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02)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02화(102/246)
제국의 아침 (2)
독일 육군은 바야흐로, 패러다임 시프트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우선 많은 장성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감방에 처박히거나, 이등병으로 업종을 전환하거나, 신종 프랜차이즈 범석이 양념 통닭 개업을 알아보는 신세로 전락했다.
“저는 각하야말로 이 나라를 구원하실 분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융커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심을 숨겨야 했을 뿐입니다! 제가 다 압니다! 역도들의 명단을 모조리 불겠습니다!”
“하일 로젠바움! 저는 루덴도르프 같은 간악한 간첩들에게 속아 애꿎은 유대인만을 증오했었습니다. 이제 진정한 게르만 민족의 성경인 로젠바움주의를 접해 두 눈이 트였으니, 독일인들의 앞날은 오직 총통 각하의 영도를 따라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민족의 어버이이신 아르민 로젠바움 총통께선 제아무리 엇나간 탕아라 할지라도 따스하게 맞이하는 분이시니, 프란츠 할더(Franz Halder) 같은 역적의 씨앗은 몸 성히 예비역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으며 베르너 폰 프리치(Werner von Fritsch) 같은 이는 군문에 다시 복귀하는 자비를 얻었다. 실로 그분의 은혜가 하해와 같았다.
“그냥 빨리 죽여라.”
“날 고문하든 말든 어쩌란 말이냐? 황제의 구두를 핥아 출세한 빨갱이 애새끼에게 내가 복종할 성싶으냐?”
명색이 한 나라의 군대에서 최정상까지 올라왔거나, 혹은 강철 같은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들.
축축하고 눅눅한 슈타지의 <특별 심문실>을 방문하게 되었음에도 모가지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당당하게 굴던 자들도 제법 있었다.
“여보! 여보!!”
“아빠! 아빠아악!!”
“이 사람이길 포기한 개자식들아! 나만 죽이면 될 걸 어째서 내 가족까지 끌고 온단 말이냐!”
“역시 매국노라 그런가 보통의 뻔뻔함이 아니군. 네놈들은 한 국가와 민족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처박아가며 권세를 잡으려 하지 않았나? 너희가 승리했으면 네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부귀영화를 누리며 호의호식했을 텐데, 너희가 패배했으니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도 감수해야 이치에 맞지.”
“설명해 줄 필요 없어. 저 새끼 막내 코부터 잘라.”
“서명하겠소! 다 내가 저질렀다고 자백하겠다고!! 그냥 나만 죽여!”
물론 그런 이들도 가족과 친지와 친구까지 옆방에 붙들려 와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듣고 나면 대개 회개하여 열렬한 신앙을 고백하며 자신의 죄를 자백하곤 했다.
어쨌든.
독일 육군은 이제 그 어떠한 새로운 변화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랑말랑한 두뇌의 소유자가 되었다.
“돌격소총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탄환이 너무 작지 않습니까? 5.56mm라니.”
“총알이 딱히 굵을 필요가 없습니다. 커봤자 연사만 힘들어지고, 들고 다니기도 까다롭고, 탄창을 만들기도 불편해집니다. 심지어 소모량을 고려하면 자원도 절감되지요.”
“말씀하신 대로 병사 개개인의 무장이 전부 자동화기가 된다면 그 탄약 소모량이 어마어마해질 겁니다, 각하. 게다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탄약량도-”
“제가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이상, 결코 1914년과 같은 기나긴 장기전을 반복하진 않을 겁니다. 전쟁은 반드시 단기에 결판내야 합니다. 그리고 10만 명을 위한 군대가 60만을 위한 군대로 바뀌는 판에 기존 보유량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각하! 각하께 육군을 맡은 사람으로서 목숨을 걸고 진언 올리겠습니다! 개인화기는 모름지기 장병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일진대, 수십만 독일군의 벗을 심사숙고 없이 함부로 개발했다간-”
“언성을.”
“···!”
“그렇게 언성을 높이지 마라, 발터 폰 브라우히치.”
아르민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새 마음 새 용기로 도전했던 브라우히치 참모총장의 오늘치 용기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좀.”
“하일 로젠바움!”
