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28)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28화(128/246)
로젠바움의 해 (4)
자신의 시간대에서 내던져진 한 노장이 흐느낄 무렵.
세계 각지에 흩어진 조선의 독립운동가들 또한 베를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저명한 정상들이 모여 난상토론을 벌이는 이 전무후무한 기회에.
과연 누가 이 나라 잃은 불쌍한 민족을 위해 목청을 드높일 것인가?
누가 과연 뛰어난 언변과 외국어, 탁월한 품격과 지성, 그리고 외교적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그들 사이에 낄 수 있겠는가?
“누가 봐도 나뿐이군.”
우남 이승만은 확신했다.
오직 자신뿐이라고.
다른 멍청한 이들이 와봤자 뒷북이나 칠 것이 틀림없다. 베를린은 바로 자신을 위한 최고의 무대가 되어주리라. 그는 확신했다.
흔히들 조선 민족 최고의 스피드 레이서로는 단연 임진왜란 당시 독일군보다도 수백 년 앞서서 파죽의 전격전을 구사한 남자, 임금 선조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선조에게 뜬금없이 발현된 돌연변이적 재주가 아니다. 선조의 피에 흐르는 태조 이성계 또한 속도전에 일가견이 있던 무장이었기 때문. 따라서 이는 그 유명한 격세유전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스피드 레이서 혈통을 이었다고 언제나 자부하는 남자, ‘프린스 리’ 이승만 또한 그 속도를 물려받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민첩하게, 무려 미국 정부보다도 먼저 <스탈린 독일 방문>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을 보자마자 즉시 하와이에서 출발했다.
로젠바움사의 최첨단 민항기는 그를 순식간에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데려다주었고, 대륙횡단 철도를 주파하는 강행군 끝에 워싱턴 D.C.를 찍고 대서양 횡단 정기선에 올라탔다.
실로 무시무시한 강행군, 최속군주의 후예를 자칭할 만한 기동력이었다.
‘독일은 위험하다.’
전 세계에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로젠바움주의.
이승만은 나날이 저 괴이한 사상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 가고 있었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사이 어딘가. 일명 <제3의 위치>를 점하려는 사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었다.
하지만 아르민 로젠바움이 로젠바움주의를 설파하고 마침내 독일의 정권마저 거머쥐면서, 이제 제3의 위치는 모두가 명실상부 로젠바움주의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 파시즘 특유의 내셔널리즘이나 로마 부활 같은 내수용 주장은 덜어내고 훨씬 더 사람들 입맛에 맞는 범용적 내용을 꽉꽉 채워 넣은 것이 로젠바움주의.
당장 미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현 대통령 루즈벨트는 뉴딜 정책을 시행하면서 정적들에게 <로젠바움주의자>라는 맹비난을 받았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억압하고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뉴딜은 누가 봐도 로젠바움주의의 냄새가 풀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공산주의는 아니지만 시장개입주의적인 무언가’를 일컬을 때 그 미국인들조차 로젠바움주의를 입에 담을 정도가 되었다는 걸 뜻한다.
결국 그 거창한 사상과 비전을 가지고 한다는 말이 <고로 백마 탄 초인은 무제한적 책임과 무제한적 권리를 갖고 국가를 마음껏 통치할 자격이 있다>라는 점에서 참으로 싹수가 노랬지만, 아직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공공선으로 인식되지 않는 세계에서 저만한 논리는 충분히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로젠바움주의 그 자체는 사실 이승만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무엇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것은 바로 일본에서 일어난 로젠바움주의 군사 정변 때문이었다.
‘일본식 로젠바움주의를 새로운 국시로 천명한 왜놈들은 당연히 독일과의 협력을 강화할 터. 그놈들은 딱히 이념을 중시하는 족속들이 아니니, 로젠바움주의니 뭐니 하는 것도 전부 독일에서 더 강한 군사력을 전파받아 대륙을 침략할 속셈일 게 뻔하다.’
그의 모든 대전략과 큰 그림은 결국 <일본은 폭주하여 아시아를 집어삼키기 위해 날뛰고, 마침내 중대한 이익을 침해당한 미국과 전쟁이 일어난다>라는 예상에 달려 있었다.
일본은 폭주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손에 단죄당해야 한다.
베를린 올림픽은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외교 관계와 향후 대외 전략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터.
그는 반드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정변 이후의 일본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가?
독일과 일본의 협력 관계는 아시아에서 어떠한 화학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그가.
조선 민족의 운명을 그 등에 짊어진 이가.
독일 땅에 발을 디뎠다.
