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28
300화 뮤직 큐!
“와…….”
눈으로 보고 있지만 정말 대단했다.
갑주를 두르고 적을 향해 달려 나아가 칼을 휘두르고…….
눈으로 보고 있지만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혼동이 온다.
비명을 내지르고 그런 비명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무기를 휘두르며 담담한 시선으로 전장을 바라보는 눈길.
사람들은 하던 식사를 이어 가지 못하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모두가 혼이라도 나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누군가가 그 정적이 감도는 공간에서 한마디 흘렸다.
“대박…….”
정적이 깨어졌지만 그 누구도 말을 흘린 이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곳의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리모컨을 눌렀다.
소리가 커져갔다.
병사를 몰아 나아가는 그 선두에 고진천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입을 벌린다. 항상 짧게 단답만 하던 그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포효가 스피커를 뚫고 터져 나왔다.
그 거친 음향의 함성이 무협소설을 좋아하던 이들이 말하는 사자후와 같은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순간 온몸이 움찔거렸다.
소리를 듣는 그리고 화면을 보는 모든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손에는 땀이 났다. 국이 식고 찌개가 식는 것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평소라면 각자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릴 연인도, 아무것도 모를 아이도……, 그리고 맛난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을 하루의 낙으로 여기는 회사원들도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똑같은 박자로 심장이 뛰고 있음을 말이다.
그렇게 포효가 길게 이어지고 그 소리를 따라 피리 소리와 괭가리 등의 여러 가지 악기 소리가 합주를 하며 거칠게 몰아쳐 나왔다. 국악을 하는 이들의 구음들이 섞여 나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누군가 말했다.
“이걸 왜 뮤직드라마로 만든 거야.”
억울한 음성이었다. 흐르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
태왕기라는 뮤직드라마는 그렇게 대한민국 한낮의 광경을 침묵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 * *
“미친! 이 시청률 봐요!”
“허…….”
강찬성 피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자신 있었다. 그저 뮤직드라마 한 편이었지만 대한민국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시청률 그래프가 미친 듯이 치솟고 있었다.
“70…….”
오랜 시간 엄청난 비용을 들인 드라마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국가대표 월드컵 축구 경기를 독점으로 튼 것도 아니었다. 처음 10분 좀 넘는 걸 아까워서 편집하다 보니 24분으로 늘어나 버린 기형적인 뮤직드라마 한 편이었다.
그나마도 황금시간대를 할당받지 못한 대낮에 점심시간에 방영한 뮤직드라마다.
그런 뮤직드라마가 역사를 쓰고 있었다. 누군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대 최고가 몇 프로지?”
“65.8%요…… 그것도 1997년도 작품이고요.”
“지금 몇 %냐.”
“순간 시청률 73%까지 올랐습니다.”
조금 전에 70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새 3% 늘었다.
불가능한 숫자가 나왔다. 케이블에 종편까지 생겨난 지금 있을 수 없는 숫자다. 그게 뮤직드라마에서 나오고 있었다.
스태프들은 이 경이로운 기록을 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강 피디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있었다. 안타까웠던 것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이건 더 이상 만들 수 없는 영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을 끝난 고진천의 그 모습 이후 만나지 못해서 드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짐작이 그랬다.
이상했던 송가은 작가의 행동도 그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심에 사무쳐 마술이라 믿고 찍었다. 분명 살이 갈라지는 것 같은데 찍고 나면 멀쩡했다. 그래서 애써 그 노인의 마술이 엄청나다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자기 세뇌를 했다.
그 결과가 지금 역사를 고쳐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다시는 못할 거라 생각이 드니 세상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왠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놓고 다시는 못 만들, 그런 하늘이 내린 작품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벌게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로 울고 있었다. 감격에 겨워서 울고 또는 수십 번 이상을 보았을 이 장면을 또 보면서 감정이 동해서 울고…….
그때 문득 품에서 뭔가가 울리고 있는 걸 느꼈다.
