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42
7화 중요한 것은 땅이 아니라 백성이다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쉬람 공작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튀어나오자 바사 왕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 정리가 되는가?”
바사 왕의 질문에 쉬람 공작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영주들이 꽤 많이 죽었으니까요.”
“으음.”
쉬람 공작의 말에 바사 왕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꼽자면 바로 전우들이었다.
카말 공국 시절의 특성상 영주들은 대부분이 기사 출신들이었다. 문관보다는 무관이 더 많았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절은 무관들이 득세를 하기 마련이었다. 그 때문에 끝까지 항전하다가 죽은 영주들이 꽤 많았다.
“기왕 하는 것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잔여 백성들을 물리시지요. 단!”
쉬람 공작이 휘가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왕 도와준 것, 화끈하게 돕고 살지요? 안 그래도 이번에 새로 정력석 광산을 하나 팠는데…….”
쉬람 공작의 말에 휘가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쁠 게 없었다.
정력석…… 아니, 마나석 중계무역은 벌써부터 가우리에 크나큰 부를 불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실은 나누는 게 맞았다.
금보다 귀한 마나석을 수레로 가져가는 마당에 지원은 의미가 없다. 그저 그 가격만 제대로 쳐주어도 카말 왕국이 부족한 부분은 충분히 채워질 수 있었다.
본국에서는 벌써부터 각국으로부터 식량을 대량으로 사오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각종 병기들도 끌어모았다. 그쯤 되자 주변국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대륙의 최강국은 가우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연방제국이나 지금은 여러 개로 쪼개진 신성 제국령 나라들의 저력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일 때에도 어쩌지 못한 가우리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은 없었다.
그 덕에 신성제국이 있었던 왕국들은 서로 간에 분쟁을 멈추고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대륙에 긴장감이 높아지자 로셀린과 하이안 등 동맹국에서 마법 통신이 연달아 날아왔다.
전쟁을 치르느냐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문에 레비언 고윈이 진땀을 흘리며 아니라고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변명을 심지어 동맹들까지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직접 따지고 들 사람은 없었다.
사실…… 따질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게 맞았다. 고진천은 이곳에 없었고, 대무덕과 휘가람은 카말 왕국에 와 있었다. 물론 속 시원히 이곳에 관한 내용을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열제의 부제까지도 새어 나갈 수 있었다.
그 내용까지 나가면 안팎으로 소란이 커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가우리가 대륙에서 최강자로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약점은 아직 존재한다. 아직도 모자란 인구수부터 빈약한 경제구조.
그런 문제점들을 한 방에 날려주는 존재가 바로 진천이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일단 다른 국가들은 침묵을 지켰다. 거기에 또 한 명이 있다면 리셀.
물론 진천이 아니어도 다른 무장들의 존재는 막강하지만, 상징적인 존재라는 게 그런 것이다.
진천은 그런 존재였다.
“여하간…….”
휘가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든 상황이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경제는 나아지려나?”
그 중심은 바로 마나석 중계무역이었다. 그것도 리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휘가람의 중얼거림에 바사 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뭐 말인가?”
“뭐 같이 먹고살자는 거지요.”
휘가람이 웃어 주었다.
***
“아무래도 놈들, 진짜인 듯합니다. 기존에 남아 있던 백성들마저 뒤로 빼고 있다는 소식이 본국에서 왔습니다.”
“으음.”
“어쩌지요?”
칼라일 론 마샤 공작은 신음성을 흘렸다. 그도 답답했던 것이다. 그리고 참모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옵니다!”
건물 모서리에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던 한 귀족이 경고성을 날리자 칼라일 공작과 참모들이 일제히 사색에 빠진 표정으로 거닐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사 둘과 병사들이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 순찰이라도 도는 병력 같았다.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산책이오.”
“산책 말입니까?”
“큼, 큼.”
질문을 던진 기사가 칼라일 공작을 보며 살짝 예를 갖춘 뒤 나머지 인물들을 살피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곳은 정원이었다. 그들이 포로가 아닌 이상 정원 산책을 못 하게 강제할 수는 없었다. 멀어져 가던 한 병사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 놈의 산책을 단체로 한대?”
“것보다 남자들 잔뜩 모여서 꽃밭에 있는 것 자체가 좀 그렇지 않냐? 남색도 아니고.”
“……끙.”
참모 중 하나가 얼굴을 붉혔다.
칼라일 공작을 비롯한 터그람 왕국의 협상단은 협상이 결렬된 다음 날 축객령을 받았다. 그래도 그저 엄포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한 줄기 기대를 품었었기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뿐 아니었다. 며칠 후 만난 터그람 왕국 포로들의 눈빛마저 변해 버렸다.
그전에는 패잔병이나 마찬가지인 자신들을 칼라일 공작이 직접 위문하는 것에 감격하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싸늘한 눈초리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져 버린 것이다.
소문이 퍼진 것도 퍼진 것이지만 일부러 유도한 것이기도 했다.
