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23
295화 학살
“응?”
아만도가 산 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아킬리노가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왜?”
“아니 방금 사람 같은 게 하늘로 솟구쳤다가 가라앉은 거 같아서.”
“…….”
아만도의 말에 아킬리노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만도는 실실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잘못 본거지. 아직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그나저나 꽤 요란한데.”
“연락은?”
폭음과 총성이 울려 퍼진 이후로 아킬리노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소음기를 단 소총을 휴대했는데도 총성과 폭음이 울린다는 건 상대방이 존이라는 자 하나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그들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고진천이라는 자와 그 일행이 있을 수 있다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아킬리노가 노리는 이 역시 고진천이었다.
복수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아킬리노의 취향이 아니었다. 하려면 직접 해야 했다.
아만도가 픽 하니 실소를 흘리곤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없어. 뭐 전쟁용병들이 우리 같은 깽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겠어?”
“총알 박히면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야. 사람이라면 우리도 지겹게 죽여 봤고.”
“그건 그런데. 어쨌든 요란한 게 우리에게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어. 게다가…….”
아만도가 다시 산을 향해 시선을 향했다.
“……대충 정리된 거 같고 말이지.”
시끄럽던 산이 점점 조용해져 갔다.
* * *
투투툭! 투툭!
타랑 탕탕탕!
자동소총 탄창 하나가 삽시간에 비워졌다. 총구를 빠져나간 총탄들이 연신 쇠기둥을 두들기는 소리를 내며 불똥을 튀겨냈다.
“미, 미친…….”
스미스는 영화에서나 보던 악당이 된 심정이었다. 아이언 맨이라든지 로보캅 등 쇠로 된 몸뚱이에 먹히지 않는 총질을 하다가 최후를 당하는 그런 수많은 악역 중 하나 말이다.
“꽤 마나 소모가 큰데?”
꽤 놀랍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울아머를 입은 이실라 공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측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총알 하나하나의 위력이 화살보다도 높았다. 물론 우루의 활은 제외다. 그가 쏘는 건 그냥 화살이 아니다. 화살의 탈을 쓴 무엇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물론 술법에 직격당하는 것보다는 약간 낮은 정도지만 이정도의 연사력이라면 술법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물론 이미 총알이 안 통한다는 건 실험해 봐서 알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이건 손가락만 당겨도 된다는 점이다.
“이곳 사람들이 왜 몸이 허약한지 알만 하군.”
이실라 공녀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세상은 사람을 죽이는 게 쉬운 병기가 많았다. 손가락만 당기면 애도 늙은이도 할 것 없이 사람을 죽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인간이라는 몸 자체의 활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외도 있기는 했다.
고진천이라든지 그의 일행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들이었다. 물론 웅삼을 보았을 때 이미 놀라기는 했지만 고진천은 더했다. 아버지인 바사 공왕과 비교해 보았다. 하는 행동은 비슷했지만 결정적으로 실력이 달랐다.
바사가 하면 주변이 말렸다.
진천이 하면 주변이 그냥 알았다고 한다.
강함이 다르다. 아마도 아버지인 바사 공왕이 본다면 부러워 미칠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그녀의 아비가 꿈꾸던 군주상이 이럴 것이니 말이다.
“자, 어쨌든 재롱은 끝난 거지? 뭐야? 아직 해 보려고?”
이실라 공녀가 웃었다.
스미스가 꺼낸 건 대검이었다. 미친 듯한 소리를 내지르며 대검을 찔러 들어왔다. 물론 무턱대고 찌른 건 아니었다. 갑주의 틈을 제대로 노렸다.
이실라 공녀는 코웃음을 치며 롱소드를 뽑아 들고 대검을 퉁겨 내었다. 하지만 퉁겨지는 순간 스미스가 빙그르르 돌며 언제 집었는지 흙을 뿌렸다.
하지만 이실라 공녀는 흙을 뿌리는 순간 이미 고개를 돌리며 피해 냈다.
야비한 수였지만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이미 그녀가 피할 걸 예상이라도 한 듯 그대로 대검을 투구의 눈이 있는 부분을 쑤셔 갔다.
“먹혔…….”
그녀는 반응하지 못했다.
스미스가 내지른 단검은 정확히 투구의 눈구멍을 쑤셨다. 아니 쑤실 뻔했다.
파지직!
“뭐, 뭐야?”
스미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검이 마치 허공에 멈춘 듯 투구 눈구멍에서 안쪽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저 푸른 스파크만 살짝 보일 뿐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설마 내가 못 피한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그녀의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반응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흙을 뿌린 걸 피한 행위는 본능적인 것이었을 뿐이고 말이다.
쩌억!
그녀의 발길질이 스미스의 몸통을 후리는 순간 그는 십여 미터는 나가떨어져 뒹굴며 마른기침을 토해 내었다. 하지만 비척거리며 허리춤을 뒤졌다.
이실라가 어이없다는 듯 널브러진 스미스를 보며 말했다.
“뭐야? 아직도 더 할게 있어? 설마 그걸로 해 보려고? 학습효과가 없는 거니?”
“후우.”
한숨을 내쉰 스미스가 허리춤에서 꺼내 든 것은 권총이었다.
이미 샷 건이나 자동 소총 등은 통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수류탄도 통하지 않았다. 대검을 썼던 건 방심이라도 노려보려 했던 것이다.
권총이 통하리라 꺼낸 건 아니었다.
“큭.”
스미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시체들이다. 성격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전쟁의 프로들이었다. 그런데 다들 허무하게 죽어 나자빠졌다. 그것도 기습 따위가 아니었다.