스마트폰이었다. 문자가 이미 여러 번 와 있었다. 윗사람들의 문자다. 거기에는 방송국 사장도 있었다. 그리고 전화도 왔다. 뭔가를 치하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강 피디는 조용히 전원을 껐다.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고 싶었다. 이 다시 오지 않을 역사를 눈으로 하나하나 흘리지 않고 담을 것이다.
강 피디의 동공에 말을 타고 적들 사이로 파고들며 족히 성인 남자 두 배가 넘어가는 장창을 휘두르는 고진천의 모습이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 * *
삭.
다른 말로는 동아시아에서 사용되던 기병창을 의미했다.
길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지금 고진천이 휘두르고 있는 건 4미터는 족히 넘었다. 그걸 진천이 휘두르고 있었다.
물론 맨몸은 아니었다.
빠다다당!
미친 듯한 배기음을 터트리는 것은 몸에 걸친 갑주에 어울리지 않는 꽤 값이 나가 보이는 바이크였다. 마치 오래 다룬 것처럼 손잡이를 놓고도 수족처럼 부리는 모습이 마치 과거 고구려의 개마무사를 연상케 했다.
그 주변으로 땅거죽이 퍽퍽 패였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탄환이 애꿎은 바닥만 거칠게 후벼 팔 뿐이었다.
“으아아아!”
타타타타! 타타타타!
미친 듯이 울려오는 소총탄 소리 그리고 그걸 쏘며 비명을 내지르는 사내. 그러나 마치 모든 총알은 주인공을 비껴 나간다는 영화의 법칙처럼 내달리는 고진천의 몸에는 단 한 발도 범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비명을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길 뿐 피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왜 초식 동물이 맹수의 포효에 도망도 못치고 벌벌 떠는가. 그건 영혼을 흔들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철컥!
더 이상 나갈 총알이 없는지 빈 공이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사방에서 울리는 소음과 비명 때문이라도 들릴 리 없는 그런 작은 소리건만 마치 귓가에서 울리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끄아아아!”
마지막 발악과 같은 비명을 터트리는 순간 몸이 훅하고 뒤로 밀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땅바닥이 보였다. 미 정보부 요원은 땅을 바라보며 허공에 떠서 자신의 양손이 꼭 부여잡고 있는 걸 보았다.
비록 총알을 다 쓴 빈 총이었지만 애지중지하던 그건 어디로 갔는지 없고 대신 거무튀튀한 창대를 꼭 잡고 있었다. 그 양손 사이로 끈적한 핏물이 밀려 내려왔다.
“으어…….”
꽤 높이 올라온 탓인지 아찔한 느낌과 바람을 느끼며 요원은 어울리지 않는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상상도 못한 모습이었다. 언젠가 현장에서 총알을 박고 씁쓰레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죽는 최후 정도는 상상해 본 적 있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상상 속에서 없던 광경이었다.
“헤…….”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냐면 지금 자신의 꼴이 어렸을 적 보았던 서커스단의 삐에로가 기다란 장대 위에 올려놓고 돌리던 접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서 바닥이 사라지고 누워 있는 건물들이 빠르게 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하늘 땅.
콰직!
바닥에 나뒹굴며 목이 꺾인 요원의 얼굴에는 눈물, 콧물, 핏물 그리고 오묘한 웃음이 남겨져 있었다.
“이걸…….”
대한민국 정보국 요원들은 지저분한 양복을 털 생각도 하지 못한 체 멍하니 서 있었다. 더는 그들을 막아서던 조직원들도 없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달려가 그들의 일을 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의 움츠림.
서준모 경장의 경고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찰나에 벌어진 참상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마치 눈앞에서 가상현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설마 했던 미 정보부 요원들이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고, 누군가는 유탄을 쏘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명산실업의 조직원들 역시 총을 쏘아 대었다.
이곳이 금주령 시대의 뉴욕도 아닐 텐데…….
그러나 더 비현실적인 것은 칼, 창, 활을 들고 달려든 고진천과 그의 일행들이다.
