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Germany needs a Führer RAW novel - Chapter (13)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 13화(13/246)
분열
아헨(Aachen)행 기차 일등석.
나는 바깥을 내다보며 홀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인생 난이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하나도 재미없다. 농담이지?
항공업계를 내 손에 쥐고 통제한다는 망상은 하지도 않았다. 그딴 게 가능했으면 진작 원 역사에서도 라이트 형제가 세상을 씹어먹었지.
지금 내 인생은 아우토반(아직 없지만)이 쭈욱 깔려 있지만, 곳곳에 나를 음해하는 놈들이 대전차지뢰를 깔아 놓고 있다.
첫 번째 지뢰는 내 개인사. 학업과 군대다.
시발. 이게 말이야? 농담이지? 하늘의 정복자 아르민 로젠바움이 지금 대학교 학점이나 입대 같은 거로 골머리를 썩여야 한다고?
그냥 개같이 끌려가면 3년.
학사장교로 가면 1년(비용 본인 부담).
무조건 후자로 가야 하는데, 돈은 둘째치고 저 1년조차 너무 아깝다. 지금같이 새로 열린 시장에선 하루하루가 다 돈인데, 나더러 1년을 부대에서 흙 퍼먹으면서 보내라고?
그다음은 위에서 언급했던 사업 확장 문제.
카이저에게 손을 벌리는 건 자살행위.
카이저 빌헬름은 굉장히 예측할 수 없는, 대놓고 말해 꼴리는 대로 사는 핵폭탄형 인간. 근데 거기다 타이틀이 황제라서 뭐라 항의도 못 한다.
나는 이 핵폭탄의 힘으로 <체펠린 비행선 회사> 주주들을 무릎 꿇렸지만, 문제는 그 핵폭탄이 수류탄이란 거다. 일단 기폭하는 순간 적들은 가루가 되지만 나도 함께 가루가 된다니까? 가루는 우리 집 꼬라지만 콩가루인 거로 충분하지 않나.
그러니 적당히 이번 건처럼 ‘네 이놈들! 내 손에 들린 이게 두렵지 않은가?’ 하면서 북조선 에미나이들처럼 핵으로 돈을 뜯어내는 게 최선이다. 여기까진 상수.
이제 변수.
돈 많은 후발주자들.
몇 년 동안은 라이센스비로 막대한 현금을 끌어모을 수 있을 테니, 그 안에 나만의 회사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이륙시켜야 한다. 비행기는 이륙시켰는데 비행기 제조 회사를 이륙시키지 못하면 이게 무슨 개망신일까.
그런데 체펠린 백작이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단은 큰소리 땅땅 쳐서 잠깐 막아 놓긴 했는데, 슬슬 백작을 써먹을 구석은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내게 필요한 건 거의 다 구했다.
전 유럽 각지에서 돈을 싸들고 와서 내게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오열 종대로 베를린에서 포츠담까지 줄을 세울 수 있고, 마찬가지로 나와 함께 비행기 제작에 도전하고 싶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그 옆에 새로 팔열 종대를 하나 더 깔 수 있다.
딱히 내가 백작을 버리는 게 아니다.
백작은 행복하게 비행선에 매진하고, 나는 나대로 비행기를 만든다.
그냥 어쩌다 우리 인생의 교차점이 한 번 있었을 뿐.
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긴 채 기차에서 하차했고, 호텔에 체크인한 뒤 곧바로 아헨공대로 향했다.
전국각지를 부지런히 스캔해 내가 직접 영입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오일러 씨가 졸업하기도 했던 이 아헨공대의 열역학 교수 중 한 명.
“실례합니다, 교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초췌한 몰골의 조교가 나를 대기실로 안내해주고 나서 잠깐.
그 교수로 짐작되는 중년 남성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귀하께서 그 명성 드높은 아르민 로젠바움 씨입니까? 듣던 대로 정말··· 젊다 못해 어려 보이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젊은이의 특권이 있다면 바로 현명하고 나이 많은 분의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교수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무척 좋을 것 같습니다.”