이미 “나토탄!! 나토탄!! 닥치고 5.56!! 5.56이 아니면 죽음을!!”을 외치는 21세기 귀신과 기나긴 실랑이를 벌였던 아르민은 더 이상 원시인들과 토론을 하는 대신 그냥 찍어누르기로 결심했다.
애초에 찍어누르고 싶어서 독재자가 된 거 아니던가?
“분대지원화기도 개발해야 합니다.”
“분대별로 기관총을 쥐여준다고요?”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화력을 담당해 줄 무기도 개발해야 합니다.”
“그건 또 어떤-”
“적 전차나 혹은 고정된 진지, 엄폐물을 타격하는 용도로 개인이 도수 운반할 수 있는 로켓 발사기를 제작할 겁니다.”
“예, 예.”
“그냥 받아 적으세요.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은 여러분들보다 50년은 앞서 있으니까.”
개발자들은 경애하는 총통 각하께서 이 정도로 에고가 강렬했던가 하며 여러모로 충격에 빠졌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사실인데 어쩌라고.
“개인장구류도 전반적으로 개선하겠습니다. 기름을 보다 편히 저장, 수송할 수 있는 20리터짜리 용기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또-”
“뭣들 하나! 각하께서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너희들에게 지식을 베풀고 계시지 않나! 한 글자도 빠짐없이 받들지 못할까!”
아무튼 그랬다.
권력이 좋긴 좋았다.
***
마리아 로젠바움은 어렸을 적부터 똑똑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진짜로 아이가 똑똑한 거면 영악하다거나 머리 아프다는 말이 나오고, 어른들이 이 말을 하는 경우가 대개 ‘손이 덜 타고 보채지 않으며 혼자 내버려둬도 괜찮을 때’를 뜻한다는 걸 고려해 본다면, 그녀의 성장 환경이 그녀가 똑똑한 아이가 되게끔 유도했다 봐도 그렇게 억지춘향 수준은 아니리라.
그런고로.
“저는 평생 혼자 살 거예요.”
이 선언 또한 ‘똑똑한’ 사람이 할 수 있을 법한 선언이었다.
“마리아. 그게 무슨 소리니?”
“저는 남자에 그렇게 관심 없어요. 결혼도 마찬가지로 생각 없구요.”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니? 여자애가 다 컸으면 시집을 가야지!”
에르나는 잔뜩 성이 나서 마리아를 앉혀놓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휴먼의 도리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지만 그녀의 뚝심을 꺾을 순 없었다.
그리고 지친 엄마들이 으레 그러하듯, 에르나 또한 다음 수순으로 넘어갔다.
“당신! 당신이 좀 나서서 말 좀 해봐요!”
“···으응?”
“애가 지금 결혼을 하기 싫다잖아요. 빨리 좀 잘 타일러 봐요.”
“으으으음.”
우아하게 모닝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경애하는 총통 로젠바움 각하에 대한 칭송으로 가득 찬 신문을 정독하고 있던 아르민은 꼬리가 깨물린 야돈처럼 눈만 끔뻑였다.
“마리아도 다, 자기 생각이 있는 게 아닐까?”
“뭐라고요?!”
“아니, 그, 음. 너무 그렇게 보채는 것보다, 자기가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지. 아직 젊잖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에르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남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놈의 로젠바움주의인지 롯데주의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무언가에 대해 에르나는 반쯤 생각하길 포기한 지 오래였지만, 아무튼 거기에 ‘착하고 도덕적으로 살자’ 같은 좋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이랑 당신 밑에 사람들이 맨날 가정의 소중함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고 다니잖아요. 그런데 정작 마리아는 혼자 방종하게 살게 내버려 두겠다고요?”
“제가 딱히 방종하게 살고 싶다는 건 아니고-”
“조용히 해! 그럼 다 큰 여자애가 대학도 다니는데 이제 집도 나가서 살고, 근데 결혼은 안 하고. 이게, 이게 방종이 아니라고 주장할 거니? 수녀원이라도 들어가게?!”
“아니. 내가 그래도 명색이 이 나라의 최고 어른이 되었는데 어떻게 시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겠어.”
“정치를 하더니 얼굴도 두꺼워졌네.”
“크흠.”