갑자기 식사의 질이 좋아지자 곧 되돌아가는 줄 알았던 터그람 왕국 병사에게 카말 왕국의 병사들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협상이 결렬된 것을 알려 줬던 것이다.
식사가 좋아진 것은 되돌아갈 길이 없어진 터그람 왕국군을 앞으로 보살펴야 하는 카말 공국이기에 처우에 조금 더 신경을 쓰라는 왕명이 있었다는 말을 넌지시 흘렸던 것이다.
불신의 씨앗은 싹을 틔웠다.
어차피 협상이 제대로 됐어도 병사들은 되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둥 현실적인 내용이 오간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틀린 것도 아니었다.
전쟁에서 일개 병사들은 협상 중에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터그람 왕국에서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그들에게 전쟁을 치러 본 정예병은 그 무엇보다 귀한 자산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었다.
그 때문인지 칼라일 공작은 가슴이 새카맣게 타고 있었다.
그때 꽃밭으로 터그람 왕국의 술법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뭔가.”
“협상은 어찌 되어 가느냐고…….”
“큭!”
칼라일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협상을 위해 칼라일 공작이 직접 움직였건만, 협상은커녕 이대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한숨을 내쉰 칼라일 공작이 술법사에게 말했다.
“있는 대로 보고하게.”
“그대로 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술법사가 조심스럽게 물러섰다.
“어찌 그러십니까?”
“놈들이 길들이기를 하려는 겁니다!”
“맞습니다! 상대는 제국입니다!”
참모들의 말에 칼라일 공작이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물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놈들이 택한 차선책도 사실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그…….”
물론 아직도 설마 하는 마음은 있지만, 칼라일 공작의 말대로 바사 왕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고도 남았다.
“어차피 만나 주지도 않는 상황이기도 하고.”
이후 추가로 협상 의지를 보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제 슬슬 터그람 왕국으로 되돌아가라는 대답뿐이었다.
***
빛이 번쩍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형상이 마법진에서 드러났다.
“우오오!”
“우오오오!”
동시에 마법진 안과 밖에서 탄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큰 드워프와 작은 드워프.
카말 왕국의 타이탄 일족과 가우리에 살아가고 있는 드워프들의 만남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만났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교류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서 나오라고! 다음 병력 이동해 와야 하니까!”
“빨리 움직여!”
몇몇 병력들이 그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드워프들이 마법진 밖으로 우수수 몰려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마법사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언제 봐도 장관이다.”
“그러게. 이게 가능할 줄이야. 역시 대마법사님이셔.”
“그렇지.”
가우리와 카말 왕국은 고정식 이동 마법진을 설치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이런 장거리 이동에 필히 리셀이 있어야만 했으나, 마나석이 충분히 확보된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마나의 소비가 많기는 하지만 4서츨 이상의 마법사 두 명만 있다면 마법진 운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 이것도 리셀이 이동 마법진을 죽어라 운용하면서 생겨난 이해력을 바탕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마법진은 기밀이었기에 일부 마법진은 이중, 삼중으로 가려져 있었다.
지금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는 이들은 드워프들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공병으로서 온 것이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 뛰어난 체력과 삽질 능력을 가진 드워프들을 최대한 동원하기로 했던 것이다.
드워프들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래전 전설로 남았던 타이탄 일족과의 만남이라는 말에 너도나도 지원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었지만 카말 왕국은 마나석으로 대체하니 나쁠 것도 없었다.
물론 이제야 그 용도가 가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았지만 사실 카말 왕국에서는 당장 쓸 거라고는 정력 증진밖에 없었으니 나쁠 게 없었다.
가격 또한 넉넉히 쳐 주니 최근 들어 정력석 보상운동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집안에 잠든 정력석! 국력 되어 되돌아온다!]
이런 표어가 각지에 붙자 너도나도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광산에서 캐는 것도 좋지만 이미 가공된 마나석 또한 나쁠 게 없었다. 그 덕에 교환소가 설치되고 정력석은 상당한 가치의 물자와 교환이 되고 있었다.
물론 정력석이 국가의 전매품으로 바뀐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많은 전비를 감당해야 하는 카말 왕국 입장에서는 통제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필요 없다지만 가우리의 마법사들과의 교류가 시작되면 그들도 수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드워프들 이외에 가장 많이 온 이들은 바로 마법사들이었다. 저서클이지만 각종 공사에 중요 인력으로 대우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재의 무게를 가벼이 한다든지, 땅을 판다든지…….
물론 일반 마법사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일이었지만 가우리에 소속된 마법사들 대부분이 떠돌이였고, 또 대우를 못 받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가우리에 정착하여 마법사다운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국가 이름으로 동원되는 일에 적극적인 동참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이번 일에 대한 보상으로 마나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몰려든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칼라일 공작 일행이 시름에 빠진 사이, 바사 공왕은 전쟁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땅을 버리고 백성을 선택한 전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