사생아니 뭐니 떠드는 거야! 킁, 갑자기 승질 나네.”
“덤벼랏!”
하이안에서의 도피행이 문득 기억난 두표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리고 기사의 도발이 이어졌다.
훙훙훙, 후우웅!
화아악!
“큽!”
강철봉에 붙은 찌꺼기를 털어내듯 몇 바퀴 돌린 두표가 기사를 향해 강철봉을 휘둘러가자 기사는 풍압에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로 빼 내었다.
퍼억!
“끄아아!”
“젠장!”
기사가 몸을 뒤로 빼내며 피하자 두표의 봉이 한쪽에 서있던 병사의 머리를 박살냈고 또다시 다른 이들의 공포에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욕설을 짧게 뱉은 기사를 노려보는 두표의 입가에는 계속 미소가 걸려 있었다.
차가운 미소가.
“덤비라더니 왜 피하나?”
“다, 닥쳐랏!”
기사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 크게 외쳤다. 그것이 조금은 효과가 있었는지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강철봉이라 해도 오러를 입힌 소드라면 충분해.’
이를 악문 기사는 천천히 오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두표는 오러를 끌어올리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볼 뿐이었다.
‘미련한 자식, 네놈의 머리통을 날려 주마.’
내심 공격할까 조심스러웠던 기사는 가만히 보고만 있는 두표를 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지금까지 놀란 마음에 먹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의 롱 소드에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오러다!”
“와아아아!”
병사들은 기사의 롱 소드에 맺힌 오러를 보며 환호했다. 병사들의 환호 속에 의기양양해진 기사는 힘차게 검을 뿌리며 두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랏!”
“킁!”
두표의 머리를 향해 섬광처럼 날아간 푸른빛 소드를 향해 묵빛 봉이 휘둘러졌다. 그리고 푸른 오러를 머금은 자신의 소드에 두표의 묵빛 봉이 닿는 순간 기사는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땅!
퍼어억!
하지만 순간, 푸른빛을 허공으로 흘리며 동강난 소드가 날아올랐고, 기사역시 머리 없는 시체로 변했다.
털썩.
무거운 갑옷과 함께 무너진 기사를 본 병사들은 믿을 수 없었다. 단순한 강철봉을 오러가 자르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오러를 겉에 씌우기만 한 소드와 두표의 오러, 즉 기를 안으로 완전히 갈무리한 묵빛 봉의 차이를 알리가 없었다.
“악마다!”
“마족이 진짜 있었어!”
“으아아!”
그들의 뒷걸음질을 방해할 기사마저 누운 지금 병사들의 공포는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북부 용병들의 날카로운 검들이 등을 베며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표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지금껏 일부러 머리만을 박살내며 적들에게 공포감을 만들어 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젠장, 여기서 죽기 싫은데.’
욕설을 씹어 삼키며 숨을 고르던 두표는 한쪽 벽이 또다시 무너지며 북로셀린의 병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크게 한숨을 쏟아냈다.
‘킁, 내 팔자가 이렇지…….’
하지만 두표의 푸념과는 달리 이미 그의 발은 쏟아져 오는 북로셀린 병사들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죽어보자 이놈들아! 커헝!”
두표의 거대한 사자후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북부용병들이 눈을 빛내며 달려 나갔다.
“응? 오데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 아니네?”
그 시각, 구릉지대의 마지막 경계부대를 몰살시킨 을지우루가 사자후가 들려온 요새 방향을 바라보며 의아해 하고 있었다.
제23장 대륙에 펼쳐지는 삼족오
요새의 한부분이 뚫리자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사력을 다해 막아갔지만, 또다시 자신의 병사들을 도외시한 마법공격이 다른 한곳에 떨어지자 이윽고 북로셀린 군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사력을 다하는 실렌 베르스 남작과 남로셀린 군이었지만, 열 개의 손을 한둘이 막을 수는 없었다. 만약에 이곳이 낡고 작은 요새가 아닌 좀 더 규모가 큰 성벽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안 나왔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곳이었다면 이렇게 베르스 남작이 병사를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끝이 보인다. 기사단은 길을 열어라!”
“우와아아!”
선봉을 이끄는 휴엔 벨마론 자작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가 끝이 난다면 선봉을 선 자신의 전공에 이번 전투가 추가될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놔두었으면 커다란 골칫거리가 될 적이었기에 이번 전투는 자작의 출세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얏!”
서걱!
벨마론 자작의 검이 발악적으로 달려드는 남로셀린 병사의 가슴을 가르고 지나갔다.
