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36
1화 그들은 어디에
닭 쫓던 개, 아니 계웅삼 쫓던 을지우루와 묵갑귀마대는 텅 비어버린 공간을 보며 발끈했다. 마법사들은 마법사들대로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그때였다.
“우리 딸이 어떻게 됐다고?!”
바사 론 카말 공왕이 헐레벌떡 달려와 외쳤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던 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그를 본 마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루가 입을 열었다.
“웅삼이 아새끼래 데리고 튀었습네다.”
“컥!”
바사 공왕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마법사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우루에게 다가와 소곤거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실라 공녀를 잡았으니 같이 간 거 아니간?”
“그, 그야…….”
“납치인 거야. 딴소리 말라우.”
우루의 표정이 사악하게 변했다.
그때 다른 마법사가 다가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저…….”
“어케 됐네?”
우루가 성난 표정으로 묻자 마법사가 우물쭈물했다. 어차피 리턴마법이 각인된 마나석이기에 갈 곳이라고는 한 군데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본국에 급히 연락을 넣었었다.
그런데 왠지 낭패감이 어린 마법사의 표정에 우루는 물론이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던 대무덕 역시 얼굴을 굳히고 다가왔다.
“무슨 일인 겐가.”
“그게 연락은 했는데…….”
“그새 빠져나간 기야?”
우루가 이를 빠득 갈며 반문했다. 그러자 마법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기럼?”
“안 왔답니다.”
“아, 안 오다니?”
그때 정신을 차린 바사 공왕이 말을 더듬으며 끼어들었다. 그러자 마법사가 멈칫하며 무덕의 눈치를 보았다. 뭔가 말하기 어려운 내용임이 짐작되었다.
“말하게.”
무덕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의 뜻을 보이자 마법사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본국의 마법진을 지키고 있던 마법사들의 보고로는 잠시 마법진이 빛을 발하다가 말았다고 합니다.”
“기, 기거이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또 날아간…….”
털썩.
바사 공왕이 넋 나간 얼굴로 주저앉았다.
***
저녁 시간이 되자 초췌한 얼굴의 시아론 리셀이 지휘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대무덕과 바사 론 카말 공왕과 연휘가람 을지우루 등이 일제히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찌 된 거임네까!”
우루가 들어선 리셀을 향해 질문부터 던졌다. 지금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리셀과 마법사들이 상황을 분석했었기 때문이다.
“다각도로 마법진을 확인한 결과 이동은 이루어졌지만, 원 마법진으로는 이동되지 않았네.”
“어디로 간 것인지는 확인이 안 된 겁니까.”
휘가람이 차분함을 잃지 않으며 묻자 리셀이 자리에 앉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마법의 안정성은 확보되었기에 신상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리셀의 말에 초조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던 바사 공왕과 그 옆에 있던 타다르 백작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기럼 어케 된 건지는 아십네까?”
“아무래도 마법의 복원력 때문인 듯하네.”
“예?”
리셀의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리셀을 빼고는 마법에는 다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법적 지식을 어느 정도 쌓아온 휘가람 역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이 안 가는 표정이었다.
“그게 마법이 각인한 마나석을 이동진을 통해 보내고 되돌아올 때 함께 리턴마법을 시행하기 위해 마법이 시전되면 서로 같은 공간을 통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휘가람이 묻자 리셀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적은 마나로도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인데…….”
“그럼 이번 같은 경우는?”
“리턴 마법을 빨리 활성화하기 위해 이번에 모은 마나석을 이용해 본국의 마법진을 충전시키는 도중에 계 장군이 가지고 있던 마법이 각인된 마나석이 먼저 반응한 것 같습니다.”
리셀의 설명에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지 무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뱉었다.
“허, 먼저 반응을 했다면 본국으로 가야지 왜…….”
“말씀 드렸잖습니까.”
리셀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좌중을 둘러보며 대답을 다시 이어 나갔다.
“같은 공간을 통해 오도록 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같은 공간이라면…….”
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잊은 듯 입을 다물었다. 리셀이 안도 반, 한숨 반이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같은 세상인 관계로 계 장군의 마나석이 연동을 시작했지만 아까 말한 복원력 때문에 아무래도…….”
“그럼 혹시?”
휘가람이 뭔가 짚이는 듯 눈을 크게 뜨자 리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아무래도 다른 세상에 계신 폐하의 곁으로 이동된 듯합니다.”
“…….”
“마법으로 확인 작업을 해서 알아낸 바에 의하면 두 마나석이 한 자리로 모인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끝에 우루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이 내 차례가 오지 않갔구만.”
웅삼이 우루를 피해 고진천의 곁으로 날아간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계웅삼의 지옥으로의 탈주 사건 이후 잠시 지체되었던 전장정리는 빠르게 이어졌다. 물론 바사 론 카말 공왕은 아직도 염려가 되는지 리셀의 막사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가우리의 인원들은 나름 평안한 표정들이었다. 물론 몇몇은 임시로 만든 웅삼의 가묘 앞에 꽃을 놓았다. 가묘를 만든 것은 을지우루였고, 꽃을 가져다 놓은 것은 제라르가 제일 먼저였다. 그 뒤를 삼인방이 장식했고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지옥으로의 도주를 선택한 웅삼의 최후를 만끽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모인 막사에서 대무덕이 입을 열었다.
“그리팔인가 구라팔인가 하는 이는 어떤가.”
무덕의 질문에 부여기율이 대답했다.
“창대에 꽂아서 너무 뒤흔드시는 바람에 저승문에 꼴딱거리며 매달렸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상황입니다.”