초인? 괴물? 그런 말로 비교하기 어려웠다. 분명 총알을 맞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악당을 제압하는 헐리웃 영화의 등장인물들과는 달랐다.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피했고, 또 분명 총알이 스친 곳에서 피가 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치 노련한 전사처럼 달려가 무기를 휘둘렀다. 사람이 토막 났다.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를 던지는 모습을 보면 올림픽에서의 역도 금메달은 그 가치가 의미 없어질 것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이보다 더한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갑자기 달려가던 고진천의 앞에 바이크가 나타난 것이다. 말 그대로 나타났다.
그대로 바이크에 올라탄 고진천은 이어 바이크를 몰다가 손을 떼고 활을 들어 쏘았다. 그냥 아무렇게나 쏘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총을 든 이들이 픽픽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무렇게나 쏜 것은 아닌 듯했다.
그 뒤를 꽁지머리의 사내가 교차해 달리며 마찬가지로 화살을 쏘았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금발 머리 사내는 바이크를 몰고 좀 달려가다가 자동차를 들이받고 넘어가 버렸으니까.
이어 창기병처럼 기다란 창을 들고 돌격했다.
처음에는 장대높이뛰기에나 쓰는 그런 막대인 줄 알았다. 끝에 뾰족한 창날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말 대신 바이크를 탄 창기병마냥 창대를 휘두르고 찌르며 유린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시내로 달려갔다.
뭘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다만 그들이 사라지기 전 이쪽을 보았다. 무심한 시선으로.
마치 처음부터 여기에 자신들이 있었다는 것처럼.
어쩌면 자신들을 본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멀리 떠나보내는 연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서 있는 저기 서준모 경장을 바라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일단 통제해야 할 겁니다.”
서 경장이 말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때마침 경찰특공대와 요원들이 몰려왔다. 범인들이 한탕한 뒤 나타나는 영화마냥.
그러나 이건 현실이었다.
* * *
마이클의 얼굴이 굳어졌다.
포위망을 그대로 분쇄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나마 현장에서 날아온 보고가 아니었다. 근처에 있다가 뒤늦게 달려간 요원의 보고였다.
“그러게 마피아 따위를 쓴 게 문제야.”
용병들이 짜증 섞인 얼굴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입은 그렇게 불만을 토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각자의 무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프로니까.
“거기에 두 개 팀이 있었어. 그들까지 문젠가? 헬기는.”
마이클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보며 말하자 용병들은 머리를 긁었다.
“어쨌든 이제 더는 작전을 수행하기 힘든데? 우린 이 나라 정부와 싸우기 위해 온 게 아니라고. 이 마당에 아무런 문제없을 거라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지?”
이미 요란하게 일이 터졌다.
마이클은 입술을 짓씹었다. 용병들이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최소한 이런 미친 짓을 벌였다면 목적이라도 달성해야 한다.
그게 그나마 최악을 면하는 방법이었다.
“일이 마무리되면 돈과 빠져나가는 일은 내가 책임진다.”
마이클의 말에 용병들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 놈들이 어디로 숨었는지 어떻게 알아.”
“추적은 하고 있어.”
“그 잘난 인공위성으로? 그럼 잘 보이겠네? 그 뒤를 따르고 있는 대한민국 경찰들의 행렬을. 내가 아무리 이 나라는 처음이라 해도 이 동네 경찰력이 어떤지는 잘 안다고.”
“경찰은…….”
마이클이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이쪽에 신경도 쓰지 못할 거다.”
“뭐?”
마이클이 전화를 들었다. 그리고는 짧게 명령을 내렸다.
* * *
“지령입네다.”
“디금 말이네? 약속과 다르지 않아?”
“자본주가 말하면 까야디 않갔습네까?”
그 말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까짓 돈 쥔 놈이 하라는데 해야디. 시끄럽게만 하면 되디 않갔어?”
사내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총기류를 챙기며 일어섰다.
사내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가자우. 마지막으로 남조선 아새끼들에게 선물 하나 해 줘야디 않갔어?”
그러자 사내들이 히죽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내래 이 일만 끝내면 금발 머리 처자들을 끼고 살거이야.”
“깔려 죽겠다 이 아새끼야. 흐흐흐.”
시답잖은 농담만이 뒤로 남겨졌다.
(30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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