“후퇴하라!”
“응!”
계속 밀어 붙이는 벨마론 자작의 귀로 남로셀린 군대의 후퇴소리가 들려왔다. 요새 안에서 후퇴할 곳이라 해봐야 작은 규모의 내벽뿐이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간다면 또다시 병사들의 피해와 시간이 걸릴 것은 자명했다.
“뒤를 쫓아라! 절대로 그냥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랴아!”
우두둑!
“끄악!”
기세를 올리며 말을 몰아가는 벨마론 자작의 말발굽 아래로, 부상을 당한 채 신음하던 남로셀린 병사의 가슴이 거친 뼛소리를 내며 부서져나갔다.
“기사단은 적이 내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문을 장악하라!”
“네, 자작님! 기사단은 나를 따르라!”
벨마론 자작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십여 명의 기사단이 내벽을 향해 말을 달려갔다.
“막아라!”
달려오는 북로셀린의 기사단을 향해 실렌 베르스 남작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기사라 해 보아야 자신을 포함해 다섯 명이 전부인 상황, 아무도 이십 여기의 기마를 막아내지 못했다.
“젠장!”
“남작님, 어서 들어가십시오! 저들이 문을 장악하기 전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벨만, 아직 안 된다!”
베르스 남작의 팔을 이끄는 아벨만 기사의 등 쪽에 이미 두 개의 화살이 틀어박혀 있었다. 하지만 베르스 남작은 아벨만 기사의 간절한 눈빛에도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소드를 움켜쥐었다.
“아직 반 정도가 남아있다, 버텨야해!”
두두두 두두두!
“적의 수괴가 저기 있다!”
내벽으로 향하는 병사들은 아직도 반 정도가 밖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베르스 남작의 발을 잡아끄는 이유였다. 그러나 베르스 남작과 아벨만 기사의 모습을 발견한 기사단이 속도를 높이며 달려왔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젠장!”
아벨만 기사의 붉게 충혈된 눈이 베르스 남작을 향했다.
“킁, 거기 멀뚱이 서서 뭐해, 이 멍청이들아!”
“뭐?”
뒤쪽에서 베르스 남작에게 거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베르스 남작과 아벨만 기사는 당혹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온몸에 피를 시뻘겋게 뒤집어쓴 삼두표가 묵빛 강철봉을 들고 씩씩대며 서 있었다.
“감히!”
아벨만 기사가 두표의 무례함에 소드를 들이대며 살기를 뿜었다. 그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두표는 베르스 남작을 향해 소리 질렀다.
“젠장. 킁, 감히고 나발이고 빨리 들어가서 병사들 배치시키고 막을 준비 하란 말이야! 저 우왕좌왕 하는 병신새끼들 안보여!”
“…….”
베르스 남작은 두표가 외치면서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다들 들어가기에만 급급하고 방어를 할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휘관의 부재가 만든 결과였다. 베르스 남작은 다시 두표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가는 것은 문제없지만 아직 남은 병사들이 반이라네. 그들을 희생…….”
“아, 시끄러! 들어가. 너희들 나 따라와!”
“뭐!”
두표는 베르스 남작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한쪽에 있는 아벨만과 나머지 기사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들이 닥치고 있는 북로셀린 기사단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저 무모한!”
그 모습에 아벨만 기사와 다른 기사들은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동공이 커다랗게 변했다.
“우워어어엉!”
투콰콰쾅!
“헉, 저럴 수가!”
달려가던 두표가 불이 붙어있던 건물의 나무기둥을 들어서 달려오는 기사단을 향해 던진 것이었다. 이 한 번의 행동에 이십여 기사단의 돌진은 막혀버렸고 덤으로 세 명의 기사들이 기둥에 맞아 낙마를 했다.
“모조리 대가리를 날려주마!”
부우웅!
“뭐야, 이놈은!”
불길에 날뛰는 말들을 달래는 북로셀린 기사들의 머리 위로 두표의 몸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들에게 묵빛 봉이 방패와 칼을 부수며 날아들었다.
“남작님.”
두표의 무위를 지켜본 아벨만 기사는 베르스 남작을 향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두표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네 명의 기사들이 따라 붙었다.
“킁! 나 관 짜는 거 보고 올 거냐!”
병사들을 독려 하며 내벽 안으로 향하는 베르스 남작을 힐끔 쳐다본 아벨만 기사가 두표의 악쓰는 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반말 하지마라, 이 자식아!”
#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