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996
61화 난전
“어떻게?”
부 전단장인 미온 자작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두표가 히죽 웃었다. 하지만 대답은 다른 쪽에서 흘러나왔다.
“이렇게?”
콰직!
한 손에는 롱소드,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도끼 한 자루가 들려 있는 사내에게서 대답과 동시에 또 한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명을 달리했다.
바로 기율이었다.
미온 자작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쪽에 전력을 더 집중하는 것인데…….”
후회가 가득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른 명의 묵갑귀마대는 아직도 하나로 뭉쳐 공격을 흘려내고 있었다. 반대로 노블 기사단 3전대의 임시 대원들은 하나둘씩 목숨을 잃었다.
전술은 단순했다.
묵갑귀마대는 소울아머 유저들을 막기만 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미온 자작은 두표가 막았다. 공격은 바로 기율이 했다. 물론 가끔 냥이도 한 손, 아니 한 발을 거들었다.
이것만으로 족했다. 스물두 명의 인원에서 이제는 열다섯 명이 남아 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지.”
두표의 말에 미온 자작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때 기율이 외쳤다.
“난전에 돌입하라! 빠르게 정리하고 아군을 구하러 간다!”
“충!”
그 말과 동시에 하나로 뭉치듯 모여 있던 묵갑귀마대가 일제히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뭣하고 있나! 막아! 놈들이 스스로 병진을 풀었다! 오히려 기회야!”
미온 자작이 뒤쪽에서 경악에 찬 표정으로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던 귀족파의 기사들에게 외쳤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듯 그들이 일제히 소울아머 유저들과 함께 튀어나오는 묵갑귀마대원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런 그들을 제일 먼저 반긴 건 바로 냥이었다.
“크어어엉!”
냥이의 거대한 앞발이 공간을 쓸자 그 간격으로 진입해 왔던 기사들의 몸뚱이들이 마치 비질에 쓸려나가는 쓰레기처럼 후두둑 튕겨 나갔다.
이어서 묵갑귀마대원들이 돌입을 시작했다.
여태 막기만 하던 때와는 또 다른 기세였다. 이전은 마치 커다란 바위 같았다고 한다면, 지금의 기운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파도 같았다.
“크아압!”
기사가 달려 나가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커다란 기합과는 달리 허무하리만치 막혀 버렸다. 동시에 그의 몸뚱이를 파고들었다 사라지는 것들이 있었다.
공격이 막히는 순간 그것을 막은 묵갑귀마대원의 양옆에서 튀어나온 공격이 그의 갑주와 몸뚱이를 갈라 버린 것이다. 비명을 내지를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공격을 막았던 묵갑귀마대원이 그대로 롱소드 손잡이로 안면을 찍어 버렸기 때문이다.
순간 기사의 시선으로 천장이 보였다. 뭔가 후하닥했는데 몸뚱이가 잘리고 면상이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다시 지나치던 이들의 신형을 보았다.
그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콰직 콰직!
“쿨럭!”
심장어림을 관통하고 스치듯 지나가는 그들을 보며 참 허무하게 당했다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돌아간 그의 시선 속에 자신과 비슷한 최후를 맞고 있는 기사들이 눈에 보였다. 아니,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그 강력한 소울아머 유저마저 비슷한 모습으로 나자빠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자연재해에 쓰러지는 초목과 같았다.
차라리 뭉쳐 있을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움직이자 수십 마리의 늑대 떼가 양떼를 덮치는 모습과 같았다.
“하아…….”
마지막 한숨이 흘러나왔다.
“으아아!”
소울아머. 경지에 든 자들만이 취할 수 있다는 문구를 입었을 때만 해도 이런 결과는 상상도 못했다.
비록 임시단원이라는 위치에 있지만 어디에 가든 소울아머 유저라는 것 하나만으로 작위는 물론이고 대접받고 살 수 있었다.
그랬는데 그 자부심이 지금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와직!
“커억!”
정신없이 몰아치는 공격을 모두 막아낼 수 없었다.
옆구리에 누군가 휘두른 검이 틀어박혔다. 일격, 일격에 담긴 힘이 강력한 것은 둘째 치고 정신이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난전은 겪어 보지도 못한 것이다.
뭉쳐 있을 때야 집단전에 특화된 이들이라 판단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그들은 웅크린 것이 아니라 틈을 노리던 맹수들임을 말이다.
그동안의 고련도 소울아머 유저라는 자부심도 지금은 소용이 없었다.
카칵! 카카칵!
틈이 생기자 그것을 막을 시간도 없었다.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느낌. 몸 안의 소울 포스는 미친 듯이 새어 나가는 생명력을 막아보겠다고 날뛰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콰창!
“허으어!”
소울스톤이 깨어지며 소울포스가 폭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이 뜨거워지며 푸른 불꽃이 시야를 휘감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절망감이었다.
자부심이 무너지는 절망감.
***
부우우웅!
“끄으응!”
“이, 이건 무슨 술법인가!”
헤머튼 왕이 질문을 던졌지만 정작 질문에 답해야 할 이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크으윽!”
