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60
25화 되돌아온 사신단
“으흐흐흑!”
“으으, 저, 저리 가!”
“흑흑…… 흐으히히힛!”
베프 리온 백작은 말 위에서 내릴 생각도 못 하고 입을 떡 벌린 채 있었다.
“…….”
그를 수행하며 다녀온 기사들 역시 잠시 멍한 얼굴을 하다가 황급히 말에서 뛰듯이 내려섰다. 그러고는 달려갔다.
“이,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기사들이 서둘러 나무에 묶여 있는 알몸의 사신단을 풀어 주었다. 다들 만신창이였다. 사지가 떨어져 나간 이는 없었지만 대다수는 팔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베프 백작도 충격을 뒤로하고 막 풀려난 스미스 백작을 부축하며 질문을 던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오!”
베프 백작이 목소리를 높여 물어 보았지만 눈자위가 돌아간 스미스 백작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뒤편을 돌아보더니 머리를 감싸며 버둥거렸다.
“히이이! 나, 난 수피 시어! 수페는, 수페는 앙마가 상다아아아! 우헤헤헤!”
이빨이 다 사라져 잇몸만 남은 탓에 바람 빠지는 소리만 외치는 스미스 백작을 보며 베프 백작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동맹을 찾는 사신단이었지만 최소한의 무력은 갖추고 있었다.
그 최소한의 무력은 바로 소울아머 유저였다.
자신까지 둘이었지만 자신이 자릴 비웠기에 남은 소울아머 유저는 한 명이었다.
베프 백작은 그를 찾았다. 그러나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바로 지척에 몸을 웅크린 채 쭈그려 앉은 그를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주워 모으는 모습이었다.
“짤랑, 짤랑, 짤랑! 쭉주죽죽, 쭉쭉! 잘도 잘도 찢어진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 음률을 담은 중얼거림으로 쇳조각을 모으고 있었다.
그 쇳조각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필 필요도 없었다. 소울아머였다. 아니, 소울아머였던 조각들이었다.
“히힛, 이건 남았네?”
그의 손에는 소울스톤이 들려 있었기 때문에 유추할 수 있었다. 아니, 바로 전에 목격했던 바가 있어 소울아머가 저렇게도 부서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타다르 후작과 고진천의 대련에서 보았던 경이적 기억.
“설마…….”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 고진천은 그와 함께 식사를 했다. 이 많은 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자신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왕복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현실적으로 맞는 이야기일 수 없었다.
“가, 가우리의 황제였소! 내 분명 들었소이다!”
“그 가우리의 후작이라는 자도 함께였소! 그 독특한 언행과 체구는 분명 그였습니다아!”
모포로 몸을 덮은 귀족들이 달려와, 마치 밖에서 놀다가 얻어맞고 들어와 엄마나 아빠에게 꼰지르는 아이들처럼 주절댔다. 모포가 짧은 탓에 상체는 가렸지만 허연 궁둥이들이 죄 나왔다. 차라리 하체를 가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난 그들과 식사를 하고 오는 길이오. 지체된 시간 따윈 없었단 말이오.”
베프 백작이 일그러진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귀족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들의 말이 맞다고 아우성쳤다.
“분명 보았소?”
“보, 보았습니다! 복면을 하고 와서는…….”
복면이라는 말에 다시 이마를 짚은 베프 백작이 목소리를 높였다.
“복면을 했다면 확실한 것도 아니잖소!”
“부, 분명합니다! 그 둘이 맞습니다!”
사신단 귀족이 억울한 듯 눈물을 글썽이며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을 뱉으려도 베프 백작이 굳어진 얼굴로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귀족에게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둘? 둘이라 했소?”
“둘입니다! 둘이서 우리를…… 몇몇은 도주하려 했지만 사방이 막힌 것처럼 반투명한 막이 둘러싸여 있었단 말입니다! 크흐흐흑!”
“미친…….”
여기저기서 둘이라는 대답이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집단최면이라도 걸리지 않았다면 이들의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단둘이서 백여 명에 달하는 사신단 행렬을 죽은 사람 하나 없이 모조리 제압해서 발가벗겨 묶어 놓는다?
심지어 소울아머 유저까지 있는 행렬을?
“둘이라니! 절대로 불가능하…….”
순간 베프 백작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말을 뱉는 순간 고진천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 압도적이면서 무지막지하고 잔인한 손속, 그리고 아까 들어올 때 갈아입었던 옷과 그 옷에 튄 핏방울.
너무도 공교로웠다.
만약 바사 왕과 타다르 후작을 동시에 상대하며 가지고 놀듯 대련하던 광경을 보지 못했다면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거리를 생각했을 때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다시 이성을 다잡았다
그때 나무에 묶인 이들을 다 풀어 준 기사가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속옷 한 장 남은 게 없습니다. 숲적이라는 이들이 몽땅 털어갔다고 합니다.”
“숲적?”
베프 백작은 이 난해한 단어를 들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이대로…… 달려가 카말 왕국군에게 알리게.”
“하지만…….”
사신단이 이 꼴이 됐다는 걸 알리라는 말에 기사는 순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기사에게 베프 백작이 힘빠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이대로 복귀하자는 건가? 그 먼 길을?”
