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16
288화 조상님이 노했다
“허…….”
천성일이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다. 항상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는다. 지금처럼. 있어야 할 인질은 없고 주변이 다 시체다. 흔적을 보니 일방적으로 당한 모양이었다.
도망치다 죽은 것 같은 놈, 내려오다 죽은 것 같은 놈…….
지저분한 일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름 한 주먹 하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전부 일방적으로 당했다. 아니 죽어 나자빠졌다. 조직원 중 하나가 화살을 가지고 왔다.
“빌어먹을…….”
인터넷에 아직도 돌아다니는 어벤져스 패러디 영상에서 나왔던 인물이 쏘았던 것과 같은 것이다. 화살만 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이것과 똑같은 것을 지금은 구 사옥이 된 명산실업 사옥에서도 봤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것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낸 화살.
“어떻게 된 거야.”
“죄송합니다.”
“경찰 쪽은?”
“아직 반응이 없지만 시간문제입니다.”
조직원의 대답에 성일이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병신들!”
그때 문득 유성원이 간 곳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아니 걱정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놓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이 초장부터 어긋나 버린다.
고진천을 제외하면 나머지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인원만 충분히 밀어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판단을 잘못한 듯했다. 원래는 마이클이 용병들을 붙여 준다고 했었지만 그걸 거절한 것은 자신이다.
이쪽에서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줘야 추후 우중만 의원이 거래를 할 때 유리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생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하다 싶은 인력을 동원했는데 벌써부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때 조직원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며 외쳤다.
“서 경장의 집 쪽에 이미 경찰들이 깔렸답니다.”
“애들은? 잡힌 거야?”
“그, 그게…….”
약간 창백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리는 모습에 혹시나 싶어 다시 질문을 했다.
“설마 거기도…….”
“다 죽었답니다.”
“씨팔 무슨…….”
보고를 듣는 성일도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도 다 죽었다. 조직간에 싸우다 보면 불구가 되거나 죽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이건 뭐 연락이 오면 다 죽었다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의심되는 상대는 일종의 공인 아닌가?
세상에 어떤 배우가 사람을 이렇게 파리 잡듯 잡는단 말인가. 물론 일반적인 배우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건 맞았다. 하지만 조폭도 이런 짓은 함부로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살인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중죄 중의 중죄니까.
그때 성일의 품에서 전화기가 진동음을 흘렸다. 꺼내 보니 유성원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최면이라도 걸 듯 중얼거리며 받았다.
“어.”
[유 실장입니다.]“어떻게 됐냐.”
[…….]순간 답변이 없었다. 그런데 수화기에서 누군가가 구토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버럭 소릴 질렀다.
“어떻게 됐냐니까!”
“뭐야! 도주한 거야?”
다시 추궁하듯 언성을 높였다. 속 터져 죽으라고 하는지 대답은 한 템포 늦게 흘러나왔다.
[지금 생존자를 확인 중입니다.]“뭐?”
[한 십여 명은 숨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중 서넛은 가망 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하나가 중상이지만 가장 나아 보일 정돕니다.]유성원의 음성이 수화기 너머에서 담담하게, 아니 참담하게 울려 왔다. 멍한 표정을 지은 성일이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애들이 많이 상했나?”
[말씀드렸듯 지금…… 생존자를 찾는 중입니다.]머리가 어지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기도 했다. 다시 확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백오십 명이잖아. 그치? 열다섯 명이 아니라 백오십 명이잖아!”
[……적어도 백 이상은 현장에서 즉사한 듯합니다. 여긴…….]하늘이 노래졌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 성일의 심정이 그랬다. 그런 멍한 성일의 귓가로 유성원의 힘없는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지옥입니다.]털그럭.
성일의 손에서 떨어져 내린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져 툭툭 튕겨 나갔다. 바닥을 뒹구는 스마트폰에서 ‘여보세요! 여보세요!’하며 성일을 부르는 음성이 연이어 울려왔다.
그 떨어진 스마트폰을 조직원 중 하나가 받아들고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실장님. 여기 다 죽었습니다. 서 경장 집으로 갔던 애들도 다 죽었답니다!”
울부짖는 듯한 조직원의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성일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멍했다.
* * *
유성원은 끊어진 전화를 내려다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모 경장 쪽에 있던 이들도 다 죽었다는 소식에도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성원이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렇게 두렵고 구역질이 올라왔던 현장인데 이젠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런 듯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이라 그랬다.
“전 세계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연쇄살인마가 몇 명을 죽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그 신기록이 이곳 대한민국에서 세워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엔 다행히 다른 번호다. 아직 별장으로 향한 이들의 소식은 없었다.
“무슨 일이야.”
[뉴스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그래…….”
성원은 무슨 일이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열어 볼 뿐이었다. 물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 영상을 보는 성원의 얼굴위로 허탈함의 빛이 다시금 스쳐 지나갔다.
