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1)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11화(11/246)
이 독일은 간신이 필요해요 (1)
옛날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아니, 미래이야기인가. 조금 헷갈리는데. 아무튼 우리 조씨 아저씨 이야기다.
청운의 꿈을 안고 반짝반짝 쏘가리가 된 조범석 씨는 유감스럽게도 초반에 군생활을 멋지게 조졌다.
애초에 ‘출세’와 ‘올곧음’이라는 두 단어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군인이래 봐야 그냥 공무원일 뿐이다.
서슬 퍼런 군부정권 시절 군인이 출세의 수단이었던 건, 삥땅칠 구석이 많고 옷 벗고 나서 낙하산으로 내려갈 곳이 많아서지 군인 월급이 풍족해서가 아니다.
윗물부터 구정물인데 아랫물 주제에 독야청청하길 바란 결과는 당연히, 박살나는 거였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엔 조범석 씨는 개털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육사 입학한 아들만 주택복권처럼 바라보는 일가족뿐. 혼자라면 차라리 독야청청 폼이라도 잡겠는데, 딸린 입이 한둘이 아닌데 어쩌나.
그는 현실을 인정했다.
올곧음을 아주 살짝만, 정말 살짝만 내려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자 그 순간 그는 민폐덩어리에서 에이스로 바뀌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닌가.
“이 친구,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 왜 그렇게 모가지가 뻣뻣했나!”
“하하하. 많은 분들이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으시는데 어떻게 제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이제 다 나아서 깁스 풀었습니다! 제 잔을 받아주십시오!”
“우리 소대장이 그래도 젊은 친구들 중에선 제일 똘똘해. 원래 젊을 땐 신념이랍시고 아집만 들어차기 쉬운데 말이지. 하하!”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놀랍게도 그는 그 뒤로 승승장구했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훌륭한 인재로 거듭났다. 말년에 청와대 귀신에 홀리지만 않았다면 최소한 독방에서 약이나 처먹는 최후는 피했을 텐데.
그리고 지금, 서기 1900년.
아무리 독재정권이었대도 최소한 누구도 민주주의를 부정하진 못하고 ‘이건 한국식 민주주의’ 같은 멋쩍은 소리를 해야 했던 쌍팔년도와는 달리, 이 19세기는 신분의 고하가 엄연히 현존하는 시대.
여기서 모가지에 깁스하고 있다간 정말 물리적으로 뚝배기가 깨지는 게 당연한 일.
“저는 언제나 조국, 그리고 폐하를 위해 무언가 공헌할 수 있기만을 오매불망 애태웠습니다. 마침내 폐하께 세상의 하늘을 바치오니, 부디 받아주시옵소서!”
“그 말이 참으로 옳다. 우리 독일인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진취성을 가슴에 품고 인류 문명의 진보에 앞장서겠는가? 로젠바움과 같은 젊은이가 있어 제국의 미래가 참으로 밝도다.”
5년 단임제에 당선되기 위해 표를 구걸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도 산을 지우고 강을 뒤트는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
하물며 독일 통일의 상징, 호엔촐레른의 전제군주는 대체 얼마나 막강한 권능이 있겠는가?
아니 이런 걸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평생 프로이센인이었던 내가 공화주의자도 아닌데 당연히 카이저 폐하 앞에서 대가리를 박아야 하지 않겠는가?
범석이야 자신이 민주공화국의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긴 했는데, 그, 뭐랄까. 내가 봤을 땐 군사 독재자보단 차라리 왕조 군주가 나아 보이는데 뭐가 그리 자랑스럽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쓰리 스타께서 어떻게 에베벱 혓바닥을 놀려 윗사람들을 행복하게 해드렸는지는 참으로 참고해볼 만했다.
끝없는 사진, 사진, 사진 촬영.
끝없는 딸랑딸랑, 딸랑딸랑.
내 목젖도 불알도 모두 이 순간만큼은 본연의 임무를 딸랑이로 바꾸었고 내 양팔은 이 순간 파리의 그것이 되었다. 하도 비벼서 손바닥에서 불이라도 날 것 같네.