우윳빛 막 밖에서 공격을 해오는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제라르가 나설 때만 해도 그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렸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 인원들을 모두 보호하며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센시아 공주 곁에 있으면 왠지 조금이나마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자리를 옮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참으로 잘한 선택이 되었다.
가우리의 술법사로 보이는 이가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뿌연 막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물론 그 범위는 센시아 공주와 로잔 주변에 한해서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왕인데…….’
필리어리 왕국의 왕은 헤머튼 자신인데, 보호는 그의 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보통 이럴 때는 왕을 먼저 보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혔다. 왠지 우울해졌다.
“와압!”
제라르의 롱소드가 뇌전을 뿌리며 사방을 휘감았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두고 소울아머 유저들이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안 된다!”
“대체 저자의 정체가 뭐지?”
그런 제라르의 등을 류화가 지키고 있었다.
제라르를 방패삼아 여기저기 치고 빠지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힘 좀 더 써보쇼!”
“닥쳐!”
제라르가 발끈했다.
지금 그들의 발치에는 네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생기를 잃고 뒹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제라르가 순식간에 두 명을 처리했고, 하나는 류화가 처리를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갑자기 적들이 거리를 유지하며 합격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이후 류화와 함께 처리한 게 한 명이었다.
그러고 나서 저들이 한 것은 마법사의 마법으로 보호되는 센시아 공주와 로잔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은 여력이 있어 보여 다행이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유리한 것은 저쪽이었다.
“이놈들 저번에 그놈들과는 달라!”
“그런 것 같죠?”
“맞아. 기본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제라르의 말에 노블기사단 3전단 단원들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소울아머 유저가 기본기 운운하는 소릴 듣는 다는 것 자체가 굴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뇌리로 처음에 달려들었던 소울아머 유저 둘이 공격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두 동강 난 것이 아직도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예 작정하고 포위망을 구성해서 공격을 해 대는 데도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또 한 명의 단원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엄청난 강자임이 분명했다.
“대체 저 괴물은…….”
일리언 공작이 말을 제대로 이어 가지 못했다.
듀란 백작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울아머 없이도 저런 강함이라니 정말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소울아머를 입었다 해도 저 정도라면 정말 엄청난 것 아니겠소?”
“그러하옵니다.”
일리언 공작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에라 제국을 끌어들인 것까지는 좋은데, 이 일로 터무니없는 적을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쪽은 정리가 됐겠지?”
일리언 공작의 질문에 듀란 백작이 걱정 말라는 듯 대답했다.
“그쪽도 스물이 넘는 소울아머 유저가 갔습니다. 저 둘이 괴물인 것뿐이옵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더 이상의 희생도 없으니 시간문제일 뿐이옵니다.”
듀란 백작의 말에 일리언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헐레벌떡 누군가가 달려왔다.
“뭔가?”
듀란 백작이 불안한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다. 달려온 이는 묵갑귀마대만을 따로 떨어트려 놓은 곳을 담당하는 기사였던 것이다.
“노, 놈들의 저항이 엄청납니다! 이미 노블 기사단이 반수 가까이 당했습니다!”
“뭐!”
일리언 공작이 놀란 눈을 했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무어라 했는가!”
노블 기사단 3전단의 전단장인 케이브 백작이 굳은 얼굴로 노성을 터트렸던 것이다.
“일단 예비대를 투입했습니다만, 여기는 어떻게…….”
보고를 하던 기사가 말을 이어가지 못학 입을 떡 벌렸다. 십수 명에 둘러싸인 제라르와 류화를 보고 할 말을 잃었던 것이다.
온갖 섬광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 누구 하나도 둘을 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 술법사들을 동원해! 어서!”
“아, 알겠습니다!”
“일리언 공작!”
케이브 백작의 노한 음성에 일리언 공작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난 이번 거사에 모든 것을 걸었네! 시간 따위 끌 수 없단 말일세!”
“으음.”
케이브 백작이 신음성을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달라붙을 수 있는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차라리 술법사를 동원해서 온갖 방법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왕성의 반역이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실패는 없을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케이브 백작이 지게 된다.
“우리도 동원하겠소이다.”
“뭐 하는가! 모든 전력을 움직이고! 왕성을 뒤져서 왕가의 피가 흐르는 자들을 모조리 끌고 와라! 빨리!”
원래는 모조리 죽여 없앨 생각이었지만, 이런 상황이면 인질로 활용해야 할 판이었다.
어쨌든 인질을 잡으면 저들의 발목을 잡을 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멀었습니까?”
“아, 아직!”
묵갑귀마대원의 다섯 명은 마법사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이동마법의 대응 마법진을 그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일리언 공작가의 기사들은 물론이고 악에 바친 노블 기사단의 소울아머 유저들이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아!”
미온 자작의 거친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불로 만들어진 새들이 묵갑귀마대원들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술법이다! 막아!”
쾅! 콰콰쾅!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난전을 벌이던 묵갑귀마대원들이 물러서며 날아드는 술법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후끈한 불기운이 사방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