“싱-만 리? 죄송하지만 귀하의 입국 심사에 문제가 있습니다.”
“뭐라고요? 어째서요?”
“일본 정부가 귀하를 반체제 테러리스트로 지정했습니다. 안전한 올림픽 개최를 위해-”
“당연하지!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요! 야만스러운 일본제국에 대항하는 독립 투사!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고, 미국의 박사 학위를 받았소! 그런 내가 대체 왜 일본 정부의 그딴 헛소리에 구애받아야 합니까!”
그의 입국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이 미친 쪽바리들이 뭐길래 대체 이리도 사람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독일 정부는 또 뭐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나는 이 사람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리고 오스트리아 국적을 갖고 있어요. 이이는 결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이것 보시오. 나는 신실한 교인이자 박사 학위 소유자요. 닥터!”
한참 옥신각신이 계속되었고, 입국심사를 진행하던 공무원은 무언가 논의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간을 마구 잡아먹었다.
마침내 다시 돌아온 그는 얼굴에 무표정한 가면을 쓴 듯했다.
“닥터 리.”
“뭡니까.”
“당신은 입국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입국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동의하십니까?”
“문제? 문제는 바로 폭압에 시달리고 있는 내 조국이요. 그 어떠한 문제도 날 가로막을 순 없소.”
“좋습니다··· 입국을 환영합니다.”
전혀 환영받지 못할 어조로 무뚝뚝하게 말을 잇던 담당자는 마침내 도장을 꽝 찍었다.
“빌어먹을. 더럽게 까다롭게 노는군.”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오늘은 여기 근처에서 묵고 내일 움직이는 게 어때요?”
“그럽시다. 바로-”
“승만 리. 맞습니까?”
간신히 입국해 독일 땅을 디딘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승만은 문득 주변 분위기가 이상하리만치 스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
한없이 섬뜩한 이 기운.
마치 이명복의 졸개들이나 왜놈 밀정 같은-
“우리는 독일 국가안전부다.”
“슈타지! 방첩기관이 어째서?”
“<독일 공화국은 자살을 선택했다. 아르민 로젠바움이라는 독재자를 옹립한 독일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대신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편한 길을 택했다>. 귀하의 발언이 맞소?”
이승만의 등에 식은땀이 솟아났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하오만. 그건 간악한 일본인들의-”
“귀하의 반일 사상은 우리의 알 바가 아니오. 중요한 건 당신이 명백한 반-로젠바움, 반독주의자라는 사실이지. 순순히 부시오. 베를린 올림픽을 어떤 음모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지 자백한다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뒤에서.
옆에서.
골목에서.
검은 옷과 중절모를 눌러쓴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 그의 전후좌우를 포위했다.
“허튼짓하면 바로 쏘겠다, 테러리스트. 조용히 따라오시오.”
이승만의 베를린 올림픽은 그렇게 끝났다.
***
모든 식민지 독립운동가들이 그렇게 추방당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인도의 찬드라 보세만 하더라도 화려한 기자회견까지 벌이며 영국인들을 엿먹인 끝에 베를린에 발을 디뎠고(영국인들에게 시달린 노이라트는 파김치가 되었다), 인도 대표단이 ‘평화의 수호자’ 로젠바움 총통에게 마하트마 간디의 친서를 전달하는 장면은 텔레비전을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일본 정부가 지정한-”
“나는 로젠바움주의자요!”
우사 김규식은 자신의 동행이 우렁차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하일 로젠바움! 나는 로젠바움 총통께서 이 독일을 부활시키는 모습을 바로 이곳, 베를린에서 직접 목도했습니다. 나는 그분께서 독일 민족의 메시아라 확신하며, 그분께서 설파한 모든 민족의 평등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붐-썩, 리?”
“범! 석!”
철기 이범석은 경례 자세를 풀며 관리를 향해 다시금 독일어로 외쳤다.
“이것 보시오. 이 너덜너덜해진 책. <로젠바움주의란 무엇인가> 초판이란 말이오. 이거, 이거 사진 보이시오? 내가 괴벨스 장관과 직접 만나 악수도 하고 베를린 간 요리에 사과튀김? 그것도 먹은 뒤에 찍은 사진이오. 이래도 내가 로젠바움주의자가 아니라고 하시겠소?”
“베를리너 아트!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요. 입국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 동포가 이번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기로 응원하고, 아울러 로젠바움주의에 의거해 조선 민족의 자주 독립을 호소하기 위함이오.”