“……다녀오겠습니다.”
멀어져 가는 기사의 뒷모습을 보며 베프 백작은 긴 한숨을 토해 냈다.
“후우.”
***
“허,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바사 론 카말 왕이 놀란 눈을 한 채 모포 하나만을 걸치고 들어오는 사신단을 맞이했다. 결국 그들은 떠났던 길을 되돌아와야만 했다.
“후우, 습격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숲적? 여하간 도적들이라니…… 그것도 수도 근처에서 말이야. 이거 할 말이 없구만.”
바사 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또 수도 인근에 도적떼가 창궐했다는 사실이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쉬람 마쟐 공작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걸어 왔다.
“그런데 수도 인근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도적이 창궐합니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들의 왕래 또한 활발한데 미치지 않고서야…….”
쉬람 공작의 말에 바사 왕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자신의 영토 안에서 일이 벌어졌으니 할 말은 없지만 이상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두 명이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쉬람 공작의 말에 바사 왕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말이 안 되긴 한데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사 왕이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 뭔가 술법 때문에 착각을 한 것 아닐까?”
“그런 술법이 있으면 전쟁의 양상이 바뀔 것이옵니다.”
쉬람 공작이 재차 대꾸하자 바사 왕이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성을 흘렸다. 그러고는 쉬람 공작에게 명을 내렸다.
“일단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많은 듯한데, 신속히 처리 좀 해 주게. 숙소도 다시 비워 주고 말이야.”
“후우, 알겠습니다.”
쉬람 공작이 대답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패잔병 꼴이 된 사신단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이어서 바사 왕이 베프 리온 백작을 따로 불러 질문을 던졌다.
“보고를 듣기는 했지만 당최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도적인지 숲적인지 하는 놈들이 두 명이 맞나?”
“다들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두 명이 전부입니다.”
“이거야, 원. 소울아머 유저도 있지 않았나?”
“소울아머를 맨손으로 다 뜯듯이 해체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된다…….”
말을 하던 바사 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말이 안 되는데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이가 있다.
딱딱하게 굳어진 바사 왕에게 베프 백작이 말을 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체형이 마치 타이탄 일족을 떠올리게 한다더군요. 어투가 약간 이상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 그래?”
바사 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치는 모습에 베프 백작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그분을 의심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런데 또 이게 말이 안 되니…… 정말 답답합니다. 그 거리를 순식간에 날아서 다녀올 수 있다면 모를까.”
“…….”
바사 왕은 베프 백작의 말에 확신을 가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능력에 맨손으로 소울아머를 잡아 뜯을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 또 듣던 것과 달리 희한하게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 줬던 남자.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이는 리셀 시아론.
“시에라 제국일 수 있네!”
“예?”
“우리 동맹이 흔들리면 누가 이득이겠는가? 터그람? 아니면 우리? 그렇다고 가우리가 움직일 이유도 없잖은가.”
바사 왕의 말에 베프 백작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바사 왕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맨손으로 소울아머를 해체해 버린 괴력의 소유자가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지만 말이다.
“자네도 쉬게나.”
“예.”
“일단 주변을 샅샅이 뒤지겠네.”
“부탁드립니다.”
“나만 믿게나.”
힘 빠진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베프 백작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 있던 바사 왕이 바쁘게 발을 놀리기 시작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고진천의 숙소로 들어온 바사 왕이 제일 먼저 본 것은 모닥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닥불에서 뭔가 이질적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타고 있는 장작 중 두 개가 기다란 게 휘두르기에 딱 좋아 보였다. 그리고 아직 덜 탄 곳에 묻어 있는 얼룩덜룩한 자국, 그리고 아까 입었던 옷의 일부가 보였다.
딱 봐도 핏자국이었다.
“음, 무슨 일 있나?”
“…….”
어느새 나타난 진천을 보며 바사 왕은 대체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밖이 시끄럽더군.”
“사신단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래?”
“모두 털려서 되돌아왔습니다.”
“이런 주변에 숲적이 들끓는가 보군.”
“…….”
이보다 더한 확신은 없었다. 바사 왕은 숲적이란 말을 꺼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바사 왕이 말했다.
“그래도 죽이진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당연하지.”
“그렇지요?”
“…….”
바사 왕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얼굴이 굳어진 진천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까. 아마 숲적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야.”
“숲적은 뭡니까?”
“산에는 산적, 숲에는 숲…… 으음.”
“…….”
“요즘 내가 좀 허해서. 먼저 쉬겠네.”
“……쉬십시오.”
뻣뻣하게 굳은 채 되돌아가는 진천을 보며 바사 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뒤늦게 나온 을지우루가 바사 왕을 보더니 움찔했다.
“어째 나보다 더한 사람들은 처음이오.”
“기, 기거이 무슨 말입네까?”
“무슨 말이겠소.”
“거, 걸렸습네까?”
확인 사살까지 해 주는 우루였다. 그런 우루를 보며 바사 왕이 대답했다.
“지금 확인했소이다.”
“헉!”
우루의 낯빛이 퍼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