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80
182화
한결은 재환에게 커피를 내주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비서실장한테 단단히 찍혔다고?”
“어.”
“근데 나 같아도 너 가만히 안 놔둔다.”
“아, 선배! 선배는 내 편 들어줘야 하는 거 아냐?”
재환이 불만을 토로했지만, 한결은 귀를 파면서 모르는 척 했다.
아니, 오히려 한 마디를 더 했다.
“야, 생각해봐. 지금 KG 그룹에서 네가 없으면 진짜 왕창 흔들릴 건데, 비서실장님이 당연히 너 말리려고 하겠지. 나라도 네가 TBS 대표직 그만 둔다면 멱살 잡고 말릴 거다.”
“사실 TBS 대표도 그만 두고 싶….”
“쳐맞고 싶냐?”
살벌한 한결의 말에 재환은 양손을 들었다.
이 말의 반은 농담이다. 나머지 반은 진심이다.
“근데 왜 그만두고 싶단 거야. 대체, 다른 사람은 억만금을 줘도 가지고 싶어하는 자린데 말야.”
“그냥 지쳤어.”
“세상 지쳤다고 그 자리를 그만두는 인간이 어딨어.”
한결이 힐난의 목소리를 내다가 이어 물었다.
“너 그 수첩 때문이냐?”
“음…. 아니라곤 말 못하지.”
“참, 우리 강재환이 쫄보 다 됐네.”
“놀리지 말고. 그래서 나 좀 도와줘.”
재환의 눈빛을 본 한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말했다.
“내가 이런 위치까지 올라온 게 다 네덕이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후배는 잘 뒀어.”
“내가 듣기로 선배가 내 욕을 그렇게 많이 하고 다녔다던데.”
“그것도 맞는 말이지. 너 때문에 굴러다닌 날이 하루 이틀이냐. 욕 좀 해야지.”
한결은 웃다가 말했다.
“머리로는 널 도와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너같은 인재가 필요하니까. 근데 내가 너한테 진 빚이 너무 많아. 그 빚을 이번 기회에 좀 갚는다 쳐야겠어.”
“역시 선배야. 난 선배를 믿고 있었어.”
“징그럽다.”
한결은 재환에게 손을 내젓고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빠져 나올 건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보도 지침 내리는 거랑 규제 정도 밖에 없는데.”
“대놓고 인터뷰를 할까 싶어.”
“인터뷰라.”
재환의 말에 한결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재환이 인터뷰를 하는 중 KG 그룹의 회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한다면?
“KG 그룹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걸.”
“에이….”
“농담같냐.”
“진심같네.”
그만큼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재환이다.
한결은 조금 과장해서 재환의 퇴임을 막기 위해 파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유래 없는 일이긴 하겠네.”
“에휴. 그만두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니.”
“그러게 좀 조용히 지내지 그랬냐. 아니면 미리 부정적인 여론을 좀 만들어 줘? 너에 대한 비난섞인 기사들만 보도하는 건 어때?”
“그건 또 그거대로 난리날 걸.”
재환의 행보에 악행은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뭐라고 한들 역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한 일들 때문에 역으로 아무것도 못한다는 게 웃긴 일이네.”
내가 쓰려던 무기에 내 목이 죄일 줄이야.
재환의 말에 한결이 타박했다.
“그러게 사람이 좀 인간미도 있고 그래야지. 너무 철두철미하게 살았어.”
“그런가.”
한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차라리 그 자리에 그냥 있으면 안 되냐.”
“어? 우리 타임머신이라도 탔나? 얘기가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얘기를 좀 차분히 진행해보자고.”
한결은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며 말을 이었다.
“네가 그 자리에서 나오려는 이유는 하나 아냐. 만에 하나 있을 위험한 상황 때문에.”
“그게 크긴 하지.”
지금까지야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매번 속 쓰릴 만한 상황을 마주할 바엔 때려치겠단 심산이 크다.
한결은 그 점을 짚고 물었다.
“근데 어차피 네가 가진 근본적인 파워는 정보란 말이지.”
“그게 더 없으니까….”
