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14)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14화(114/246)
가지 많은 나무 (2)
1935년.
1884년생인 아르민 로젠바움은 그동안 신명나게 우려먹었던 <40대 젊은 기수론>의 유통기한을 맞이했다. 마침내 반백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가 거친 길이 보통 길이었던가.
국내의 모든 반역자와 매국노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대공황의 늪에서 탈출시킨 위대한 영도자 로젠바움을 보고 나이가 어쩌고 하며 군소리를 떠들어댈 미치광이는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없어졌다. 슈타지는 이들을 위해 슬기로운 생활과 바른 생활을 주입시켜주었다.
한편, 로젠바움에겐 두 아들과 양녀 하나가 있었다.
페르디난트 로젠바움. 05년생.
오토 로젠바움. 07년생.
마리아 로젠바움. 12년생.
일찍 결혼하는 게 당연시되던 이 시기에, 셋 중 결혼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아르민이 정계에 진출하기 전 오토가 잠깐 결혼을 준비한 적이 있긴 있었지만, 상대방이 덜컥 병으로 죽어버려 무위로 그쳤다.
그리고 그때와는 또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로젠바움이라는 이름에는 독일의 모든 것을 소유한 독재자이자, 모든 독일 민족과 국가를 영도하는 위대한 이라는 뜻이 새롭게 정의되었다.
그리고 혈연만큼 강력한 인연은 없다. 브란덴슈타인 백작은 어디 뭐 대단한 인물이라서 슈타지 장관에 취임했는가? 오로지 결혼 상대가 체펠린 백작의 장녀였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일 없습니다.”
“죽은 연인이 생각날 때마다 눈시울만 붉힐 뿐입니다.”
“죄송해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 집안 아들딸 모두 전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엮여 보고픈, 더 나아가 차기 권력 레이스에 합류하고 싶은 이들에겐 미칠 것만 같은 일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바보들도 많았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부나방은 더 많았다.
“눈 딱 감고 저지르는 거야. 그러면 부마, 부마 자리 확보다!”
“네 얼굴이 반반하니까 잘 좀 꼬셔보거라!”
물론 자신들이 슬기슬기 사람이라는 사실을 까먹고 곤충으로 전직한 친구들의 결말은 대개 비슷했다.
라인강과 엘베강 피라냐의 먹이로 전직하거나.
‘저는 로젠바움 일가 암살을 기도했습니다’라는 자술서를 쓰고 다하우로 배송되거나.
혹은 밤중에 버버리 코트 입은 남자들을 맞이하고 기겁해서 독일 바깥으로 도망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들이 이제 지겨웠다.
그렇게 죽이고 또 죽여서 ‘감히 건방지게 백두혈통의 핏줄에 제 더러운 반역도의 씨를 넣고자 하는 이들은 고무고모부 고사포 엔딩을 맛보게 될 것이다’를 똑똑히 각인시켜 보려 용을 썼는데도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 게르만족은 본래 끈질기기로 유명하지. 결국엔 로마 제국도 멸망시켰잖아?
“조용히 해, 좀. 니가 자식들 결혼시켜 봤어?”
– 아니··· 난 못 시켜봤지··· 애들 결혼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렸거든···.
“미, 미안하다. 우리 범석이, 사탕 먹을래?”
귀신을 달래기 위한 제령행사를 준비하는 것과 별개로.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라면 아르민은 콧방귀도 끼지 않고 곧장 난롯불에 처넣었을 편지조차 대단히 진지하게 읽어 보게 되었다.
“에르나?”
“뭐 사고 쳤어요?”
“아니, 내가 뭘 사고를 쳤다고 그래.”
경애하는 독일 민족의 지도자는 꽃병을 깨먹은 애가 된 것마냥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며 영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다.
“딱 보니까 지금 뭐 사고 저질러 놓고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는 눈친데. 빨리 말해봐요.”
“지금 외국에 있는 첫째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대.”
“그래요? 당신, 우리 애들 전부 총각으로 죽게 만들 생각 아니었어요? 로젠바움 일족은 서비스 종료다! 하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 나는 대의멸친하는 차가운 베를린 남자. 더러운 브루노 로젠바움의 씨앗은 여기서 단종(斷種)이드아···.
‘좀 닥쳐 봐.’
“음. 그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요? 나도 며느리 구경을 하는구나. 그래서, 누군데요? 소개 좀 해봐요. 아니다. 그냥 편지 줘요. 읽어보게.”
“음. 러시아인이야.”
“······.”
그렇지.
시베리아에 출장 가 있으니까 당연히 현지인은 러시아인이다.
양배추를 썰고 있던 에르나가 식칼을 든 채 멈칫하고 굳었다.
“그리고 유대계.”
“······하아.”