“<빌헬름 대제>호는 이 분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이바흐 씨가 엔진을 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엔진을 맡기고 싶으신 겁니까?”
“물론 그렇게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단순한 엔지니어가 아니라 숫자와 경영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엔지니어가 필요합니다.”
“엔지니어들의 관리자 말이군요. 나 좀 봐. 명함 하나 드리지 않았군요.”
그는 얼른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휴고 융커스(Heinrich Hugo Junkers) 아헨공대 열역학 교수입니다. 이제 새 명함을 만들면 좋겠군요.”
“합류를 환영합니다. 함께 세상을 날아 보시죠.”
융커스, 하인켈, 메서슈미트 등.
미래 독일의 하늘을 지배할 전설적인 이름들.
그중 첫 타자를 잡았다.
***
다시 체펠린 백작 저택.
“카밀로 카스틸리오니(Camillo Castiglioni)라는 친구가 있어. 오스트리아에 사는 돈 좀 있는 유대인인데, 원래부터 열기구 타는 게 취미였지. 아, 지금은 콘스탄티노플에 있겠군.”
“그런데요?”
“<체펠린 비행선 회사>의 주주이기도 하다네. 아무튼 그 친구가 자네에게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야. 공개 비행 때 한 번, 얼마 전 주주총회에서 또 한 번. 크게 베팅해 볼 모양인데, 한번 만나보지 그러나.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많겠지만 비행에 진심인 투자자를 찾긴 생각보다 어려울 걸세.”
나는 대답하는 대신 앞에 놓인 찻잔만 슬며시 들었다.
백작은 약간 기운을 차렸지만, 여전히 표정은 요상야릇했다.
“로젠바움 군.”
“예.”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임세.”
“······.”
“뭘 그런 눈으로 보나. 자네 말대로 우리는 하늘을 날았네.”
“그러니까-”
“그러니까. 동력 비행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확인했으니, 자네는 그 모기 같은 비행기 개발에 전념하고 나는 나대로 비행선 개발에 전념하겠네.”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숨을 골랐다.
그리고,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번뜩이는 직관에 몸을 맡겼다.
왜 백작의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가.
“카이저입니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 팔병신이 자기가 숟가락 올리고 싶은데, 멍청이라고 비하해 오던 폰 체펠린이 후원자랍시고 딱 붙어 있으니 무슨 개같은 소리라도 찔러 와서 손 떼려는 거 아닙니까? 기껏 비행선 회사에 대고 칼춤 한번 거하게 췄는데 왜 받아먹질 않으려고 해요?”
“제국의 황제 폐하께 그 무슨 무례한 말인가. 이제 보니 자네, 충성심이 영 글렀구먼.”
백작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브루노 로젠바움 씨에게서 뜯어낸 시가를 입에 물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맵네, 이거. 여기서 기침이라도 했다간 바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야 할 애새끼 확정인데.
나는 천천히, 절대 기침이 나오지 않도록 목구멍을 신중히 움직이며 담배 연기를 토해냈다.
“백작님은 비행선 실컷 개발하십쇼. 나는 내 회사 차릴 테니까.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우리 사이의 인연을 정리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아직 자네가 어른이 아니라 그런 모양이지. 원래 내가 젊은 놈들 갖고 노는 걸 좋아해서, 자네처럼 맹랑한 친구는 별로 재미가 없다네.”
“그딴 헛소리 그만 주워섬기고-”
“내가 말했잖나. 혼맥으로 맺어져야 한다고.”
“까짓거 결혼하면 되죠. 혹시 둘 다 데려갈 순 없습니까? 농담입니다, 농담.”
나는 조용히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는 백작님을 향해 얼른 양손을 펄럭펄럭 내저었다.
“그때와는 달라.”
“압니다.”
“훨씬 힘들어졌지.”
“그것도 압니다.”