“킁, 옆구리 구멍이 어찌 큰지 애들 머리통도 들락거릴 정돕니다.”
삼두표가 기율의 설명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자 이 일의 원흉인 무덕이 헛기침을 하며 외면했다.
“큼. 살았으면 된 거지.”
고진천이 없는 이 자리에서 갑은 무덕이었다.
무덕의 말에 뭐라 할 사람도 없었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다만 바사 공왕 대신 참석한 타다르 백작은 뭐 이딴 인간들이 있나 싶은 시선을 보냈다.
이 전투의 끝으로 전쟁이 마무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지만 적들의 총사령관 목숨을 가지고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게 영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전쟁이 또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고 말이다.
물론 그럴 여력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은 하고 있지만 언제나 최악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이후 전쟁의 마무리는 카말 공국에서 할 일이니…….”
“일단 공왕 전하를 대신해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무덕의 말에 타다르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말도 안 되는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빛이 번쩍거리더니 그대로 전투를 마무리하지 않았는가.
물론 중앙을 뚫고 들어가는 무식한 방법을 선택한 웅삼의 공이 크지만 그 공치사를 받을 이는 이미 자리에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앞으로도 좋은 거래…… 큼, 교류 상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예.”
“그럼 날이 밝는 대로 귀환할 이들은 귀환을 하고 또 공국의 수도로 갈 인원들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하지.”
무덕의 말에 우루가 질문을 했다.
“묵갑귀마대는 두고 귀환하겠습네다.”
“뭐,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아, 드워프 일족도 함께 가도록 하는 게 어떤가?”
무덕은 부월수로 참전한 드워프 부대를 남길 것을 시사했다. 사실 이번 전쟁에서 그들은 별로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것은 신체적인 약점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나름 말도 타고 노력했지만 처음부터 기마병인 다른 병과에 비해 속도가 쳐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짧은 다리를 놀려 적진에 좀 치고 받는가 싶을 때 전쟁이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힘 좀 쓰는 일꾼처럼 부림을 당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전쟁이 끝난 이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기들의 정비였다. 개인정비로 되지 않는 손상도 높은 무기들을 손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무덕의 말에 우루가 타다르 백작을 바라보았다.
타이탄 일족이라지만 엄연히 드워프라는 종족의 한 갈래였다. 이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기에 만남을 주선하려는 의도였다. 그런 무덕의 배려를 읽은 타다르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리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크, 큰일 났습니다!”
늦은 밤.
터그람 왕국의 카이거 루 마이어스 왕의 침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잠을 청했던 카이거 왕이 일어나 소란의 원인을 만나러 침실을 나섰다.
“무슨 일인가.”
카이거 왕이 표정을 찡그린 채 달려온 이를 바라보았다. 왕국의 술법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카이거 왕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지 묻지…….”
“워, 원정군이…….”
“원정군?”
원정군이라는 말이 나오니 카이거 국왕의 찡그려졌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그런 카이거 왕에게 술법사가 날아온 서신을 내밀며 절망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패했다 하옵니다!”
“…….”
술법사의 보고에 카이거 왕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한참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아침이 밝고 연무장에서 한껏 땀을 흘린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을 찾아온 것은 그의 오른팔인 쏜튼 폴리어 백작이었다.
“이처럼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인가.”
“터그람 왕국 쪽의 첩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쏜튼 백작의 말에 시종이 건내주는 수건으로 땀을 닦아낸 프라임 공작이 되물었다.
“이리 일찍 온 것을 보면 뭔가 있는가 보지?”
“아직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터그람 왕국 쪽 병력 움직임이 꽤 혼란스럽다 합니다.”
“혼란스럽다? 얼마 전에 일전을 벌일 거라는 첩보를 받았는데 그게 길어지기라도 하는가보지?”
“그보다 더한 듯합니다.”
“더하다?”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쏜튼 백작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터그람 왕국의 원정군이 패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패해? 터그람이?”
“아직은 일부에서 흐르기 시작한 소문입니다만.”
쏜튼 백작의 말애 고개를 갸웃거렸던 프라임 공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재미있군.”
“일단 해당 첩보를 중심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쏜튼 백작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시종이 건네는 물 잔의 물로 목을 축이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카말 공국이 그만한 저력이 있었나?”
“바사나 카말의 병사들이 무시 못할 악바리기는 하지만…….”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쏜튼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부정의 의미였다. 이 전쟁의 발발 시점에서 카말 공국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다만 카말 공국이 터그람 왕국에게 얼마의 피해를 입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터그람 왕국군이 패했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은 솔직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일단 더 알아보는 대로 보고를 하게나.”
“예.”
“흐음. 그런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뭣 때문이라 생각하나.”
“전략이나 전술적인 면에서의 승리가 가장 가능성 있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쏜튼 백작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뱉자 프라임 공작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터그람의 그리팔이 멍청이는 아니잖은가. 영웅놀이에 심취한 바보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습니다.”
쏜튼 백작 역시 프라임 공작의 말에는 동의를 표했다.
아무리 전략 전술에 밀렸다 해도 그리팔 후작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원정군의 패배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때 문득 뭔가가 생각이 난 듯 프라임 공작이 허공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병력들 말이야.”
“삼황자 진영을 휩쓸고 사라진 병력 말입니까?”
“그래, 그놈들 위치는 여전히 알 수 없지?”
“예.”
“흐으음.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중얼거림을 내뱉는 프라임 공작의 입가에 흥미롭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 것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