에르나는 뭐라 입을 달싹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알아서 해요. 이제 오토 결혼 상대는 중국인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테니까.”
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
자다가 베개에 질식당해 최후를 맞이하긴 싫었던 아르민은 척수반사적으로 나오려던 대답을 목앞에서 꿀꺽 삼키곤 커피만 홀짝였다.
국제결혼이라니.
이 얼마나 간단명료하고도 완벽한 해결책인가.
오토도 신붓감 찾을 때까지 대사관 주재무관으로 보내버려야겠다고 결정 내린 그였다.
***
유럽의 각국은 거미줄과도 같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래에 자주 거론된다는 <나비 효과>는 나비의 팔랑거림 하나조차 세상을 바꾼다고 떠들어대는데, 하물며 직접적으로 대놓고 서로 엮여 있는 유럽은 얼마나 신나게 바뀌겠는가?
1935년의 유럽 지도를 보자.
그리고 어떻게 현재 세계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달달대며 굴러가고 있는지 한번 보자.
프랑스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루르 점령>부터 시작해서 하도 막장짓을 많이 저질렀는데 최근엔 이탈리아 붙잡겠다고 유고슬라비아를 버리기까지 했다. 영국이 ‘프랑스가 일부러 전쟁을 도발해서 독일을 멸망시키려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건 피해망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근거가 뚜렷했다.
영국은 독일과 해군 조약을 체결해 유럽 문제에서 당분간 손을 털기로 작심했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을 막고 싶어 하지만, 전쟁을 불사할 생각까진 없다.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 침략을 준비하는 한편, 오스트리아를 통해 독일을 견제하고 헝가리를 지원해 유럽을 불태우고 싶어 한다.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는 각각 국가 최고지도자인 피우수트스키와 알렉산드르 1세가 죽어 남 일에 개입할 상황이 아니다.
두 나라 모두 최고지도자가 사실상 전제 독재자였고, 머리를 잃은 독재 국가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오묘한 시점.
여기서 국가 존속을 걱정할 만큼 어마어마한 위기감을 느끼는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체코슬로바키아.
“국제연맹을 계속 믿어야 합니까?”
“언제 당장 두체의 지원을 받는 헝가리가 침공해 올지 모릅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공격할 겁니다.”
“국제연맹도 못 믿는 분이 프랑스는 어떻게 믿습니까?”
<동유럽 유일의 민주공화국>이라는 타이틀을 자랑거리로 내걸고 있는 유럽 내륙의 신생국.
체코는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와 함께 반(反)헝가리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유고가 맛탱이가 가버리고 프랑스가 뽕쟁이처럼 주저앉아 삽질만 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니 억장이 타들어 갔다.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 자체가 1차 대전 이후 성립된 만큼 당연히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땅을 뚝뚝 떼어 와 갖다 붙였고, 그로 인해 영토 분쟁이 사방에 다 걸려 있었다.
폴란드는 테신(Tesin) 지방을 내놓으라고 심심하면 공갈을 쳤다. 약 7만 명의 폴란드계 체코인이 살고 있었다.
이중제국의 구성원이었던 헝가리는 체코를 아예 끝장내고 싶어 했다.
독일인들은 주데텐란트를 원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인이 1천만 명인데 주데텐에 사는 독일계는 무려 3백만에 달했다.
처음부터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던 동맹들은 가면 갈수록 상태가 영 좋지 않게 변하는 반면, 체코의 안보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들은 점점 더 사악한 지옥 마력의 영향을 받아 흉폭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독일.
“로젠바움주의자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독일이 뒤에서 손을 쓰는 게 아닐까요?”
“싹 다 감옥에 처넣고 싶은데, 빌어먹을.”
민주 국가답게, 체코슬로바키아는 독일인들을 연정 파트너로 끌어들여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다.
하지만 대공황이 덮치며 수출 중심의 주데텐란트 산업을 거의 완전히 으깨버렸고, 체코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독일어 대신 체코어를 강요하는 동화 정책을 펴기 시작하자 독일계의 불만이 폭발했다.
그리고 어디서 불타는 냄새가 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종족이 있었으니, 바로 <체코 나치당>이었다.
하지만 이웃나라 독일에서 나치당이 몇 차례에 걸쳐 국가 전복을 시도하고 마침내 그 수괴 히틀러마저 다하우에서 징역 1만 년을 맛보게 되자, 체코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체코 나치당을 불법정당으로 지정하고 모조리 빵에 처넣었다.
하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정당, <주데텐민족혁명당>은 달랐다.
“경애하는 총통 아르민 로젠바움 각하 만세!!”
“하일 로젠바움!”
“하일 로젠바움!!”
