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84
49화 생각은 생각일 뿐 오해는 말자
동상이몽.
같은 자리에서 두 가지 꿈을 꾼다는 이 말처럼, 지금 카말 왕국의 수도를 향하는 쏜튼 폴리어 백작과 을지우루의 일행의 상황이 그랬다.
“죄송합니다.”
그린 베이커 백작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자네 탓이 아니야. 저쪽이 눈썰미가 좋은 것뿐이네.”
지금 그린 백작이 고개를 조아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필리어리 왕국 쪽에서 날아온 소식 때문이었다.
‘필리어리 왕국에 문제가 있느냐? 만약의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하라.’
단순 염려에 그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내용이 언급되는 과정에서 쏜튼 백작 일행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이들의 급한 행보에 무슨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나마도 듀란 백작이 먼저 손을 써서 자세한 내용을 사전에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리 선수를 쳐 시에라 제국의 타격대가 섞인 무리를 중요한 첩보를 가져오는 이들처럼 둔갑시켰다.
이 상황을 오히려 이용한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복귀가 빠른 것에 의심을 가질 수 있었던 상황이다.
거기에서 쏜튼 백작은 이곳의 분위기가 읽혔음을 알아챘다.
답은 금방 나왔다. 사실 쏜튼 백작은 문제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쉽게 남에게 읽힐 사람이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 결과는 하나다. 주변에서 읽힌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그린 백작이 이렇게 굳은 얼굴로 죄를 청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쏜튼 백작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그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눈썰미가 좋은 것이었다.
아무리 노블 기사단의 존재 의의가 무력이라지만 이런 일에 동원되는 이들이 쉽게 허점을 노출할 리는 없었다.
문제는 작전에 너무 충실했다는 점이었다.
목표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허술함도 전혀 없었고 군더더기도 전혀 없었다. 바로 그 부분을 읽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최단기간 방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떡헤 하지요?”
그린 백작이 약간 복잡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지금대로 하게.”
“그렇지만…….”
쏜튼 백작의 말에 그린 백작이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하지만 쏜튼 백작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행동을 바꾼다는 건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네. 자네도 그게 걱정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
그린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죽자 사자 달려오는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느슨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이대로 진행한다는 것도 마치 적에게 이쪽의 의도를 모두 보여 주면서 움직이는 것 같아 찜찜했던 것이다.
“내가 있으니 변명거리는 많네.”
“으음.”
쏜튼 백작의 말에 그린 백작이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일정을 더 서둘러 보겠는가?”
“예?”
쏜튼 백작의 말에 그린 백작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쏜튼 백작이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네. 속도를 더 높여달라고 하게.”
“정말이십니까?”
“그거면 족하네. 알아서 물어 볼 것이니 말이야.”
쏜튼 백작의 말에 그린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휴식 시간에 찾아와 그린 백작이 꺼낸 말에 타다르 후작이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마치 자신들이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스스로 까발리는 것 아닌가.
그때 한쪽에서 웅삼이 다가오며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시에라 제국의 사신단이 속도를 더 높였으면 하는 말을 했습니다만.”
그 말을 들은 웅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더요? 무슨 급한 용무라도 있는 겁니까? 지금도 충분한데 말입니다.”
웅삼의 질문에 답한 것은 그린 백작이 아니었다.
쏜튼 백작이 다가오며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번 전쟁에 많은 부분이 동원되다 보니 제가 직접 처리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카말 왕국을 오는 것 역시 중한 일인지라 오기는 왔습니다만…….”
쏜튼 백작의 말에 타다르 후작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마치 이전 전쟁과는 달리 엄청나게 준비한다는 경고의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듣기에 즐거운 답변은 아니었다.
그 순간이었다.
“흡!”
쏜튼 백작이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왠지 모를 오한이 갑자기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만이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그린 백작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시에라 제국의 기사들도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든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옆에 있던 그린 백작이 소울아머를 활성화시켜 전투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니런. 내래 실수했구만기래.”
그때 저 멀리서 느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루가 히죽 웃으며 느릿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그린 백작이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신단에게 살기라니 이런 무례가 어디 있소.”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분노가 느껴지기에는 충분했다. 그의 말을 들은 쏜튼 백작은 그제야 조금 전 오한이 왔던 것이 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정돈 이해하라우. 우리가 친구는 아니디 않아?”
“무엇이오!”
“목소리 올리디 말라우. 내래 그짝과 말 나눌 군번은 아니디 않갔어? 아니면 그쪽 동네는 원래 그래도 되는 기간? 길타면야 문제 없디만 말이디.”
여전히 느긋한 음성에 정신을 차린 쏜튼 백작이 주변을 살피곤 그린 백작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그만하게.”
“허나!”
“우리만 무기를 뽑고 있잖은가.”
그 말에 그린 백작이 주변을 살폈다. 몇몇 카말 왕국 쪽의 인사들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달리 가우리 쪽 병사들은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귀찮다는 듯.