“없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는 거지. 있다고 해도 못 믿을 사람들이니까.”
한결은 그 부분을 지적한 뒤 말했다.
“오히려 네가 위협당할 조건이 더 많아져. 결국 어느 기관에 네 안전을 위탁하는 일이 생기겠지.”
“그러지 않기 위해….”
“TBS 대표 자리는 가지고, KG 그룹의 회장직은 그만둔다? 명예 회장정도로 내려가고?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겠냐.”
한결은 타박한 뒤 핵심을 짚고 늘어졌다.
“네가 KG 그룹의 뒷방 늙은이가 되고 싶단 건 알겠지만, 그러려면 아무도 건들지 못할 힘을 갖춰야 해. 그 때가 되면 서진씨도 아무 말 못할 거다.”
“아무도 건들지 못할 힘이라니. 그런 게 어딨어.”
“KG 그룹을 세계 정상에 세우면 돼.”
한결은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KG 그룹의 물건을 쓴다고 생각해봐. 그들 입장에선 KG 그룹은 기업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거야. 그런 기업의 회장을 건들겠어?”
“휴우…. 거기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또 고생해야 할지.”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은 없어. 지금 네가 그만두는 건 그냥 일에서 도망치는 것뿐이야.”
한결의 말에 재환은 턱을 괴고 고민했다.
저 말은 재환의 속내를 정확히 짚었다.
힘든 일을 더 겪고 싶지 않다지만, 안 좋은 일은 계속 이어질 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만 한다.
“으…. 이 왕관이 너무 무겁다고.”
“그 무게를 덜 수 있는 방법은 있어.”
“어? 그게 뭔데.”
“사람을 굴려.”
재환의 말에 한결은 자신이 하는 업무를 가리켰다.
“나도 마찬가지잖아. 대부분의 결정은 내가 하지만 사소한 일들은 전부 밑에 사람들 시키지. 편집장도 있고, 행정 담당하는 직원들도 있으니까.”
“그건….”
“네 성격상 다른 사람들에게 일 못 맡긴다는 건 안다. 보안등급 높은 정보들을 처리해야하니까 더 그렇겠지.”
혹시라도 정보가 샐 수 있단 위험 때문에 재환은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처리했다.
TBS에서 뉴스를 할 때 조차도 방송 직전에 PD들과 카메라맨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그 때문에 재환이 스튜디오로 간다고 하면 다들 평소보다 더 긴장했다.
“왕관이 무거우면 네 밑에 사람들이 널 들게 해. 나눠 들면 될 일이야.”
“무슨 중세시대 왕의 행차도 아니고.”
“우리가 기자일 때를 생각해봐. 저 위에 놈들은 기사 한 줄 안 쓰면서 우리가 쓴 거보고 지랄한다고 뭐라 했었잖아.”
한결이 까마득한 옛날 일을 꺼내자 재환이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도 있었다.
기사도 안 쓰는 인간들이 기사에 대해 뭘 아냐고 궁시렁 대던 때가 재환에게도 있었다.
“지금이 네가 그런 일을 할 때야. 어차피 서진씨도 그렇고 유능한 직원들도 있잖아.”
“비서실 직원들이 유능하긴 하지.”
“그 사람들에게 일을 넘겨. 넌 보고 결정만 해. 이거 좀 더 해와라. 수정해라. 보고서 다시 써라 등등. 위에 있으면 위에 있는 사람답게 움직여.”
“그거 참 어려운 말이네.”
회장직을 단지 2년은 더 된 것 같은데도 아직까지 자신이 회장답게 굴었냐고 물으면 아니오란 답 밖에 안 나온다.
“그래, 일단 그렇게 해봐야겠어.”
“휴가도 좀 가고. 회사 출근도 늦장 부리고 해.”
“선배 그렇게 해?”
“아니, 뭐…. 내가 그렇게 한다는 건 아닌데.”
재환은 여기서 나가는 즉시 한결의 근무태도에 관해 알아보리라 결정했다.
이후 간단한 사담을 나눈 뒤 재환은 KG 본사로 향했다.