“로젠바움 각하께서는 모래알로 밀가루를 만드시고 무에서 달러를 만드는 기적을 선보이매 독일의 경제가 부활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데텐 독일인들이 무엇이 아쉬워서! 뭐가 문제여서 이 무능한 체코 정부의 경제 정책 아래에 고통받아야 합니까!!”
“주데텐을 다시 독일로!”
“주데텐을 다시 독일로!”
주데텐민족혁명당을 불법단체로 지정하고 탄압한다?
과연 저 새로운 독재자, 로젠바움이 가만히 있을까?
“로젠바움주의야말로 우리의 미래입니다! 일찍이 미국의 우드로 윌슨은 모든 민족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천명하였으며, 모든 게르만족의 지도자 로젠바움 총통 각하께서 교시하시길 하나의 국가엔 하나의 민족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원합니다! 로젠바움 총통을!!”
나날이 개판이 되어가는 상황을 보다 못한 체코 정부.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습니다. 소련의 손을 잡아야만 합니다.”
“소련이라···.”
“소련이 우릴 돕겠습니까? 아니, 그보다, 소련이 우릴 돕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다손 치더라도 폴란드나 루마니아가 길을 열어줄까요?”
“독일과 이야기를 제대로 해봅시다. 로젠바움 총통은 외교 감각이 있다고 하니 어쩌면-”
“말이 되는 소릴!!”
결국 그들은 독일 주재 대사에게 로젠바움의 의중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당연한 말씀을.”
체코라.
주데텐란트 문제 때문에 발등이 지져지고 있나 보군. 마음껏 고민 좀 해봐라. 나는 지금 자식 새끼들 결혼 문제로 머리가 터지고 있는데, 다른 놈들이 행복하게 사는 꼴은 용서할 수 없다. 내 고민만큼 너희들도 좆돼 봐라···.
– 이열. 놀부 심보 보소. 아르민 놀젠바움으로 개명해라.
“저는 하루하루 로젠바움주의를 공부하면서 놀라운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각하께선 독일이 낳은 최고의 사상가이십니다. 마르크스와 같은 악귀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듯합니다!”
약소국의 외교관이란 프로 아부꾼인가. 체코 대사는 오늘 목표가 오직 아가리만으로 내게 오르가즘을 한번 맛보이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사탕발림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카이저의 엉덩이를 빨아주면서 출세한 몸이고, 지금은 무수한 용비어천가를 듣고 있는 몸이다. 그리 쉽게 나를 만족시키진 못할 텐데.
그리고 그는 천천히 용건을 꺼내 들었다.
“로젠바움주의에 따르면 각 국가엔 하나의 민족이 존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체코슬로바키아 또한 하나의 민족 국가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또한 그 부분에 관해서는 일부 동의합니다. 말씀을 가만 들어보니 주데텐란트 문제 때문에 오셨겠지요?”
체코 대사는 내가 외교적 어휘를 쓰지 않고 곧장 덤벼들었음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정부는 각하께서 남티롤 문제를 놀랍도록 완벽에 가깝게 해결한 것을 보고 무척이나-”
“남티롤의 독일인과 달리 주데텐란트의 독일인들은 무려 3백만에 달하지요. 두 사안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대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만 간다. 보톡스 좀 맞으셔야겠군.
“하지만.”
“···!”
“주데텐란트의 독일계에 대한 핍박이 중단된다는 전제하에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 독일 제3제국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안전을 보장할 용의가 있습니다.”
“참말이십니까? 저희는 결코 독일계 체코 국민들을 핍박하지 않습니다!”
– 민주? 미이이인주??
범석아. 지방방송 좀 꺼. 지금 중요한 대화 중이잖니.
유감스럽지만, 나는 지금 전혀 주데텐란트를 합병한다거나 <우리 시대의 평화>라거나 안슐루스 같은 거창한 행사를 할 생각이 없지만··· 이렇게 스스로 조공을 바치겠다고 달려들면 또 거절할 순 없다.
“제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유럽의 평화와 번영입니다.”
“그, 그렇군요.”
“지금 주데텐란트의 독일인들이 불만 가득한 핵심 이유는 당연히 경제가 엉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데텐란트의 경제를 회복하고 과도한 동화 정책을 중지한다면 그들은 독일과 하나가 되기보다는 체코의 국민으로 남아 있는 걸 택하겠지요.”
왜 이렇게 유화적이냐고?
내년이 올림픽이다. 보이콧 맞고 망칠 순 없다. 굴욕이라고, 그거.
그렇지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새로운 협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바로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입니다. 관세동맹 수준은 아니지만 양국이 폭넓은 경제적 교류를 통해 번영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협정은 독립 보장과 병행될 겁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떨립니다.”
그럼그럼.
로젠바움 그룹이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제를 통째로 처먹을 텐데 당연히 가슴이 떨리지.
겸사겸사 스코다(Skoda)의 전차 기술도 사오고.
진수성찬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