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1화(1/246)
전작,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프롤로그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호환이나 마마보다 더욱 두렵던 시절.
조범석이라는 평범한 이름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제 꿈보다는 출셋길을 찾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그는 참군인의 표상으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장군이 되었다.
아무렴.
가라와 삥땅이 판치던 시절, 혼자만 독야청청하게 손에 떡고물 묻히지 않던 이가 참군인이 아니면 또 누가 참군인이겠나.
부인과 두 자식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도 북괴의 도발에 맞서 지통실을 지킨 그를 누가 감히 음해하겠는가.
그러니까.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하기 전까지 말이다.
***
“이 좆같은 세상 같으니.”
한숨 섞인 탄식이 절로 나온다.
군문에 몸을 담은 지 어언 수십 년.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해 온 내 기나긴 삶의 단 한 순간도, 설마 내가 국군교도소 독방에 들어오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나는 지금 죄수··· 정확히는 미결수 신분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옆에는 뜨끈뜨끈한 통감자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고, 앞에는 장기판, 그 옆엔 작은 스마트폰이 한창 가을야구 중계를 떠들어대고 있다.
참 미친 세상이다.
고작 중령에 불과한 교도소장은 새로이 들어온 이 반역 수괴를 엄격히 관리 감독하는 대신, 시골집 똥개마냥 배를 발라당 까뒤집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놈 눈엔 나와 내 동지들이 언제든 이깟 감방 문을 깨버리고 세 번째 군바리 출신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미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사실 불가능하진 않다.
그래서 더 문제였고.
[와일드카드 결정전 두 번째 경기가 어느덧 9회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대호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롯데 팬이셨습니까?”
“꼴데를 응원하는 모지리랑은 겸상하기 싫은데. 딱히 야구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두산이지.”
[초구, 스윙! 파울입니다.] [오늘 롯데 타자들 방망이에서 독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요. 아주 매섭습니다.]온갖 분에 넘치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지만, 독방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확실히 불가능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감방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사람은 아닌 듯하니.
“언제쯤 제 말을 좀 믿어주시겠습니까? 저는 정말 여기 맞은편 용채산의 산신령이란 말입니다.”
“산신령은 얼어죽을. 지리산 산신령이나 남한산 산신령쯤 되면 몰라, 용채산은 또 뭐야.”
“여기 감옥소 옆에-”
자칭 산신령은 태연스럽게 초록빛 녹말 요지로 감자 한 알을 쿡 찍어 제 입에 쑤셔넣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시선은 나도 장기판도 아닌 그놈의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언제쯤이면 자신이 성불 못 한 교도소 망령이라고 인정할 셈인가? 그 헛소리 주워섬길 시간 있으면 빨리 다음 수나 두게. 장기 두던 망령 어디 갔나?”
“좀 기다려 보십쇼. 저거, 야구만 마저 좀 보고.”
“야구 좋아하는 산신령이라는 것부터 말이 안 되잖나.”
하도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괜시리 출출해졌다. 접시 바닥에 깔린 설탕을 박박 긁어 묻힌 뒤 감자 한 알을 입에 털어넣었다. 사람 몸이라는 건 참 간사하기 짝이 없어 당분과 탄수화물이 들어가니 또 기분이 슬슬 풀어진다.
나는 한라산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믿어야 할 사람을 믿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을 믿어서였을까.
내가 평생에 걸쳐 지키고자 했던 모든 이들이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저들을 지키기 위해 군인으로서의 긍지조차 시궁창에 집어 던지며 구국의 결단을 결의했지만··· 토악질 나는 버러지들만 바퀴벌레처럼 내 곁에 드글거리게 됐고 정작 내가 이해받고 싶었던 이들에게선 전혀 이해받지 못했다.
[쭉쭉 뻗습니다!! 우측 담장, 담장을 넘기는 타구!] [이대호!! 이대호!! 롯데가 두산을 꺾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순간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두산, 발목이 잡히고 맙니다!]“꺼.”
“예?”
“끄라고! 빌어먹을! 야구 좆같이도 하네, 이 병신놈들!”
내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멍청한 망령 놈이 액정을 툭툭 건드리며 서둘러 동영상을 닫았다.
세상이 진짜 미친 건가. 하다 하다 꼴데에 덜미를 잡히는 꼴도 보고. 차라리 깔끔하게 권총으로 자살이라도 했으면 저런 꼴은 안 보고 죽었을 텐데.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나라가 망할 판에 저깟 공놀이나 하고 있는 바깥세상도.
3차대전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이 순간에 그놈의 정치싸움이나 해대는 윗대가리들도.
쿠데타 주모자라는 놈을 잡아 처넣은 주제에 빨리 총살시키지도 않고 손에 핸드폰이나 쥐여주는 이 나사 빠진 당나라 군대도.
모조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딴 놈들을 지키는데 바친 내 세월이 아까워질 만큼.
“그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으십니까?”
“지금 전직 반역 수괴에게 물어볼 말인가 그게?”
“만약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면··· 잡으실 겁니까?”
내 눈앞의 상대가, 나타난 이래 시종일관 물어보던 질문을 다시금 내뱉었다.
보통 때라면 늘 그랬듯 헛소리하지 말고 장기나 마저 두라고 했겠지만, 나는 어쩐지 지금만큼은 대답이 하고 싶어졌다.
“모든 걸 바꾼다고? 어떻게?”
“글쎄요. 몇 년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혹은 훨씬 더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날 수도 있지요.”
“그런 기회가 있다면 잡아야지. 그딴 걸 왜 물어보나?”
“도전해보시겠습니까?”
난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산신령은 보통 금도끼랑 은도끼만 주는 놈들 아니었나? 잡설이 너무 긴데?”
“간단하게 설명드리죠. 어마어마한 위업,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역사를 완전히 뒤틀어버리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하면 그 보상으로 소원을 하나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망령도 아니고 악마였나.”
“진짜 산신령 맞다니까요. 이게 보통 기회인 줄 아십니까?”
“이미 나는 이 나라 역사에 이름 석 자 제대로 남겼는데.”
더 듣고 있자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 산신령이니 뭐니 하는 놈도 다 내 망상이고 사실 나는 정신병원 구석에서 몰핀이나 맞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게 훨씬 합리적 추론 아닌가.
내가 지금 제정신인가를 자문하는 사이, 눈앞의 이놈은 내게 알약 하나를 들이밀었다.
“자. 이거 하나만 드시면 계약 체결입니다.”
“뭔데?”
“독약입니다.”
“씨발.”
먹고 뒈지라고?
“그, 죄송하게 됐습니다. 원래 매뉴얼에 따르면 트럭에 치이면 슝- 하고 날아가는데, 아시다시피 여기 독방에 계시는 탓에 제가 트럭으로 박을 수가 없거든요. 아, 계약시 설명드려야 할 표준 약관이 있으니 곧장 드시진 마시고-”
대한민국에 약관 읽어보는 놈이 몇 명이나 있겠냐, 이 머저리야.
나는 이놈의 말을 무시한 채 곧장 약을 입에 던져 넣었다.
“잠깐! 잠깐! 제 말을 듣고 나서-”
“커, 커어, 컥!!”
의식이 흐릿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저 멀리 안식의 땅을 향해 나아갔다.
빌어먹을 인생에 걸맞은 비참한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