아르민은 짐짓 신문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더욱 크게 내며 신문지면을 다음 장으로 넘기고 슬그머니 제 얼굴을 가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마리아와 에르나 둘 다, 아르민이 이 건에 관해 딱히 더 말을 부연할 의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이게 아버님이 바라던 게 틀림없어.’
그리고 마리아는 확신했다.
아르민은 스스로 두 아들, 페르디난트와 오토에게 절대 세습을 하지 않겠노라 확언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양녀라고는 하지만, 로젠바움가와 인척관계를 맺게 된다면 누가 봐도 차기 권력 일순위로 도약하게 되는 셈 아닌가?
아르민 로젠바움은 그냥 발명가나 사업가가 아니라 전 독일 민족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런 분에게 거두어졌으니 자신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단 말인가.
그러니 당연히 자신의 남은 인생 또한 오직 그분을 위해 바쳐야 할진저 – 수도 서원한 수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모시는 것이 예수가 아닌 살아 있는 현인신이라는 게 다를 뿐.
‘내가 제일 먼저였어.’
다른 이들은 이해득실에 따라, 은혜를 입어서, 목숨을 구명받아서 아르민 로젠바움이라는 사람을 따르게 되었다.
처음 그 순간부터 로젠바움이라는 사람을 구세주의 반열에서 바라본 이는 오직 자신뿐.
마리아 로젠바움은 내면을 불태우고 있는 신앙심과 별개로, 자신이 얼마나 미묘한 입지에 있는지도 직시하고 있었다.
에르나가 연신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이래서 딸내미들은 키워봐야 헛수고라니까!”라며 옛날 본인이 엄마한테서 들었던 말을 되풀이하는 걸 못 들은 체하며, 마리아는 커피잔과 신문을 손에 꼭 쥔 채 서재로 살금살금 들어가는 아르민의 뒤를 밟았다.
“네가 여긴 웬일이니.”
“저는 아버님이 정해주는 사람과만 결혼할게요.”
“그러니까, 나는 아비로서 네 행복을 응원한단다. 네가 누굴 만나건 그건 전적으로 네 자유이니, 너는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전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아르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신문을 내려놨다.
그러자 지금도 무수한 사람을 다하우의 ‘수용소’로 보내고 있는 피의 독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아.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니?”
“저랑 결혼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후계 구도에 엮이게 된다는 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너는 양녀니까 굳이 이 판에 끼지 않아도 된단다.”
“전 아버님의 딸로 남고 싶어요.”
아르민은 입술만 잠깐 달싹거리다가, 커피를 모조리 옆에 있는 화분에 부어버리곤 거울 하나를 자신이 바라보기 편한 각도로 조정한 뒤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런 거랑 관계없이, 당연히 너는 내 딸이야.”
“아뇨. 그렇지 않아요. 페르디난트나 오토는 대업을 위한 도구처럼 마구 다뤄댔잖아요. 근데 왜 저한테만 자유를 준다고 하세요?”
“걔들이 이민을 가든 어쩌든 아르민 로젠바움의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니?”
“그럼 저도예요.”
“···미치겠네.”
얼굴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모조리 다 써서 연기를 뱉어내는 것만 같던 아르민은, 한참 거울만 빤히 바라보았다.
“너.”
“네.”
“그렇게, 그렇게 이 미친 짓거리의 부품이 되고 싶어?”
“네. 그러길 바래요. 제발요.”
“너는 평생 결혼도 못 하고, 당연히 애도 못 낳아.”
“그러길 원해요.”
아르민의 입에선 헛웃음과 함께 “내 업보가 이 지경이었다고?”라는 중얼거림이 절로 튀어나왔다.
“다음 달부터 내 동서··· 브란덴슈타인 백작의 밑에서 일을 배워라. 누구에게도 말하진 말고. 신분은 세탁해 주마.”
“감사합니다.”
“네가 선택한 거다. 날 원망 마라.”
“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그럴 일은 없어요.”
“나가 보거라. 에르나한테는··· 내가 말하마.”
조용히 서재 밖으로 나온 마리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버려지지 않는다.
가족으로 남을 수 있다.
마리아는 그렇게 슈타지 – 국가안전부 장관 브란덴슈타인 백작의 비서로 취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