그냥 걸어와 죽였다.
총 같은 걸 이용한 것도 아닌 칼과 활 따위로 말이다. 스미스는 꺼낸 권총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총구를 입에 물었다. 이 여자에게 희롱당하기는 싫었다.
희롱은 그가 할 때나 즐겁지 당할 때는 정말 지옥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으적!
여명이 밝아 오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솟구쳐 올라가는 권총과 마치 옥수수 같아 보이는 이빨들…… 핏방울들.
“커억!”
“이제 재미있어 질라고 하는데 죽으면 곤란하지. 그리고 하나는 살아야 할 거 아냐.”
턱을 부여잡고 쓰러진 스미스의 멱살을 잡아 올린 이실라 공녀가 히죽 웃었다.
스미스는 투구 틈 사이로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
그냥 생긴 건 이쁜 데 하는 짓은 변태 같은 여자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은 무던했다. 하지만 그게 더 두려웠다. 이 여자는 전쟁을 아는 여자다.
저 눈빛은 마치 전쟁터에서 신병들이 들어왔을 때 고참이나 백전노장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것과 같았다.
가소로움.
이실라 공녀의 손이 뻗어오는 걸 느끼며 스미스는 시선을 떨궜다.
그런 스미스의 귓가에 무전이 들려왔다. 상황을 체크하는 질문이 들려왔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실라 공녀가 빙긋 웃으며 그의 귀에서 뽑아낸 무전기를 꼬옥 쥐어서 부쉈기 때문이었다.
* * *
“뭐지?”
“연락이 아무도 안 돼?”
“분명 작전이 끝나면 연락하기로 했잖아.”
멋들어진 양복을 입은 요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란하게 울렸던 소리는 그쳤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다.
중간에 연락해 볼까도 싶었지만 작전에 차질이 있을까 연락하지 않았다. 어차피 베테랑들이니 문제가 있으면 알아서 연락을 하겠거니 생각하고 말이다.
그런데 소음이 없어진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이다.
“이상한데.”
“설마…….”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당했다는 의미였다.
“함정이었나?”
함정이란 말에 요원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일단 연락해 보지.”
[어떻게 됐어? 존은?]“작전이 조금 전에 시작됐는데 지금 연락이 되는 이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으음.]마이클이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올라가 볼까요?”
요원이 재차 질문을 하자 마이클이 답변을 주었다.
[일단 인원 올려 보내.]“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요원이 대기 중인 씰 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이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일 없겠지?”
“저번에도 당하긴 했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잖아.”
“그건 그렇지. 뭐 배우로 위장해서 행동하고 있으니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걸 거야.”
요원의 말에 말을 받았던 이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것도 그렇지만 배짱 문제 아닐까?”
“흐흐흐 그건 그렇지 우릴 적으로 돌릴 배짱이 있는 이들은 얼마 없지.”
“광신도 빼곤 말이야.”
요원들이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만도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것들 정말 상대를 알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자 아킬리노가 한껏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애들 단속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그래. 알았어. 그런데 다 당했을까?”
“…….”
아만도의 질문에 아킬리노가 굳은 얼굴로 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
“젠장. 프로라며!”
아만도가 욕설을 내뱉으며 조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존은?”
“젠장. 일이 이상하게 됐나 보군.”
마이클과 대기 중이던 용병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두 개 팀이 갔잖아.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고.”
누군가의 말에 마이클이 입술을 깨물었다.
“최악의 경우 인질이 되었을 수도 있어.”
“끙. 골치 아프군. 그런데 죽이지는 않았다고?”
“저번 섬에서의 작전 때도 죽은 이는 없었지.”
“흐음. 그럼 일단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 많은 인원들을 죽이지도 않고 제압할 능력이 있는 적을 둔 우리가 불행하다고 해야 하나.”
용병대장 하나의 이죽거림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마이클에게 유성원이 다가와 질문을 했다.
“상황이 안 좋군요.”
“연락 받았군.”
“통제를 하고 있는 인원들이 우리 쪽 인원들이니까요.”
성원의 말에 마이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요원들을 보냈으니 기다려.”
“그쪽에 고진천 일행들이 전부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면 이렇게 있는 건 좋을 게 없을 것 같습니다만.”
성원의 말에 마이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봐. 명령은 내가 하는 거야. 알았어?”
그의 말에 성원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협조하는 겁니다. 명령하고 있다고 착각하셨다면 접어 두시길.”
“망할!”
마이클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때 마이클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현장에서 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야!”
[씰 팀에게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뭐?”
마이클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 * *
씰 팀의 대원이 수풀 사이로 쭉 뻗어 나와 있는 다리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눈알에 화살을 박고 죽어 있는 저격수의 참혹한 모습이 드러났다.
“오 젠장.”
“우리를 상대로 죽이지는 않는다 했잖아?”
“아까 백오십 명을 죽인 놈들이야. 궁지에 몰리면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지. 게다가 이들은 용병이니까 존에게 사전 설명을 듣고 과하게 손을 썼을 수도 있지.”
“일단 연락부터 해야겠어.”
“그래. 나머지는 계속 수색을 한다.”
그때 한쪽에 남은 대원 하나가 연락을 시도했다.
“여기는…….”
파악!
그 순간이었다.
연락을 하던 대원의 몸뚱이가 옆으로 휙 나가 떨어졌다. 관자놀이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놀란 대원들이 외쳤다.
“기습이야!”
순간적으로 씰 팀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감추며 말이다.
(29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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