반응을 못한 것이 아니라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린 백작이 머쓱해진 표정으로 뽑아든 무기를 내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언사를 높인 것에는 사과를 청하겠습니다. 허나 살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거기 쏜튼 백작이 전쟁할 때 중요한 인물이라 하디 않았네? 최대한 빨리 왔다가 되돌아가야 할 정도로 말이디.”
“허허, 그렇습니다.”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쏜튼 백작이 나서며 우루의 말을 받았다.
“기래서 잠깐 고민한 거이야. 우리야 준비할 시간이 더 길어지면 좋디 않갔어? 안 싸울 것도 아니고 말이디.”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우루의 말에 쏜튼 백작은 순간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반면에 그린 백작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저 말은 그냥 살기를 뿜은 것이 아니라, ‘죽여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살기라는 것이 상대방을 죽인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 경지의 무인이 되면 시늉으로도 기운을 뿜을 수 있다.
반대로 생각은 그렇다 해도 충분히 안으로 갈무리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우루는 뻔뻔한 표정으로 ‘한번 생각해 봤어.’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제대로 막 나가는 것 아니면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이기도 했다. 반대로 쏜튼 백작은 달리 생각했다.
‘시험인가.’
쏜튼 백작은 자신의 주변을 호위하는 이들의 반응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반수 가까이가 소울아머를 활성화시키거나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살기 한 방에 전력의 일부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허허, 이 늙은이가 그저 책임자다 보니 그런 것뿐입니다. 없다면 누군가가 이 자릴 대체하면 그만이지요.”
“이거이 놀라게 해서 미안하구만 기래.”
물론 우루는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쏜튼 백작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건 바로 그의 주군인 프라인 론 아가드 공작이었다.
사과를 함에 있어서도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그였다. 물론 사과라 해봐야 진짜로 사과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 그와 닮은 것이다.
그때 웅삼이 나서며 말을 잘랐다.
“이거 죄송하게 됐소. 대신 그쪽 편의를 최대한 봐 주겠소.”
웅삼의 말에 쏜튼 백작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허허,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쪽 마차 튼튼하우?”
웅삼의 말에 쏜튼 백작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위아래로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장거리 원행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튼튼하지요.”
“그럼, 미리 연락해서 예비마는 좀 그렇지만 마차만이라도 끌 놈들을 불러오겠소. 사실 전부 마차에 속도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더딘 부분도 있지 않겠소?”
웅삼의 말에 쏜튼 백작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다들 무장을 해제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약간 경거망동했네. 굳이 우리의 전력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네.”
쏜튼 백작의 질책 어린 말에 그린 백작이 약간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허나 그래도 일부만 보였으니…….”
“전부 다 드러났다고 봐야 하네.”
“예?”
“우리의 행동으로 많은 것을 유추한 이들이네. 일부라 하지만 이미 그것만으로 전체를 살핀 것이나 마찬가질세. 소울아머 유저와 일반 기사 간의 차이가 단지 무력의 차이만은 아니지 않은가. 자연스러운 직위 고하의 차이도 있네.”
“아…….”
보여 주지 않아도 이미 비슷한 급수로 보였던 이들은 모두 유추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제야 그린 백작이 얼굴을 더욱 붉혔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성급했는가.”
이제와는 달리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가 그랬는지 쏜튼 백작이 질책이 담긴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린 백작이 얼굴을 굳히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도 모르게…….”
“허?”
분노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반응한 것이라는 대답에 쏜튼 백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광경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가끔 프라임 론 아가드 공작이 기사들이 항시 준비되어 있는지 시험해 본다며 기운을 뿌리면서 하던 행동과 같았다.
제대로 무기를 뽑아 대응하는지, 아니면 어리둥절한지 말이다.
“그래. 어떻든가.”
“그게 약간 생소한 느낌이라 반응한 것뿐입니다. 무엇보다 대상이 백작님이셔서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가.”
“다만 살기를 뽑아내고 거두어가는 모습이 예사가 아닌 것은 맞는 듯합니다.”
그린 백작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쏜튼 백작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잘 살피게나. 어쩔 수 없는 일은 흘려보내고 말일세.”
“예.”
쏜튼 백작의 말에 그린 백작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놈들의 전력이 엄청나오! 소울아머 유저가 최소 스물은 되어 보이오!”
“그러게요. 까면 깔수록 나오는 게 재미있습니다.”
웅삼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던 타다르 후작이 우루에게 질문을 했다.
“일단 그쪽의 전력은 알았지만 너무 자극한 것은 아닙니까?”
그러자 우루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자극은 무슨 말이간.”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뒷짐 지고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런 우루를 보며 웅삼이 히죽 웃었다.
“그냥 한 겁니다.”
“그냥? 살기를?”
타다르 후작의 반문에 웅삼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죽여 볼까 생각해 본 거 말입니다. 그냥 그거뿐입니다.”
“그런데 살기를 왜…….”
“말 그대롭니다. 그냥. 굳이 따질 필요도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한 거겠죠?”
웅삼의 대답에 타다르 후작이 잠시 입을 멍하니 벌렸다. 대체 이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있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