* * *
상처를 치료하던 서준모 경장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한편 현장에 있던 김 모 씨는 박 모 씨가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를…….
별장에서 벌어진 조폭 간의 참사 어쩌고 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얀 천으로 덮인 들것에 실려 나오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딱 봐도 중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차에 옮겨지는 이의 모습.
“저거 박연우지?”
서 경장의 질문에 최후배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네요. 저기 자막도 나오는데요.”
최 경장의 말대로 NS라는 이름이 자막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용은 단순했다. 조폭 간의 문제로 보인다는 둥 박연우가 총으로 김신양을 쏘아 죽였지만 자신도 중태라는 등.
“저것도 겠지?”
“그렇겠죠.”
주어가 빠졌지만 두 사람은 서로 공감하고 있었다.
“형님!”
저 멀리서 김창진 경위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 뒤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따라 달려왔다.
“어, 이젠 아예 달고 다니는구나.”
“젠장, 형님 납치됐다고 해서…….”
일부러 그들을 찾아간 것이라는 말은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나름 신경 썼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보는 대로 살긴 살았지.”
“누굽니까?”
김 경위의 질문에 서 경장이 그의 뒤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자 양복 입은 사내들이 한 걸음 나서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셔서 다행입니다.”
“뭐 걱정해 주셨다니 일단 고맙습니다.”
“사모님과 식구들 쪽에는 저희 쪽에서 추가로 인원이 파견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생색을 낸다는데 안 받을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젠 그들도 상관없다는 말도 들었다. 알려도 된다는 말.
그 말이 더 소름끼쳤다. 이런 일들이 이젠 부지기수로 벌어질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다만 경찰들이 그들에게 이빨을 들이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경찰이라고 해서 봐줄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거 전달해 드려라.”
“예.”
서 경장의 말에 최 경장이 메모리 몇 개를 건네주었다.
“이거…….”
“뭡니까?”
“나 납치한 놈들 취미가 스너프 필름 만드는 거랍디다. 부녀자 강제물도 만들고…….”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두 요원들 역시 놀란 표정을 했다. 그런 그들의 표정 변화가 재미있었는지 서 경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까딱했으면 데뷔할 뻔했소. 물론 내가 주연으로 나온 작품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럼 잠시.”
두 요원이 동시에 자리를 비웠다. 어차피 서 경장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일단 그가 넘겨준 자료를 분석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저거 그냥 줘도 되냐?”
“원본도 아닌데 뭐.”
“사본이야?”
“뭐 그렇지. 세상에 믿을 새끼 없으니까. 그리고 민감한 건 좀 뺐고.”
서 경장이 말을 하며 최 경장을 바라보자 그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얼리어답터 아닙니까.”
“후.”
김 경위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대체 일이 어떻게 돼 가는 거지? 오다가 들었는데 미국 쪽도 뭔가 문제가 있었나 봐. 안가 한 곳이 작살이 났던 모양인데…….”
“그래?”
서 경장이 피식 웃으며 반문하자 김 경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이거 장난 아닙니다. 저기 별장에서의 사건도 연관된 거겠죠?”
“그렇지. 박연우가 명산이랑 연관 있잖아.”
“하아.”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서 경장이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뭐 하십니까?”
최 경장의 질문에 서 경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긴. 몸뚱이 멀쩡한가 체크하는 거지.”
“안 멀쩡해 보이는데요?”
“뭐, 그렇긴 한데. 사지 움직이면 일하는 게 우리 아니냐.”
서 경장의 대답에 최 경장은 물론이고 김 경위마저 놀란 눈으로 대꾸했다.
“그러고 움직이게요?”
“형님!”
팔뚝에 있던 수액 튜브를 뽑아낸 서 경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내려섰다. 그리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씨파, 난 둘째 치고 마누라랑 애까지 노린 새끼들이다. 니들 같으면 가만있겠냐?”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진득한 살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 경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형님. 참아요.”
하지만 서 경장은 신발을 신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라도 움직여야지. 안 그러면 경찰들도 저렇게 들것으로 실려 나오는 수가 있다.”
“설마요.”
서 경장의 말에 김 경위가 하얗게 질리며 말했다. 하지만 서 경장은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넌 저게 살인 현장으로 보이냐?”
“예?”
“저 양반들에게 저건 살인이 아니야.”
“그 무슨 끔찍한…….”
김 경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하자 서 경장이 외투를 걸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전쟁터에서 사람 죽였다고 살인이라디?”
“…….”
김 경위가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서 경장이 절뚝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씨파, 미친놈들 건드릴 걸 건드려야지. 조상님이 노했어.”
서 경장이 걸어가는 뒤로 최 경장이 따라 붙었다. 멍하니 있던 김 경위가 다급히 따라 붙으며 외쳤다.
“혀, 형님 나도 갑시다!”
(28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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