그리고 놀랍게도.
“요즘 젊은이치고는 참 보기 드물구먼.”
우리 카이저께서는 참···
음··· 쉬운 남자였다.
내 애국심과 충성심이 파들파들 떨릴 정도로.
처음 내가 원색적으로 아부를 할 때, 나는 하면서도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게 먹히겠어?’
썩어도 황제인데, 하도 아부를 많이 듣고 살았을 테니 이런 헛소리에 대한 면역력쯤은 있지 않겠는가.
노골적으로 속 보이는 짓을 해대니 작작 하라고 근엄하게 훈계 한번 듣고, 나는 깨우친 척하면서 젊음을 방패로 ‘제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 예법을 모르는데, 감히 폐하의 존안을 뵙고 황망해져서 그랬습니다.’ 하고 조금 더 세련된 아부와 딸랑딸랑으로 체제 전환.
이게 조범석이의 경험에 따라 내가 그렸던 큰 그림이었다.
그런데.
“폐하께옵서는 어찌하여 의회에 넘쳐나는 저 역도들과 불충으로 똘똘 뭉친 사민당 빨갱이들을 내버려 두십니까? 폐하. 폐하의 신민들은 모두 폐하께서 저들을 쓸어버릴 날만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흐하하하핫!! 그런가. 그게 바로 민심이었나. 역시 먹물이나 먹은 놈들이 펜대를 붙잡고 민심을 왜곡하고 있었어.”
“그렇습니다. 독일 제국에게는 언젠가 있을 아시안들의 발호에 대비해 기독교 문명을 지킬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단결해야 할 이 시점에 빨갱이라니요.”
“로젠바움. 그동안 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겐가! 짐은 오직 그대와 같은 인재만을 찾고 있었거늘!”
이 새끼.
약해도 너무 약하잖아.
평생 원색적인 아부라곤 못 들어본 놈처럼, 아니, 제대로 된 인정이라곤 못 받고 자존감은 엉망진창인 인간 같잖아 이래서야.
하다못해 나를 짝사랑하던 여자애들도 이렇게 쉽지는 않았다. 이런 게 우리나라 임금이었다니 어쩐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내 소박한 존경심 돌려달란 말이야.
틀림없이 나는 카이저의 언론 마사지를 위해 단역으로 동원되었을 엑스트라였을 텐데, 어느 순간 나는 궁의 정원에 초대되어 카이저를 눈앞에 두고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진짜 정신이 혼미해진다.
“사람들이 로젠바움 그대를 하늘의 정복자라고 부르더군.”
“폐하의 신민이 하늘을 정복해 폐하께 바쳤으니 이제 하늘의 주인은 오직 폐하뿐이십니다.”
“크하하하하하!!”
안 돼. 이런 말에 좋아하지 말라고. 폐하. 체통을 좀 지켜주시옵소서.
“짐을 위해 영토를 늘리고 식민지를 바친 자들은 많았으나, 저 아득한 창공을 바친 이는 처음이로다! 이만한 대공을 이룬 이가 ‘고귀’하지 않다면 누가 고귀함을 품은 이일까? 내 로젠바움에게 작위를-”
“폐하!”
“폐하.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주변인들이 경악해서 뭐라 만류하려 하기도 전에, 나는 얼른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힘껏 외쳤다.
“폐하께서 제게 작위를 하사하신다면 이는 일세의 광영이지만, 어리석은 이들과 남 음해하길 즐기는 이들은 제가 작위를 탐내 폐하께 간사한 아첨만 일삼았다고 깎아내릴 것이옵니다. 무엇보다 이 프로이센의 작위란 신성한 것. 고작 이만한 일로 내릴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 내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어 하던 주변의 시선이 살짝 누그러졌다.
시발. 죽을 뻔했다.
아가리 좀 놀렸다고 작위를 줘? 융커 새끼들이 다 함께 손에 손잡고 나를 이지메할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카이저보다 훨씬 더 절대적인 권력이 있었던 러시아 차르.