서진에게 이후의 일에 대해 얘기라도 나누려고 했는데…. 회장실 입구에 있던 비서에게 붙잡혔다.
“저… 회장님? 비서실장님이 회장님 오시면 돌려보내시라고….”
“……내가 위야 그 놈이 위야.”
“당연히 회장님이 위지만, 말 안 들으면 바로 자르겠다고 엄포를 놓으셔서….”
비서들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선은 재환에게 붙어서 선처를 바라는 거지만, 선처를 받는다고 해도 비서실에서 일하면서 꾸준히 욕먹을 거 생각하면 아찔 할 따름이다.
“아니, 회장님. 집 가서 쉬시라니까….”
때마침 회장실로 올라온 서진이 한숨을 내쉬며 재환을 힐난했다.
재환은 서진의 태도에 도리어 당황했다.
“내가 내 사무실도 못 와요?”
“네. 지금은 안 됩니다. 돌아가세요.”
“아니, 얘기 좀….”
“한 달 뒤에 들어드릴테니 일단 가세요. 너희들 회장님, 오시면 무조건 돌려보내. 댁까지 모셔다드리고.”
서진의 강압적인 태도에 재환은 인상을 쓰고 목소리를 깔았다.
“비서실장님. 자꾸 이렇게 월권행위를 하시면 비서실장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가….”
“바꾸시죠. 그 편이 회장님에게 편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서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만큼 회장님을 잘 보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서실장님.”
서진은 재환의 어깨를 잡고 차분히 말했다.
“제가 회장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쉬세요. 제가 그 동안 대안을 마련 해 두겠습니다.”
“대안을 마련해 둔다니.”
“믿고 기다려 주세요.”
서진의 말에 재환은 결국 양손을 들었다.
별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재환을 예희가 보며 웃었다.
“뭐가 잘 안 된 모양이네?”
“글쎄,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네.”
재환은 머리를 긁으며 예희의 옆에 가서 앉았다.
예희의 품에 있던 소이가 재환을 보고 웃으며 손을 내뻗었다.
귀여운 딸내미의 재롱을 보자니 아까까지 겪은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원래 하고 싶은 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잖아.”
“그 말이 맞긴 한데, 그냥 상황이 묘해.”
재환은 소이를 안아들고 웃었다.
예희는 그런 부녀를 보며 말했다.
“한 달 동안 쉬라지?”
“어.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시켰어.”
1도 예상못한 예희의 말에 재환은 벙쪘다.
반면 예희는 짓궂은 장난이라도 친 아이처럼 싱글싱글 웃었다.
“아니, 당신이 그랬다고?”
“어.”
“왜?”
“당신 후회하지 말라고. 그래서 비서실장님 따로 불러서 얘기 좀 했어. 다른 좋은 방법 좀 생각해 봐 달라고.”
예희의 말에 서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뭔가 수를 써보겠다는 그 말.
재환은 헛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나보다 낫네.”
“원래 그랬어.”
타국의 대통령이랑 딜을 할 수 있어도 아내는 이길 수가 없다.
이건 만국 공통의 사실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한 달 동안 휴가를 받았는데, 뭐 할까.”
“안 다녀본 여행이나 좀 다녀볼까? 이번엔 돈도 좀 팍팍 쓰면서 말야.”
“그것도 괜찮겠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지금까지 악착같이 번 돈을 좀 써볼 기회다.
재환과 예희는 그 날 하루 종일 여행에 관한 얘기를 나눴고, 학교 다녀온 소율이도 신나서 가족 여행 준비를 했다.
역대급 스케일의 가족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재환은 서진에게 한 문장을 쓴 메시지를 보냈다.
-무리하지 마세요.
괜찮으니 잘 쉬라는 서진의 답을 듣고 재환은 다음 날 여행길에 올랐다.
재환이 가족 여행을 떠난 동안 KG 그룹을 비롯한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작은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KG 그룹이 한성과 인수 합병을 한다고?”
“아니, 한성이 뭐가 아쉬워서….”
“당장 이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 해봐!”
이 소식을 재환이 알기까지는 아직 많은 날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