“자유와 정의의 나라 독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코레아니쉬 동지. 바이에른 같은 돼지 소굴 가서 나쁜 물 들지 마시고 베를린 근교에서 좋은 것만 보고 가시길.”
쾅 소리와 함께 도장이 찍혔다.
“저분도 그러면 로젠바움주의자입니까? 코레아의?”
“그렇소.”
김규식이 뭐라 항변하기 전 서둘러 이범석이 말을 잘랐다.
“총통께서 영도하는 최고의 국가, 독일민족혁명공화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민족에게도 평화와 번영이 있길!”
쾅!
“잘 놉니다, 잘 놀아요. 아예 그냥 성을 백림(베를린) 로씨로 바꾸지 그러시오.”
“조선의 로젠바움이 되어 조선을 이토록 강건한 나라로 이끌 수 있다면 그깟 성이야 백 번도 갈지요. 핫핫핫!”
김규식, 이범석.
입국 성공.
***
전 세계의 모든 정상들은 모조리 모인다.
이것으로 나는 세계 판도를 조정할, 정확히는 조정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일단은 내가 호스트라고?
하지만 이렇게 우글우글 모여드는 인간들이 스포츠맨십을 보며 박수 치고 환호한 뒤 얌전히 돌아갈 리는 없고, 당연히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서 유권자들에게 내밀 선물 꾸러미 하나쯤은 챙겨가고 싶을 터.
하나씩 정리해보자.
먼저 가장 큰 건.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소련이 모여 새로운 유럽 질서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
이미 프랑스가 주도하던 <독일 포위망>은 사실상 무너져 껍데기만 남았다.
그리고 조금 시야가 넓은 프랑스인이라면, 나의 초청에 스탈린이 응해 베를린까지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 굉장히 잘못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데까지 판단이 서야 정상이다.
프랑스인들의 마지막 기회는 바로 이번에 오는 영국과 소련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더 줘!! 제발!!’ 하면서 지금이라도 마음 고쳐먹고 같이 독일을 패자고 제안하는 것뿐인데, 그게 어디 쉽게 되겠나?
지금 연출되는 분위기만 보면 프랑스야말로 유럽 천지에 전무후무한 ‘백인이 백인을 식민지로 부리는’ 루르 강점을 저지르고, 전쟁 위기를 몇 차례씩 도발하다가 정작 무솔리니가 깽판을 치니 국제연맹이고 나발이고 입 닦고 모르쇠했다. 병신도 이런 병신이 없다.
반면 우리 독일은? 평화와 자강을 바라며 자유무역을 제창하는 평화의 민족 그 자체. 올림픽 정신이란 바로 게르만을 뜻하는 것이다. 대외적 이미지에서부터 이미 게임이 안 된다고.
여기에 언제나 악의 손길을 뻗고 싶어 하는 두체가 개입하면 일은 더 골치 아파진다.
과연 두체는 누구 편에 설 것인가?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친구로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저 탐욕스러운 돼지는 대체 그 대가로 얼마나 많은 걸 요구할까?
유럽만 해도 이 지경인데.
여기에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전혀 다른 게임판도 기다리고 있다.
쿠데타 이후 성립된 신정부는 모든 것이 안개에 덮여 있다.
이번 올림픽 회담을 계기로 처음 공개될 일본의 대외 전략.
그리고 일본의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리는 중화민국의 통곡과, 이 통곡을 듣고 달려와 자신의 이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미국. 그리고 아시아에 지켜야 할 이권과 식민지가 있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까지.
독일은 아시아에 아무런 연이 없지만, 일본 신정부에 대한 영향력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또 내가 어떤 식의 야부리를 털지도 미리 결정해 놔야 한단 말씀.
– 조선 독립.
그러니까 역시 가장 우선 순위가 될 만한 건 일본인들을 만나는 것인데.
– 조선, 독립!!
조용히 좀 해봐. 그게 중요해 지금? 진짜로 <조선로젠바움공화국>이나 <조선자치령>이 세워지면 좋겠어? 캬, 일본제국의 감독하에 조선자치령이 귀축영미에 선전포고. 가슴이 아주 그냥 쿵쾅쿵쾅 서라운드로 요동치네.
– 아니 이 자식아! 지금 조금만 삑사리 나도 대한민국이 아니라 인민공화국이 세워지든가 파쇼공화국이 세워질 판이잖아! 내가 지금! 엉?!
조선이라.
일본을 대할 때 과연 조선이란 키워드를 입에 올리는 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걸 모르겠단 말이지.
내 고민이 깊어지고 대머리 귀신의 귀곡성이 나날이 커져갈 무렵.
마침내 올림픽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