그 차르의 총애를 받던 라스푸틴조차 귀족들이 똘똘 뭉치니 그냥 강바닥에 퐁당 담기는 신세가 되었다.
하물며 우리 프로이센 융커들이 나를 고깝게 보는 순간 무조건 나는 이승 하직인데, 만고에 무쓸모한 작위 하나쯤 챙기겠다고 인생 난이도를 3배 높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예상대로, 내가 이렇게 먼저 납작 엎드리면서 절대 느그들 세계로 끼어들 생각이 없다고 떠들자 주변의 살기가 슬며시 엷어지기 시작했다. 예상대로다. 방금 그건 데드 엔드 코스였어.
“어서 무릎을 펴고 다시 자리에 앉으라. 작위는 결국 프로이센의 주인인 내가 하사하는 것. 짐이 그대가 충분히 고귀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대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은가?”
그만해! 네 신하들이 날 죽이고 싶어 하잖아!
여기서 더 빼면 이 즉흥적인 인간이 삐질 것 같다. 황제를 삐지게 만들면 축 사망.
여기서 거절 못 하고 받아들이면 융커들이 화가 난다. 절대 그들을 화나게 해선 안 돼.
“비행기는 이제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폐하의 위엄, 독일의 위엄을 만천하에 떨칠 비행기를 개발해 폐하의 신뢰에 보답한 후에야 제 마음이 놓일 것만 같습니다.”
‘더 쩌는 거 만든 뒤에 받고 싶어요.’
다행스럽게도, 이 제안은 먹혔다.
***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노골적인 아부와 아첨에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사람은 타고난 군주. 본인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영역은 몸에 체화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 이 아르민 로젠바움의 주가가 워낙 떡상해서 옆에서 친한 척하기만 해도 빌헬름의 주가도 같이 뛰어오른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내가 너무 동전 잡주라서 딱히 경계하지 않고 즐겨도 된다는 뜻. 나름 무게감 있는 사람이 딸랑거리면 ‘이 새끼 뭘 원하는 거지?’라고 불편해하겠지만 나는 전혀, 전혀 그러지 않아도 된단 소리다.
그럼 나는 뭘 얻었느냐?
“귀하의 비행기 개발 사업체에 황가의 문장을 쓰도록 허가해 주셨소. 결코 이 문장의 무게와 품위를 잊지 마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원이 필요하다면 말씀하시오.”
“특허 취득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이 건을 예의주의하고 있으니 늦지 않게 처리될 것이오.”
19세기 유럽은 자본주의 사바나.
특허를 딴다고 해서 이를 존중해준다면 그놈은 사업가가 아니다. 성직자가 직업을 잘못 고른 거지.
하지만 나는 카이저라는 무시무시한 뒷배를 얻었고, 국민적인 지지마저 손에 넣었다. 비행기를 개발하고 싶으면··· 뒈지기 싫으면 라이센스비 바쳐야겠지?
“모든 독일의 인재들이 비행기 개발에 자유로이 착수할 수 있도록, 저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라이센스를 오픈하겠습니다.”
“바람직한 일이오. 폐하께서도 기뻐하시겠지.”
나는 특허를 꽁꽁 붙들고 나만 처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미래 지식은 항공기 기술이 개발되면 개발될수록 더 빛을 보지 않겠나. ‘개념’에서 우위를 갖고 있지만 ‘기술’은 부족한 나로서는, 남들이 열심히 고생해서 개발해주면 거기에 혁신 한 스푼만 던져넣고 또다시 꿀을 빨 셈이었다.
이제 대강 사업의 가닥이 잡혀 가고 있을 때.
“나는 이제··· 그만두겠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인생이 공허해졌네.”
나는 다시 체펠린 백작가로 달려갔다.
이번엔 진짜인지 밥도 안 먹고 있었다.
아니, 이제 좀 좋은 시절 왔는데 영감은 또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