“첫째는 안 돼. 그랬다간 온갖 잡놈들이 시비를 걸 게야. 둘째나 데려가게.”
“따님 의사는 묻지 않아도 됩니까?”
“왜?”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젓는 백작님. 그렇지. 내가 또 19세기식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구나! 큰일이구나!
“저도 결혼 같은 중대사는 가장과-”
“로젠바움가의 가장이 브루노 씨인가, 아니면 아르민 씨인가?”
“물구나무서서 생각해도 제가 맞는 것 같군요.”
“문제없군.”
“그, 제가, 좀 방탕하게 살아왔는데.”
“혹시 전기충격이나 채찍질을 즐긴다거나, 남색이라도 탐하나?”
“제가 여자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자기파괴적인 새낀 아닙니다.”
“그럼 방탕한 것도 아니구만, 뭘. 데려가게. 꼭 손자 낳고.”
돌겠네 진짜.
여전히 백작의 얼굴엔 미소라곤 한 점도 없었다.
“다시 한번 묻겠네. 그냥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셈 치고, 나이와 계급을 떠나 좋은 친구로 남는 것으로 끝내면 어떻겠나?”
“어휴. 그럴 순 없죠. 죄송하지만 저는 백작님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고 싶어요.”
“정말 귀여운 맛이라곤 없는 애새끼라니까.”
당연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에 영웅 대접받을 체펠린’과 ‘나라 말아먹고 쫓겨날 팔병신’ 중 하나를 골라야 하면 무조건 전자잖아.
새삼스럽게.
***
이제 황제를 상대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글쎄,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황제 폐하의 난이도는 너무 이지하지 않은가.
열심히 양손을 비벼대며 그 놀라운 은총과 위엄을 칭송하기만 하면 대충 어떤 식으로든 끝나겠지.
카이저는 체펠린도 치워버리고 본인이 후원자 지위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그딴 걸 원할 리가 없잖은가.
카이저는 시한폭탄이다. 1918년이 되면 뻥 하고 터지고 내 모가지도 함께 뻥 하고 날아가겠지.
적당한 수준에서 챙길 것만 챙겨야지, 카이저의 충신이나 그 밑에서 아양 떨던 간신배 이미지가 박혀버렸다간 진짜 미국런 외엔 아무 답도 없어진다. 내가 아부해보니까 느낀 건데, 간신도 참 고충이 많았겠다 싶어.
나는 창문 너머 야경을 힐끗 보며 조금 더 고민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비행기 개발은 어떻게 할까.
일단 질러버리긴 했는데 진짜 결혼··· 해야 하나. 무를 순 없나 이거.
사업은 또 어떻게 운영하고, 누구 투자를 받아야 하나.
해외에서도 슬슬 반응이 올 텐데 어찌해야 하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아니, 독일의 패전이라는 절대명제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은 한가.
이 나라가 망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나를 반쯤 미치게 한다.
카이저에게 딸랑거려서 외교 정책을 바꾼다거나 하는 게 가능할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일단 회의적이다. 빌헬름 2세는 트러블메이커였지만 저능아는 아니다. 이 점에선 옆집 러시아의 니콜라이보단 낫거든.
카이저의 거의 모든 정책은 지금 독일 제국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이다.
크고 강대한 해군도.
국뽕 위주의 정책도.
식민지 확장 시도도.
모두 독일인이 원하는 것들이다. 정확히는 독일의 유권자들.
그리고 이 모든 정책이 하나같이 타국과의 외교 관계를 악화시키다가··· 펑! 터진 게 1차 대전이고.
나만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건 어쩌면 독일지도 모른다.
당장 내 꼬락서니를 봐라. 의논할 상대 하나 없잖은가. 내가 어디 카이저 귀는 당나귀 귀, 하면서 대나무숲에 갈 수도 없고,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어서 주거니받거니 떠들기라도 할 텐가?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나 씨발.”
나는 조금 전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유리에 시선을 맞추었다.
유리창엔 내 얼굴 대신 조범석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